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02화 (1,102/1,303)

1102화 대비 (3)

“스테로이드를 그럼 얼마나 먹은 거죠?”

수혁의 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마음이 좀 급해서 그랬나 스테로이드 썼다고만 말하고 얼마나, 며칠 동안 썼는지를 전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신인가…….’

나름 교수 임용받은 사람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사실 지인이다 보니 지나치게 당황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한 셈이었다.

다행인 것은, 수혁이 그러한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란 점이었다.

이것도 알고는 있었다.

‘오직 환자…… 만 본다고 하지? 어려운 환자만.’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로 그렇다고 했다.

처음엔 개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학 병원에 남는 의사 중 일부가 그런 성향이 있긴 했다.

원래 환자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학 병원이란 곳은 사실상 현세의 지옥이니까.

자신만 해도 남들 같으면 집에 갔을 시간에 병원에 계속 붙들려 있지 않나.

문제는 내일도 모레도 이럴 거라는 얘기…….

‘아, 너무 힘들다. 자꾸 생각이…….’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년 2월에 있을 유관 학회 준비하느라 자신이 너무 힘든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뺨을 두드렸다.

그러곤 슬슬 지루해하는 얼굴이 된 수혁을 향해 부리나케 말했다.

“벌써 5일 썼습니다. 약이야 5일 더 있긴 할 텐데…… 그건 테이퍼링 하는 과정이라서요.”

“테이퍼링이요?”

“아, 네. 스테로이드가 워낙에 강한 약 아닙니까. 한 번에 끊으면 부작용이 심할 테니 5일간 천천히 약을 줄입니다.

‘뭔 소리야?’

[아마…… 옛날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수혁의 표정은 딱히 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역시…… 환자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냐! 지금 나 태울 준비하고 있잖아…….’

상대로서는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잖아.

사소한 실수긴 해도 실수를 했으니…….

그렇다고 지금처럼 이때다 하면서 뚱한 얼굴로 바라보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 때쯤 수혁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딱 긴장이 됐다.

군대도 안 다녀와서 나이는 어리지만, 눈앞의 상대는 이수혁이기에 그랬다.

원장의 아들이란 소문이 돌더니, 요새는 어째 회장님의 숨겨진 아들이란 얘기도 있었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눈 밖에 난 상대는 큰일 나게 되는 셈이다 이건데…….

“고작 5일간 한 스테로이드 치료에 테이퍼링은…… 필요 없어요. 그냥 끊어도 됩니다. 저는 또 혹시 몰라서 먹이는 건 줄 알았는데.”

“아…… 네? 진짜요?”

허나 튀어나온 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기에 충분한 답이기도 했다.

‘나 이거 레지던트 1년 차 때부터 이렇게 했는데……?’

꽃다운 27살에 1년 차가 되었으니 이제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무려 십 년 동안이나 삽질을 해 왔다는 뜻이 되었다.

“네. 안 그래도 돼요. 이거 그래도 지침 바뀐 지 10년 넘었을 텐데……?”

“아…….”

아니, 십 년이 아니다.

교수가 이걸 대체 누구에게 배웠겠나.

테이퍼링과 같은 사소한 문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건 상당히 경험적인 내용이니까.

당연하게도 선배에게 배웠다.

선배는 그럼 누구에게?

그의 선배에게 배웠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 온 단단한 처방전이 혹독한 대학 병원 레지던트의 삶을 그나마 견딜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것인데…….

“설마 지금 이비인후과 전체가 그렇게 쓰나요?”

“아…… 네.”

“다른 병원도?”

다른 병원이라…….

테이퍼링과 같은 사소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 중에서도 아예 귀를 전공한 사람이다 보니 사석에서조차 귀 얘기만 하긴 했다.

그 결과, 교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최근에 집담이 끝나고 갔던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했던 얘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요새 MZ세대 진짜 문제다…… 아니, 왜 물어보질 않지? 이번엔 글쎄 벨즈 팔시환자한테 스테로이드 뻔히 50mg씩 5일 써 놓고 딱 끊었다니까? 그러다 부작용 생기면 어쩌려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쪽도 태화에 밀린다고 하면 화를 낼 만한, 아선 쪽 교수였다.

그의 볼멘소리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와 그건 좀 심했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스테로이드를 썼으면 테이퍼링 하는 것이 적어도 이비인후과 내부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다른 곳도 다 같습니다. 우연히 며칠 전에 확인했어요.”

“아이고…….”

수혁은 이마를 짚었다.

그 모습에 이비인후과 의사는 상심에 젖어 바닥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덕분에 수혁이 미소 짓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이참에 다른 과 루틴 처방 한번 다 싹 뜯어고치자.’

[그럴까요? 생각해 보니까…… 자기 치료제 외에 다른 약들은 제대로 쓰고 있을 리가 없긴 합니다.]

‘그렇지…… 내과만큼 많은 약을 다루는 사람이 없고 또…….’

[그러고 보니까 전에도 이비인후과 아닙니까?]

‘뭐?’

[왜…… 와파린 쓰던 환자한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테로이드 때려 가지고 이현종이 몽둥이 들고 뛰어나갔잖아요.]

‘아.’

그래, 그런 적도 있지.

태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이현종은 통합진료센터의 센터장이긴 하지만 동시에 심장 혈관 센터에서 진료도 보고 있었다.

막말로 그 분야의 월드 스타인데 아예 손을 놓는 게 말이 되나?

그것은 병원으로서도 손해지만 국가 입장에서 봐도 손해였다.

무엇보다 이현종은 심장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튼,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외래를 보던 이현종이 갑자기 고성을 내지르더니 환자 수액 걸이를 몽둥이 삼아 들고 이비인후과 외래로 쳐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왜 저러신데?

-모르겠네…… 이현종 교수님이니까…… 경비 부르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보다 기민한 대처가 있었을 텐데 이현종이다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평소에 이상한 짓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정작 진짜 화가 났을 때 대접을 받기 어려운 법이라서 그랬다.

물론 이현종 입장에서는 더더욱 화가 날 만한 상황이어서 거의 뭐 지랄을 했고 당시 진료 중이던 이비인후과의 대부 격인 교수 하나가 뛰어나오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와파린 쓰던 사람에게 스테로이드를 쓰는 바람에 출혈성 경향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바람에 환자가 죽을 뻔했다, 이것이었다.

이게 마냥 오버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날 환자는 죽을 뻔했다.

돌아오는 답?

가관이었다.

-몰랐죠…… 우리는. 혈당 높은 거는 잘 물어보는데 와파린도 그랬나?

몰랐단다.

그 길로 이현종은 수술방에 있는 사람 제외한 모든 이비인후과 사람들을 모아서 10여 분간 해당 사안에 대해 명강의를 시전하고 돌아왔다.

그때는 와 그런 일도 있구나.

우리 내과가 진짜 기둥은 기둥이구나 하고 말았는데…….

이 꼴을 보고 있자니, 그냥 웃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이거 다 보고…… 저 시간 나는 대로 이비인후과 전체 처방을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네?”

그래서 바로 말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화가 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도 아닌데 이비인후과 처방을 다 보겠다고?

아마 몇 개월 전의 수혁이었으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반발에 부딪혔을 터였다.

하지만…….

‘이수혁…….’

이제 원내에서 수혁의 입지는 거의 신이었다.

코비드 사태를 해결한 주인공이라는 이미지가 다른 병원 아니, 다른 나라의 의사들에게도 어느 정도 번져 있지 않나?

김다현의 입김이 고스란히 닿을 수밖에 없는 태화 본원은 그럼 어떻겠나.

거의 뭐 수혁이 없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 뭐 이런 분위기였다.

거기에 더해 대학 병원 교수쯤 되면 태화 임원 한둘 정도는 알게 되기 마련인데, 최근에 도는 소문이 좀 요상했다.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그런 얘기가 있어.

멀쩡히 아내도 있고 엄청 사이도 좋다고 알려진 태화 회장이 들으면 말 그대로 기함할 소식이지만 뭐 어쩌겠나.

일반인들의 재벌에 대한 상상은 끝도 없는 법이었다.

충격적인 얘기를 할수록 그럴싸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아, 네. 영광입니다.”

계산이 선 이비인후과 의사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진짜 일이 진행되려면 적어도 과장에게 결재를 받긴 해야겠지만…….

-뭐, 이수혁 교수님께서?

과장을 거쳐 장차 원장 되기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 여기서 어깃장을 놓을 거 같진 않았다.

전임 원장과 현 원장, 그러니까 이현종, 신현태처럼 원내 정치에 별 관심 없던 원장단은 거의 없다고 보면 옳았다.

대개 원장을 꿰차는 사람은 어느 순간 부터는 다른 일보다, 거기에 매몰되는 사람이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5일이면 다 썼고. 근데 지금 청력은 더 떨어졌다고요?”

“네. 더 떨어졌습니다.”

“흐음…….”

눈앞의 교수도 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허나 수혁은 이미 환자에게 집중한 마당이었다.

그의 머리가 여느 때처럼 고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테로이드를 쓰는데 더 떨어졌다.

다시 말하면 치료제를 쓰고 있는데도 호전을 보이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돌발성 난청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발생하는 과정에서 치료에 들어간 거라면 아무리 치료를 시작해도 당장엔 악화가 돼. 하지만 이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건 당일이 아냐.’

[그렇죠. 열흘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근데…… 흠. 다른 가능성이 몇 가지 있겠습니다. 일단 환자를 보다 자세히 관찰할 것을 요청합니다.]

‘좋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수혁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환자만 보고 있었다.

그런 수혁을 환자는 조용한 가운데 눈만 꿈뻑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움직이는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혹시 이게 계속될까 하는 두려움이 물밀 듯 밀려오고 있었다.

간신히 버틸 수 있는 건, 그가 그나마 강인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술 근방에 새롭게 잡히기 시작한 물집이 있습니다.]

‘물집?’

[확대합니다.]

‘아…… 이제 막 생기고 있어. 안을 볼까.’

[요청합니다.]

수혁은 그런 환자에게 뭐라 말을 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이비인후과 의사가 능숙하게 손짓, 발짓으로 환자에게 그 뜻을 전달했다.

그제야 환자는 입을 벌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수혁은 혀와 구강에서 물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서도 자발 안진이 있습니다. 이는…….]

‘람제이 헌트 증후군인가?’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원인이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었다면, 단순 스테로이드 치료만으로는 호전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긴, 그런 경우가 예후도 더 안 좋지.’

[극히 드문 경우, 양측 뇌에 종양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너무 드물지. 일단은 람제이 헌트로 보는 게 맞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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