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83화 (1,083/1,303)

1083화 집회 (4)

환자에게서 고암모니아 혈증을 확인했을 때, 그러니까 혈중 암모니아 농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을 땐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그렇게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환자의 나이와 병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허나 지금은 아이의 나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게다가 병력도 어지간히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산전 검사에서 정상, 재태 주수 40주라고 하지 않았나.

비전형적인 선천성질환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감염이거나 전혀 생뚱맞은 질환일 수도 있었다.

‘으음.’

당연하게도 고민이 시작되었다.

강연자가 질문하고 좌장이 고민하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좀 이상한 일이긴 한데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아니, 시작 전부터 이상했던 강연 아닌가.

수혁이라는 핵폭탄이 떨어진 이상 일반적인 진행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미노산을……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죠. 혈액과 소변에서 아미노산 정량 분석을 해야 합니다. 이 환자에서는 보면……. 소변 오로틱 산이 정상입니다.”

“아, 그러면 신생아 일과성 암모니아 혈증이 가장…….”

“정말 그렇습니까?”

“아. 아니. CPS 1 결핍도 의심이 가능합니다.”

“그렇죠. 혈중 아미노산에서는 글루타민이 살짝 증가해 있었고, 아르기닌이나 시트룰린은 정상 소견입니다.”

“으음…….”

정상.

정상이다…….

스튜어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글루타민은 진짜 살짝 증가해 있어. 그렇다면 역시 신생아 일과성 암모니아 혈증이 제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함정이지 않겠나.

그것도 아주 깊은 수렁과도 같은 함정.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질환일 리는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수혁에게 실시간으로 들어가고 있는 전 세계의 어려운 케이스가 대체 얼마나 많던가.

그렇다면, 역시 유전 질환일 가능성이 컸다.

“CPS 1 결핍일 가능성이 제일 커 보입니다.”

“아하. 그럼 어떤 치료를 해야 하죠?”

“사실…….”

COPS 1 결핍으로 인한 고암모니아 혈증이라면, 지금 보고 있는 저 아이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예후가 극악이지 않던가.

여기서 치료랄 게 있단 말인가?

‘뭐…… 해볼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래, 다시 생각해 봐도 다른 질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CPS 1 결핍증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드문 병이지 않던가?

100만 명당 1명 발생할까 말까 한 수준의 빈도로 발생하는 병이었다.

그 말은 희귀 질환이라는 말조차 쓰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드문 병이란 얘기였다.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르겠네. 나만 그런가?’

‘아니, 이거…… 유전 질환이잖아. 암모니아 대사 관련한 질환 같은데…….’

‘그래, 다들 그런 거지?’

‘어, 그렇지. 우리 잘못은 아냐.’

실제로 강당 안을 거의 가득 메우고 있다시피 한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이걸 대체 어찌 안단 말인가.

뭐 이런 얼굴이랄까.

허나 흥미가 떨어져 있진 않았다.

일단 템포가 빨라서도 그랬지만 뭔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둘 사이의 대결처럼 보여서 그랬다.

더욱이 최근 스튜어드가 가공할 기세로 쌓아 올린 업보로 인해 스튜어드에 대한 원한이 있거나 적어도 불만이 있는 사람이 워낙에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스튜어드가 한 번쯤 팍 꺾여 나가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일단 단백 제한을 하고…… 고암모니아 혈증으로 인한 경련을 막기 위해 벤조에이트나 페닐부티레이트 등의 약을 먹입니다. 거기에 CRRT도 돌리면 좋겠군요.”

CRRT.

Continous renal replacement therapy라는 건데, 쉽게 생각하면 투석이라고 보면 되었다.

신생아에게 이 정도의 치료를 하겠다는 건 나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탁

그때 수혁이 화면을 넘겼다.

환자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A와 B가 크게 그려져 있는 화면이었다.

엉뚱한 화면이지만 정작 그 화면을 보고 있던 이들 중에선 엉뚱하다고 느낀 사람이 없었다.

각 대문자 A, B 아래 쓰여있는 글자 때문이었다.

특히 B 밑에 쓰여 있는 문장이 방금 스튜어드가 말했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수준이었다.

“B 안을 골랐군요.”

“어…….”

다른 사람들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또 화면을 보느라 수혁의 입가에 잡히는 작은 미소를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어드는 봤다.

분명…….

‘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탄식을 느끼곤 속으로 다시 탄식을 내뱉었지만 이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실제 발표된 바 있는 케이스입니다. 뭐…… 설마 마운트 사이나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늦게 재진단을 내릴 거 같진 않지만…… 단지 이 치료만 할 경우엔 반복되는 고암모니아 혈증으로 인해 몇 달마다 입원하게 됩니다. 이 케이스의 경우엔 반복되는 경련과 뇌 발달의 지연을 초래해 경도의 지능 저하와 주의력 결핍 장애를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CPS 1 결핍중에 대한 재검이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왜일 거 같습니까?”

왜냐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CPS 1 결핍증에서 저 정도 경과라면, 부모나 아이 본인에게는 너무 잔인한 말로 느껴지겠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경과라서 그랬다.

죽지 않았으니까.

슬픈 일이지만 현대 의학에서도 그저 죽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병들이 즐비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 케이스에서는 CPS 1 결핍이라고 판단했으니, 저 정도면 좋은 경과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 케이스라뇨? 교수님이 아까 그렇게 판단하고 치료했는데요. 왜 남 얘기하듯이 하세요?”

“그…….”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어떻게든 면피를 해보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수혁은 나이답지 않게, 적어도 학회에 있어서는 노회한 교수처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인간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학회마다 악명이란 악명은 다 뿌리고 다니는 저 이현종조차도 수혁을 두고는 타고났다고 평할 정도였다.

이런 어설픈 몸 비틀기로는 아무것도 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치료하게 된다면…… 이 케이스에서는 환아가 8세가 되고 나서야 다른 병원에 내원한 후 분자유전학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CPS 1 결핍이 아닌, NAGS 결핍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NAGS……?”

내분비내과 의사에게조차 생소한 단어였다.

대사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인데, 이 단계에서 결핍이 발생하는 건 더더욱 드문 질환이라서 그랬다.

국가 단위로 봐도 1명 내지 2명 정도가 있을까 말까 한 질환이었다.

나름 내분비내과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닥터 스튜어드조차 모르고 있었더랬다.

보통은 딱 진단명 듣고 나면 아아 그거 할 텐데, 이건 그것도 안 된다 이 말이었다.

“CPS 전 단계에 작용하는 효소입니다.”

수혁은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표정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짓고서 말을 이었다.

“당연히 CPS 결핍증과 증상은 거의 같습니다. 검사 결과에서도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NAGS는 제때 진단만 한다면 예후가 확 좋아집니다. 실제로 이 케이스에서도 비록 너무 늦게 진단이 되긴 했지만 carbaglu를 복용하면서 고암모니아 혈증이 개선되었고 키와 체중 등의 성장도 따라잡았습니다. 지능 저하도 어느 정도 호전되었는데 좀 안타까운 케이스죠?”

수혁은 쯔쯔 하고 혀를 찼다.

고개도 가로저었다.

뻔히 스튜어드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저게 누굴 겨냥하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당하게 된 스튜어드로서도 딱히 대꾸를 하고 있지 않아서, 그 상황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빈말로도 성격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스튜어드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모르니까.

의사들 사이에서 완력이 뭔 의미가 있겠나.

그저 뭘 더 알고 모르고에 따라 우열이 나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물론 이 케이스에 해당하는 질환은 무척 드문 질환입니다. 아마 여기 있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평생 볼 일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볼 일이 없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겪어야 할 피해가 너무 큽니다. 여러분에 대한 얘기는 아닙니다. 아마 소송을 한다고 해도 지지 않을 거예요. 그럴 수는 없죠.”

수혁은 여전히 스튜어드를 지속적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돌아보고 있었지만 스튜어드를 볼 때만 표정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는 정작 수혁이 아니라 스튜어드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송에 지지 않았다고 해서 환자가, 그리고 보호자가 겪은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

누군가 탄식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그랬다.

“만약 이 8세 아이의 환자를 본 의사가 CPS 1 결핍 외에 다른 원인을 의심했다면…… 아니, 적어도 자기 진단에 조금의 의문이라도 품었다면, 그래서 분자 유전학 검사를 제대로 된 기관에 의뢰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어지는 말에는 탄식조차 따르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 수혁이 말했다.

“아이는 아주 간단한 경구 약만으로도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겁니다. 몇 달 간격으로 입원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경련도 없었을 것이고 지능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의 성장 또한 자신이 타고난 만큼 이룰 수 있었겠죠.”

그제야 수혁을 제외한 모든 의사들은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받아야 할 치료라는 게 경구 약 복용이었다는 것을.

주사조차 아니란 얘기였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치룐데, 그것만으로 타고난 유전 질환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싱가포르에서 보내온 환자는 제때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마 별 탈 없이 클 수 있겠죠. 그러니까 여러분. 극히 드문 병이라고 해서 몰라도 되는 건 아닙니다. 우연히 이 질환을 앓는 환자가 또는 환자의 지인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조언을 요청할 수도 있어요. 그때 오늘 제가 말씀드린 이 내용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제 첫 번째 케이스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와.”

“와아아아아!”

냉정히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 50케이스도 발표되지 않은 희귀 질환을 하필 여기 참석한 사람들이 보게 될 확률은 아마도 제로라 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열 배는 넘게 있었을 거라고.

어쩌면 백 배의 환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그저 놓쳤을 뿐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몰라서일 텐데…….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란 말도 있지만, 전문가에게는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수혁의 생각이었다.

“스튜어드 교수님도 잘 아셨죠?”

물론 오늘 타깃으로 한 것은 스튜어드였다.

“아…… 네.”

실시간으로 병원에 남을 가능성은 물론이고, 다른 병원으로 갈 가능성도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아직은 모르는 스튜어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첫 번째라고……?’

두 번째가 있다는 얘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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