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03화 (1,103/1,303)

1103화 대비 (4)

“람제이 헌트 신드롬이요……?”

수혁의 말에 의사가 좀 당황했다.

처음 들어 보는 진단명이어서는 아니었다.

돌발성 난청보다는 드물겠지만, 사실 이비인후과 영역에서는 꽤 자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질환이었다.

허나 어떤 증거가 필요했다.

통증이나, 혹은 물집과 같은.

“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제일 높은 질환입니다. 여기 보이시나요?”

“어디…… 아. 입안에. 흠…… 근데 통증이 동반되지는 않은 거 아닙니까?”

“네, 그래서 확진은 아닙니다. 다만…….”

“약은 써 봐야겠군요. 스테로이드도 쓰는 마당에 항바이러스제 추가하는 게 일도 아니고.”

“네.”

“그…….”

해서 수혁이 가리킨 곳을 들여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집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통증은 없었다.

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그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었다.

“일단 제가 보기 시작한 이상, 확진 붙기 전까지는 계속 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 감사합니다.”

무슨 말을 할지 뻔해서 그랬다.

하여간, 수혁은 그렇게 그가 듣고 싶어 했을 말을 해 주곤 자리를 떴다.

집에 가기 위함은 아니었다.

‘저것도…… 어쩌면 꽤 어려운 케이스가 될 수도 있겠어.’

[치료에 반응이 있으면 뭐 람제이 헌트 증후군의 드문 형태가 되겠죠. 이것도 꽤 어렵다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없다면 그때는 정말 어려워질 겁니다.]

‘그렇지?’

[네.]

‘두고 봐야겠군.’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섹션을 옮겼다.

지금 있는 섹션은 아무래도 좀 경증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흥미가 덜해서 그랬다.

* * *

“자…… 다음. 이건 우리 이현종 교수님이 낸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야.”

그렇게 수혁이 하이에나처럼 응급실을 어슬렁거리는 동안에도 강의는 계속되고 있었다.

안대훈은 이미 한차례 진이 빠질 만큼이나 열심히 강의를 해 두었기 때문에 숨을 씨근덕거리면서 맨 뒤에 앉아 있었다.

대신 나선 사람은 김인수였다.

아무래도 안대훈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맛이 있던 사람인데, 좀 변했다.

이현종과 단둘이 함께했던 몇 달이 문제였다.

그만큼 이현종 전문가가 되긴 했다지만, 하여간.

“사실 이런 거 모르면 안 돼. 지금 당황하는 애들은 설마 모르나? 숄더 위에 그건 왜 달지?”

몇몇 이현종의 비난 레퍼토리까지 외우고 있을 지경이었다.

원래 김인수를 알던 이들은 쟤가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 하고 혀를 찼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었다.

“자, 일단…… 이번 시험의 대주제가 뭐지?”

“놓쳐서는 안 될 질환들입니다.”

“그래, 그래. 그리고 하나 더.”

그래서일까.

오히려 광인에 가까운 안대훈이 맡아서 할 때보다 답변이 더 없었다.

지금 3년 차들이 1년 차들일 때 김인수는 군대에서 구르고 있었으니 낯설지 않겠나.

그나마 같은 동아리라도 했던 사람들이야 천사 모드였던 김인수를 기억하고 있지만…….

-요새 좀 이상하대.

-통합진료센터 갔는데 그럼 정상이겠냐? 거기 세상에서 제일 빡센 곳이래…….

요즘 들어 돌고 있는 소문을 생각해 보면 막 손들고 할 수가 없었다.

해서 김인수는 고요한 강의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동시에 성격 안 좋은 교수들이 보여 주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벙어리들인가. 왜 말이 없어. 니네 진짜 어떡하려고 그러냐…….”

그나마 김인수를 잘 아는 우하윤은 속으로 몰래 혀를 찼다.

‘불쌍한…….’

저 착하던 양반이 이현종하고 있으면서 대체 얼마나 까였으면 저리됐을까 싶어서 그랬다.

이현종도 따지고 보면 뭐 나쁜 사람은 아닌데…….

제자 키우는 데는 갈구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 결과, 김인수가 이 문제 통틀어서 몇 개 안 틀릴 정도의 인재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딱히 문제인가 하는 생가도 들었다.

아무튼, 김인수는 아직까지는 이현종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만큼 곧 입을 열었다.

“앞으로 늘어날 질환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봐야 해. 뭐 이렇게 보면 흔히 암, 면역 관련 질환, 감염병 같은 것만 떠올릴 텐데……. 하나 더 있지.”

심지어 열심도 있었다.

맨몸으로 띨룽띨룽 온 게 아니란 얘기였다.

그가 신호하자 시험 못 봐서 학생으로 전락해 버린 장종우가 부리나케 USB에서 다른 파일 하나를 띄웠다.

거기엔 몇 가지 기사들이 떠 있었는데, 다 마약 관련한 것들이었다.

“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잡히는 마약 사범 수가 열 몇 명 이랬거든, 한 달에? 근데 여기 봐라. 한 달에 강남에서만 100명이 넘어, 이제. 우리 마약 청정국 지위 박탈된 거 알지?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어.”

“아.”

그 말에 다들 탄식을 내뱉었다.

대한민국 의료가 어마어마하게 발달해 있는 건 맞았다.

해외 연수 가면 사람들이 막 놀란다지 않던가.

너무 잘해서.

특히 결핵과 같이 사실 개발도상국 질환으로 분류되는 것도 잘 보니까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늘 암이 있는 법.

‘마약 파트는 다 제쳤는데…….’

‘안 돼…….’

‘이런…….’

마약?

대한민국 의사 중에 마약 진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간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마약 청정국이지 않았나.

단순 중독자에 대한 치료는 오히려 어려울 것이 없었다.

중독은 세계적인 지침에 따라 치료하면 되니까.

심지어 중독에 대한 지침은 각 기관에서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나눠 주고 있어서 정보의 격차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마약이라는 게 단순히 중독만 일으키는 게 아니지 않나.

‘마약으로 인한 신체 질환…….’

‘나 마약 종류가 뭐 뭐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급성 중독 다루려나? 뭐가 나오지?’

마약이 괜히 마약인가.

전방위에 걸쳐서 사람을 망가뜨리는 존재이지 않나.

그야말로 악마의 가루인데…….

문제는 그 폐해는 당장 나타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다수의 기관은 아직 대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중에 의료계도 그랬다.

“안 그래도 다음 학회 때 해외 연자 초청 강의에서 마약 관련한 질환 잘 보는 사람들로 모실 거라고는 하더라. 그거 군의관 갔더라도 와서 다 듣도록 하고.”

“아, 네.”

그나마 학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2년 차까지는 몰라도, 1년 차들은 나름 2년 동안 쌓인 경험과 지식으로 대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당장 시험 봐야 할 3년 차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두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펜타닐이야. 합성 마약이고 어디에서나 생산이 가능한 데다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이 무분별하게 처방을 하고 있다고 해. 생각 같아서는 싹 다 갈아 죽여야 할 거 같은데…… 학회 차원에서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까, 일단…….”

김인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합진료센터는 워낙에 권위라는 게 없는 집단이다 보니, 회의란 회의에 직위와 관계없이 관심 있는 놈이 들어가게 돼서 듣는 게 많았다.

그중 펜타닐 관련한 회의가 있었는데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 얼굴이 대부분 붉게 상기되어 있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특히 의사들이 마약상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충격이었다.

이현종 같은 경우엔 사형을 부르짖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과하다 여기지 않았다.

차라리 마약상은 뭘 몰라서 한다고 치지, 의사들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어떤 폐해가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처방한다는 건, 그냥 살인자로 봐도 무방했다.

“자, 일단 그거부터 보자고. 펜타닐.”

“네!”

“자, 원래 펜타닐은 어떻게 쓰지?”

“암 환자들이나 CRPS 환자에서 씁니다.”

“그래, 극도로 심한 통증이 있는 환자들에게서 진통 효과를 노리고 쓰는 거야. 목적이 쾌락에 있지 않지. 그리고 제형이?”

“패치입니다.”

“그래. 아주 천천히 분비가 돼. 중독은 어떤 약이 잘되지?”

“그…… 아. 속효성!”

“그래. 정확히 말하면 반감기가 빠른 애들이 그런데. 펜타닐 패치는 그걸 거의 소거한 약이라고 보면 돼. 위와 같은 이유로 실제 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을 해서 처방한 환자들의 경우엔 중독될 확률이 1%가 안 돼. 당연히 모니터링을 하면서 쓰니까 이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김인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과 의사로 살아가다 보면 그만큼 많이 쓰는 약이라서 그랬다.

세상엔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강도의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던가.

특히 말기 암 환자 같은 경우엔 산 채로 잘게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그것도 끊임없이 느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들에게 펜타닐은 구원이었다.

실제로 통증 조절이 잘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로 생존율의 차이도 보인다는 보고가 있지 않나.

“하지만 무분별하게 쓰이는 경우엔…… 일단 목적이 다르겠지?”

“아……”

“중독은 100% 일어난다고 봐야 해. 문제는 이 펜타닐의 기전에 있어. 이게 어디에 작용하지?”

“엔돌핀이요.”

“그래. 너무 강력한 약이라서, 통증이 없는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체내의 엔돌핀 시스템이 다 망가져 버려. 그럼 어찌 되지?”

“평상시에는 모든 자극이 통증으로…… 마치 CRPS 환자처럼…… 그렇게 될까요?”

“그래. 엔돌핀이 없어지면 그렇게 되지. 정확해. 역시 하윤이.”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대체 왜 이런 끔찍한 것에 손을 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의 신규 진입자들이 10대, 20대입니다. 주된 원인은 호기심으로 생각이 되는데…… 오히려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 펜타닐이 얼마나 위험한 약인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서 보복부 직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름 캠페인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런 건 알려야 했다.

진짜로 하면 X 되는 약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그렇게 되면 펜타닐을 하지 않는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게 되지. 이 기전은 보통의 암환자와 다르기 때문에 딱히 중독을 막아 주지 못해. 그냥 중독의 과정이야.”

김인수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필기했다.

끔찍한 상황이기도 했고, 듣다 보니 과연 몰라서는 안 될 내용 같아서이기도 했다.

“근데 모든 약에는 내성이라는 게 있지. 쉽게 말하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 점점 더 많은 양의 약을 써야 한다는 거야. 자, 펜타닐은 너무 많이 쓰면 어떻게 돼?”

“죽습니다.”

“왜 죽지?”

“호흡 억제…… 숨을 쉬지 않아서요.”

“그래. 죽어. 죽기 전에도 지속적인 무호흡 상태에 방치되게 되고, 필연적으로 뇌나 다른 장기가 계속 망가지게 돼. 인지 기능이 떨어지지. 망가진 부위에 따라서는 경련이 일어나기도 하지. 아마 한 문제는 지금까지 내가 말했던 내용에서 나올 거야.”

“아, 네.”

“다음은…… 코카인. 이것도 문제야. 뭔 코카인 춤인지 뭔지로 소비되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양인데…… 아휴…… 시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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