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95화 (1,095/1,303)

1095화 3년 연속? (1)

보건복지부 서기관 최우식은 자못 긴장한 얼굴이었다.

-너 미쳤어?

-그 사람을 왜 불러! 너 인마…… 우리가 갑, 갑 하니까 진짜 갑인 줄 알지? 아냐. 진짜 갑은 미친놈인데, 그 새끼는 진짜…… 어, 어억.

-어어! 차, 차관님! 야, 인마! 너 차관님 트라우마 있는 거 몰라서 이래?

-아, 아냐…… 그, 그 새끼도 나이가 먹었으니까 좀…… 나아졌을 리가 있겠냐!

국장급도 아니고 제2 차관님이 기함하는 꼴을 보고 온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아니…… 우리 정도면 진짜 얌전한 사람들이랑 일하는 거 아닌가……?’

보건복지부라고 해서 다 같은 보건복지부는 아니지 않던가.

그 안에 업무에 따라 만나야 하는 사람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당연하게도 민원인도 아예 달랐는데, 의료 정책 쪽은 민원이라고 해 봐야 대학 병원 교수들이다 보니 대단히 수월한 편이었다.

물론 간혹 시민 단체 쪽이나 보다 과격한 쪽, 혹은 의료의 ‘ㅇ’도 모르고 표심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위에서 뭉개고 들어올 때는 스트레스가 좀 있었지만 그건 정말이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교수들은 손에 쥔 것도 많은 데다가…….’

아무래도 돈과 시간이라는 실리보다는 교수 직함이라는 명예를 택한 사람들이라 그런가 다들 선비 그 자체였다.

학자들이란 얘긴데 그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여 봐야 뻔했다.

물론 학자의 고집이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땐 그만한 반발이 있긴 했지만 다들 빠꼼이인데 그럴 만한 일이 뭐 많겠나?

적어도 지금껏 최 서기관이 만나 왔던 이들은 그랬다.

우창윤도 야망이 있어서 그런지 발톱을 숨길 줄 알았고, 동종헌이나 학회장 출신들은 숫제 정치인이라 해도 다름없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현종 교수면 벌써 원장도 하고 지금은 태화에서 제일 중요하게 밀고 있는 통합진료센터의 센터장이잖아. 그럼 당연히…… 어? 잘하는 사람이겠지.’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독보적인 커리어를 밟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 병원도 아니고 기업 병원에서 그 정도면 뭐 노회한 정치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일 터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부드럽기 그지없을 거다, 이 말이었다.

사실상의 갑을 관계도 인정할 줄 알 것이고 좀 더 나아가서 대국적인 선택도 할 줄 알 터였다.

“서기관님. 다 오셨어요.”

“아, 네. 주무관님.”

하여간, 여러 염려 속에서도 최우식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뚝심도 뚝심이었지만 뭣도 모르고 위에서 날아온 장관 덕이 더 크다 할 수 있었다.

-그래? 시험이 어려우면 국민들한테는 더 좋은 거 아닌가?

이미 대한민국 의과 대학 그리고 지금껏 수련 병원으로 남을 수 있게끔 노력해 온 병원에서 제대로 교육을 끝까지만 받아도 어지간한 나라 전문의 뺨다구 정도는 왕복으로 올려붙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장관은 냉큼 결재 도장을 찍어 버렸다.

거기에 더해 힘도 실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원래 수능도 그래. 열심히 한 사람들은 불수능이 더 반가운 법이라고.

전문의 시험 봐서 대학이라도 다시 간답니까? 라는 말을, 보건복지부에서 잔뼈가 굵도록 버틴 국장급 이상 인산들은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우식입니다. 사실 제가 좀 무리한 부탁을 드린 분들도 계신데…… 이렇게 다들 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최우식은 그런 장관의 말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카페테리아를 살짝 개조한 공간에는 여러 대학 병원에서 내놓으라 하는 의사들이 우글거렸다.

보통 주니어 교수들에게 짬 때리던 일에 이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는 아마 없었을 터였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는지도 몰랐다.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든다…….’

그렇기에 중요한 날이었다.

어쩌다 보니 모두가 살짝 생각을 잘못하게 되어서 이렇게 된 참인데…….

이걸 발판 삼아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대한민국 내과가 나아갈 길을 정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못 가슴이 웅대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렵게 모신 만큼…… 그리고 어렵게 오신 만큼 서로 최선을 다해서 단순한 자격시험을 위한 문제가 아닌, 명품 문제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감히 바라건대 앞으로 내과 교육에 있어 이 문제들이 그 교육의 목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즉 이 문제들만 잘 풀 수 있다면, 훌륭한 내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기를 바랍니다.”

해서 어디서 본 듯한 태도로 열변을 토했다.

‘미친…… 그렇게 되겠냐?’

그걸 보고 있던 우창윤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어떻게 내과 교육이 그렇게 되겠나.

환자는 문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인데.

‘하지만…… 의미는 있을 거 같아.’

그렇게까지 되기를 바라는 건 만용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나와 있던 문제들이 썩 좋은 문제들이 아니라는 데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그나마 수혁이 좀 건드렸던 부분들은 나름 괜찮겠지만, 그것도 사실 알고 보면 수혁의 팔다리를 묶고 낸 참이다 보니 아무래도 모자란 부분들이 있었다.

‘이것만 하면 된다는 아니겠지만…… 하나의 지표가 되어 줄 수는 있겠지. 참고서도 나름 잘 나와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훌륭해지면 참고서의 수준도 올라갈 거야.’

내과가 메이저 과목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까?

아마 메이저 중에서도 메이저라 해도 별 이견은 없을 터였다.

결국, 의학은 내과학과 외과학으로 나누어지기 마련이니.

그 말은 곧 내과 교육이 비단 내과 전문의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란 얘기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구조는 사실 말이 안 돼.’

우창윤은 최우식이 떠들어 대고 있는 가운데 홀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뭐라 하진 못했다.

덕분에 우창윤 교수는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전문의 비율이 90%를 상회하고 있지…… 이게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 리가 없어.’

집 앞에 단순 의원이 아니라 소아과, 내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의 전문의들이 차린 의원이 즐비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더 있겠나?

전문의를 따기 위해서는 인턴 1년에 전공의 과정을 최소 3년 또는 4년을 밟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그냥 학생 같은 과정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전공의의 다른 말은 레지던트다.

병원의 거주민이라는 뜻인데 진짜로 그랬다.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전문의를 따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과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과를 제외하면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소아과 같은 경우는 저출산과도 맞물려서 아예 소멸하는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다른 기피 과였던 곳으로 가나?

‘일반의 비율이 최근 몇 년간 미친 듯이 늘고 있어. 그동안에는 어차피 대학 병원에서 수련받을 거란 생각으로…… 사실 의과 대학에서의 교육은 어느 정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모든 변화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 대한민국 아닌가.

의료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 결과 불과 1, 2년 새에 일반의 비율이 미친 듯이 늘고 있었다.

심지어 의과 대학생들 사이에서의 대화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너 무슨 과 할 거야’가 주요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너 수련 받을 거야’가 주요 질문이 되어 버렸을 지경이었다.

그 말은 곧 일반의로 당장 필드에 나섰을 때의 실력도 아주 중요해졌다, 이 말이었다.

‘오늘 이 문제가…… 어쩌면 진짜 분수령이 될 수도 있어. 어차피 내과학 문제를 일반 국시에서도 참고할 수밖에 없고…… 여기 와 있던 사람들 태반이 국시 문제도 내게 될 테니까.’

마이너 과들이라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겠지만 내과는 대학 병원의 기둥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의 기둥이지 않나.

내과 교수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현실이 그랬다.

“자, 그럼!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을 끝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쯤, 최우식도 말을 마쳐 가고 있었다.

“필수 질환에 대해서 아주 깊이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내 주십시오. 분과 전문의도 엄청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분과 전문의가 아니고서는 내과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당뇨 쪽의 관리는 처참합니다. 환자들이 분명 당뇨 치료를 계속 받아 왔다고 보고하는데 막상 보면 혈당 관리 자체는 거의 안 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최우식도 일반의 출신 공무원이었다.

그 말은 전문과 지식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데이터를 다루고 있기에 그랬다.

임상 환자를 보지는 못해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주제넘은 소리도 아닌 것이 실제 우창윤은 비롯한 내분비내과 학회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름 교육도 하고 있을 정도였는데, 사실 전문의 딸 때 제대로 준비를 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일 터였다.

한 번이라도 뒤지게 공부를 해 본다면 당연히 평생 도움이 될 테니까.

“예로 든 건 당뇨지만 최근 국내 자가면역질환 유병률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계실 겁니다. 그에 따라 호발하던 연령도 보다 넓어지고 있죠. 암이야 뭐 말할 것도 없죠? 놓쳐서는 안 될 질환 또는 제대로 관리를 해 줘야 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제가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얼마든지 어렵게 내셔도 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공문을 내린 바 있으며, 이번 문제 출제가 끝나면 또 한 번 공문을 내릴 겁니다.”

최우식은 분연한 기세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뒤에 놓인 화면을 가리켰다.

역대급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잘 언급이 되지 않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번 시험은 역대급으로 어려울 예정이니 각 병원 교수님들이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것. 이번 시험에 한해서는 시험 문제가 출제된 범위에 대해 절반 정도는 저희가 공지도 할 겁니다. 물론 당뇨, 자가면역질환 중 크론. 뭐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겠지만……. 아무튼, 대응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여러 교수님께서는 걱정 마시고 문제 어렵게 내 주시면 됩니다. 분과 전문의 시험이다 생각하고 내셔도 좋습니다.”

거기에 더해 최우식 서기관의 시원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결과, 수혁과 이현종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우와아아아!”

“하하하하!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날이 다 오고!”

그렇게 흥분한 두 사람을 보며 최우식도 웃다가 살짝 불안해져서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지엽적인 문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질환에서 어렵게 내셔야 합니다!”

“아아,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무렴. 염려 붙들어 매고 있게. 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자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수혁에게 충동질을 한 바 있던 우창윤도 좀 불안해졌다.

‘설마 우리 딸…… 수석은커녕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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