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화 혼내 주러 왔습니다만 (5)
“그…….”
닥터 스튜어드의 표정은 그야말로 볼만해져 있었다.
이 난관을 어찌 타개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뭐 이따위 생각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그랬다.
일단 이 케이스가 파훼된 것도 이상한 일인데, 심지어 그걸 해낸 놈이 오늘 처음 보는 놈이라고?
하다못해 이수혁이 했다면 뭔가 면피거리라도 간신히 생각해 낼 수 있었을 텐데…….
“제 말이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환자 지금 입원해 있냐고 물었습니다만?”
안대훈은 그런 스튜어드를, 그러니까 철저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스튜어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종래에는 원래 발표를 맡았던 이를 돌아보았다.
원래 의사라는 족속들이 의술 하나 제외하면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아니던가.
여기 있는 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보니 눈에 띄게 당황한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입원해 있군요? 선생님이 주치의입니까?”
“그……. 네.”
다 알고 묻는데 뭐 어쩌겠나.
숨긴다고 해결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저 망할 놈의 스튜어드가 무려 미국 보건복지부에 연통을 넣어 임시 진료 권한을 발급해 주지 않았나.
심지어 병원 이사회에도 들어가 수혁과 동행인이 체류하는 동안 병원 진료가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 마음대로 병원 내부를 돌아다녀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었다.
‘병신이…….’
의사는 사상 처음으로 스튜어드를 속으로 욕한 후, 안대훈과 수혁을 바라보았다.
썩어 들어가는 스튜어드와는 달리 둘의 얼굴은 참으로 당당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눈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환자를 향한 것일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핵균은 질릴 정도로 질긴 놈들이니까.
“그……. 이따가 제가 안내드려도 될까요? 아직 컨퍼런스가 끝나지 않아서요.”
“네, 부탁드립니다. 아니, 근데 이런 실수를……. 제가 알기로 이 병원이 꽤 좋은 병원으로 알고 있는데요.”
안대훈은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쉬면서 스튜어드를 돌아보았다.
너는 대체 뭐 하는 새끼냐, 뭐 이런 눈빛을 하고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감히 동양 놈이 건방지게 이러고 있네 어쩌네 하면서 버럭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원래 이 케이스로 30분을 끌 생각이었는데…….’
조용한 것은 발표를 맡은 의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케이스, 너무 어려워서 절대 맞히지 못해. 그럼 우리가 이런저런 근거를 대면서 갈구는 거지. 그렇게 한 30분이 갈 테니……. 나머지는 뭐 알아서 올려. 각 과에서 어려워하는 거……. 그거야 우리가 토의하면서 해결하면 되는데. 시간 모자랄 거야. 나중에 알아서 봐주겠다고 해.
미친놈이야?
뭐? 너무 어려워?
그래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침몰당했냐?
의사는 샐쭉해진 얼굴로 스튜어드를 흘겨보았다.
별 소용은 없었다.
스튜어드는 쥐구멍이라도 찾는 듯한 얼굴이 되어 바닥만 보고 있었으니까.
-혹시 모르지? 우리 훌륭한 이수혁 선생이 어려운 케이스를 맞힐 수도 있지? 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처량해 보일 지경이었다.
애초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만큼 감정이 마냥 좋지도 않았던지라, 의사의 마음속에서는 스튜어드에 대한 불만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하아……. 하지만……. 나도 마운트 사이나 사람이긴 하지.’
애석한 일은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란 점이었다.
소속이 여긴데 뭐 어쩌겠나.
그냥저냥 한 병원도 아니고 대우가 탑급인 병원이다 보니 어떻게든 남는 게 우선이었다.
해야 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말이었다.
해서 의사는 자기도 모르게 품었던 불만을 저리 치워 두고는 화면을 넘겼다.
“그, 일단 오늘 컨퍼런스를 진행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월요일 컨퍼런스는 내과 각 과에서 지난주에 봤던 케이스 중 아직 진단이 안 되었거나, 진단이 되었으나 확진이 아닌 경우 또는 경과가 괴이한 케이스를 다 같이 보면서 해결해 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수혁과 대훈을 힐끔거렸다.
이 컨퍼런스 자체가 사실 급조된 것이고, 급조될 때 어디를 레퍼런스 삼아 만들었는지가 명확했기에 그랬다.
아니, 그냥 그게 사실이었다.
-태화 같은 작은 병원에서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있나?
닥터 스튜어드가 한국 다녀와서 돌아 버렸단 소문이 괜히 도는 게 아니었다.
오자마자 씩씩거리더니 이 컨퍼런스를 만들지 않았나.
다행히 이사회나 다른 내과 과장들도 뭐, 공부하자는 차원에서 나쁘지 않겠다 여겨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얘기 꺼냈을 때 바로 날아갈 뻔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냥 멀뚱히 있네……. 관대한 건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가…….’
의사는 괜히 눈치를 살피다가, 둘이 의외로 가만히 있다는 걸 보고는 다소 안심한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도 혈액종양내과 파트에서 올라온 케이스입니다. 금일 수술 예정이고……. 컨퍼런스 끝날 때쯤 환자가 내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수혁과 대훈이 반응을 보인 것은, 금일 수술 예정이란 말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뭐 그냥 그런 갑다 하고 들었을 텐데 방금 거하게 사고 친 케이스를 보지 않았나.
세상에 유선결핵 환자에 대해 냅다 절제를 해 버리다니…….
불필요한 절제를 해서 재건과 재활이 필요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의료사고인데, 거기에 더해 결핵 감염이 있는 부위에 칼을 대면 칼 댄 부위 따라 인위적인 전염이 되는 것이 문제였다.
커다란 수술이 아니라 그저 경부 림프절에 대한 국소 절제 생검, 즉 조직 검사를 위한 수술만 해 놔도 목의 피부를 뚫고 균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지독한데, 그 부위가 다른 곳도 아니고 유방이라니…….
‘미친놈들이지……. 신중해야지. 부위가……. 아니, 진짜…….’
[그러니까요. 그걸 또 뻔뻔하게 여기에다 올리는 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도 그랬잖아. 지들이 실수한 걸 올리는 게, 이 새끼 특징인가 봐.’
[거참…….]
수혁이 만약 입이 좀 거친 사람이었다면 방금의 대화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쌍욕으로 가득 차 있었을 터였다.
그만큼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안대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정수리 끝이 붉게 물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45세 남자 환자, 우측 하복부 통증을 주소로 응급실로 내원하였습니다.”
의사는 그 둘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떼어 낸 후, 말을 이었다.
화면에 뜬 진료 기록을 다 읽거나 하진 않았다.
주소와 성별 등만 읽었다.
허나 수혁은 특유의 속독 능력과 더불어 바루다의 능력을 더해 적혀 있는 모든 것을 숙지했다.
가령 과거력이나 내원 당시의 바이탈 사인, 직업 등등 같은 것들까지도 다 읽고 기억했다.
‘환자가…… 4년 전에 입원해서 치료받았던 병력이 있어.’
[네, 당시 소화기 내과에 입원했군요. 주된 증상이 뭐였을까요?]
‘입원 기간이 5일에 불과한 것을 보면 수술이 필요했던 질환은 아니었을 거야. 아마도 소화기계통 증상이 있었겠지. 가령 복통이나, 설사, 변비 등과 같은 것들.’
[타당한 추론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토론을 이어 나갔다.
물론 속으로만 이루어진 토론이었기 때문에, 의사의 발표는 꾸준히 이어졌다.
“우 하복부 통증이 있었고, 내원 당시 시행한 검진에서 압통 및 반발 압통이 있었습니다. 환자가 충수돌기염으로 수술받은 병력이 없었고, 수술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이를 감별하기 위해 복부 CT를 촬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꽤 그럴싸한 흐름이었다.
수혁도 대훈도 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였다.
그래, 이런 케이스에서는 일단 이렇게 해야지? 뭐 이런 느낌이었다.
“당시 CT 영상입니다. 컷을 잘라서 오진 않았고……. 그냥 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그런 반응에 힘입어, 아까보다는 기운찬 얼굴로 영상을 띄운 후 마우스 스크롤을 긁어내렸다.
아무래도 환자가 아주 젊은 환자는 아니다 보니 신장에 피질 낭종이 있었다.
이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니 넘어가도 되었다.
단지 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뿐, 치료가 필요한 병변은 아니었으니.
문제는 역시나 충수돌기 아니, 맹장에 있었다.
“흐음…….”
수혁은 저도 모르게 턱을 쓸어내리며 신음을 흘렸다.
일반적인 모양이 아니라서 그랬다.
‘옳거니.’
스튜어드는 그제야 조금 상태를 회복했다.
그래 봐야 처음처럼 건방진 행태를 보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아니, 이번에야말로…… 와 같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대훈이는 모르는 거 같지?’
[맹장암 자체가 아주 드문 질환입니다. 그에 더해 환자의 직업과 과거력을 고려할 때……. 더더욱 드문 상황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거 알면 안대훈 머리도 까 봐야 할 겁니다.]
‘그렇지. 제2의 너를 품고 있지 않고서야…….’
[오랜만이네요.]
‘응?’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죠?]
‘그거야,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수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들과 같은 얼굴이 되어 버린 안대훈을 바라보다가 이내 영상을 바라보았다.
영상 속 맹장의 벽은 대략 3cm 이상 두꺼워져 있었다.
그마저도 동심원으로 두꺼워져 있었고, 그에 더해 종괴를 형성하고 있었다.
“맹장암으로 예비진단을 내렸습니다. 내원 당시 금식이 시행되어 있지 않아, 당일 시행한 대장 내시경에서는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맹장까지 닿지 못했습니다.”
사진은 굳이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 봐야 변밖에 안 보일 테니 그럴 터였다.
뭐, 직장이나 하다못해 하행 결장 정도만 되었더라도 어거지로 비집고 들어가 보았을 텐데 맹장은 너무 멀었다.
금식이 전혀 시행되지 않은 대장을 뚫고 들어가는 건 힘들기도 하거니와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하는 술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니까.
게다가 대장은 위와는 달리 벽이 얇아서 자칫 잘못하면 구멍이 날 수 있었다.
세상에, 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단순 대장 내시경을 시행하다가 장에 구멍이 난다면 어찌 될까.
‘안 될 말이지……. 하지만 좀 아쉬운데…….’
[내원 날짜가 어제입니다. 응급실로 왔는데 당일 대장 내시경을 시행할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하다고 봐야겠죠.]
‘하긴……. 그런 시스템 자체는 우리보다 나은 거 같아.’
[네. 뭐……. 여긴 원체 비싸니까요.]
대한민국에서는 위 내시경이야 2, 3만 원, 수면까지 하면 10만 원 선이니 넘어가고, 대장 내시경은 비수면으로 하는 경우가 없으니 수면을 기본으로 깔고 말하자면 20만 원 내외이지만…….
미국에서는 그 열 배도 훌쩍 넘어가 버리지 않나.
그 ‘때문에’라고 해야 할지 ‘덕분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곳은 내시경 가능한 의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환자가 원하고 있기도 하고, 또 암이라면 빨리 진단해서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일 오전에 우선 복강경으로 탐색술을 시행한 후, 동결절편검사 결과에 따라 절제술 시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자, 다음 케이스는…….”
의사는 치료 계획을 물 흐르듯 말했다.
그리고 화면을 넘기려는데 수혁이 손을 들었다.
“잠깐.”
“네?”
“대장 내시경 다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의외의 말을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