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80화 (1,080/1,303)

1080화 집회 (1)

“와……. 이걸 우리나라에서 보게 될 줄이야.”

소화기내과 의사는 수혁이 말한 대로 약을 쓰면서 동시에 내시경 도중에 포획한 기생충 군집 그리고 알로 추정되는 것들을 직접 가져다가 병리과로 향했다.

보통 다른 이를 시켜도 되는 일이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높은 확률로 수혁이 맞을 거 같은데, 그렇다면 그게 사실로 판명 나는 순간에 딱 거기 있고 싶었다.

-이이잉?

그걸 본 병리과 의사의 반응은 이랬다.

처음 봐서 그러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미국이라고 해서 기생충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지 않나.

아니, 오히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꽤 많은 편이었다.

일부 상류층에서 유기농 식품을 고집하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도시의 슬럼가에 사는 이들에게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 말은 병리과 의사라면 기생충에 대해 아예 쌩으로 모를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이건 나만으로는 안 되겠는데. 잠깐만요.

게다가 소화기내과 의사가 찾은 병리과 의사는 상당히 연륜이 있는 인물이었다.

거의 뭐 이 마운트 사이나 병원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심심치 않게 뉴욕 CSI로부터 의뢰나 부탁도 받는 실력자였다.

허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를 선언하고 인근 병원의 기생충학 교수를 불렀다.

대한민국에서 인근이라고 하면 보통 차 타고 올 거리지만 여긴 미국이기에, 그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마, 맞습니까?”

소화기내과 의사로서는 일이 좀 너무 커진 느낌이었다.

그냥 그게 맞나 확인만 해 보려고 했는데 다른 주 교수를 불러오게 될 줄이야?

해서 팔자에도 없는 공항 픽업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럴까?

혹 수혁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더랬다.

“Strongyloides stercoralis……. 네, 맞는 거 같아요. 저도 그 이름을 듣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군요.”

물론 기우였다.

기생충학 교수는, 그러니까 단지 학문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WHO의 고문으로 아프리카 기생충 퇴치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을 만큼이나 학계의 거두라 할 수 있는 교수는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이걸…… 이걸 어떻게 진단했다고요?”

아니, 놀랐다고만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어느 정도 공격받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착각은 아니었다.

‘왜 화를 내……?’

어려운 케이스를 해결했으면 칭찬을 해 줘야지.

왜 화를 내고 있냐고.

이런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꺼내진 않았다.

상대는 전화 한 통에 그런 게 미국에서 나왔냐고 하더니만 몇 시간을 날아온 사람이었으니까.

“그…… 이수혁 교수라고 있는데요.”

“뭔 소리예요. 어떻게 했냐니까 사람 이름이 왜 나와. 당신이 한 게 아닙니까?”

“그…….”

소화기내과 의사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수혁의 바로 곁에서 그가 하는 말을 다 듣지 않았나.

배경지식이 전무 했을 때야 이게 대체 뭔 소린가 하고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기생충 감염이었다.

아니, 좀 더 나가 보면 기회감염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아무튼, 이게 판명이 난 이상…….

거기에 더해 수혁의 기깔나는 설명까지 들은 이상 누군가에게 자신이 한 것인 양 설명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아니지……. 이거 괜히 내가 했다고 했다가 전화라도 와 봐라……. 그 전에 양심에 찔려서 그렇게는 못 하겠다.’

아는 척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아프리카의 기생충 퇴치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종종 케이스를 받아오거나 여기저기 던지기까지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쓸데없이 입을 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이제 수혁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야 마땅한 사람 아닌가.

인품이 어떤지 확인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다른 실력 좋은 의사를 존경하게 되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제가 한 게 아니라, 이수혁 교수님이 하셨습니다.”

“아……. 어쩐지. 뉴욕에 있는 의사가 이걸 그냥 진단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어째 반응이 좀 이상했다.

뭔가 진단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느낌이랄까?

수혁의 대단함이 조금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말인데 어쩐지 본인의 기분이 나빠졌다.

“저기, 다른 곳에 있는 의사는 진단이 됩니까?”

“아, 아…… 그럼요. 저기 남아공 같은 곳에 있는 의사들이면 이게 사실 풍토병이거든요. 거기 오래 있었다면……. 가만, 근데 이수혁이라는 이름이 아프리카식 이름이 아닌데……? 한국계인가?”

“한국계가 아니라 그냥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교수 하고 있어요.”

“네? 근데 어떻게……. 경험이 있었나?”

그래서 뭐라고 했더니 역시나 오해가 있던 모양이었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생충학 교수를 보면서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옆에 있던 병리과 교수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 너가……?’

그런 상황 속에서 설명이 이어졌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진단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리죠.”

“네네. 아…… 아하? 아니, 거기서? 그런 것만으로? 허어……. 이 어찌…….”

그와 동시에 감탄도 이어졌다.

비단 기생충학 교수만 감탄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병리과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의 진단은 정확했을뿐더러 지나칠 만큼 신속했으니까.

하여간,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소화기내과 의사도 좀 흥이 났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프던 환자 둘이 수혁 덕에 해결이 되어서 행복한 주말이 예정된 상황이지 않나?

“아, 그것만이 아닙니다. 맹장 암이 의심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죠.”

“그거 예후 별로 아닙니까?”

“들어 보시죠. 이것도 우리 이수혁 교수님이 하신 건데.”

해서 전에 해결했던 환자 얘기도 입에 올렸다.

병리과나 기생충학이나 지금은 서비스 파트 그리고 기초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뭐가 되었건 제대로 된 의과 대학 커리큘럼을 밟은 의사 아닌가.

그러다 보니 쫀쫀한 진단 과정에서 오는 쾌감을 알고는 있었다.

게다가 기생충학 교수로서는 아메바도 원충의 일종이다 보니 더더욱 흥미가 일었다.

“허어……. 하이구……. 어찌 이럴 수가.”

“대단하죠?”

“대단한……. 대단한 정도가 아닌데요? 아니, 이런 사람이……. 아, 혹시? 이수혁?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감탄을 터뜨리다가 종래에는 자기 머리통을 꽝 하고 후려쳤다.

그 바람에 다른 두 사람이 좀 놀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혹시 태화라는 병원 교수 아닙니까?”

“어, 맞습니다. 어떻게……?”

“코비드 사태 말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난리였거든요. 딱히 보도가 잘 안 되어서 그렇지……. 생각해 보십쇼. 거기 뭐 의료 인프라가 있습니까? 게다가 전 세계 물품 이동이 거의 잠기다시피 하면서 구호물자들도 아프리카로 이동이 안 되었단 말이죠.”

“아……. 하긴, 그랬죠. 어쩔 수 없었죠.”

기생충학 교수의 말에, 전 세계를 다 따져 봐도 코비드 사태에 의해 상당한 홍역을 치른 편에 속하는 뉴욕의 의사 둘은 고개를 잠시 떨구었다.

비단 떠나보낸 환자만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탓에 어지간히 사회생활을 안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지인 한둘은 잃었다.

특히 의료진들은 감염 위험에 아무래도 더 노출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니 여기 두 사람은 정말로 가까운 지인도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전 세계적인 재난이었다는 얘긴데 아무래도 원래도 재난에 가까운 상태였던 곳은 더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때…….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이수혁 교수와 태화 의료원이라고 들었는데……. 과장이 섞인 거라고 여겼었거든요?”

“뭐,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저도 들어 보니 오히려 과소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지금 여기 있습니까?”

“아, 아뇨.”

소화기내과 의사는 아까라고 하기도 뭐한, 오전의 수혁을 떠올렸다.

-소생, 어제 밤새 이걸 만들었나이다.

-너 여기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항상 같이 다니는 천재 대머리가 이상한 돌림판을 꺼냈다.

누구라도 당황해하거나 솔직히 좀 쪽팔려할 만한 모양새였다.

색색으로 치장된 것이 아무래도 촌스러웠다.

허나 수혁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감동의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도왔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거기에 알버트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은은한 광기가 도는데 대머리에게 물든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수혁에게 옮았을 수도 있었다.

-그럼 갈까.

그따위 일에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돈 채로 떠나던 수혁의 뒷모습에서 소화기내과 의사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광기를 느꼈다.

누가 봐도 미친 무리의 수괴는 이수혁이었다.

“왜 말이 없어요? 이상한 표정을 지으시네.”

그 광경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럼 멀쩡한 표정이 지어지겠나?

억울하다 이 말인데 이건 어디 가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방금 대단하다 해 놓고 실은 미친놈입니다요 할 수는 없지 않나.

“아, 아닙니다.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아, 아뇨. 내일 학회가 있을 겁니다. 거기 발표 연자로 오신 건데 이틀 정도만 저희 병원…… 박……. 아니.”

박살이라고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스튜어드가 그를 박살 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 생각나서 헛 나왔다.

따지고 보면 역으로 박살 났으니 뭐 크게 잘못한 거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적절치 못한 말이니 참아서 다행이었다.

“진료를 참관하셨습니다.”

“아하. 그럼 지금은 호텔에 있겠군요.”

“네네.”

“어디……?”

“어, 어디더라. 엄청 좋은 곳이었는데. 아 바카라.”

“바카라……? 아니, 거기에 있다고요? 학회 와서?”

“네.”

“무슨 재벌집 막내아들인가?”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 안대훈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봐도 연배가 더 위 같은데 너무 충성하고 있지 않나.

뒷배가 없다면…….

‘아니, 아닌데. 그 정도 실력자면……. 나라도 제자가 되고 싶다. 내년에 연수…… 태화로 갈까……?’

잠깐 혼란스러웠다가 정신을 차린 소화기내과 의사는, 이 양반이 지금 호텔에 있는 귀빈에게 무작정 뛰어들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신히 알아차렸다.

“아아, 근데. 내일 어차피 여기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전 사전 등록 안 했는데요. 내과도 아니고.”

“에이, 오늘 이렇게 오셔서 도움을 주셨는데 어떻게 그냥 보낸단 말입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아, 그럼……?”

“내일 저랑 같이 들어가시죠. 반드시 만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그럴 기회가 있을지…….”

“이게 논문으로는 유명한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적어요. 별로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러곤 생각의 흐름대로 말했다.

상식에 맞게 말한 것인데, 다음 날이 되자마자 이미 이 병원에 비상식적인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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