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06화 (1,106/1,303)

1106화 시험 당일 (1)

내과 전문의 시험.

사실 의대 바깥에서 보기엔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 시험일 터였다.

왜?

합격률이 90%를 넘어가지 않나.

딱 합격률만 놓고 보면 운전면허 시험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

딱히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오히려 만점 받으면 조롱거리가 되던 시험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개떨린다…….’

허나 전문의 시험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대학 병원에서 개같이 구르던 나날들이 대체 무엇을 위함이었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 했던 경험들이 그 경험 자체로 의미가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당시 봤던 환자들도 고스란히 남기는 하겠지만…….

이날 하루만큼은 자격증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곧 떨어지게 되면 지난 수년간의 고생이 다 무위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아니…….

‘의대 6년에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

점차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전문의 비율은 90%에 육박하지 않나.

그 말은 곧 의대 나와서, 그것도 레지던트까지 했는데 전문의가 못 되면 생각 짧은 사람들 중엔 그럴 거면 왜 의대 갔냐는 말도 나올 거란 말이었다.

이것도 냉정히 생각해 보면…….

사실 6년제 나와서 의사 되면 그걸로 일단 대학의 소임은 다 한 거겠는데, 딱 이날 하루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내과나 가정의학과와 같이 3년제인 과는 지난 10년이, 다른 4년제 과는 지난 11년이 걸려 있는 날이었다.

“어, 성철아.”

열심히 살았나?

열심히 산 거 같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거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누가 와서 너 정도면 대충 살았지 라고 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빵을 꽂아 줄 자신이 있었다.

“어…… 아, 하윤아.”

그때 잠시 후광이 비쳐 오는 느낌이 일었다.

맨날 보던 공기임에도 그랬다.

단순히 이뻐서는 아니었다.

아니, 이쁘기도 이쁘지만…….

‘그래, 얘만큼은 못 했지…….’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대부분의 동기들은 우하윤을 보면서 느꼈다.

처음엔 단순히 얼굴에 끌렸다가 지내면 지낼수록 내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때문에 더 좋아지는 느낌이랄까.

모르긴 몰라도 동기 남자애들 중에 대다수는 한 번쯤 좋아했을 거다.

그 누구도 이어지지 못했지만.

대체 우하윤의 마음을 여는 비밀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진지하게 열렸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빛이 나는구나……. 넌 붙겠지.’

만년 1등.

다들 열심히 하는 의대에서, 또 시험 보고 나면 군부독재 시절 빙의한 것처럼 1등부터 꼴등까지 대자보로 붙여 놓는 의대에서 만년 1등만큼 질시받기 딱 좋은 사람이 있을까.

허나 하윤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단순히 열심히 해서만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으스댄 적이 없었다.

또 누군가 물어본 것에 대해 허투루 답해 준 적도 없었다.

이번엔 심지어 이수혁 교수님 전담 마크로 약간 프락치 짓까지 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아파?”

“아, 아니. 그냥 떨리잖아.”

“아. 떨리긴 하지.”

“너도?”

“나도 사람인데 떨리지, 그럼…….”

“그렇구나.”

너도 떨리는구나.

어쩐지 위안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험 당일에 작년엔 신현태 주치의, 재작년에는 이현종 주치의여서 회진 돌자마자 같이 응원을 오지 않았던가?

-1등…… 할 수 있지?

-만점 받을 겁니다.

수혁은 이렇게 말했더랬다.

다른 선배들도 모두 응원 버스에 들려서 핫팩, 사인팩, 커피 등등을 받아 가면서 뭐라 뭐라 했던 거 같은데…….

그 한마디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다.

-한 수혁, 두 수혁 명의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안대훈이라고 합니다.

안대훈?

그 사람이야 뭐…….

하루 이틀 이상한 게 아니지 않나.

하여간, 둘 중 누구 하나도 떨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딱 그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보니 오히려 더 떨렸다.

근데 우하윤이 떨린다니까 확실히 위안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 다 진짜 열심히 했잖아.”

“그렇지……. 그랬다, 진짜. 뭔…….”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한번 내쉬고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별로 안도의 세월은 아니었다.

레지던트 3년 중 제일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그러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험 보러 들어간 연차는 거의 놀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니, 얘기만 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여유가 있었다.

공부야 뭐 지난 몇 년간 병원에서 굴렀지 않나.

게다가 고등학교 때 얼마나 잘했는지 얘기하기 시작하면 서로 민망해지기만 할 정도로 전교 1등만 모여 있는 집단에서 공부하는 게 뭐 그리 어려웠을까.

물론 시험 한 달 전부터야 고3 모드로 돌입하긴 했지만, 그전에는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대학 병원 생활하는 동안 즐기지 못했던 일상도 즐기고 했더랬다.

“안대훈, 김인수 선생님……. 두 분 10kg 빠졌대.”

“와…… 근데, 그럴 만해. 나도 5kg 빠졌어…….”

“진짜 힘들었지.”

“어. 두 분 덕에 그래도……. 얼추 자신은 생겼어. 막판에 업데이트된 문제 보고 진짜 식겁했는데……. 그래도 대충은 대응이 되더라.”

“그치? 신기하게 실력 자체가 는 거 같아. 지식만 는 게 아니라.”

“어……. 뭔가…… 이런 말 하면 그렇긴 한데. 문제가 좋았던 거 같아.”

“이게 열화판이라니……. 진짜는 어떨까?”

응?

얘 왜 갑자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지……?

성철은, 그러니까 하윤의 동기이자 그녀에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위로를 받고 있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나던 사람 중 누구라도 아 저 둘 사이에 뭔가 의견이 안 맞는구나 싶을 만큼이나 격렬하게 갸웃거렸다.

허나 하윤은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뒤였다.

“생각해 봐. 이 열화판으로도 우리 그동안 진짜 두근거렸잖아. 하나같이 새로운 케이스였는데……. 다 필요한 케이스였어. 앞으로 임상 의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그런 느낌이었다구.”

“어……. 어어.”

성철은 그렇게 거의 눈 감고 걷는 수준이 되어 버린 하윤이 방지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살짝 끌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진정되나 싶더니만 또 다른 종류의 광기와 마주하자마자 이러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두근거렸다고……?’

3년 동안 내과만 팠는데도 모르는 문제만 주야장천 나오는데 두근거린다고?

살이 왜 빠졌겠나.

열심히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미 하루 일과 마치고 와서 따로 시간 빼서 가르쳐 주던 안대훈, 김인수와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힘들긴 해도 그 정도로 격렬하게 힘든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빠진 건 그냥 입맛이 없어서 그랬다.

뒤질 거 같았거든.

“특히 이수혁 교수님이 직접 내신 문제가 어떨지 너무 궁금해.”

그 와중에 옆에 있는 애는 이제는 숫제 두 손 모아서 정말이지 정석적인 모습으로 기대 중이었다.

어디 일본 애니에라도 나올 법한 느낌이었다.

하필 애가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기운 넘치는 애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어!”

“왜, 왜.”

이런 텐션으로 말하면 당연히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깜짝 놀라서 앞을 보니 버스가 하나 서 있었다.

태화는 원래도 시험 보는 레지던트 지원을 꽤 호화롭게 하는 편이었다.

아니, 의사 국시 때도 그랬다.

이런 거 하나도 우리는 다르니까, 우수한 인재들이여 보고 있다면 빨리 오라는 취지에서 그랬다.

이번에도 그랬다.

일단 버스가 일반 버스를 대절한 게 아니라 진짜 그룹 로고가 박힌 리무진 버스가 와 있었다.

“저기 교수님!”

“아.”

그 앞에는 여러 교수들이 서 있었다.

모든 내과 교수들이 다 와 있는 건 아니었다.

병원 환자들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몇몇만 와 있었는데 그중엔 이수혁, 이현종, 안대훈, 김인수, 조태진 그리고 신현태 등등이 끼어 있었다.

“와, 이수혁 교수님이다!”

“어……. 어, 그렇게 좋아?”

“좋지. 천재시잖아. 난 무조건 교수님 밑으로 들어갈 거야.”

“그래……. 그렇긴 하지.”

성철은 여전히 이상하단 생각만 하고 있었다.

세계관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보통 레지던트가 교수를 좋아할 수 있나?

-아……. 교수 새끼…….

-일을 오늘 시키고 내일 아침에 달래…….

-죽이고 싶다, 진짜.

성철은 당직 방에서 나누었던 얘기들을 떠올렸다.

스승에게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런 정서가 보통이었다.

아무리 좋아 봐야 두려움은 전제로 깔고 있었다.

헌데…….

“교수님!”

“어, 하윤아. 컨디션 좋아 보이네. 다행이다.”

지금 달려가는 저거…….

저거 대체 뭐지?

성철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대로 있다간 싸가지 없는 새끼로 보일 게 뻔하다는 생각에 일단 달렸다.

생각해 보면 이수혁 정도면 뭐 되게 괜찮은 교수이기도 하지 않던가.

아니, 내과 교수들이 그래도 다른 과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일이야 시키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는 건 아니니까.

혼내긴 하지만 적어도 지 기분 나빠서 혼내진 않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어, 성철이도 왔구나.”

더군다나 이수혁은 수많은 레지던트 이름을 싹 다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교수 중 하나였다.

적어도 스쳐 지나가는 일꾼 정도로만 여기고 있진 않다는 얘기였다.

“네, 교수님.”

“어, 그래. 너도 좋아 보인다.”

“그래야 할 겁니다. 교수님.”

그때 안대훈이 나섰다.

원래도 상당히 광인스러운 인상이지 않았나.

코비드 사태가 한창일 때랑 비교하면, 그러니까 옆에 머리만 자랐을 때보다는 나은가 싶긴 하지만…….

지금은 살이 너무 빠져서 그런가 무서운 광인 느낌이 일었다.

그런 사람이 진중하게 말하니까 다들 그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 신현태와 같은 시니어 교수들도 입을 다물게 되는 그런 몰골이었다.

“왜…….?”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겠습니까.”

“아.”

김인수?

김인수도 만만치 않은 인상이 되어 있었다.

말랐는데 수염을 기른 건지 안 자른 건지 모를 몰골로 안대훈 옆에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안대훈이 언급한 ‘노고’에 무게를 확 실어 줄 수 있었다.

“그래……. 잘……. 잘 봐야 해, 알았지?”

해서 수혁과 이현종 등 모든 교수는 그렇게 찾아오는 모든 3년 차들에게 부담을 실어 주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안 될 거 같잖아.

“네…….”

시험 당일에 시험 잘 봐야 한다는 말처럼 부담되는 말이 또 있겠나.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풀이 죽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아, 잘 볼 수 있지?”

허나 단 한 사람, 하윤만은 달랐다.

“후후.”

우선 웃었다.

“만점으로 1등 하겠습니다.”

그러곤 자신감 어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하윤을 보면서 수혁과 바루다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만점은……. 우리도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은 이렇게 하는데 우린 그때 미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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