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97화 (1,097/1,303)

1097화 3년 연속? (3)

우창윤 교수가 지금 수혁이 내고 있는 문제를 딱 보자마자 알아차린 건 순 운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이 비슷한 케이스를 보지 않았나.

그때 당황했던 거 생각하면…….

‘아. 지금도 식은땀이 줄줄 나네.’

마침 문제는 몇 개 낸 참이었다.

사실 섭외가 오자마자, 그리고 그 섭외 내용에 어려워도 된다는 문구가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지금껏 참아 왔던 것을 풀려고 작정하고 왔기 때문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덕분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하여간, 우창윤은 계속 수혁 뒤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최우식 서기관을 비롯한 여러 관련자들이 뭐라 하는 일도 없었다.

원래 교수들 상대로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옳지……. 그래. 바로 내과로 오면 섭섭하지.’

우창윤은 방금 수혁이 추가한 문구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방금 본 것처럼 환자의 주된 증상은 우측 안면부의 쇠약이지 않나?

안면 마비가 왔다 이 말인데, 이 경우에는 이비인후과가 메인이었다.

좀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해부학적으로 그게 맞았다.

안면신경 즉 7번 뇌 신경은 귀를 통해 나오니까.

구조적으로 제일 많은 문제가 생기는 곳도 귀 근처이기도 하고.

‘그래……. 그래.’

우창윤이 봤던 환자도 당시에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먼저 봤다.

하필 환자가 낮이 아니라 밤에 와서 더더욱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물론 증상이 딱 봐도 급해 보이니 밤에라도 응급실로 오는 게 맞지만 나중에 문진을 해 보니 전날 낮부터 그랬다고 해서 벙쪘던 기억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대학 병원 또한 아무래도 낮과 밤의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했던 까닭이었다.

‘그렇지……. 벨즈 팔시로 볼 수 있지.’

수혁이 적어 놓은 케이스에서 초진 시 진단명은 벨즈 팔시였다.

요즘 이름으로 하면 특발성 안면 마비인데, 쉽게 말하면 원인을 잘 모르겠는 갑작스러운 안면 마비를 뜻했다.

이 경우에는 원인은 몰라도 결과를 안다고 치기 때문에 치료를 바로 시도하기 마련이었다.

어떤 치료를 하냐.

이게 문제였다.

‘50mg 스테로이드를 경구로 5일간 투여 후 외래에서 경과 관찰하기로 함. 이렇게 하면 되겠지?’

[좋습니다. 보통 이런 코스를 밟게 되겠죠.]

‘그렇지.’

수혁이 방금 바루다와 토의하고 또 적어 넣은 것처럼 스테로이드를 때려 박게 되어 있었다.

보통의 안면 마비란 안면신경이 지나오는 뼈로 된 관에 신경이 부어오르고 그 결과로 끼이면서 목이 졸려서 생기기 때문이었다.

스테로이드만큼 단기간에 부기 빼는 데 효과적인 약도 없다 보니 이렇게 쓰는데, 스테로이드란 약이 효과가 장난이 아닌 만큼 부작용을 늘 신경 써야만 했다.

특히 당뇨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스테로이드는 혈당을 마구 올리는 약이기에 그랬다.

‘환자의 진술에 따르면 당뇨 병력이 없어, 내분비내과 협진 없이 처방 진행함. 이렇게 하면 되겠지.’

[뭐……. 한두 번 보나요. 이거 진짜 문제긴 문제입니다.]

당연히 잘못 처방이 되면 심대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었다.

간혹 고삼투압성 고혈당 증후군이 오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 질환 같은 경우엔 골든아워를 놓치게 되면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정말 무서운 상황이었다.

당연히 스테로이드를 때리기 전에 무조건 확인을 하게 되었으나, 환자가 자신이 당뇨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여전히 가끔씩이라도 반복이 되고 있었다.

‘응급실 내원 3일 후 환자는 주된 호소 증상이었던 안면신경 관련 병증은 다소 호전되었지만 소변이 많아지는 증세 및 심한 피로감 등으로 이비인후과 외래로 내원.’

[이미 이비인후과 질환은 아닌데 말이죠.]

‘그렇지.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되지.’

[맞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너무 자기 과 지식만 쌓아서입니다. 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지.’

수혁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인재들을 떠올렸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뽑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안대훈과 김성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랬다.

그나마 내과 안에서의 통합 지식을 쌓는 것도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인데 다른 과까지 통합하는 지식을 쌓는 건 대체 얼마나 어렵겠나.

물론 수혁이나 이현종과는 달리 시스템으로, 즉 팀으로 이끌어 나갈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과정에서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우리도 저렇게 왔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슷하네…….’

수혁이 잠시 타이핑을 쉬는 동안 우창윤은 다시 한번 모니터에 쓰인 문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되고 난 후에 어디로 가게 되었나 하면…….

‘보통 이럴 땐 신경과지.’

[그렇죠. 괴질 전문 과로 인식되고 있죠.]

신경과는 우리 몸의 신경과 관련한 병을 보는 과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에 관련한 것들을 주로 보는 과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게 각 과에서는 뭔가 우리 과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다른 과 중 하나를 꼭 짚어서 말하기 어려운 질환이나 증상이 발생했을 때 신경과를 찾는 경향이 있었다.

그나마 태화에서는 통합진료센터가 출범하면서 그러한 ‘괴질’에 해당하는 병들이 센터로 몰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많은 병원에서는 죄 없는 신경과 의사들이 혹사당하고 있었다.

‘아무튼, 거기서 시행한 검사 결과는……. 신경학적 검사를 했다고 칠까.’

[네. 아주 자세히 적어 줍시다. 힌트를 줘야지.]

‘그래.’

수혁은 돌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구잡이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서가 많아지게 되면 추론이 더 쉬워지는 법 아니겠다.

배경지식이 충분하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수혁은 그런 걸 고려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측 눈꺼풀 처짐, 안면 처짐, 통각 및 촉각, 온도 감각 감소. 그 외에 사지의 운동 능력이나 고유 감각은 정상. 운동 실조증 소견 없음. 소뇌 기능장애 없음. 여기서 힌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감각인데……. 흐음……. 내가 최근에 본 거라 그런가. 상당히 문제 흐름이 부드러운 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 타이핑을 뒤에서 보고 있던 우창윤은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아까 처음 환자 주소만 봤을 땐 역시 사위는 미친놈이란 생각만 들었더랬다.

그러나 수혁의 유려한 발표 솜씨만큼이나 잘 짜인 케이스 진행을 보고 있다 보니 이 정도면 쉬운 문제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글렀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억제기가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어때?”

“으음……. 뭐 심장내과에서 이 정도 문제는 나와 줘야지요.”

이현종의 질문에 아까 최우식에게 잔뜩 우려를 표명했던 시니어 교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대학 병원에서 한 분야만 주야장천 판 사람들이, 그것도 한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질환이라는 인류의 숙적과 싸우는 분야를 판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들 조금씩은 이상한 편이었다.

평소엔 이런저런 고려가 있어서, 즉 전두엽이 최대한 일을 해서 억제를 하고 있단 얘긴데 지금은 최우식이 먼저 그걸 풀어 버렸다.

[혈액검사도 합시다. 입원해야지, 뭐. 3차 신경이 이상하다는 걸 확인했잖아요. 원인을 들이파야지.]

‘그렇지. 신경과에서야 뭐……. MRI지.’

[그렇죠. 걔네는 MRI 없으면 대체 뭐 했을까요?]

‘기도?’

[흐흐흐.]

하여간, 수혁은 계속해서 타이핑을 이어 나갔다.

양껏 남의 과를 모욕하면서였는데 당연하게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만큼은 소리쳤어도 별 상관은 없었을 터였다.

다들 우리 과가 최고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들어와 있지 않나.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보다 더한 모욕이 뒤따르게 되었을 게 뻔했다.

‘당화 혈색소 11%. 혈당 수치는 300 이상으로 잡자고. 그 외에…… CBC나 지방, 갑상선 호르몬, 응고인자 그리고 각 바이러스에 대한 항원은 정상으로.’

[네. 당 말고는 다 정상으로 잡아 봅시다. 그러면 감이 오겠지.]

‘근데 그냥 그렇게만 쓰면 너무 쉬우니까……. 혈당의 상승은 스트레스 및 급성질환 그리고 스테로이드에 의해서 올랐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을 쓸까?’

[그럼……. 정말 함정 카드잖아요?]

‘함정이 하나도 없는 케이스가 있어?’

[없죠.]

‘그래.’

[그렇네.]

당만 올라 있다면, 이걸 의심하기가 쉽지 않겠나?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답을 맞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문제가 적절한 치료는 무엇인가이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노파심이 생겼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사족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뒤에 있던 최우식과 우창윤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잘 몰랐다.

‘그렇지……. 혈당은 그렇게도 오르지. 하지만 저렇게까지 많이 오르진 않고……. 또 당화 혈색소는 지난 수개월 간의 변화를 대변하니까……. 어떻게든 알게 될 거야.’

내분비내과 의사에게는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그랬다.

최우식은 그런 우창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그저 그렇군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케이스가 꼬일 대로 꼬여 있다는 건 생각지 못했다.

‘아무튼, MRI 찍어야지. 별다른 근거는 없이 그냥 찍는 거지만……. 실제로 3차 신경이 이상하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 3차 신경이 이상하다는 걸 확인했으면 MRI 충분히 찍어 볼 만하죠.]

‘지금 의심되는 질환명은 안 나왔잖아.’

[그게 그렇게까지 다 하고 검사를 하는 건 우리들뿐 아닙니까?]

‘아, 그런가?’

[흐흐.]

수혁은 바루다의 음흉한 웃음소리에 맞춰서 낄낄 웃으며서 타이핑을 했다.

검사 사진도 없이 소견을 줄줄이 읊어 대고 있었는데 그 대목에서는 최우식과 우창윤 모두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MRI에서 우측 5번, 7번, 8번 뇌 신경 경로를 따라 확장된 우측 해면 정맥동이 확인됨. 경동맥 우측 해면부에 협착도 확인되었고 종괴 효과로 의한 것으로 보이는 우측 경동맥의 위치 변위도 확인되었다. 우측 안와에서는 경미한 안구 돌출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하면 사실 진단명이 나온 거지?’

[아까 혈액검사 결과에서 자가면역질환도 배제했고……. 악성 종양도 배제되었으니까……. 혈당 높았던 것을 고려하면 환자 진술상 당뇨가 없었다고 해도 가능한 진단명은 이제 하나뿐이죠. 이거 실제로 이쯤에서 진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다학제 이후에.’

다학제.

대학 병원에서 각 과를 이루는 중추들이 모여 회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그걸 해야 진단이 되었던 케이스를 두고 수혁은 간단하다 여기고 있었다.

우창윤도 그러고 있었다.

지는 꽤 오랜 시간 걸려서 진단했던 주제에,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잊는 걸 아주 잘하는 사람답게 이 정도면 쉽지 뭐 이러고 있단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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