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화 집회 (3)
“스튜어드, 부디 실수하지 마세요.”
“내가 좌장만 몇 년을…….”
“저분한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완전 거물인데…… 이미 여러 차례 실수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 거물은 무슨. 새파랗게 어린…….”
“저기, 좌장 바꾸면 안 됩니까?”
팀장은 학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일단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말이 최종 점검이지 스튜어드 길들이기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여간,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저 새끼가 진짜 문제입니다.
특히 신중하기로 소문이 난 알버트까지 그랬으니 뭐 말 다 한 셈이었다.
해서 팀장이 나섰고, 급기야 좌장 교체에 대한 의견까지 나오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대행사가 좀 무례하다고 하면서 동료들이 좀 거들어 주었을 테지만…….
“진짜 바꾸기 전에 그만 좀 하게.”
“그러니까. 아니,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대체 왜 그러나.”
대한민국에 다녀온 이래 벌써 몇 달간 이미지를 깎아 먹은 스튜어드였다.
게다가 요 며칠 동안은 정말이지 무서운 기세로 병신 짓을 해 놓은 탓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 하기만 하지 돕지는 않았다.
스튜어드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점점 뭔가 그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서 그랬다.
이제 이러다가 완전히 나가리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스튜어드도 조금은 태도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에 대한 투서가 날아들었고 이사회에서 스튜어드에 대한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노력을 했다.
“그,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휴, 믿어도 되는 거죠?”
“네네.”
해서 팀장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한 후, 좌장 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그러곤 깊은 한숨을 쉬었는데, 그러다가 눈앞에 앉아 있던 알버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당히 노골적이었던 데다가 사실 스튜어드도 이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계속 눈치를 살펴 왔기 때문에 한눈에 어떤 표정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경멸이었다.
알버트 혼자만 그랬다면 저 새끼가 미쳤나 했을 텐데 그런 게 아니라 젊은 의사들 거의 전원이 그러고 있었다.
덜컥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어…….’
그리고 수혁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은 그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스튜어드의 시선에서 보면 저쪽은 적이고 자기는 같은 편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었지만…….
이제는 공포심이 그의 이성을 두들겨 깨운 뒤였다.
‘이런 망할.’
잘해야 했다.
“이번 시간…… 첫 번째 연자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님이십니다. 통합진료센터는…….”
근데 잘하려고 했어야 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대본도 준비를 안 하고 있었던 데다가 사실 상대 프로필도 잘 몰랐다.
뭔 일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탓에 반쯤 까먹었다.
‘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준비한 대본이 아닌 다른 무엇이 껴 있었다.
자세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찢어 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지 않나.
분위기가 요상한 것을 넘어 너무 심각했다.
해서 그대로 읽었다.
“모든 과를 막론하고 다 진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또 제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취지로 만들어진 센터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센터의 센터장인 이현종 교수님과 부센터장인 이수혁 교수님께서는 그러한 취지에 정확히 부합할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 역량을 갖추고 계십니다.”
읽다 보니까 좀 이상했다.
뭐지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상으론 이게 맞는 거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숫제 노려보고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알버트도 이제는 웃고 있지 않나.
그래서 그냥 따라 읽었다.
“특히 이수혁 교수님께서는 싱가포르에서는 리씨 일가의 구원자로, 두바이에서는 알 왕자의 구원자로 이곳 뉴욕에서는 스튜어드가 청한 모든 어려운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 줄 정도로 뛰어나며 또 훌륭하신 분…….”
그랬더니 점점 가관이었다.
이런 걸 읽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아마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와도 이 정도로…… 물고 빨고 하지는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게 맞다고 하고 있었다.
현장 분위기는 확실히 그랬다.
“아니 저 새끼 잘하랬다고 저렇게까지 한다고?”
“야망이 있는 사람 아닙니까. 뭐…… 말년에는 한국계 재벌 아래서 돈 많이 벌고 싶은 모양이죠.”
“아, 그런가…… 참…… 하긴 아까 들어 보니까 이미 마운트 사이나에서는 잘릴 거 같다더라고?”
“네? 그래요? 저 사람이 싸가지는 없어도 실력은 좋은 사람 아닌가요?”
“그랬지. 근데 다 옛날 얘기래. 요새는 좀…… 이상하기만 하다더라.”
“아.”
옆에서 보기엔 이상했다.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러하니, 아마 영상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상하게 느낄 터였다.
‘뭐…… 내가 X 되냐.’
팀장은 알 게 뭐냐 하는 얼굴로 그냥 이대로 찍기로 결심했다.
그 말은 곧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해서 그 후로도 안대훈이 작성하고 뉴욕 지부에서 만져 준 수혁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한동안 이어졌다.
딱히 수혁의 팬도 아니고 아예 알지도 못했던 사람은 혹시 이수혁이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건국 아버지였나 싶을 정도로 심한 미사여구도 있었다.
“네, 소개받은 이수혁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금칠을 당하고 나면 금칠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욕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수혁은 좀 다른 인간이지 않나.
그저 여상한 얼굴로 나설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진짜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인가 보군, 그래.’
‘진짜 재벌이구나…….’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앉아 있던 이들은 아까 들었던 다소 허무맹랑한 말들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이미 호감을 지니고 있던, 하지만 팬까지는 아니었던 이들이 그랬다.
그러니까 소화기내과 의사와 기생충 교수 그리고 얼떨결에 따라오게 된 병리과 교수들이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제가 오늘 발표할 주제는 희귀한 선천질환에 대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어릴 때는 증상이 경미하다가 커가면서 심해지는 양상을 띠어서 진단이 어렵지만, 제때 진단만 해서 치료를 하게 되면 별다른 이상이 없이 클 수 없는 질환에 대해 다뤄 보려 합니다.”
하여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수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잠깐 스튜어드를 돌아보기도 했는데, 정작 스튜어드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던 안대훈만은 알 수 있었다.
‘과연…… 교수님이시다.’
방금 수혁이 했던 말…….
사실상 스튜어드 저격 아닌가?
멍청한 스튜어드는 방금 자기가 한 말이 어땠는지 살피느라 그저 남들 눈치만 보고 있었지만…….
‘그래, 악당일 때도 철저하시군……. 어쩜 배울 점이 이토록 화수분처럼 나온단 말인가.’
안대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혁의 이어질 말을 기다릴 수 있었다.
뭔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교수였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터였다.
아무래도 같은 비행기 타고 왔고 또 같은 숙소를 쓰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면 이 양반이 요새 뭘 보는지 다 알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안대훈 또한 어제 수혁이 뭘 공부하다가 잤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혁 교수님은 그냥 공부하는 사람이지.’
이수혁에게 있어 공부는 상수였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란 뜻이었다.
“이 환자는…… 네. 싱가포르 쪽에서 의뢰된 환자입니다. 환자는 생후 8일째 구토 및 식이량 감소 그리고 의식 저하를 주소로 현지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통합진료센터의 위상이야 원래도 대단했지만, 코비드 사태 이후로는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이미 의뢰를 해 오던 병원에서는 숫제 루틴으로 환자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은 알고 있지 않나.
수혁이 하는 일은 정말 수혁 혼자서 하는 일이라는 걸.
“환자는 40주에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남아고, 당시 3.4kg였습니다.”
아무튼, 그의 발표에 어느덧 강당은 조용해졌다.
의사들이야 어려운 질환 얘기가 나왔으니 당연했고, 나머지들 또한 수혁의 신분에 대해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검진에서 머리둘레, 체중, 키 모두 백분위 상 50~75%로 측정되었습니다.”
성장 자체는 정상적으로 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의식 저하는 그리 쉽게 발생하는 증상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증상도 아니었다.
특히 그게 신생아라면 더더욱 그랬다.
“혈증 암모니아 수치는 800umol/L였습니다. 정상이 32까지라는 걸 감안하면 너무 높죠. 자,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환들을 감별해야 합니까.”
수혁의 질문이 꽤 급작스럽기도 했거니와 딱히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수혁은 좌장을 보고 있었다.
스튜어드가 내분비내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선천성질환에 대해 나름 권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름 합당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좌장님. 어떤 질환이 있죠?”
“네? 아아. 일단 유기산 혈증, 지방산 산화 대사 장애, 젖산 혈증이나 호흡과 관련된 대사장애…… 요로 감염이나 수뇨관의 대확장 등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요?”
“신생아 일과성 고암모니아 혈증이죠.”
당연하게도 스튜어드는 유려하게 답변을 해냈다.
아무리 그가 이상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는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의식 저하까지 일으킬 수 있는…… 지금 이 환자처럼 높게 올라가는 경우 중 흔한 것은 뭐죠?”
“그럼…… 음. 아무래도 요소 회로계의 대사장애겠죠.”
답변이 이어질수록 내분비내과 의사가 아닌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느 분과나 깊이 들이파면 다 어려워지기 마련이지만 이쪽은 그 깊이가 심연에 가까워서 그랬다.
아예 알 수 없는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이 말이었다.
지금이 그랬다.
“대사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죠?”
“아…… 음. 일단 간 조직의 손상이 있죠. 염증이 됐건 독소가 됐건…… 항경련제나 항암제도 원인이 되는데 신생아니까 빼고. 출혈이나 용혈도 봐야 하고…….”
“또?”
“유전 질환도 있죠.”
“네, 맞습니다. 아주 좋아요.”
수혁은 만족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렇다면 검사에서 고암모니아 혈증을 확인했습니다. 그다음 뭘 확인해야 합니까?”
“아…….”
스튜어드는 그제야 알았다.
이거 그가 팠던 것과 비슷한 함정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걸.
‘어…….’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무리 봐도 그가 팠던 것보다는 훨씬 깊어 보여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