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5화 혼내 주러 왔습니다만 (4)
근래에 발생한 종괴.
물론 악성 종양, 즉 암이 다른 양성 종양보다는 아무래도 더 빨리 자라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괴라는 건 어찌 되었건 하나의 조직이지 않나?
영양분이 들어와야 했고 기본적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저 새끼……. 설마?’
잠시 스튜어드의 눈에 불안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안대훈의 모습은 전사의 모습이지 학자의 모습은 결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외모로 사람 평가하는 것처럼 모자란 짓도 없겠으나 스튜어드 수준이 딱 그 정도 아니던가.
수준 있는 사람이라면 인종 가지고 평가하지 않을 테니 별로 억울해할 만한 건덕지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이걸 염두에 두고 환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첫 번째 사진으로 넘겨주시겠어요?”
안대훈은 침착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쳐든 채로 말했다.
이게 다 수혁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다른 이가 했다면 어설퍼서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텐데 안대훈은 달랐다.
그처럼 수혁을 가까이에서 최선을 다해 모시는 사람이 또 있겠나.
거의 카피 닌자 수준이었다.
“아……. 네.”
발표를 맡았던 의사는 잠시 스튜어드의 눈치를 살피다가 피피티를 돌렸다.
싸한 기분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던가.
생존을 위한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을 지경이었다.
허나 스튜어드는 이미 저놈이 알 수 있을 턱이 없으리란 확신에 억지로라도 몸을 내던진 참이었기에 그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거기. 사진이요.”
“네.”
안대훈은 환자의 가슴 사진을 띄웠다.
우측 유방 상 외측에 종양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부종과 홍반이 동반된 사진이기도 했다.
“부종과 홍반이 동반되는 경우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닙니다. 타입에 따라서는 아예 염증 소견이 메인이 되기도 하죠.”
대훈은 그 사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혁처럼 바루다를 탑재한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담아 둔 배경지식 또한 한참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표는 유려하기만 했다.
심지어 영어 또한 약간 발음이 거친 것만 빼고는 훌륭한 편이었다.
이 모든 것을 노력으로 일구어 냈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이지 기립 박수를 받아도 모자랄 거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경우라면, 그러니까…… 염증성 유방암(Inflammatory breast cancer)이라면 이런 식으로 나타나기보다는 피부에 직접적으로 염증이 침범하는 형식으로 나타날 겁니다. 이 환자의 경우엔 오히려 정말 다른 염증이 동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대훈은 막힘없이 입을 놀려 댔다.
딱히 청중을 돌아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드문드문 수혁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잘하네.’
[논리 쌓아 나가는 방식이 우리와 아주 닮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출어람까지는 어렵겠지만 저 상태로 쭉 발전한다면 진짜 대단한 의사가 될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을까?’
[이현종?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죠.]
이현종이 들었다면 당장에라도 골프채 들고 뛰어올 만한 발언이었다.
그의 의사로서의 프라이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타고난 머리가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젊었을 적 이현종의 곁에는 없었던 희대의 페이스메이커 수혁과 딱 붙어 있지 않나.
아무튼, 안대훈은 수혁의 밝은 표정과 이따금 끄덕이는 고갯짓을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까 제가 종괴라고 표현했는데……. 염증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빠르게 종괴가 형성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뭐가 자라나는 게 아니라 그냥 붓고, 근처에 있던 면역 세포가 끌려와 고름을 형성하는 듯한 기전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 염증성 종괴니까요.”
반면 안대훈이 신경도 안 쓰고 있는, 이 자리의 좌장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인 스튜어드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염증이라고……? 아니, 저런 식으로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흔한가? 아닌데? 그럴 수가 없는데?’
정답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스튜어드뿐만 아니라 이 병원 모두는 이 케이스를 두고 암이 아닐 수도 있단 가능성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무조건 암으로만 보였으니까.
‘그때…… 조직 검사 결과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당연히 절제술이 시행되었고, 그렇게 절제된 조직에서는 암세포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나 놀랐나.
육아종성 병변만이 보인다고 했을 땐.
오진도 그런 오진이 없었다.
세상에 감염 질환에 수술을 하다니.
그것도 유방 수술을.
이거 수습하느라 진땀 뺐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모든 의료 기관에서 인정했단 말이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그냥 케이스가 비정상적으로 어려웠다는 걸……!’
스튜어드는 지금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참아 내고 있었다.
그사이 대훈은 알아서 피피티를 넘긴 후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육안으로 볼 때는 림프절 전이는 없었죠. 혈액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은 없었습니다. 종양 표지자도…… CA-125가 약간 상승하긴 했는데, 말 그대로 약간이죠. 게다가 이 CA-125라는 표지자는 유방암에서도 오르긴 하지만, 주로 난소암이나 자궁내막암을 진단하는 데 쓰이는 표지자입니다. 거기서도 선별 검사로써의 가치는 떨어지죠. 대개는 예후를 판가름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입니다.”
여전히 물 흐르는 듯한 발표였다.
준비를 철저히 했을 아까 그 의사보다도 더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을 지경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멍청한 놈……. 케이스 선정을 이렇게 하다니.’
[그러니까요. 각 나라별로 질환의 유병률이 다르다는 것도 생각 못 하는 걸까요?]
‘아빠가 그랬잖아. 오만한 놈들 많다고.’
[하긴……. 그래도 이상하군요. 오만한 것과는 별개로 환자를 볼 때는 그 어떤 편견도 없이 바라봐야 오진이 적어지는 법인데요.]
‘괜히 스튜피드겠냐.’
[그렇군요].
마냥 이상하게만 여길 일은 아니었다.
원래 각 나라별로 질환 유병률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구성하는 민족 또는 인종 차이 때문에도 그럴 수 있고 또 지리나 기후 때문에도 그럴 수 있었다.
하물며 대한민국과 미국은 아예 대륙이 달랐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만 했다.
“나머지 표지자는 정상이죠. 여기서도 암일 가능성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유방 조영술 자체는 악성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보일 경우 반드시 감별해야 할 질환이 하나 있습니다.”
안대훈은 의자를 뒤로 밀어젖히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그에게 쏠려 있던 관심이 더더욱 쏠리기 시작했다.
아주 효과적인 방식이었는데, 이 또한 수혁에게 배운 것이었다.
누가 봐도 중요해 보이는 시점에 돌연 입을 다문다든지, 아니면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말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보다 더 이목을 끌기 좋다는 걸 대훈은 수혁을 통해 벌써 여러 차례 배운 바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질환이 바로 감염 질환입니다. 결핵입니다.”
“아.”
결핵.
이 유구한 전통을 지닌 질환의 이름이 툭 하고 튀어나왔을 때, 스튜어드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렸다.
그 외에 다른 이들 또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들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질환을 단지 발표만 듣고서 떠올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심지어 수혁도 아니고 그의 제자가 그랬다.
교수가 아닌 펠로우가 그랬다.
‘이거……. 태화 의료원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높은 거 아닌가……?’
이 자리엔 스튜어드에게 찬동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여전히 태화를 비롯한 한국 의료 시설에 비해 미국의 의료 수준이 훨씬 높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수혁 정도는 인정할 만하지 않나 했던 이들도 있었다.
학회 발표뿐 아니라 이번 코비드 사태에서 보여 주었던 모습 때문이었다.
확실히 달랐다.
헌데 이 정도라고?
모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는 가운데, 대훈이 말했다.
“초음파 소견 또한 다르지 않은데……. 이런 모습도 결핵, 그중에서도 유선 결핵에서 자주 보이는 병변입니다. 폐실질이 깨끗하다고 해서 결핵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리는 흔히 폐결핵을 결핵으로 오용하곤 하지만 사실 폐결핵이란 결핵의 가장 흔한 형태일 뿐이지 않습니까?”
대훈은 의심의 증거로 쓰일 수 있는 CT 사진과 흉부 엑스레이를 가리켰다.
말한 대로 깨끗했다.
폐결핵은 없다는 얘기였다.
허나 그에 대한 반박은 이미 대훈이 해 버렸다.
확실히 폐결핵은 결핵의 가장 흔한 형태일 뿐, 결핵 자체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러한 형태의 결핵을 유선결핵 또는 유방 결핵이라고 합니다. 주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에서는 발병률을 계산하기도 어려울 만큼 드문 질환이죠.”
그래, 드물다.
결핵에 대한 주사를 맞는 나라, 또 결핵에 걸릴 만큼 영양 결핍이 심하지 않고 또 과도한 노동에 혹사당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유방 결핵이 아니라 숫제 결핵 자체가 드물었다.
대한민국 또한 과거에 비하면 결핵 유병률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 않았나.
막말로 약이 없는 질환도 아니고, 또 BCG라는 예방 접종도 있는 질환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대한민국은 다시 늘어나고 있었다.
새터민과 중국과 같은 인접한 나라에서 노동 인구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늘고 있지.’
[네, 통계만 봐도 결핵은 여전히 대단히 중요한 질환입니다.]
당장 코비드로 난리가 났었지만, 매년 결핵으로 죽는 환자 수를 생각하면 오히려 결핵 쪽을 더 신경 써야 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의료진은 결핵에 익숙할 수밖에 없고 또 어떤 질환을 진단할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결핵을 감별해 내는 데 능숙했다.
대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결핵이 흔한 지역에서조차 대개 1% 내외로 보이는 드문 질환입니다. 하지만 드물다고 해서 무시해도 좋은 건 결코 아니죠. 암과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 전혀 다른 경과를 밟고 또 전혀 다른 치료를 해야 하는 만큼 무조건 감별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대훈은 어느새 발표를 받았던 의사의 손에서 마우스를 빼앗은 참이었다.
툭 하고 누르자, 다음 화면이 떴다.
수술 장면이었다.
“엥……?”
수혁은 참지 못하고 의문을 토했다.
미친놈이 이걸 왜 수술을 했단 말인가.
정 모르겠으면 그냥 코어니들 바이옵시를 했으면 되지 않나?
뭐, 거기서 꽝이 나왔더라도 그러니까 암세포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결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암인데 안 나온 거라고 여기도 쨌을 가능성이 더 크긴 할 텐데…….
“미쳤나?”
수혁은 이럴 때 참지 못하는 게 아니라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서 욕부터 내뱉었다.
대훈도 그랬다.
‘적이라, 이거지?’
원래 같았으면 참았을 텐데 수혁 때문에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조직 검사를 하건 뭘 하건……. 신중하게 해야죠. 수술이라뇨. 환자 환부는 어떻습니까? 지금 입원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