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9화 개인 과외 (1)
귀국 날.
수혁은 여러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선 그를 재벌집 막내아들쯤으로 단단히 여기고 있는 뉴욕 지부 직원들과 지부장이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네. 뭐.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보통 사람 같으면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 싶었을 터였다.
단지 병원 교수가 왔다고 해서 별 상관도 없는 다른 회사에서 이럴 리가 있나?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수혁은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도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태화 사람들 좋다, 착하다 정도의 인상만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야 머글들도 교수님을 알아보고 있군그래.’
안대훈?
이쪽도 보통 사람이라고 보기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이다 보니 당당하게 이 말도 안 되는 의전을 받고 있었다.
‘역시…… 맞다.’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이들의 오해를 한층 더 이끌어 내고 있었다.
“뭔 소리야, 이게?”
대강의 보고를 받은 김다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뭐…… 아무래도 좋겠지. 이제 좀 더 지원을 받을 수 있겠네, 그렇지 않겠어?”
“네? 아, 네. 협조를 안 했었죠.”
같은 그룹 회사면 다 친하고 다 좋게좋게 지낼 거 같겠지만 사실 안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같은 회사 내 팀끼리도 반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런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특히 태화에는 전자와 후자가 있다는 말의 원흉이 되는 전자 쪽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의 다른 회사에 대한 인상은 딱 이랬으니까.
-우리가 번 돈으로 사업 일궈나가는 기생충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낄 만한 회사들도 제법 있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행동했는데, 요사이 미래 먹거리 타령하면서 돈 먹는 하마가 되어 버린 바이오 그룹에 대한 불만은 말 그대로 눈엣가시였다.
때문에 뉴욕 센터에 대한 협조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합리적일지라도 재벌에서 일가의 의미란 그러한 법이었으니.
“지들이 알아서 엎어지겠다는데 내가 정정해 줄 필요는 없지. 본의 아니게 또 한 건을 올린 셈인데…….”
김다현은 비서에게서 눈을 뗀 후, 밖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아도, 좋아도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새에 재벌집 막내아들이 됐어?
소설도 이렇게 쓰면 개연성 떨어진다고 할 텐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회장님.”
“응?”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응? 내가 그랬나?”
“네. 웃고 계셨습니다.”
“별일이로구만.”
그에 비해 이쪽은 참 갈 길이 멀었다.
그룹 회장 자리를 일가도 아닌 사람에게 뚝 떼어서 줄 때부터 각오는 했더랬다.
얼마나 힘든 일이길래, 또 얼마나 성과가 단기간에 나기 어려운 일이길래 액땜부터 하려고 하나 싶었다는 얘기다.
각오하고 왔으니 망정이지 축하해 주는 사람들처럼 생각 없이 웃으면서 왔다면 벌써 죽었을 거다.
참으로 지리멸렬한 사업이었다, 바이오는.
눈에 띄는 성과 없이 그저 들이부어야만 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바이오는 따라잡아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잘된 일이지. 일단 두고 보자고. 이수혁 교수가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하게 되건…… 아니면 병원 차원에서 뭐가 생기건 알아서 처리해 주면 되니까.”
“네. 그래도 태화 의료원이 회장님이 취임하신 이후로 내내 국내 1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대견합니다.”
“그렇지. 그 덕에 면이 선다니까.”
김다현은 그렇게 웃으며 수혁에 대한 보고서를 따로 접어 넣었다.
사실 그의 직함이나 맡은 일의 굵직함을 생각해 봤을 때 고작 수혁 하나에 대한 보고서를 직접 받고 처리할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보고서라면 일이 아니라 취미로라도 수리할 수 있었다.
“어? 왔어? 아니, 병원으로 바로 온다고?”
“네. 비즈니스 타서, 자면서 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까지 휴가 아닌가?”
“화요일이니까, 환자가 있겠죠.”
“그야 그렇지…….”
그사이 수혁은 인천으로 돌아왔다.
미리 잡아 둔 택시를 타고서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딱히 집으로 갈 거냐는 의사도 묻지 않았지만 갑질은 아니었다.
안대훈은 이대로 쭉 수혁 모시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환자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근데 오시기 전에 한번 다 처리를 해 주셔서…….”
“우리 병원 위상이면 그사이에도 오지 않았을까?”
“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그런 안대훈에게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지껄인 후, 어플을 통해 환자 명단에 접속했다.
아무리 새로 고침을 해 봐도 입원 명단이 바뀌진 않았다.
응급실 쪽이야 노상 바뀌고 있었지만, 여기서 확인 가능한 것은 간단한 기록들뿐이다 보니 뭔 환자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둘 중 어느 누구도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 특별한 환자가 있는 거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병원으로 가는 건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니, 달리 할 일이 있기도 했다.
‘하윤이…… 공부하다 막히는 게 있다고 하는데 진짠가?’
[우하윤 수준에서 막히는 게 있으면 내년도 내과 전문의는 0명일 겁니다. 하는 소리겠죠.]
‘그렇겠지? 걔가 안대훈만큼은 아니더라도 진짜 열심히 하는 애잖아?’
[인간 수준에서는 그 정도면 그냥 최고로 열심히 하는 거죠.]
‘안대훈은 인간이 아냐?’
[인간 같습니까?]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안대훈을 돌아봤다.
마침 안대훈은 비행기 타고 오는 동안 자라난 머리를 정리 중이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후광을 켰다 컸다 했는데 대체 차 안으로 스며들어 왔을 뿐인 햇빛을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름 바루다가 최대한 연산 능력을 발휘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이 불가했다.
둘은 저걸 계산해 내기 위해서는 아마 양자 역학을 마스터 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특이하긴 하지.’
-그렇죠.
차량은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둘을 어느덧 태화 의료원 앞에 내려다 주었다.
솔직히 피곤할 법도 할 텐데 수혁과 안대훈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힘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사람은 병원에 있어야 해.”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 익숙한 냄새…….”
둘은 어디 산림욕이라도 온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병원을 거닐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뒤로 수군거렸다.
“언제 오셨대?”
“오늘.”
“오늘?”
“어. 학회 갔다가 바로 오셨다는데.”
“와…… 진짜 저 정도는 해야 부센터장 하는구나.”
“안대훈 선생도 봐 봐. 저걸 누가 펠로우 1년 차라고 보겠어. 관록이…….”
뒷말은 아니었다.
그저 감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어딨겠나.
심지어 도움 주는 데 인색하기는커녕 못 줘서 안달인 사람들이니만큼 다들 한 번씩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흐음.”
“으음.”
둘은 그렇게 일단 응급실 환자들부터 뒤적였지만 이미 어지간하면 단기 플랜이라도 잡힌 상황이었다.
사실 이게 보통이긴 했다.
여기가 어디 뭐 허접한 병원도 아니고 태화 의료원이지 않나.
인턴이 아닌 레지던트들이 초진을 봤고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의 진료에 있어 펠로우 이상급의 감독을 받았다.
어지간히 어려운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수혁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밤이라면 또 모를 텐데 지금은 낮이다 보니 제깍 제깍 전문 분과로 콜이 날아들고 있었다.
“에잉.”
“떼잉.”
통합진료센터?
여기야말로 환자 가뭄이었다.
“유니세프는 뭐 하는 거지?”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심지어 언제든 환자 보내도 된다고 했더니 좋아했던 유니세프에서도 보내지 않았더랬다.
수혁은 대훈이 해결해 보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 어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물론 그게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다.
“교수님!”
“응?”
하윤이 왔다.
[주책입니다, 수혁. 너무 볼썽사납게 웃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랬나. 그럼…….’
[지금은 또 너무 근엄합니다. 누가 보면 10년은 나이 먹은 줄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좋아요.]
수혁은 몇 번인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자연스러운 표정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런 수혁을 향해 하윤이 다가왔다.
“얘기 들었어요. 교수님…… 이현종 교수님도 가신다고.”
“어, 어어. 내일모레부터 들어가지.”
“엄청 어렵게 낸다고…….”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냥 마음대로 내래.”
“아.”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니, 어떻게 보면 더 무섭게 들리는 말이었다.
신경 써서 쉽게 내려고 했을 때조차 역대급으로 어려운 문제를 냈던 사람이 마음대로 내면 어떻게 될까.
-하윤아…… 네 어깨에 우리 미래가 걸려 있다.
동기들의 말이 떠올랐다.
딱히 그들의 말 때문만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해도 걱정이었다.
-딸아. 내년에 진짜 1, 2명만 전문의 따게 되면 우리나라 의료 비상이다.
아빠도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그때는 가발을 멀쩡히 쓰고 있어서 기억에 올바르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소스를 캐내야 한다.
“그나저나 막히는 게 있다고?”
허나 그런 마음도 정작 수혁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어쩜 이 나이 먹고도 이렇게 순수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 거짓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다고 믿는 거 같았다.
지금도 곧이곧대로 믿고 있지 않나.
‘교수님…… 제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우리나라 의료까지는 몰라도 태화 의료원은 망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 사람 속여서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네. 그게, 일단 감염인데요.”
그리고 이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집중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래도 수혁의 팬클럽 부회장이었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난 후 살짝 거리를 두었지만 지금은 또 홈마를 하게 되어 수혁에 대해서만큼은 대훈을 제외하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하윤이라는 점이었다.
“기회감염 쪽이 잘…….”
“아, 기회감염!”
이것 봐라.
눈이 빛나잖아.
왜 저러는지는 명백했다.
이게 진짜 어렵거든.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기회가 있어야 감염이 되는 질환이니만큼 경과나 원인 등 어느 것 하나 일반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네, 그쪽이 좀 어려워요.”
“그래, 그럴 수 있지. 정확히 말하면 어떤 게 어렵지?”
“우리나라가 당뇨가 늘고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당뇨에 최근 꽂혀 있다고 들었다.
물론 수혁에게 있어 최근이라는 단어가 너무 기간이 짧기는 했다.
오늘 공부하다가 대강 지금까지 나온 거 마스터 했다고 치면 다음으로 넘어가 버리지 않던가.
하지만 이 당뇨는 워낙에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다가 안대훈이 그러는데 오는 비행기에서도 공부를 조금 했다고 들었다.
“그렇지! 그에 비해서 딱히 관리가 더 나아지지는 않았어. 식습관은 더 안 좋아지고 있는데……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국가적 재난이 될 수도 있어.”
“네네. 그로 인한 기회감염이 궁금해요.”
“좋아. 마침 나도 이거 보고 있었거든? 바로 알려 줄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