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4화 본격적으로 (3)
경련.
이는 상당히 중요한 증상이지 않던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대개의 질환에서 핵심 증상이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경련이요?”
“네.”
“근데, 병원에서는 별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긴 했어요. 열성경련은…… 별거 아니라고.”
“열이 없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데 체온계가 집에 있는 건 아니라서요.”
보호자의 말에 옆에 있던 통역자, 아마 높은 확률로 유니세프 직원으로 생각되는 이가 끼어들었다.
“체온계를 보급하고 있기는 한데…… 가정마다 구비하게끔 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너무 비싸기도 하고 또 관리가 안 되고…….”
관리가 안 된다는 말이 꼭 고장이나 잃어버리는 등의 손실만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유니세프와 같은 단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 개발 도상국이고 또 그중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한다는 걸 늘 유념해야 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경제적 유혹에도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체온계와 같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물건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처방받은 약도 그 양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어딘가로 팔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것을 알 리 없는 수혁은, 그리고 지금 당장은 전혀 관심이 없는 그는 그저 넘어갔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죠. 대한민국에서도 코비드 사태 전에는 가정마다 체온계가 다 구비되어 있지는 않았다고 하니까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뭐, 그럴 수 있는 일이지. 돈이 없으면 더더욱 그럴 수 있고.’
다만 수혁도 의학적으로만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약간의 이해는 가능했다.
뭐가 되었건 수혁은 이내 환자를 돌아보았다.
‘열성경련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냐.’
[네, 그렇습니다. 머리 쪽 원인이라고 한다면…… 뭐 머리 쪽 원인의 경련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질적 이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그래. 그래도 아이는 완전히 정상 지능을 가지고 있어. 기운이 없을 뿐이지, 운동 제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 거 같고.’
토론을 이어 나가면서였다.
딱히 지금 검사하지 않은 항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것은 수혁이 그간 쌓아 온 경험과 바루다의 탁월한 행동 분석 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열이 나지 않았다는 증언을 그냥 넘기기는 어려운데…….’
[처음 한 번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경련이 발생했을 때, 보호자들은 대개 정신이 없어지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옆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경련을 해도 놀랄 텐데 자기 애가 경련을 하면 어떻게 되겠나.
같이 기절하지 않는 것도 용하다고 봐야 했다.
그렇기에 첫 경련 시에는 이 경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 열성경련일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면,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대개는 정확히 열을 재서 오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이 없었던 거 같다는 증언을 했다면 아무래도 보호자의 말이 옳았을 가능성이 컸다.
‘열성경련이 아닌데 정상 지능이면서 동시에…… 열성경련이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뇌파 검사에서도 걸리지 않고 또 빨리 호전되는 경련이라…….’
[우리가 그런 것을 경련이라고 하던가요?]
‘아니지. 뭐 찾아보면…… 이러한 종류의 경련도 있기는 할 거야. 하지만…… 너무 드물어. 오히려…….’
[내과에서도 간혹 보지 않습니까?]
‘그렇지.’
막힘없이 이어진 토론 끝에 수혁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환자 보호자와 현지 병원이 경련이라 했던 것은 엄밀히 말해 경련 발작은 아닐 거라고.
오간 대화는 상당히 많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불과 2초가량.
대화를 나누는 이로서는 이 사람이 잠깐 생각에 잠겼구나 할 정도의 시간만이 지나갔을 무렵, 수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때 병원에 도착해서 뭘 했죠?”
“아…… 일단 기다렸습니다. 아, 약도 먹이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정신을 차려서…….”
“정신을 차려서?”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사탕을 달라고 했어요.”
“사탕이라?”
병원에서 사탕을 찾는다.
내과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어른들은 그러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이는 어렸다.
그리고…….
“아, 이 지역 아이들에게 사탕이 좀 귀해서요. 저희 센터에 오면 간혹 주는데 그 때문에 병원이라도 오면 사탕을 반사적으로 찾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초콜릿도 그렇고요.”
직원이 다시금 끼어들었다.
말이 끼어드는 것이지 수혁의 추론에 있어서는 꽤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사탕을 달라는 것이 단순히 병원에 왔기 때문일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아, 네.”
여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과는 달리 뒤에 있던 소아과 의사의 얼굴은 조금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만약 단순히 병원에 와서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면?
혹은 아이는 그냥 그렇게 달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치료제였다면……?
열성경련이 아니었다는 전제를 해 보면 아귀가 딱딱 맞았다.
“흐음…… 아이는…….”
수혁은 그러한 소아과 의사를 뒤로한 채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아이의 팔뚝께를 잡았다.
‘근육이 없지 않아.’
[네, 결코 영양실조에 해당하는 소견은 아닙니다. 일전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아이가 구조된 것은 얼마 전의 일입니다. 그때 영양실조가 아주 심했다면 벌써 이렇게 근육이 잡혔을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아마 그 구조라는 것도…….’
[전쟁 났다지 않았습니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랬을 거야.’
아이가 기운 없어 했을 때, 그것이 꼭 영양 때문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같다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머릿속에서 짜 맞춰져 가면서 아귀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힘이 없는 게 단순히 못 먹어서만은 아닐 거 같군요. 분명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코르티솔 농도가 낮을 거 같은데.”
“코르티솔이라.”
이제 환자 보호자나 직원은 알아듣지 못하는 영역이 되었다.
이미 뒤에서 수혁이 던져 대는 힌트를 통해 추론을 따라가고 있던 소아과 의사가 수혁의 말을 받았다.
“네. 코르티솔.”
“그럼 부신 기능 저하증이란 말입니까?”
“아뇨,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아이의 눈을 보시죠.”
“눈? 시력이 좀 나쁘다고 듣기는 했는데…….”
“네. 하지만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는 못했죠. 개발 도상국에서 안과 진료는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직원이 나섰다.
참담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사실…… 보통의 현장에서는 안과 진료도 주기적으로 가능합니다. 안과 선생님들이 상주하진 못해도 휴가를 이용해서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있던 곳은…….”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했죠. 거긴 위험했을 거 같습니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대로 된 워크업이 안 되었을 거란 얘기죠.”
“아, 네. 제가……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수혁의 말에도 직원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반면 소아과 의사는 알 듯 말 듯 한 느낌이 오는지 안달이 나 있었다.
수혁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가 설명을 이어 나갈 때면 어김없이 이런 표정들을 짓지 않던가.
예상했던 얼굴이기도 하고 또 기대했던 반응이기도 했다.
애초에 어려운 케이스를 보게 되었을 때부터 좋아졌던 기분이 더더욱 좋아졌다.
[수혁, 여기서 웃으면 좀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미 늦었다며.’
[그건 태화에서의 일이죠. 외국에서는 이미지 관리 좀 하시죠. 잊지 마십쇼, 수혁. 우리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입니다.]
‘그래…… 그렇지. 근데 그거랑 이게 뭔 상관?’
[그…… 일단 좀 시키는 대로 할래요? 제 나름의 판단입니다.]
‘알았어.’
바루다의 말에 의해 간신히 웃음을 참은 수혁이 말을 이었다.
“네. 아이 눈물이 적어요. 아까 보호자의 말도 그랬죠? 눈물이 적다고 했죠. 이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적습니다. 보면…… 잘 보면 눈을 깜박일 때 간혹 눈물이 밖으로 새요. 이건 눈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건조증의 증상이로군요. 그럼 부신 기능 저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죠. 완전히 독립된 증상입니다. 또 환자는 삼킴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다.”
“추정입니다. 추정일 뿐인데…….”
“그렇죠. 바륨 검사를 해 보면 확실해질 거 같은데 검사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수혁의 말에 소아과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환자의 눈치를 살폈다.
수혁과는 달리 그는 이런 식으로 ‘구조’된 환아를 살피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서 그랬다.
그나마 아이는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쓰여진 아이들 같은 경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살인을 저질렀던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가 아주 심한 경우도 많았다.
“저, 저는 괜찮아요.”
“아, 영어를 알아들었지, 참.”
“저도 낫고 싶어요. 빨리 건강해져서 일하고 싶어요.”
“일이라니. 어린애는 일할 필요 없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답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자 소아과 의사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아니, 눈에 이미 눈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노회한 의사답게 능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눈물을 닦아 내고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괜찮다는군요. 의학적으로는 모든 검사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바륨 연하 검사가 바로 될까요?”
“네, 그 정도 검사는…… 제가 전화하면 바로 가능합니다. 아이 같은 경우엔 병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거라.”
“아…… 좋은 병원이네요.”
수혁은 그제야 잊고 있던 스튜어드를 떠올렸다.
그놈 때문에 아주 상놈의 병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꽤 훌륭한 사람도 있지 않나.
심지어 시스템도 좋고.
그냥 이놈만 문제인 건가 싶었다.
‘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문제아 스튜어드는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어렵다는 아이에 대한 추론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은 심지어 검사실에 와 있었는데, 검사 결과는 누가 봐도 너무 확실해서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과연, 삼킴 장애가 있군요. 위 식도가 확장이 되는 데 반해서 원위부는 좁아지고 있어요.”
“전형적인…… 식도 이완 불능증이로군.”
“네. 아마 성장이 괜찮았던 것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서인 거 같은데…… 제가 그쪽 음식이 어떤지 몰라서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고. 아무튼, 환자의 주된 증상은 이로써 세 가지로 압축이 됩니다. 부신 기능 부전, 눈물샘 기능 저하, 식도 이완 불능증.”
“음.”
수혁은 이 정도면 알아야 하지 않냐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얼굴만 그렇고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트리플 에이 신드롬…… 이걸 어찌 알겠습니까?]
‘유전자 검사를 해 보지 않는 이상에는 거의 무리지. 나조차도 95% 이상 확신이 들진 않아.’
[사람들은 그 정도면 확신이라고 합니다.]
‘뭐, 맞겠지?’
[아마도. 틀려도 본전입니다. 선천성질환에 이 정도까지 왔으면 뭐…… 솔직히 이번 케이스는 어려웠어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