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9화 접수 (4)
확실히 환자의 증상 악화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사실 크론이라는 병이 무서운 질환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진단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수술을 고려해야 할 만큼 경과가 빠르진 않아서 그랬다.
물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이 워낙에 중구난방이다 보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그럼…….”
“대변검사를 해 봐야죠. 근데 수술 예정이라고 하셨으니……. 아마도 대장 절제술을 고려했겠죠?”
“네, 그렇습니다. 사실 계획은 벌써 전부터 했습니다만……. 환자가 완강히 거부해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건 행운이로군요.”
“네?”
수혁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질환, 즉 Strongyloides stercoralis의 특성을 떠올렸다.
일반적으로는 감염이 되어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녀석이었다.
다만 면역 저하가 있는 환자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즉 이 환자처럼 당뇨가 있는 환자에게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스테로이드까지 썼으니…….
‘만약 수술까지 했다면…….’
[대장에서만 서식하는 기생충이 탈출했겠죠.]
바루다의 발언은 다분히 온화한 것이었다.
기생충 입장에서만 말했으니 당연했다.
탈출이라니.
숙주, 그러니까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곳으로 전이가 일어나는 셈이었다.
특히 이 스트롱길로이드증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선호하는 장기가 아닌 곳에서도 꽤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데다가 끊임없는 염증 반응과 더불어 생식까지 해낼 수 있는 놈이다 보니 오히려 수술 후에 환자가 다발성 장기 부전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다른 장기들까지 죄다가 기생충에 의해 잡아먹힌다는 뜻이었다.
‘그랬으면 환자는 이미 죽었지.’
[네, 문제는 지금도 죽어 나가는 중이라는 거죠.]
‘그렇지……. 죽어 가고 있지.’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이 사람들이 돌팔이라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실수를 범했을 뿐, 그러니까 풍토병을 고려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니, 아마 풍토병을 고려했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이건 희귀 질환이니까.
또 경과도 희귀한 편이었다.
“아무튼…… 대장 내시경이라도 하죠. 어제 보니까 바로 할 수 있는 거 같던데, 맞습니까?”
“아…… 그게. 네, 뭐. 그렇죠.”
소화기내과 의사가 어제 바로 대장 내시경을 했던 것은 사실 승부욕 또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원래 검사실이 남아도는 병원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나.
아무리 돈 잘 버는 병원이라고 해도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계산해서 시설을 구축하기 마련이었다.
‘무리를…… 그래, 뭐. 어쩌겠냐.’
보통 하지 않던 짓을 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 된다는 얘기였다.
허나 방금 생각한 대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수술도 홀드한 마당에 달리 할 게 없지 않나.
“알겠습니다. 바로 하죠.”
“네, 좋습니다. 근데 환자 상태가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기생충이나 곰팡이 같은 것이 그냥 얌전히 있지 않고 전격적인 감염을 일으키는 상황을 기회감염이라고 하는데, 보통 이 기회감염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한번 일어나면 굉장히 무겁게 번지기 마련이었다.
수혁의 우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주치의인 소화기내과 의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옮겨서는 안 되고, 중환자실에서 바로 해야 할 겁니다. 옮기려면 옮길 수 있지만…….”
“상태가 무리가 될 만한 상태라면 그러진 마시죠. 삽관은 안 했죠?”
“아, 네. 삽관까지는 안 했습니다. 그냥 바이털이 너무 흔들려서요. 열도 나고 있고.”
“열도 난다라…….”
“좋지 않은 겁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이 사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수혁의 얼굴이 어둡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게다가 방금은 말끝까지 흐렸기에 더더욱 까매지고 있었다.
“좋지는 않죠. 혈압은요?”
“어제부터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흐음…….”
기생충이 이미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걸까?
수술은 이를 가속화 하는 장치이기는 했다.
그러나 수술을 해야만 탈출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대장이 다 망가지고 나면, 더 신선한 곳을 향해 도망갈 수 있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밖으로 흘러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으…….’
[끔찍한 사진이죠.]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케이스 리포트에서 봤던 사진 한 장이 수혁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딱히 데이터화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끔찍해서 그랬다.
“환자 항문 근처로 뭔가 나온다는 보고는 없어요?”
“네? 아뇨……. 그런 보고는 없습니다.”
“누락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중환자실은 간호사 한 명당 환자 두 명만 봅니다.”
“아.”
확실히, 이런 건 태화보다 몇 수 위였다.
중환자실 하루 입실 가격이 거의 10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만큼 인력을 그야말로 아낌없이 붓는 모양이었다.
간호사 한 명당 환자 두 명이라니.
죽을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 만한 수치였다.
보호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의료 교육을 받고 또 제대로 된 경험치를 쌓은 의료인인 간호사가 환자 곁을 지킨다는 건, 때론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으니까.
“그럼 일단은…… 그냥 염증 반응에 의한 변화일 수 있습니다. 빨리 가죠.”
“네네. 연락은 했습니다. 지금 준비 중일 거예요.”
“네.”
자연스럽게 컨퍼런스는 끝이 났다.
물론 모인 사람들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다.
모였던 사람들 그대로, 심지어 스튜어드까지 다 해서 이동 중이었다.
마운트 사이나 병원은 대학 병원이 아니고, 사실 미국은 대학 병원이라고 해서 한국처럼 교수 하나가 레지던트들을 우르르 이끌고 다니는 문화가 자리하진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행렬은 나름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지?”
“무슨 일 났나?”
“났으면 몰려다니겠냐? 뛰지. VIP라도 왔나……?”
“상원 의원이 와도 저러진 않던데……?”
“연예인?”
“오.”
한국이었으면 오히려 또 뭐 어디 과장이 멋 좀 내나 보다 하고 말았을 터였다.
하지만 여기가 미국이다 보니 행렬이 점점 늘고 있었다.
“뭔 일이야?”
그리고 여긴 한국과는 달리 질문을 금하는 문화권이 아니다 보니 행렬에 뒤따라 붙은 인원마다 자유롭게 질문을 던져 왔다.
“아……. 방금 소화기내과 컨퍼런스 중이었는데.”
게다가 여기 붙은 인원 중 상당수가 젊은 친구들 아니었던가.
그렇다 보니 의견 교환이 아주 자유로웠는데, 그 덕에 나중에 온 사람들도 다 수혁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온 내과 의사가 뭔가 마술 같은 일을 벌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나 알아!”
심지어 한국계 의사가 끼어 있다 보니 수혁에 대한 소문도 삽시간에 번져 버렸다.
“응? 유명한 사람이야?”
“어어. 한국에서는……. 레지던트, 펠로우급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아니, 나한테 전화해서 너네 병원에는 이런 천재 없지? 이러더라고.”
“그건 좀 기분이 나쁜데……. 너도 한국에서 전문의까지 따고 여기 온 거 아냐? 더 배우려고?”
한국계 의사는 배우려고 온 건 아니고, 그냥 대우가 더 좋은 데다가 어릴 때 미국에 살아서 딱히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뉴욕에 살려고 온 거라는 사회성 떨어지는 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뉴욕이 최고니까. 근데 들어 보니까…… 저 사람 하나만큼은 진짜 괴물이긴 해. 아니지. 그…… 이현종이라고 알아? 심장.”
“아……. 알지. 나야 외과니까 김승규가 더 와닿긴 하지.”
“그래, 한국이 그렇게 한 번씩 엄청난 월드 스타를 내긴 하잖아.”
“근데 그 둘은 나이가 꽤 있을걸? 그리고 좀 결이 다른데……. 둘은 실험적인 무언가를 고안한 거잖아? 근데 이 사람은…….”
방금 들었던 말을 종합해 보면 수혁이 천재성을 발휘하는 분야는 완전 임상 쪽이지 않나?
그것도 어려운 케이스를 해결하는 데 특화된 사람 같았다.
이 분야야말로 미국이 자랑하는 분야이기도 했다.
실력에 따라 어마어마한 보상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는 미국 특성상 미친 듯이 연마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나.
거기에 더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많다 보니 각종 진단 기구 및 실험적인 진단 및 치료에 있어서도 더 자유로웠다.
“천재가 아니라 괴물이라는 건데……?”
멀리 갈 것도 없이 마운트 사이나에도 몇몇 자랑할 만한 유명 의사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스튜어드 또한 그중 하나였다.
지금은 뭐 하고 있냐고?
똥 씹은 얼굴로, 피리 부는 사나이 따라가는 쥐 행렬이 되어 버린 거대한 군집 속에 갇혀 있었다.
‘틀려라……. 틀려라…….’
의사가 되어서 이런 기도나 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또 의사이기에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뭔가 알고 있어서, 즉 스트롱길로이드증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수혁이 아까 말했던 것의 논리적 흐름이 이치에 맞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이쯤 되면 그냥 경험적으로도 알아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 순전히 그의 아집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와…….’
[중환자실 되게 좋네요.]
마운트 사이나는 뉴욕 유수의 병원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화된 병원으로 유명한 곳 아니던가.
그렇다 보니 중환자실도 다 일인실이었다.
유리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각 호실마다 음압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입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코비드 사태가 터져도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겠군.’
[훨씬 비싸죠, 대신. 국공립 병원 수준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더라.’
과연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나라다웠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서조차 돈이 가장 우선시된다니.
“자, 그럼 일단 시행하겠습니다. 수면 마취로 하겠습니다.”
수혁이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에 의사는 환자에게 일련의 사정을 설명하고 내시경을 집어 들었다.
설득이 되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환자는 너무 지쳐 있어서 스스로 어떤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랬다.
쑤우욱
하여간, 내시경이 안으로 진입했다.
애초에 힘이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사실 입으로 먹은 것도 적었고 그 시점도 한참 전이다 보니 관장하기 전에도 비어 있던 참이었다.
쑥쑥 들어간다 이 말인데…….
“어, 저기.”
“어…….”
그렇게 텅 비어 있는 장 속에 꾸물대는 것들이 보였다.
수혁의 설명을 듣지 못하고 왔다면 저게 뭐지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모두의 머릿속에 Strongyloides stercoralis 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저게 그거구나 싶다고 해야 할까?
“검사를…… 해 보겠습니다.”
“네. 그전에 일단 ivermectin 또는 albendazole부터 쓰죠. 간단한 구충제지만 아주 효과적일 겁니다.”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