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67화 (1,067/1,303)

1067화 혼내 주러 왔습니다만 (6)

대장 내시경.

좋은 검사였다.

‘누가 처음 이런 생각을 했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대단히 많은 정보를 탁탁 얻어 낼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고안한 직장경이 그 기원이라고 하는데…….

잘 찾아보면 말이 좋아서 직장경이지 실상은 고문 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튼, 꽤 의외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의사는 피피티 넘기려던 손을 멈칫거리고 있었다.

아니, 숫제 방황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네?”

“대장 내시경 다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혁은 그런 의사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딱 의사만 본 건 아니고, 옆에 있던 스튜어드도 힐끔 바라보았는데 그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마 제정신이었다 해도 별 소용은 없었을 터였다.

왜냐.

스튜어드는 내분비내과 의사이지 종양이나 감염내과 의사가 아니어서 그랬다.

다시 말하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말이었다.

“그…… 이미 한번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어제 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습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직장 그 이상으로는 진입하지 못했더랬다.

시그모이드, 즉 S상 결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S자로 꼬이는데 이 때문에 무리해서 진입하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었다.

시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그런 짓을 하는 건 무도한 일이었다.

“오늘은 할 수 있을 텐데요? 어제 금식을 했을 테니까요. 관장도 했을 테고.”

배 수술을 하기 전에 관장하는 건 이제 꽤 흔한 일이 되었다.

수술하다가 팍 하고 터졌다가는 우리가 흔히 우려하는 컨타미네이션 정도가 아닌 똥타미네이션이 될 테니까.

루틴이다, 이건데…….

“네, 그렇긴 합니다.”

마운트 사이나 병원도 그랬다.

의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까 냈던 케이스…….

그러니까 2주간이나 묵혀 두었던 그 어려웠던 케이스를 수혁 본인도 아닌 대훈이 풀어내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왜 시간 낭비를 시키나 하면서 불만을 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해야죠? 수술 전에 뭐든 더 확실히 하고 들어가야죠.”

“하지만…… 어차피 복강경으로 볼 것이고, 이 환자의 병변은 암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건 영상의학과나 외과에서도 의견이 일치하는 사항입니다.”

“선생님.”

그럼에도 불민한 반응이 아예 튀어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그렇듯이 마운트 사이나 병원도 특히 오전 일과는 빡세기에 그랬다.

게다가 지금 하는 이 컨퍼런스는 사실 한국 가서 미쳐서 왔다는 스튜어드가 독단으로 연…….

그러니까 하등 쓸모없는 컨퍼런스 아니던가.

모든 분과가 모여서 하는 토의라니.

여기서 대체 배우면 뭘 얼마나 배우겠나.

아니, 배워서 뭐 어쩌겠나.

어차피 다른 과 지식을 쌓는다고 해 봐야 자기 필드에서 딱히 도움이 될 것도 아닌데.

“엇, 네.”

해서 하소연을 늘어놓듯 설명을 했더니, 수혁이 그를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불렀다.

목소리에 어딘지 모를 힘이 느껴졌다.

사실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딱 두려움을 느낄 만한 톤을 낸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야 알 게 뭐란 말인가.

그저 이 사람이 확실히 범상치 않은 사람이구나 싶을 뿐이었다.

“다른 과 사람들의 의견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우리는 환자를 보고 그 환자가 보이는 소견을 종합해서 환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라도 진단을 내려야 하는 내과 의사 아닙니까?”

“그……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긴 했다.

지금이야 진단을 보조할 수 있는 수단들이 워낙 많아지긴 했지만, 애초에 내과 의사란 족속들은 수혁이 말한 대로 환자의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라도 알아내야 하는 이들 아니던가.

그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 자부심이기도 했다.

어느덧 의사는 수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환자의 소견엔 뭐가 있죠?”

“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내원 전일 복통을 주소로 왔고, 시행한 CT에서 맹장 벽 비후가 있었습니다. 이는 동심원 모양으로 두꺼워지는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맹장암에 가장 합당한 소견이었습니다.”

“아까 말한 거 말고.”

“어……. 네?”

말한 거 말고……?

말한 거 말고는 무슨 소견이 있지?

지금 발표를 맡은 의사도 스튜어드가 직접 지휘봉을 맡겼을 만큼이나 꽤 지위가 있는 양반이었다.

응급실 당직을 서진 않았단 얘기였다.

전해 들은 것이 다다 이건데…….

‘잘 모르나? 환자에 대해 파악을 하지 않고 발표를 하고 있는 건가?’

[기본도 안 되어 있군요. 병원 한번 뒤집어엎을까요?]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막 분노가 치솟아 올라왔다.

수혁과 바루다 둘 다 의견이 일치했다 보니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했다.

자연히 의사는 살짝 쫄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억울할 만도 한 일이긴 했다.

-응? 나머지? 아니, 유선결핵을 어찌 진단한다고? 대충 구색만 맞춰. 케이스 숫자나 맞추라고.

스튜어드의 말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러니까 한국 가기 전처럼 자신감이 넘쳐흐르던 그는 절대로 진단하지 못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더랬다.

‘저 미친놈이……. 저 새끼 때문에 내가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이냐…….’

의사는 저도 모르게 스튜어드를 흘겨보았다.

별 소용은 없었다.

스튜어드는 이미 침몰했으니까.

저러다 또 그 동양인 놈이 무슨 술수를 쓴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마치 히틀러라도 된 양 굴 게 뻔하긴 했다.

아니, 유태인인데 제일 닮아 보이는 인간이 히틀러라면 이거 문제가 있어도 상당히 크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선생님. 일단 화면 뒤로 돌아가 봐요.”

“어, 네네.”

할 수만 있다면 속으로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몸을 일으켜서 대가리부터 후려 까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었다.

수혁이 보채고 있었다.

아주 무서운 눈으로.

거기에 더해 옆에 앉은 안대훈은 머리를 켠 건지 뭔지 후광 효과를 내고 있었다.

도저히, 말 그대로 도저히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 여기요?”

“어, 그래, 거기. 거기 보면 환자가 복통으로 병원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 그런. 그렇네요. 하지만 이거 그냥 설사병이었습니다. 치료받고 퇴원……. 퇴원?”

“단순 설사로 성인이 입원하는 경우가 흔합니까?”

“어…….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벌써 2년이나 된 에피소드입니다. 이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전혀 관계없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탁 하고 머리가 켜진 대훈의 후광에 힘입은 수혁의 말에는 대단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게다가 내용도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다.

확신이라니.

의사가 제일 피해야 하는 것이 바로 확신 아닌가?

환자에게야 우리가 다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하지만, 정작 치료를 맡은 이들은 이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아, 아닙니다. 그건…….”

“그리고 환자 직업을 보시죠.”

“직업…….”

“하수 처리장에서 일하고 있군요.”

“네,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하수 처리장, 설사.

뭔 상관일까?

발표를 맡은 의사도 경험이 꽤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해서 ‘확실히’까지만 말하고 우선 입을 다물었다.

‘아예 해결할 의지가 없구만…….’

[그러니까요. 처량하네.]

‘미국 이거……. 아니, 메사추세츠는 이것보다 훨씬 나았잖아?’

[그니까요.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마운트 사이나도 명성이 상당한데……. 이거 실망입니다.]

‘내 생각에는 저 새끼가 다 망친 거야.’

[그럴 가능성도 있죠.]

수혁은 힐끔 스튜어드를 돌아보았다.

넋 나간 얼굴의 인종차별주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건강한 집단이라 해도 높은 사람 하나 잘못 꽂았다가 박살 나는 경우를 꽤 많이 보지 않았던가.

여기가 딱 그 짝인 거 같았다.

아무튼, 수혁은 이제 모드를 바꾸었다.

‘막말로 여기 와서 혼낸다고 뭔 유익이 있냐.’

[그러니까요. 잘난 척이나 신나게 하시죠.]

‘그러자고.’

[네.]

수혁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말이었다.

“자…….”

그러자면 일단 일어나야 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수혁의 의중을 읽어 낸 바 있던 안대훈이 그를 부축했다.

지팡이도 탁 건네주었다.

“좋아. 환자는 40대입니다. 물론 40대부터 고형암이 발생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합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60대 이상과는 좀 다르죠.”

수혁은 자연스럽게 발표를 맡은 의사가 앉아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곤 지팡이로 의자를 툭툭 밀었다.

이미 기선 제압에 당한 지 오래였던 의사는 의자가 아니라 자기를 치웠다.

다른 말로 하면 의자를 내주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바로 암이라고 확정 짓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죠. 대장 내시경으로 종양을 확인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으음.”

수혁은 이제 발표를 맡았던 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다 보고 있었다.

모두가 이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 말인데 다들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여기서 이거 알아내면 스튜어드의 마음에 들 수 있다는 생각부터 해서 단순하게는 그냥 저 건방진 두 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겠는데?’

‘모르겠다.’

‘하아.’

굴려도 굴려도 튀어나오는 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신음과 탄식을 제외하면 그저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혁이 말을 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환자는 하수 처리장에서 일합니다. 그 말은 곧 오염된 물과 가까이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많은 시설이 현대화된 요즈음에는 예전보다는 오염된 물로 인한 위험이 적어지고 있긴 합니다만……. 완전히 제로가 될 수 없습니다.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거죠. 이 위험과 2년 전 있었던 설사로 인한 입원과 연관이 없지 않을 겁니다. 당시 진단명을 보여 주시겠어요?”

“어. 네. 그. 이질……. 이질입니다.”

“이질이라. 이질이라면 다른 입원한 사람들도 있습니까?”

“아……. 아뇨. 당시 기록에…… 없습, 없습니다.”

“이질로 일주일 가까이 입원하는 것이 흔합니까? 기저질환이 없는 정상 성인에서요.”

“아, 아뇨.”

“그럼 그때 이미 한번 잘못했군요. 경과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면……. 설령 치료로 인해 증상이 좋아지고 있었다고 해도 진단명에 대한 의심을 해 봐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

구구절절 틀린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 맞는 말이다, 이 말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엔 화자가 처맞는 말인 경우가 많은데 지금은 정반대였다.

수혁 혼자서 여포처럼 다 패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죠. 대장 내시경 당시 변이 많아서 못 했다고 했죠?”

“네? 아, 네.”

“CT를 보면 암종이 작지 않죠?”

“네.”

“그런데 그걸 넘어서 변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요? 암이라면 틀어 막히는 것이 정상 아니겠습니까?”

“아.”

아니, 여포도 이렇게까지 패진 못했을 거 같았다.

너무, 너무 아팠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