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화 대비 (1)
“자,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회의가 소집되었다.
거의 모든 병원에서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커뮤니티에 올라온 문제들……
그것들은 거의 심연에서 막 올라온 악마와도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 다 X 됐다.”
하윤의 입에서 이따위 단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당연하게도 한마디 반박도 있지 못했다.
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어느 정도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있었더랬다.
‘그……. 이현종과 이수혁을 한데 몰아넣을 생각은 대체 어떤 새끼가 한 걸까?’
어떤 새끼가 어떤 목적으로 한 걸까?
혹시 대한민국 의료계를 사보타주하려는 어떤 세력이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에 음식점 하나가 적발되었던데, 요식업계에 있다면 의료계라고 해서 없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나.
간만에 한자리에 모인 레지던트 3년 차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동안, 우하윤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최선을 다해서 교수님한테 뽑아 오긴 했거든?”
“알지, 알지.”
“우리 하윤이 파이팅!”
“요새 특히 좀 자주 만나고 있어. 있는데…….”
하윤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만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신현태에게 전화가 와서 만났다.
-우하윤 선생. 이번에 문제 더럽게 어렵게 나가는 거 알지? 수혁이 소스로 뽑아야 하지 않나?
원장님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하여간 수혁이 워낙에 바쁜 사람이다 보니, 또 지금 당장은 하윤이 병원에 안 나가고 있다 보니 못 본지 좀 되었기도 해서 바로 연락을 했더랬다.
해서 병원 카페에서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자꾸 세 번 부딪쳤던 생각이 나서 정작 소스는 못 빼먹었다.
‘요새 교수님도 쉬는 시간에 다나카 상을 본다고 했지…….’
일본에서 온 유흥 어프 종사자 다나카 상.
그게 시험에 나올까?
내과 전문의 시험에…….
다나카 상이……?
‘혹시 몰라.’
보통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수혁은 의학에 미쳐 버린 사람 아닌가.
뭘 봐도 의학을 떠올릴 수 있고,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20대 후반 남자이지만 밤낮이 바뀌어 있고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사람에게서 호발할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을까.
‘아니, 아니지.’
하윤은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 다 모이라고 했던 이유가 완전히 따로 있음을 간신히 떠올려서 그랬다.
“아무튼, 교수님은 확실히 시험 문제 출제하신 후로는 거의 그런 얘기를 안 하시고 있어.”
“아…….”
“이런…….”
“쓸데없이 철저하시네.”
그래, 수혁은 나름대로 본인이 교수고 또 시험 출제 위원이라는 것에 대해 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슬슬 의학적인 얘기는 숨기고 있었다.
물론 수혁과 바루다 또한 세 번 부딪쳤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지 않나?
둘의 추론 능력을 당일 행적에 적용한다면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무언가 외력이 작용했었다는 걸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아무리 둘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설마하니 그런 짓을 실제로 벌일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신이 만들어 낸 우연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이순신 보고 무섭다고…….’
하윤은 그때 나눴던 대화를 한 번 더 떠올리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날 거 같아서 얼른 입을 열었다.
당연한 얘긴데, 하윤도 머리가 워낙에 좋은 사람이다 보니 화제 전환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도와주실 분을 모셔 왔어. 교수님의 수제자…….”
“설마!”
“안대훈 선생님?”
“오오오오!”
하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면서 후후 웃었다.
그러곤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슥 하고 문이 열렸다.
그 뒤에는 안대훈이 있었다.
“음.”
늘 그러하듯 번쩍이는 머리통을 들고서였는데, 뒤로는 장종우와 김인수도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장종우는 동기고 김인수는 심지어 선배였지만 안대훈과 비교하면 관록이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겉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김인수 스스로도 안대훈이 더 위라고 여기고 있었다.
같이 있다 보면 아 이거 보통 미친놈이 아니구나 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모두들 오랜만이네.”
안대훈은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고는 곧장 하윤이 서 있던 단상 앞으로 갔다.
원래도 위엄 있는 인상이었는데 미국 다녀오면서 뭔가 일이 있었던 건지 뭔지 더 관록이 붙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레지던트들에게 안대훈은 나이도 많고 직급도 위이지 않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교수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뭐 안대훈이 입을 열자마자 확 조용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봤는데……. 보통 문제가 아냐.”
게다가 지금의 안대훈은 진중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안대훈이 자꾸 후광 켰다 껐다 하고 이상한 단어를 써서 그렇지 실력과 환자 대하는 태도 그리고 후배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을 생각해 보면 가히 최고의 의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놈 아닌가.
그렇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조용했던 분위기가 더더욱 엄숙해져만 가고 있었다.
안대훈에 대한 호오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의 실력에 대해서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데, 그런 사람이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그중 몇 개는 분명 이수혁 교수님께서 내신 문제를……. 뭐라고 할까. 어떤 평범한 교수가 최선을 다해서 고친 것이 틀림없었어.”
“아, 그럼…….”
“그래. 거기 달려 있던 댓글처럼 이거 누군가 너네 도와주려고……. 윗선에서 개입한 거야. 이번 출제위원들이 누군지는 대강 알지?”
“아, 네. 아휴.”
누군가 대답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안대훈의 위용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례한 언사였지만 그 누구도 탓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출제 위원이 누구인지는 비밀이지만, 대학 병원이라는 곳이 레지던트 아니라 교수도 마구 갈려 나가는 곳이지 않나.
뻔히 톱니바퀴처럼 일하던 사람이 별 학회도 없는데 갑자기 이틀씩 쉬어?
그것도 전국적으로 여럿이?
시험 전인데……?
모르면 그게 바보였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있어. 프락치 소식통에 의하면……. 이거 기획한 놈이 차관한테 개같이 까였다던데.”
물론 안대훈처럼 여기저기에 끈이 있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좀 더 디테일하기 마련이었다.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일조차 그의 촘촘한 그물망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이거 누가 장난친 거 절대 아냐. 그런 희망은 이제 접어 둬.”
“아…….”
“안 돼…….”
“그리고 원본은 무조건 이거보다 어려울 거야.”
“아니…….”
“무슨 그런…….”
남자들은 슬슬 중위 군의관 자리가 어떤지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인턴 1년에 레지던트 3년까지 해서 4년을 수련했다고 해서 다 대위 군의관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그랬다.
전문의가 아닌 이상 중위로 일단 가야 했다.
물론 경력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위로 진급하게 되긴 하지만…….
일반의가 갈 수 있는 자리와 전문의가 가는 자리는 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이게 내가 푼 결과표야. 문제가 다 있는 건 아니고……. 전체의 70%라서 좀 그렇긴 한데…….”
그렇게 서서히 희망이 스러져 가는 사이, 안대훈의 유에스비를 김인수가 꽂아서 안에 있던 파일을 열었다.
그러자 채점 결과표가 떴다.
“임의로 한 거긴 한데, 나는 1개 틀렸고. 김인수 선배는 3개. 장종우…… 야, 너 왜 거기 서 있어. 저기 가서 앉아야지.”
“나, 나……. 진짜로?”
“그래. 7개나 틀린 놈이 무슨 강사야. 학생이지.”
“으읏.”
1개 틀렸다는 말에도 앉아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움찔했다.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올라오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다 풀어 봤는데 대강 훑어도 모르는 게 20문제는 훌쩍 넘어서 그랬다.
우하윤이 명실공히 태화 부동의 1등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번 문제의 난이도가 얼마나 미쳤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안대훈은 머리털 빠지도록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나마 충격이 덜했다.
허나 김인수도 3개다.
심지어 7개 틀린 사람은…….
‘7개 틀리면 저런 수모를 겪게 되나…….’
나라 잃은 표정을 하고서 맨 뒤에 비어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는 건 다들 익히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라고?
절반도 못 맞힌 사람들이 태반인 마당에 열 개 이내라니…….
“우리 둘이 가르칠 거야. 딱 반씩 나눠서. 그럼 적어도 여기 나온 문제들은 다 해결이 가능해.”
안대훈의 손가락이 닿자, 김인수가 슬쩍 나섰다.
역시나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문제는 이게 사실 국시 분량으로 환산해 보면 7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야.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김인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마도……. 후자가 가능성이 높지. 멤버를 생각하면……. 특히 우리 교수님들 생각해 보면……. 상식적인 선택을 했을 리가 없어.’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였다.
“올린 사람이 나머지 30%는 쉬워서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아.”
“아니면 올린 사람도 어려워서 정리를 못 했을 정도로 어려울 경우.”
“아.”
같은 아 인데 참 느낌이 달랐다.
앞에 ‘아’는 탄성이었고 다른 ‘아’는 탄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올린 사람도 어려워서 정리는 못 했다면…….
높은 확률로 교수일 텐데…….
‘다 미친놈들인가?’
모두의 머릿속에서 문제 출제 위원들은 죽일 놈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안대훈은 그렇지 않았다.
“잘 보면 문제는 좋아. 케이스 선정도 굉장히 정성이 있어. 나 때 문제도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보다도 더 수준이 올라갔어. 단순히 어렵게만 내려고 한 게 아냐. 적어도 범위는 완전 흔한 질환들……. 또는 놓치면 안 되는 질환들에 국한되어 있어.”
사실 어렵게 내는 건, 그러니까 못 맞힐 문제를 내는 건 꽤 쉬운 일이었다.
내과학의 범위라는 것을 잘 보면 사실상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지엽적인 곳에서 내 버리면 심지어 수혁도 틀릴 만한 문제를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게 내과였다.
그동안에는 그렇게 하기도 했다.
분별력 있게 한답시고 분별력이라곤 1도 없는 문제를 냈다, 이 말인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적어도 70% 분량에 해당하는 문제들은 그랬다.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맞힐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적어도 우리 병원은 다 올라가자. 우리 때도 그랬고, 이수혁 교수님 때도 그랬잖아.”
“네!”
안대훈과 김인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희망을 주었다.
모두가 으쌰으쌰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수혁은 응급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문제 내느라 고심했던 것으로 뭔가가 충족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게 다 소화가 되었는지 배가 고파져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