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화 3년 연속? (2)
‘당뇨로?’
[당뇨 조오치.]
‘그래, 당뇨로 간다.’
[좋습니다.]
‘어차피 치료는 내분비내과에서 할 거 아냐.’
[그렇죠. 우리는…….]
‘역시 진단이지.’
[흐하하하.]
수혁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바루다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남들 앞에서는 최대한 지양해 온 일이었다.
이상하잖아?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너무 신나잖아.
“후후후.”
이현종도 그랬다.
“어르신…….”
보다 못한 교수 하나가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지만 당연하게도 별 소용은 없었다.
“뭐, 인마. 심장이 얼마나 중요해. 놓치면 뒤져.”
“거의 대부분의 병이 놓치고 오래되면 뒤집니다…….”
“이건 바로 뒤져!”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이건 아무리 어렵게 내도 된다, 이 말이야!”
“그…….”
말리는 이는 이번 교육 이사를 맡은 이였다.
제법 연배가 있는 사람이고 또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었다.
경험도 있다 보니 물끄러미 보건복지부 쪽을 향해 도움을 청해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어렵게 내시죠.”
“아니, 당신이 이 사람을 몰라서 그래!”
“잘 압니다. 월드 스타 이현종 교수님. 국제 심장학회 학회장까지 하셨던 감각 있으신 분 아닙니까?”
“아니…….”
학회장을 한 건 맞는데 감각이 있던가?
그런 거 아예 없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인데.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데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거 다 했던 사람인데…….
이런 말보다 더한 말들이 입 안을 맴돌다가 결국, 삼켜지고야 말았다.
이것도 끼리끼리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들 아닌가.
남의 식구 앞에서 험담을 늘어놓을 만큼 정신없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참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 뭐 당해 봐라. 난 정년도 곧이야.’
대한민국 의료 다 X 돼 보라고 하지 뭐, 그런 생각으로 뒤로 물러섰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나라도 제대로 내야겠구만.’
의료가 X 되면 막말로 누가 제일 큰 피해를 보는가.
정년이 머지않은 노인인 그가 제일 커다란 피해를 볼 공산이 컸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도 의사들이야 먹고살지 않겠나?
막말로 피부과 가서 레이저만 쏴도 월급이 낮지 않으니까.
실제로 얼마 전 대화를 나누었던 학생 중 태반이 소아과 가느니 수련 안 하겠다는 소리를 해서 충격을 받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 싶었달까.
“이수혁 교수?”
“아, 네.”
“잘돼 가…… 나?”
“네. 말씀 편히 하세요. 나이도 많으시고 그러신데요.”
“그, 그래. 이게 습관이 안 되어서 좀 그렇네.”
그러던 중 우창윤은 몰래 수혁에게 접근했다.
말이 몰래지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다 보였다.
늘 수혁을 주시하고 있는 이현종이야 당연히 봤다.
-형. 수혁이 연애 전선에 애로 사항 있을 수 있으니까, 우창윤한테 잘해, 이제. 아선 놈이긴 해도 그놈들 중에서는 좀 낫잖아.
바로 움찔했다가 참았다.
신현태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래, 신현태가 그랬지.
우리 수혁이…….
‘그때 행복해 보였지.’
어려운 환자 볼 때랑 비교하면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하윤이랑 있을 때 보니까 뭔가 종류가 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예전엔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젠 알았다.
이기자 교수 덕에.
‘그래, 그만큼 행복할 수 있다면……. 뭐…….’
자식새끼가 행복하다는데 어쩌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슴 속에 쨍하고 깃든 무언가가 저절로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문제가 더 어렵게 나올 공산이 커졌다, 이 말이었다.
“당뇨 낼 거야?”
“아, 네. 진단 쪽으로요.”
“아, 진단……. 그래, 진단도 중요하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전혀 생각을 안 하니까요.”
“그렇지. 단짠단짠인가? 그 망할 것이 유행하면서 건강 다 조져 놨다니까.”
“그러니까요…….”
통계를 보면 확실히 그 말이 유행하면서부터 당뇨 유병률이 더 오르고 있었다.
단것, 설탕 등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던가.
일각에서는 마약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당이라는 말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체 통계를 보면 마냥 오버하는 것도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당이 마약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코카콜라로 대표될 수 있는 거대 기업들의 로비가 많은 사람의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당뇨만 내나?”
“네? 아뇨. 호르몬 질환도 내야죠. 아무래도 요새 그쪽도 문제니까요. 사실 뭐……. 다들 문제 아닐까요? 감염도 그렇고, 암도 그렇고. 신장도……. 요새는 젊은 환자들이 많잖아요.”
“아, 그놈의 바디 프로필…….”
“네. 내분비 대사 쪽으로 보면 진짜 최악 아닙니까.”
“그렇지. 뭐……. 꾸준히 운동한 사람들이라면 괜찮을 텐데, 갑자기 살만 빼면……. 그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지.”
“그러니까요.”
하여간, 우창윤은 수혁과 대화를 하면서 이 인간이 내분비 쪽으로도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뭐 동지들끼리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놈은 이거 말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이럴 거라는 건데…….
‘아이구, 우리 사위 잘났네. 정말. 하하.’
예전처럼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흐뭇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어제도 와이프랑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도 희망 회로가 마구 돌았더랬다.
우리 딸이 세계 최고 의사랑 결혼하게 된다니.
하하하!
“그래, 그래. 어렵게 내라고.”
“네, 교수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이 자식은 대체 뭔 생각을 하길래 이렇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면서 거리를 두나 싶긴 한데…….
‘아냐. 하윤이 매력은 내가 알지.’
하윤이가 어?
하윤이랑 세 번이나 부딪쳤다며.
그럼 끝이다.
아빠가 보증하는 매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었다.
‘좋아…….’
수혁은 그렇게 애써 안심하고 돌아서는 우창윤과는 별개로 이미 문제 하나를 내고 있었다.
하나는 아주 쉬운 문제였다.
그렇지만 필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바로 젊은 층에서 당뇨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 또는 소견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보통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청년층의 현실을 보면 아주 헷갈리는 증상들이 많았다.
피곤하다든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든지 하는 것들.
심지어 젊다는 건 의학에 있어 깡패기 때문에 증상이 경미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하게 되면, 훨씬 젊은 나이에 실명이나 당뇨발 또는 만성 신부전 혹은 심근경색이나 뇌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주의해야 했다.
‘다행히……. 피부 질환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지.’
[네, 드물긴 하지만……. 색이 진해지기도 하죠.]
‘엄밀히 따지고 보면 당뇨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위험 요소긴 하니까.’
[네. 그리고 건조해집니다.]
‘그래. 건조해지지.’
원래 나이가 들면 피부라는 건 건조해질 수밖에 없긴 했다.
특히 겨울철에 발뒤꿈치의 각질이 없다가 생기는 경우를 봤을 텐데, 이런 것 하나도 사실 당뇨에 의한 것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손발이 가렵거나 따가운 증상이 지속된다면 이 또한 당뇨를 의심할 수 있었다.
이걸 종합해서 긴 문제 하나로 내다 보니 난이도가 좀 올라가긴 했는데, 그럼에도 수혁은 갈증을 느꼈다.
해서 좀 드문 증후군에 대한 문제를 내기로 작정했다.
‘케이스 형식으로 내자, 이것도.’
[그래요. 그게 좋죠. 단순 지식만 가지고 환자를 볼 수 있답니까?]
그런 수혁을 뒤에서 보고 있던 최우식 서기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 걱정이 그렇게 많냐고. 딱 케이스 형태로 내 주잖아. 그러면서도……. 당뇨라고. 나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뭐, 응? 당뇨는 흔하잖아? 모르면 안 되지.’
사실 뭣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아무튼, 당뇨는 흔한 병이니까 뭐 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수혁이 쓴 케이스는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형적으로 국내에 많은 케이스였다.
‘여자 42세. 전업주부로 본인이 당뇨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설정하자고.’
[네, 좋죠. 아니, 왜 검진들을 안 받는 걸까요?]
‘강제는 아니니까…….’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는 대상자들은 그나마 관리가 잘되는 편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지어 프리랜서라 할 수 있는 작가들도 계약에 따라 검진 대상이 되기도 해서 관리 대상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다수의 프리랜서들 그리고 주부들은 사각지대에 있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신경을 조금만 쓴다면 검진이 가능한 환경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이 다 그렇게 자기 건강에 신경 쓰면서 산다던가?
특히 본인이 건강하다고 믿는 이들의 경우엔 더더욱 검진을 등한시하기 마련이었다.
‘흡연력도 없고, 술도 안 먹고……. 체중도 정상이라고 하지.’
[네. 이런 분들이 많죠.]
보통 당뇨라 하면 성인병의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에 정상 체중 또는 날씬한 축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정말 당뇨만큼은 걱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당뇨는 그냥 혈당이 높아지는 병이지 않나?
확률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발병 가능성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우측 눈꺼풀 처짐, 우측 안면 쇠약 및 처짐, 우측 이마 감각 이상을 주소로 왔다고 하지.’
[이 악당 같으니. 이렇게 되면 헷갈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원래 진단은 헷갈려야 제맛인 법.’
[그건 맞죠. 흐흐.]
수혁은 문제를 내다 말고 낄낄 웃었다.
소리를 내서 웃은 건 아니다 보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돌아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최우식은 봤다.
그 웃음을.
‘뭐지……? 그리고 당뇨 카테고리에서 문제를 내고 있는데 왜 신경학적인 증상이 나와……?’
헷갈렸나 싶었다.
하지만 한창 웃으면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사람한테 막 뭐라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하루만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나중에 문제 이상하면 따로 얘기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발걸음을 옮길 수는 없었다.
싸한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싸한 기분은 진화의 결과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막 떠오르면서 다리가 바닥에 뿌리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수혁은 계속해서 낄낄거리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내원 당시 시행한 검사상 팔과 다리의 쇠약은 없었고, 말이 어눌하지도 않았으며 삼킴 장애도 없었다. 그에 비해 만성적인 우측 시력 저하 및 우측 청력 저하를 호소했다. 문진상 해당 증상은 적어도 몇 년은 되었다고 했다.’
[와……. 진짜 헷갈리겠다.]
‘개꿀?’
[개꿀.]
어찌 된 게 주소를 쓰면 쓸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카테고리에 넣을 걸 그냥 당뇨 카테고리에 쓰고 있나 보다……. 하긴,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최우식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애써 마음을 도닥거렸지만, 수혁의 미소 때문에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우식 뒤에 우창윤이 다가왔다.
왜 저러나 싶어서였는데, 딱 보자마자 아이쿠 싶었다.
‘미친. 하윤이한테 공부 진짜 열심히 하라고 해야겠다…….’
미쳤다, 역시 우리 사위 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