1061화 뉴욕으로 (3)
원래 사람의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지면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전엔 없었던 통증 같은 것이 생겼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사장은 원래 건강 그 자체였던 사람이었던 만큼 최근 들어 도드라지는 체력 부족에 대한 염려가 꽤 심해지고 있었다.
통증까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인데, 막상 찾아간 병원에서는 딱히 이상 소견을 찾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제가 운동을 좀 시작을 했습니다.”
“얼마나 됐죠?”
“한…… 두 달?”
“오, 어떤 운동이에요?”
“운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그냥 헬스장에서 PT를 주에 2번 정도 받고요, 혼자 2번 더 하고요.”
“열심히 하시는데요?”
주에 근력 운동을 무려 4회나 한다는 건, 상당히 건강한 습관이었다.
물론 나이가 들어 시작한 데다가 기본 베이스가 아직은 딸릴 수밖에 없는 몸이니만큼 딱히 딱 봤을 때 운동한 태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허나 수혁은 일반인이 아닌 의사였기에 모양보다는 건강 그 자체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이었다.
‘그런 거까지 감안하더라도…… 그리 건강해 보이진 않지?’
[네. 뱃살이 아주 심하진 않은데……. 뭐, 이게 상당한 속도로 빠진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뭘……. 아, 그렇네.’
해서 근육질인지 뭔지를 살피기 전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지표인 허리둘레와 허벅지 둘레 등을 먼저 바라보았다.
바루다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한 소견이 하나 있었다.
전 사장, 그러니까 환자의 허리띠에 구멍 닳은 흔적이 지금 허리띠 찬 곳에서부터 무려 3칸이나 떨어져 있었다.
둘레로 따져도 대략 3, 4인치는 빠졌다는 얘기였다.
바지 사이즈가 3인치에서 4인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니 어마어마한 체중 감량 또는 허리둘레 변화가 있었다고 보면 되었다.
‘그에 비해 근육량이 많아 보이진 않아. 역시…….’
[네, 아무래도 체중 감량이 딱히 운동과 연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안됐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수혁의 낯빛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다행히 수혁이 표정을 안 숨기는 편인 것이지, 아주 드러내거나 변화무쌍한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 변화를 눈치챈 것은 안대훈뿐이었다.
‘뭘 봤…… 아, 허리띠……. 그래, 교수님 눈이 저기에……. 그렇군. 살이 많이 빠졌어. 보통 운동했는데 살이 빠졌다면 좋은 일이야. 좋은 일인데…….’
안대훈은 그런 수혁의 변화를 눈치챈 것으로도 모자라 수혁이 왜 저런 표정을 짓게 되었는지도 끊임없이 유추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까지 해내는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수혁의 초점이 정확히 어디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에 머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쭉 보고 있기가 상당히 무서워서 그랬다.
허나 안대훈은 실로 놀라운 신앙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돌파해 낸 사람인 만큼, 두려움 없이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3인치에서 4인치……. 저 정도면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겠지. 운동만으로는 절대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야.’
원래 다이어트는 운동 하나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 아니던가.
체성분을 천천히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야 운동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단기간에 체중 감량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식단 조절이 필수였다.
‘뭐……. 비즈니스석에 타서 흥분을 한 탓도 있긴 하겠지만……. 대개 식단 조절 중인 데다가 그게 효과를 보고 있는 와중이라면 저렇게까지 먹진 않지.’
안대훈의 시선이 천천히 환자의 좌석, 그중에서도 식사 플레이트 쪽으로 향했다.
수혁처럼 공부하면서 다른 곳을 다 살필 수 있는 재주는 없기에 정확지는 않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이 사람은 이륙 후 벌써 대여섯 번은 술을 마셨다.
이제 보니 술만 마신 것도 아니고 나름 안주도 시켜 먹은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과자와 땅콩 등의 마른안주가 흡입된 흔적이 널려 있었다.
잘 먹었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술과 곁들여서.
‘그 말은 만성질환이 있어서 살이 빠진다는 거야. 환자 반응을 보면 사타구니 쪽 통증 말고는 뭐가 없는 거 같은데……. 그 말은…… 설마 고환암인가?’
잘 먹는데도 40대 이상의 남성이 살이 빠지고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릴 만한 질환은 슬프게도 암이었다.
암은 워낙에 빨리 자라는 종양이다 보니 체내 에너지를 마구 빼앗아 가기에 그랬다.
딱히 소화기관에 발생한 암이 아니어도 체중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단 얘기였다.
‘대강 암까지는 온 거 같지?’
[힌트를 어마어마하게 줬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해 줘야 안대훈이지.’
[그렇죠. 이것도 못 하면 여태까지 희생된 머리카락들의 원혼이 흐느낄 겁니다.]
안대훈만 수혁을 살피고 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수혁이 안대훈을 수제자로 낙점한 순간부터, 그는 바루다까지 동원해 가면서 면밀히 살피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덕분에 안대훈보다 더한 스캐닝이 가능했다.
“자, 환자분.”
“네.”
수혁은 여전히 어두운 낯빛을 한 채, 환자에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사이 이런저런 생각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루다와의 토론도 이어 나간 참이었지만, 정작 지나간 시간은 수초에 불과했다.
이제 수혁의 추론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를 넘어 명실공히 세계 최고를 논할 만해져서 그랬다.
“그 운동을 할 때, 따로 아픈 곳이 있었나요?”
“아……. 네. 맞다. 그거 말씀드리려다가……. 여기요. 여기가 아픕니다.”
환자가 가리킨 곳은 본인의 쇄골 끝이었다.
어깨 관절과 연하는 지점이었는데, 세게 만지면 아픈지 수혁이 손을 대려 하자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그래 봐야 비행기 안이다 보니 어디 피할 곳이 있진 않았다.
“여기요?”
“아, 네.”
“어떤 운동할 때 아파요?”
“보통 벤치요.”
“벤치라. 원래도 잘 다칠 수 있는 운동이긴 하죠. 제가 한번 봐도 될까요?”
“아, 네. 물론…… 물론입니다. 근데 너무 세게 하시면……. 읍.”
수혁은 그렇게 허락 아닌 허락을 구한 채로 환자의 좌측 어깨 부위를 만지기 시작했다.
바루다의 세밀한 조정하에 허락된,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신체 검진이었다.
옆에서 볼 때야 그냥 이 사람은 좀 유별나게 느리게 만지작거리네 싶기만 하겠지만, 수혁과 바루다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동시에 빠르게 토의를 주고받고 있었다.
‘초음파로 보면 되는데…….’
[그니까요. 지금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아깝습니다…….]
‘하지만 확실해졌지.’
[네. 확실하죠. 덩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확실히 덩이가 있습니다. 여기만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긴 잘 모르겠지만…….’
그러는 사이 수혁의 손가락은 환자의 어깨에서 흉골 가운데 부분으로 와 있었다.
환자는 살짝 불편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의사가 만지는 건데.
게다가 수혁의 얼굴이 너무 진중해서 뭐라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제지해야 할 승무원도 넋을 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승무원을 부를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하는 거래……?”
“이수혁 교수님이라는데, 태화.”
“아, 아! 나 한퀴즈에서 봤다. 진짜 대단한 분이던데.”
“아……. 맞네. 와, 나 이런 거 처음 봐.”
진료는 일종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다.
이상해 보이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의학의 유구한 역사를 뒤져 보면 오히려 진료가 구경거리가 아니었던 시기가 훨씬 짧았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수혁이 환자 볼 때의 집중력은 지나치나 싶을 만큼 우수하기 때문에 진료는 지체 없이 진행되었다.
“환자분.”
“네.”
아까보다 더 진중해진 아니, 심각해진 수혁이 다시 환자를 불렀다.
99%에서 100%가 되어서 그랬다.
이 질환은…….
좋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서 진단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항암제의 발전으로 인해 빨리 진단만 되면 방법은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잘 때 땀 안 납니까?”
“땀이요……? 어……. 그러고 보니, 요새 좀 난방이 과한가 했는데…….”
“땀이 나는군요?”
“네. 자고 나면 잠옷이 다 젖어서 불편……. 잠만, 이거 안 좋은 겁니까?”
“좋진 않습니다. 확실한 건 가서 더 검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그……. 뭐, 뭔데요? 뭡니까?”
환자의 말에 수혁은 즉시 답하는 대신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안대훈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단서를 던져 주지 않았나.
이걸 종합해 낼 수 없다면, 어디 가서 수제자라고 떠들고 다니긴 어려울 터였다.
“알코올 유발 요통……. 극히 드문 증상이죠.”
“그래, 그렇지. 어디서 나타날 수 있지?”
“대개의 경우 악성 종양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엔?”
두 사제의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은 딱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얼마간 비현실적인 면모가 있었다.
비단 환자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승무원도 그렇지만, 뒤늦게 따라붙은 다른 승객들도 그랬다.
“대화만 한 거…… 아냐?”
“아니, 만져 보기도 했지.”
“그걸로 악성 종양이……. 악성 종양은 암 아냐? 그게 진단이 돼?”
“좀 조용히 할래? 가뜩이나 비행기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는데.”
“어, 미안.”
수혁이 한 게 뭐가 있지?
그 흔한 엑스레이 하나 찍은 적도 없었다.
말한 대로 대화와 잠깐의 신체 검진 그리고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이 이 세 행위만으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지 모르는 이들로서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로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쇄골 주변에서도 관찰되는 종양, 급격한 체중 감소에 야간 발열까지. 호지킨 림프종…….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입니다.”
그런 스승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대훈도 충격이었다.
“와……. 괜히 의사 아니구나.”
“통합진료센터가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빈말 아니네…….”
“미쳤네.”
“아 찍을걸, 영상.”
승객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승무원도 그랬다.
말을 아끼고 있는 건, 환자 그러니까 또 다른 승객의 표정 때문이었다.
“제, 제가……. 뭐라고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아니겠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은 미국으로 외유성 출장 가는, 그것도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는 나름 성공한 느낌의 사업가였다.
슬슬 건강이 염려되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 봐야 술 먹으면 허리 아픈 것 정도, 그리고 벤치 프레스할 때 어깨가 살짝 아픈 것 정도가 실재하는 증상이었다.
헌데 뭐라고?
“혈액암입니다. 서둘러서 치료해야 해요. 뉴욕에서 급한 일정이 뭐가 있죠?”
“그…… 미팅……. 아니, 그보다 암? 암이라고요?”
“네.”
“저……. 저 조직 검사도 안 했는데요…….”
“호지킨 림프종의 아형은 그래서 아직 모르긴 합니다만, 아예 다른 질환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 미팅만 보시고, 뉴욕에 있는 태화 센터로 가시죠. 이거.”
“이게…….”
“의뢰서입니다. 그냥 볼펜으로 적은 거라 정규 효험은 없겠지만……. 제가 보냈다고 하면 돌려보내진 않을 거예요. 어차피 정식 오픈을 한 병원이 아니니, 검사도 시험 명목으로 하면 무료로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