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화 대비 (6)
“일단 코카인보다는 이 상황에 더 집중을 해 보자.”
김인수는 일부러라도 화면을 넘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단순 문제 풀이 시간이었다면 시간 낭비에 가까운 행위였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모두들 이 시간을 공부를 위한 시간으로 인지하게 된 지 오래였다.
그것도 마약이라는,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는 질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
그렇다 보니 다들 초집중 상태였다.
“아…… 일단 혈전이 날아온 거.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 이게 왜 날아왔을까.”
그중에서도 발군은 역시나 하윤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리 어렵지 않게 답했다.
“심장에서 날아…… 심내막염일까요?”
“그래. 그게 의심이 된다면……?”
“심 초음파를 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 초음파 소견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심장이 쿵쿵 뛰는 영상 하나가 띡 떴다.
환자의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심장은 잘 뛰었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판막에 덜그럭거리는 게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딱 하나니 뭐니 하기엔 너무 심각한 문제였다.
“역시 심내막염…… 아? 근데…….”
내과 의사라면,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수준이라면 영상만 봐도 진단이 될 정도로 저명한 소견이었다.
해서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그러다 우하윤을 시작으로 해서 다들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심내막염……?’
심내막염이란 무서운 병이 아무한테나 생길까?
아니었다.
면역이 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환자는 분명 당뇨가 없다고 했다.
그 외에 다른 기저 질환도 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그래, 여기서 코카인을 떠올려야 하는구나.’
아까 힌트가 없었다면, 하윤이고 나발이고 모두가 뭐야 하고 있었을 터였다.
나이도 젊고 딱히 면역이 저하될 만한 소견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코카인이 등장한다면?
하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러다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주사! 정맥주사. 약하는 사람들은 주사기 하나로 돌려 쓴다고 들었습니다!”
하윤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다 보면 비정형 감염이 생길 수 있고…… 그중에는 에이즈도 있습니다!”
에이즈까지 입에 담았다.
그 말에 나머지 인원들이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이즈가 번지는 이유 중에 바로 마약도 있지 않나.
방금 하윤이 말한 것처럼 주사기 하나를 돌려쓰기 때문이었다.
이게 비단 에이즈만 불거져 나와서 그렇지 C형 간염을 비롯한 여러 치료가 어려운 감염병들이 번졌다.
김인수는 잠시 그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주 잠시뿐이었다.
“환자의 팔다리 사진입니다.”
그러더니 사진을 띄웠다.
그걸 보면서 3년 차들은 아득함을 느꼈다.
뭔 놈의 문제에 사진이 이렇게나 많이 첨부되어 있단 말인가.
‘이게 열화된 버전이라고……?’
교수 새끼들.
이 미친놈들이 이번에 대체 뭔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지?
듣다 보니 그래, 필요한 지식이라는 건 인정한다.
사실 마약이라는 게…….
달리 마약인가.
한번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지 않던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중독시키고 또 파멸로 몰아갈 뿐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도 마약이 점점 더 문제가 될 거라는 건 명약관화한 문제였다.
의사라면 응당 마약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건데…….
‘사진에 왜 나쁜 주사 자국이 없냐…….’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이러는 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사진은 왜 이렇게 깨끗한 건가.
주사 자국이 없었다.
의사 아니라 일반인이 보기에도 그랬다.
“어…….”
“어…….”
“왜…….”
김인수는 당황한 3년 차들의 얼굴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사실 여기까지 생각한 것만 해도 대견했다.
말 그대로 익숙하지 않은 질환군인데 용케 온 거 아닌가?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부족했다.
“보면 알겠지만 정맥주사 자국이 없습니다. 환자 진술 상에도 그런 주사를 맞은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마약 사범 특성상 관련해서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데…… 아무튼, 정맥주사 자국이 없기 때문에 이 말만큼은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어…….”
“음…….”
김인수에 말에 3년 차들은 다시 한번 아연함을 느껴야만 했다.
다른 부분이 아니라 환자 진술 중 대부분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세상에 환자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대체 뭘 보고 진료를 해야 한다는 건가.
‘미국 의사들…… 당신들 지금까지 대체 어떤 싸움을 해 오고 있던 겁니까…….’
몇몇은 미국 의사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게 되기까지 했다.
진짜 지옥 같은 상황이지 않던가.
“자, 다른 가능성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원인이 교정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얼마든지 같은 증상으로 올 수 있습니다.”
다들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김인수의 말이 계속되었다.
“아니, 같은 증상이면 운이 좋은 것이죠. 다음에 막히는 혈관은 심장일 수도, 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환자는 죽겠죠.”
“아.”
“이런…….”
환자가 죽는다.
의사에게 이보다 더 섬뜩한 말이 있을까.
아무리 의사 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도 이 말만큼은 익숙해질 수 없는 법이었다.
아니, 경험이 많은 의사일수록 더더욱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실제로 환자를 잃어 본 경험도 많을 수밖에 없으니.
“힌트는 사실 다 드렸어요. 제가 코카인에 대해 언급했던 거 그걸 다 종합해서 생각해 보세요. 시간은…….”
김인수는 시계를 돌아보았다.
안대훈이 했던 강의만 해도 꽤 길었던 데다가 애초에 만난 게 저녁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기 때문에 어느새 열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하품은커녕 피곤해하는 기색조차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붙잡아 둘 수는 없지 않겠다.
얘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당장 김인수, 장종우 그리고 안대훈은 내일도 죽도록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10분 드리겠습니다.”
해서 리미트를 걸었다.
아마 여기 수혁이 있었다면 똑딱똑딱 소리도 냈겠지만 김인수는 그렇게까지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휴대폰 째깍 소리를 좀 키워서 놓기는 했지만 목적이 달랐다.
초조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건 김인수의 생각일 뿐,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많이 달랐다.
‘시발…… 천사라며.’
‘악마 그 자체인데…….’
‘통합진료센터는 다 왜 저러지…….’
그래서 욕설이 속으로만 난무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차분히 앉아 머리를 굴리는 이가 있었다.
하윤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었다.
다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통합진료센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역시나 그중 최고는 우하윤이었다.
아주 차분하게 앉아서, 김인수가 했던 말을 말 그대로 전부 복기하고 있었다.
‘코카인…… 많이 쓰이지. 지폐에 90%…… 코로 흡입하는 경우가 많고…… 마취…… 마취……?’
마취제로 쓰였다는 점에서 잠시 머리가 멈췄다.
‘마취제뿐만 아니라…… 혈관 수축 효과도 강하다고 했어. 그래서 허혈성 질환이…… 심장과 뇌.’
환자에서 심장과 뇌는 어떻지?
괜찮다.
하지만…….
‘코. 코가 제일 심할 거야. 따지고 보면…… 원래 에피네프린도 그렇잖아?’
하윤은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죽도록 하는 사람 아닌가.
그 공부의 범위 또한 대단했는데 당연하게도 내과만 공부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과도 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깊이 하지는 못하고 단지 주워듣는 데 그치고 있긴 했지만…….
‘그래. 이비인후과에서 그랬지. 코 가운데에 에피네프린 찌르면 안 된다고.’
축농증 수술을 할 때, 그러니까 코의 바깥쪽 벽을 대상으로 하는 수술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가운데 벽을 대상으로 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다.
죽으니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아…… 그래서 얼굴 사진을!’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책상을 쾅 하고 쳤다.
그 소리에 모두들 흠칫 놀라서 하윤을 돌아보았다.
허나 정작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만의 심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이제 김인수가 낸 문제를 맞히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이 추론이 너무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래. 얼굴을 보면 코가 무너져 있어. 맞은 게 아냐. 안이 죽은 거야. 피가 안 통해서 썩은 거다…… 할 때는 몰라. 마취제니까…….’
왜 통합진료센터에 가고 싶겠나.
돈 벌려고?
돈이야 차고 넘치게 있는 집안이다.
명예?
명예는 다른 곳에서 교수 해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재미.
그래, 재미다.
추론하는 재미.
이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미지의 영역이겠지만,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종류의 재미이지 않겠나.
“저, 저 알 거 같습니다!”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한 하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미 김인수는 답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책상도 부서질 기세로 두들겼는데 뭐라도 안 나오면 너무 아쉽지 않겠나.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말해 봐.”
“네. 코카인은 주로 코로 흡입합니다.”
“그렇지.”
“환자도 코로 흡입했을 겁니다. 그렇죠?”
“진술은 하지 않았지. 아무튼?”
“코카인은 마취제이면서 동시에 혈관 수축제입니다. 심장과 뇌만 언급하셨지만 그건 아마도…… 더 고농도에 노출되었을 때 혹은 신체적인 무리가 있을 때의 얘기일 겁니다. 주로는 코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죠.”
“음.”
김인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슬금슬금 번지는 미소와 함께였다.
그걸 봤다면 더 목소리가 커졌겠지만 이미 우하윤은 무아지경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어야만 통합진료센터처럼 누가 봐도 사람 갈아 넣는 곳에 도전하겠단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한 면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우하윤도 한두 바퀴는 넉넉히 돌았다.
“코의 혈관이 수축하게 되면…… 외측 벽이야 상대적으로 혈액 공급이 많지만 가운데는 여러 군데서 들어오지 않죠. 수축과 동시에 썩어들어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엄청난 통증이 있겠지만 말씀해 주셨듯 코카인은 마취제입니다.”
“그래, 그렇지.”
“만성화되면…… 완전히 썩겠죠. 맨 처음 보여 주셨던 환자 얼굴 사진을 보면 코가 내려앉아 있는데…… 가운데 기둥이 썩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이걸 안장코라고 해.”
그러고 보니 코가 꼭 말 등에 얹는 안장 모양 같았다.
“그리고 썩은 곳에서는 균이 자라기 쉽죠. 그중 하나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장에 닿아서 심내막염을 일으켰을 겁니다. 즉 환자의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코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데브리먼트를 시행하고 적절한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