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8화 접수 (3)
“어…….”
대변검사를 다시 해?
소화기내과 의사는 좀 혼란스러웠다.
환자는 오늘 수술 예정이었다.
시간이 딱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오전에 하는 것으로 외과와 마취과 그리고 병동 모두와 얘기가 되어 있었다.
즉 여기서 그가 전화 한 통만 걸면 바로 수술이 진행될 수 있단 말이었다.
“아, 그 전에.”
수혁은 그의 그런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 손을 들었다.
“수술은 일단 홀드 하죠.”
수술 얘기를 하면서였다.
마침 딱 외과에는 뭐라고 말하지?
결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딜레이가 발생할 텐데…….
외과 놈들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 하는데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다 보니 좀 놀랬다.
“수술을요?”
“네. 결과를 봐야죠. 제 생각에는 이거 크론 아닙니다.”
“크론이…… 아니에요?”
대장의 소견도 그렇고 소장까지 일부 침범한 것도 그렇고…….
심지어 환자의 임상 양상 또한 크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았다.
처음 발병했다기엔 나이가 좀 많기는 한데, 복통에 설사에 혈변에 체중 감소까지 모조리 크론과 맞아떨어지는 소견이 아니었던가.
‘코블스톤…… 소견도 상당히 저명해.’
코블스톤.
말 그대로 자갈돌이란 뜻인데, 실제로 크론병 환자의 대장은 이 자갈돌이 수북이 깔린 자갈길처럼 보였다.
‘하지만…… 괜히 하는 소리일 리는 없어. 어제도……. 실제로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아메바 종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
어제 스튜어드 덕에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지랄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수혁에 대해 형성된 항체가 아직 안대훈이나 이현종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어느 정도 형성이 된 덕이었다.
해서 소화기내과 의사는 예민하게 구는 대신, 차분히 듣기를 청했다.
“어떤 질환을 의심하시는지요?”
수혁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그러니까 스튜어드 같은 애를 박살 내는 것도 재밌는 일이지만 여기 와서는 스튜어드를 너무 박살 내서 그런지 좀 지루했다.
오히려 차분히 입 털 수 있는 기회가 훨씬 간절했더랬다.
“일단 보시죠.”
당연하게도 바로 질환명을 말하진 않았다.
그러면 김이 팍 새 버리니까.
수혁은 로맨티스트다 보니 그런 단계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편이었다.
“화면을 처음으로 돌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항체 덕에 소화기내과 의사는 버럭 하는 대신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오히려 움찔한 것은 스튜어드였는데, 그저 움찔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자식들 왜 불만이 하나도 없어?’
막상 발표를 맡은 이도 가만히 있는데 뭐라 하겠나.
게다가 알버트 따라 들어온, 상대적으로 젊은것들은 숫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무슨 거장의 발표라도 듣는 것처럼.
‘하아…… 설마 또……. 이렇게 되면……. 아니, 이 인간은 진짜 괴물인가? 설마 속은 백인……? 그런 건가?’
문제는 이제 스튜어드조차 인정을 안 하기 어려운 순간이 점점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수혁이 보여 준 업적은 솔직히 말해서 그 어떤 의사도 보여 주기 어려운 업적이지 않나.
더 놀라운 건 그런 짓을 하면서도 정작 주인공인 수혁은 심드렁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찬사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쩐지 이런 일 정도는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다.
‘말이 안 되는데…….’
스튜어드는 거의 졸도할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도 입을 터는 대신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어어, 그래. 수술은 일단…… 일단 홀드. 적어도 오전에는 못 나갈 거 같고. 뜬금없겠지만, 우선 환자 변 검사 좀. 어어. 알지 관장한 거. 그래도 좀 해 봐. 아니면……. 그래, 아예 대장 내시경을 잡아 놔.”
소화기내과 의사가 전화를 마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첫 사진입니다. 환자는 40대죠. 뚱뚱하고, 당뇨가 있습니다. 크론의 첫 발병 시기는…… 아주 정확하게 특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보통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40대부터는 발병 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크론병이 있던 사람들도 증상이 점차 사그라드는 시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자가면역질환의 특징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어떤 자가면역질환은 오히려 40대가 호발 연령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로 미지의 영역에 있는 질환이다 이건데, 심지어 크론은 최근 들어 점차 증가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먹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은데…….
그것조차 확실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나이대가 크론과 잘 맞지 않죠. 하지만 이것을 근거로 크론이 아닐 거라고 주장하는 건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넘어가죠.”
수혁의 말에 따라 화면이 넘어갔다.
그러자 환자가 설사, 복통, 체중 감소를 주소로 내원했을 당시에 시행했다는 대장 내시경 소견이 떴다.
이건 시에라리온 현지 병원에서 시행했던 것이다 보니 자료가 다 안 넘어와서 사진이라고 해 봐야 정말 두 컷만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컷을 통해 보이는 소견은 말 그대로 크론 그 자체였다.
“여기선 자료가 부족한데…… 크론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이곳 마운트 사이나 병원으로 전원 와서 시행한 내시경을 볼까요?”
“아, 네.”
“여기서도 보면…… 소장까지 포함하는 궤양성 질환이 있죠. 반점형 홍반도 있고요. 당시 나갔던 조직 검사를 보면 호산구가 증가해 있었습니다. 이 또한 크론을 시사합니다만……. 또 다른 질환에서도 증가할 수 있죠?”
수혁의 말에 소화기내과 의사는 홀린 듯 말했다.
딱히 자신을 보고 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답해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뭔가 아주 무도한 짓이라도 저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감염성 질환입니다. 하지만 이는…….”
“네, 대변검사 그리고 추후에 시행한 혈액 배양 검사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네네.”
“자, 여기서 두 검사의 차이점을 보죠.”
“네?”
넘어가는 줄 알고 화면을 넘겼던 소화기내과 의사의 손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진짜 예상을 넘어간 발언이었으니.
설마하니 여기서 저 기초적인 검사를 언급할 줄은 몰랐다.
“혈액은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혈액 속에 균이 있다면, 그 균이 검출되지 않을 가능성은 무척 적죠.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패혈증을 의심하기 전 단계일 겁니다. 그렇죠?”
“아, 네. 전신 감염의 소견이 있다면 이미 균은 번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 전이라면……. 사실 국소 감염이라고 가정해도 좋습니다.”
뭐가 되었건 물어보니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기초적인 질문이어서 답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쉬워서 살짝 선문답이나 난센스 퀴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에 대변검사를 보죠.”
“네.”
“대변은 대장에서 형성되는 고체 덩어리를 말합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 그렇죠.”
“대장과 혈관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어…….”
또 갑자기 훅 들어온 이상한 질문이었다.
날뛰는 야생마라도 된 듯 질문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느낌인데…….
여하간에 물으니 답을 하게 되었다.
“혈관은 닫힌 공간이죠. 여러 겹의 보호막으로 닫혀 있고……. 대장은 입과 항문으로 열려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유산균을 포함한 균들이 상재하고 있죠.”
“네네. 그렇습니다.”
“그 외에 어떤 것들이 서식할 수 있죠?”
“그…….”
서식이라고 하니까 좀 헷갈렸다.
허나 상재균, 즉 원래 살던 놈들이 아닌 놈들이 들어왔다면 그냥 감염으로 퉁 치면 된다는 생각을 하자 한결 나아졌다.
“다른 균들이죠.”
“균만 있습니까?”
“아…… 그. 기생충……?”
“네, 그렇죠. 기생충도 있습니다. 특히 이 환자의 경우엔 호산균이 증가했죠.”
“하지만 대변검사에서 아무것도…….”
“기생충은 생물입니다.”
“어……?”
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다가 일순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생물?
생각하지 않았던 바라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아주 특별한 말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죠. 기생충은 생물입니다. 균처럼 단세포 생물이 아닌, 다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스스로 운동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생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변과 같은 활동에 저항할 수 있죠. 특히 숙주에 자리를 잡았다면요.”
“하,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단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아니죠?”
“네? 네, 그렇습니다. 움직이죠. 하지만 대변검사에서는 기생충 자체만 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알도 봅니다.”
그래서 그럴까.
소화기내과 의사는 눈에 띄게 당황해 있었다.
살짝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워낙에 똑똑한 사람이다 보니 그 와중에도 아주 이상한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미 수혁이 뜻하는 바대로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죠. 알도 보죠. 하지만 알은 기생충이 낳아야 볼 수 있는 겁니다.”
“어…….”
“그러니까 알이 없을 때 하는 대변검사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아주 드문 것도 아니죠. 특히 기생충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실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렇다고 해서 이 환자가 기생충 감염이라고 하는 건 억측이라는 말일 터였다.
아무 증거도 없지만 기생충일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어떻게 보면 생떼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미 말린 후다 보니 어버버하는 말만 나오고 있었다.
“자, 이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죠. 크론이거나, 기생충이거나. 그러고 나서 추후에 시행한 치료를 봅시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죠. 어떻습니까?”
“크론이라면 적합한…… 하지만 기생충이라면…….”
“환자는 당뇨가 있죠. 당뇨가 있는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를 쓰면 어떻게 됩니까?”
“그…….”
스테로이드는 한때 기적의 약이라고 불렸고, 지금도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기적과도 같은 효과를 보여 주는 약이었다.
그만큼 부작용도 강했다.
양날의 검이다 이건데…….
하필 이 환자에 대해서는 거의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혈당이 치솟게 됩니다. 그럼 이미 당뇨로 인해 면역이 저하된 상태에서 면역 저하가 더더욱 진행하게 되죠. 거기에 더해 스테로이드 또한 그 자체로 면역을 저하시킵니다. 기생충 입장에서는 활동하기 최적의 무대가 형성이 되는 셈인데……. 그렇게 보면 한 달 뒤에 환자 증상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도 우연은 아닌 거 같죠?”
어느새 수혁은 소화기내과 의사의 손에서 마우스를 살짝 빼앗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넘어간 화면에 뜬 환자는 아까 봤듯이 병색이 완연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약이 안 들어서 그렇게 된 거란 느낌을 주었던 것에 반해 지금은 병원에서 뭔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란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혁의 말 몇 마디에 컨퍼런스 방 안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반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