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04화 (1,104/1,303)

1104화 대비 (5)

김인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 참고 자료랍시고 보았던 춤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냥저냥 특별할 거 없는 춤이었다.

춤만 보면 그런데, 배경 음악이 문제였다.

약 빤 듯한 목소리로 문제의 그 코카인이란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반응이 왜 그렇게 좋냐고…….’

기원이 어디인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고.

허나 인터넷을 통해 엄청나게 퍼져 있다는 거 하나는 확실했다.

여러 인방 매체, 즉 스트리머들을 통해 이리저리 번져 있었다.

심지어 TV 매체에서조차 긍정적인 밈 중에 하나로 소비되었다.

‘이게 진짜 제일 문제야.’

김인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사실 사람들 앞에 두고, 심지어 강의해야 할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리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

김인수가 펠로우다 보니 아직 이런 식의 강의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또 최근 들었던 대한민국에서의 마약 실태가 너무 엉망이어서도 그랬고.

‘잘 대비해야겠지.’

김인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눈을 떴다.

형형한 눈빛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지식이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그나마 김인수가 이만한 지식을 쌓게 된 건, 역시나 그의 걸출한 스승들 덕이었다.

이수혁, 이현종.

불세출의 천재들.

둘은 코비드 사태가 한창이던 때, 그러니까 정말이지 물밀 듯 밀려오던 환자들 보느라 정신없이 헉헉대고 있었을 때부터 이미 불길한 징후를 포착하고 그에 대해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여기 있었다.

“코카인. 굉장히 유서 깊은 마약이지. 사실상 마약의 왕이라고 할 수 있어. 자, 일단 본격적으로 시작하긴 전에 질문부터 할까.”

김인수는 진중한 얼굴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해 보이긴 했다.

제아무리 이현종의 영향을 받았다 한들, 그의 본성은 신현태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

“코카인 하면 무슨 느낌이 들지?”

그의 말에 3년 차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냥 좀…… 친근한 느낌? 워낙 많이 봐서요. 아아! 직접 봤다는 건 아니고요. 그…… 영화나 드라마에서요.”

“그래, 그렇지. 엄청 많이 나오지. 이게 뭐 코카인 카르텔들이 로비를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워낙 미국에서 많이 하는 마약이야. 영화에서 보면 지폐 말아서 코로 흡입하는 장면이 나오지? 그것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고…… 실제로 미국에서 유통되는 지폐의 90% 이상에서 코카인이 검출돼.”

“와…… 장난 아니다…….”

“진짜…… 엄청 나네요.”

“미국은…….”

김인수는 그렇게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면서 좌중을 살폈다.

펜타닐 얘기할 때와는 반응이 좀 달랐다.

아까가 훨씬 적대적이었다.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뭐…… 나도 그랬으니까.’

코카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일 터였다.

특히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코카인은 뭔가 성공한 사람들이 즐기는 전유물처럼 보이지 않나?

실제로 가장 비싼 마약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고.

사람이란 게 뭔가 비싼 건 좀 더 좋아 보이고 뭐 그러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코카인이라고 하면 마약은 마약인데 중독성도 약하고, 안전할 거 같고 그렇다는 말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보면 뭐 가관이지.’

자칭 유학생들이 그렇게 많은지 김인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것도 죄 아이비리그 출신들인데, 그치들 하는 말들을 요약하면 이랬다.

부유층 자제들은 다 코카인밖에 안 한다는 거다.

이건 중독성이 없거나 약해서 끊을 수 있다고.

학생일 때 마구 놀다가 때 되면 멀쩡히 알 만한 회사의 관리자 또는 CEO로 들어간다고.

심지어 그 엄격한 상류층 집안에서도 코카인 정도는 눈감아 준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다 개소리였다.

그냥 비싸다고 하면, 명품이라고 하면 환상부터 갖고 보는 시각을 교묘히 파고든 소설이었다.

“자, 코카인의 특성을 보자. 이건 펜타닐하고는 기전이 달라. 아편류 마약이 대개 나른해지는 느낌을 준다면 이건 각성제야. 뭐 잉카의 원주민들이 자양강장제처럼 코카 잎을 씹었다고 하잖아? 워낙 함유된 성분 농도가 낮아서…… 중독 효과도 있긴 했겠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커피 대용으로 사용했을 거라고 봐.”

일반인도 아니고 의사들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좀 그랬지만…….

괜찮았다.

이제부터 깨부수면 되니까.

김인수는 수혁에게 박살 나고 온 참 아닌가.

아무래도 이놈들은 운이 좋다고 보면 되었다.

김인수가 제아무리 야단법석을 피운다 해도 수혁의 발끝도 못 따라갈 테니.

“아무튼, 코카인을 하게 되면 전능감에 휩싸이거나 어마어마한 쾌락을 느낄 수 있어. 이 때문에 이 약을 하게 되는 건데…… 이 코카인이 그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건 아냐.”

김인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말을 이었다.

“이건 중독성이 진짜 강해. 왜냐면 수 분 내에 약효가 사라지거든. 어마어마할 정도로 반감기가 짧다는 건데…… 이런 약들 특징이 뭐지?”

“중독이 잘됩니다.”

“그래. 중독이 잘되지.”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싼 마약이라 중독이 안 된다?

그런 약이었으면 왜 비싸게 팔리겠나.

중독이 안 되는데.

굳이 비싼 돈 주고 찾을 이유가 없는데.

“또 코카인만의 특성이 있는데…… 우리가 쓰는 리도카인 있지? 국소 마취제. 그것의 어원이 코카인이야. 코카인이 사실 인류가 가장 최초로 발견한 국소 마취제거든.”

“오……?”

여러 가지 썰이 있는데 그중 유명한 것은 코카인 중독자였던 것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그의 친우인 안과 의사에게 내가 해 보니까 이거 좀 마취가 되더라 하면서 알려 줬다는 얘기다.

코카인의 마취 효과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어서, 그 후로도 한동안 쓰다가 결국 중독성과 다른 위험성 때문에 사장되고 그 대용으로 프로카인, 리도카인이 순서대로 나왔다.

“다시 말해서 이걸 하면, 그 하는 부위에 통증이 없어.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코로 흡입하는 거 이거, 가서 아무 가루나 한번 해 봐. 밀가루만 들어가도 얼얼하게 아픈 게 코야. 근데 코카인은 그냥 하잖아.”

“아…… 마취가…… 마취가 되는구나!”

“그래. 뭐 약쟁이들은 코점막에 워낙에 혈관이 많다 보니 거기로 흡수 빨리 되라고 쓰는 건데…… 아무튼, 코카인이 국소 마취제로 쓰였던 원인이 그것만 있는 게 아냐.”

“어떤…… 어떤 것이 있어요?”

“혈관을 수축시켜. 마취할 때는 짱이지. 안 아프고, 피도 안 나고. 하지만 몸 안에 무분별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혈관이 수축하면 어떻게 될까.”

“아.”

혈관이 수축한다는 건, 그만큼 피가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은 곧……

“나르코스 같은 드라마 보면 정보원이 갑자기 급사했다는 얘기 나오지? 왜 그러겠어. 심장이나 뇌 혈관이 막히는 거야. 상당히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젊은 심근경색 환자 같은 경우엔 반드시 코카인으로 인한 것을 염두에 두게 되어 있어. 나중에 이현종 교수님이 말씀해 주실 텐데…… 실제로 혈전에 의해 막히는 것과 이렇게 수축해서 막히는 것은 치료가 달라진다고 하시더라고.”

“아.”

몰랐다.

그런 식의 죽음이 있고 또 그걸 막는 방법이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일반인들이었다면야 그냥 뭐 신기하네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내과 3년 차라는 점이 중요했다.

곧 전문의 달고 필드로 나갈 사람들이지 않나.

헌데 코카인과 같은 마약으로 인한 질환에 대해서는 그냥 아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확실히 대한민국은 아직 마약이라는 거대한 적과 싸우기에는 여러모로 준비가 미흡했다.

-앞으로 이거. 이건 반드시 공부해야 해.

벌써 수개월 전, 그러니까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기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던 수혁과 이현종이 얼마나 대단한가.

김인수는 놀라움에 젖어 가는 3년 차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통합진료센터에 오길 잘했다.

비록 아직 분과 학회는 이제 시작이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어도 정작 일선 병원에 센터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이곳 태화 하나뿐이지만……

혹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여기서 쌓은 경험이 절대 헛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일단 배경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건 케이스와 접합해서 나올 거야. 당연히 이수혁 교수님이 낸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나름 케이스 각색이 잘되어 있으니까. 잘 들어 봐.”

김인수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수혁을 떠올리면서, 문제를 띄웠다.

말이 문제지 발표 형식은 통합진료센터의 그것을 따왔기 때문에 그냥 케이스 발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발표 방식 또한 통합진료센터의 방식대로 할 것이기 때문에 날 선 질문들도 많이 날아들게 될 터였다.

그러한 점을 모르지 않는 3년 차들은 이제까지 편안히 듣고 있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33세 남자 환자고, 당뇨가 고혈압 등의 기저 병력은 없어. 내원 당시 얼굴은 이렇고.”

“으음.”

얼굴 사진이 딱 떴다.

괜히 보여 주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한국 사람의 사진이었는데…….

‘평범하지 않은데…….’

모든 3년 차들이 그랬지만, 나름 수혁에게 과외 비슷한 것을 받아 온 바 있는 하윤 또한 그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른 곳은 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국인 그 자체였지만 코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저걸.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무너져 있다, 이 말이었다.

허나 그것 말고는 이상한 것을 찾을 수 없었고 또 저게 왜 이상한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파악이 불가했다.

‘역시…… 코카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김인수는 여상한 반응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 탓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도 그러지 않았나.

수혁에게 강의를 빙자한 언어 구타를 듣기 전까지는 아는 게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자는 좌측 다리의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어. 당시 좌측 다리의 사진은 이래.”

하여간, 김인수의 말에 따라 이번에도 사진이 떴다.

그나마 이번 사진은 꽤 특징적이었다.

“맥박이 잡히나요?”

하윤의 질문이 즉시 나올 정도로 그랬다.

사진 속 환자의 다리는 누가 봐도 창백했다.

동맥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안 잡혀.”

“막혔군요. 바로 초음파, CT 시행하고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즉시.”

“그래, 맞아. 바로 시행해야지.”

이어지는 김인수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하윤의 말이 맞았다.

바로 맞혔다 이 말인데…….

아쉽게도 아직 케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했다.

하윤 또한 충분히 그걸 예상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실망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발표를 쭉 지켜볼 뿐이었다.

“이게 수술 사진이야.”

“혈전이 나왔지. 이게 왜 나왔을까.”

“음.”

코카인 관련한 문제 아니었나?

이게 왜 생기지?

모든 이들의 얼굴에 의문이 짙게 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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