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71화 (1,071/1,303)

1071화 아직 학회 아닌데요 (3)

드르륵

담당 의사인 알버트가 성화를 부려 대자, 곧 초음파 기기가 끌려왔다.

한국이었으면 인턴이 끌고 왔을 테지만 이쪽은 다 영역별로 전문 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 대형 병원들에서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암묵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자행해 온 인력 착취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비교적 빨리 깨닫고 시정 조치에 들어갔기에 그랬다.

‘이런 거 보면 우리도 사람을 더 뽑아야 되는데……. 인턴 더 뽑게 해 달라고 아우성칠 게 아니라…….’

[통합진료센터 말고는 그럴 만한 예산이 없을걸요. 우리도 지원금이랑 후원금 빼고는 뭐가 잘 안 된다면서요?]

‘어, 그렇게 들었지. 그러고 보니까 아빠가 이런 거 잘하고 있기는 한 건가……?’

[명색이 원장 출신인데 어련히 잘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겠으나 상대가 그 이현종이다 보니 어떠한 확신도 금물이겠군요.]

‘그렇지.’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통합진료센터의 재정적인 현황을 들여다보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리 방만한 경영을 해 왔다고 해도 적자가 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다현 회장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리 한 그룹의 회장이라고 해도 재벌가 회장은 아니지 않나.

전문 경영인이 그룹 돈을 별 근거도 없이, 그저 개인적인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유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이건 다 두바이의 왕자 덕이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 50억에 달하는 금액을 앞으로도 몇 년간은 후원을 해 줄 거라 했다.

‘너무 큰돈이라고 했더니…….’

[푼돈이라고 했죠?]

‘거참. 그거 뭐 별것도 아닌 병 진단한 건데…….’

[두바이 상황을 고려하면 거의 진단이 불가능했을 질환일 수도 있습니다. 찾아보면 실제로 그런 병인데 진단이 안 되어서 따뜻한 지방으로 이민 가서 사는 경우도 있긴 할걸요?]

‘하긴 케이스 리포트에서도 보고된 적이 있긴 하지.’

수혁은 그렇게 잠시 딴생각에 젖어 있다가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세팅까지 다 마친 초음파 기기를 받아 들었다.

그래, 재정이고 나발이고 다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지금은 우선 뒤로 제쳐 두어도 될 문제였다.

수혁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는 이미 알버트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참이다 보니 고요했다.

‘이 사람이…… 완전 천재다, 이거지……’

그냥 사정만 설명해서는 아니었다.

이미 알버트는 완전히 수혁에게 경도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투와 목소리에도 그러한 것이 얼마간 묻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서 환자는 수혁이 하라는 대로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혁은 또 다른 단서를 구할 수 있었다.

‘열도 났었고…… 통증에 메스꺼움에…… 황달도 전혀 해결이 안 되었는데 이 정도 컨디션이라……?’

[담관암에 의한 폐쇄는 다른 암에 의한 폐쇄보다 더 빨리 일어나긴 합니다.]

담관암이라는 건 말 그대로 담관, 즉 담즙이 흘러나오는 관에 생기는 암을 말했다.

당연히 담낭이나 다른 곳에 암이 생겨서 눌리는 것보다는 관 자체에 암이 생기는 것이기에 조금만 커져서 잘 눌리기 마련이었다.

다시 말해 보다 초기 암일 때도 관 폐색이 일어나고 이로 인한 심한 황달이 생길 수 있다, 이 말인데…….

‘그래도 이상하지.’

[네, 역시 이상합니다.]

그럼에도 암은 무서운 병이지 않나.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진행했을 땐, 이미 온몸이 병들어 어떤 식으로든 다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암은 아니겠군, 이라는 말을 한국어로 내뱉으면서 수혁은 환자의 우측 상복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숨 크게 들이쉬고, 참으세요.”

이를 더 잘 보려면 간이 원래 위치보다 밑으로 내려오는 게 좋았다.

해서 수혁은 환자의 흉곽에 공기를 가둬 두게, 즉 숨을 들이쉬고 참게 한 후 초음파를 들이밀었다.

1초도 걸리지 않아 수혁은 담낭을, 정확히 말하면 담관을 찾았다.

“어…….”

“여기 음영이 있군요. 뒤로 완전히 까매지는 것으로 볼 때, 이쪽에 있는 건 고체입니다.”

“고체…… 고체……?”

“돌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여기 보면 담낭 안도 비슷한 음영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아…… 돌이요? 하지만 그렇게 판단하기엔 CT에서 너무 균일한…….”

“상대적으로 균일해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 CT상에서 돌은 보통 돌처럼 보이기 마련이었다.

허나 반드시 그런가? 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CT? 좋은 검사지. 돌 보기에 좋고. 특히 있다 없다 판단하기엔 이보다 좋은 검사도 없을걸. 하지만 배는…… 아무래도 계속 움직이는 곳이잖아? 촬영하는데 조금이라도 흔들리면서 아티팩트가 생기면 헷갈릴 수 있지.

복부영상의학회에 떠오르는 샛별을 지나 이제 엄연한 중견 교수가 된 김진실의 말을 떠올렸다.

“아까 그 영상, 살짝 흔들렸는데 몰랐습니까?”

“네?”

아티팩트.

판타지 소설에서는 뭔가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어떤 물건을 지칭하지만, 의학적으로 인간의 어떤 조작으로 인해 변하는 것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현대 기술로는 무리였다.

아무리 빨리 찍는다 해도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모두 정지시킬 수 있을 만큼 빠르진 못하니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아티팩트가 발생했는지를 감지하는 능력일 터였다.

그로 인해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가 크나큰 오류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랬다.

“사람의 갈비뼈는 이렇게 크지 않아요. 사람마다 갈비뼈의 크기가 다르기에 절댓값은 없겠지만 주변 장기와 비교를 해 보죠. 어떤 것은 더 커져 있고, 어떤 것은 더 작아져 있습니다.”

“아…… 그…….”

수혁은 아까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알버트는 이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떤 장기는 커져 있고, 작아져 있다고?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내가 모를 수가 있나?

말이 안 되지 않나?

‘이건…… 교수님만의 영역이군…….’

비단 알버트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수혁의 수제자이자 그렇게 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철저히 수혁의 뒤만 쫓아온 사내 안대훈조차 이해 못 하고 있었으니.

불가해의 영역이다, 이 말이었다.

수혁을 모시게 된 사람이라면 언제고 한 번쯤은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방금 말, 이해 못 한 거 같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수혁도 제가 없으면 이 크기를 감지할 수 없어요.]

‘하긴…… 현존하는 어떤 인공지능도 이걸 이렇게 계산하지 못할 테니…….’

[후하하. 찬양하십시오, 수혁.]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잠시 손을 하늘 위로 뻗는 시늉을 했다.

말로만 대충 퉁 치고 넘어갔더니 바루다가 워낙에 불만을 표시해서 하게 된 일이었다.

물론 그러한 행동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리라는 계산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교수님의 영역조차 아닐 수 있다…….’

안대훈은 방금 손이 향했던 곳, 그러니까 수혁만 볼 수 있는 바루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곳은 허공이었다.

허나 믿음이 너무 간절해서 그럴까?

안대훈은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멘…….’

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옆을 보니 알버트도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차이일 뿐 넋이 나가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수 초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영상의학과…… 그중에서도 복부 영상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어려울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제 취미 중 하나가 영상 보는 거라 가능한 건데, 아무튼.”

대충 넘어가자, 이 뜻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알버트는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야 여전히 혼란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역에서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했던 강력한 한 방을 먹게 되면 정신이 나가는 법이니까.

“그걸 감안하고…… 초음파를 봅시다. 이 소견은 확실히 고체에 해당하죠?”

“어, 네. 그렇습니다. 종괴 중에서도 근데 밀도가 높다면…….”

“하하.”

수혁은 여유롭게 그리고 동시에 꽤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일 만한 미소를 그렸다.

굳이 그렸다고 표현하는 건 이게 순 연기라서 그랬다.

미소가 나올 만한 기분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바루다가 표정을 그렸다는 얘기였다.

아무튼, 효과는 꽤 좋아서 환자도 수혁도 다른 이들도 오? 하는 느낌을 받았다.

“청진기 대 보시죠.”

“어…… 네.”

그 덕분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수혁의 제자격으로 내려온 알버트는 순순히 병동에 있던 청진기를 들고 달려와 배에 댔다.

“아니, 여기.”

“아, 네.”

수혁은 그 청진기 끝을 잡은 손을 손 채로 잡아다 담낭 가까이에 놓았다.

‘아니, 불신자에게 신체가 닿는 광영을 주시다니!’

그 모습에 안대훈의 눈에 불똥이 튀었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딱히 관심 가질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넘어갔다.

“잘 들어요.”

“네.”

그 상태에서 수혁은 다시 초음파 프로브를 환자의 배에 가져다 대고는 지금 초음파상에서 관찰되는 ‘고체’가 가장 표면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퉁퉁 두드렸다.

“어!”

다른 이들은, 심지어 두드리고 있는 수혁조차도 그로 인한 변화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사람 알버트는 달랐다.

“어어어어어!”

그의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거!”

“돌이죠?”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아니, 어떻게 알았죠? 다, 당신은 도대체!”

천재 따위가 아니다.

이건……

이건 대체 뭐라고……?

‘응? 신이라고?’

경악에 휩싸인 채, 별다른 뜻 없이 다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사방을 둘러보던 알버트는 안대훈이 영어로 속삭이는 걸 들었다.

아니, 보았다.

독순술을 익힌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또한 자신도 모르게 ‘신’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대훈은 슥- 수혁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부터 전등의 빛이 내리쬐는 곳을 확인해 두었고, 또다시 광을 내 두었기 때문에 빛이 훅- 하고 번졌다.

후광.

수혁의 뒤로 후광이 있었다.

마치 빛이 있으라는 말씀 후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어……?’

알버트는 이렇게 이단이 되는 건가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최근 들어 형식적으로만 나가던 교회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신성함이 그를 둘러싸고 있어서 그랬다.

부우웅

그의 거룩한 마음가짐을 깬 것은 전화벨이었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폰을 뒤집어 보니 스튜어드가 떴다.

이게 또 안 받을 수는 없다 보니 받았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어, 어디 갔나.”

“뭐가요?”

“이수혁!”

“아, 이수혁 교수님께서 어디 가셨나 하는 말이죠?”

“자네 말투가 왜 그래? 하여간, 그 자식 망신을 줘야겠는데…….”

“자식, 자식 하지 마시죠. 불경하게…….”

“응? 이거 누구야? 너 누구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