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화 시험 당일 (3)
“네네. 아……. 그게 또……. 그렇군요. 그럼 지금 아주 정확한 정보는 없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한데, 사실 아이가…… 지금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불안한 상태여서요.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정신과 진료 중에 있습니다.”
“그…… 그렇겠죠. 아무래도.”
김성진은 원래 타고나기를 착하게 태어난 사람 아닌가.
칠성의 그 흉악한 안국태 밑에 있으면서도, 거의 그의 개인 화 받이 쓰레기통처럼 지내면서도 정작 남들에게는 늘 잘해 주기만 했던 사람이다.
비록 통합진료센터에 와서 닮고 싶은 면이 많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미친놈들인 교수들 틈바구니에 있으면서 살짝 변한 면도 있긴 하지만…….
안대훈, 김인수, 장종우 등에 비하면 훨씬 나은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아이의 비극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어떻겠나.
‘참담하구나……. 진짜로…….’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병원 내에 있는 봉사 시스템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대형 병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요구에 따라 사회공원팀 활동의 일환으로 봉사를 여기저기 다니는 편이었다.
국내 의료 상황은 아무리 오지라 해도 OECD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 및 의료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주로 외국으로 나가고 있었다.
‘다른 단체랑 연계도 하는 거 같던데…….’
해외 봉사라고 하면 꼭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 있는데 왜 외국 나가냐는 말이 있곤 한데, 사실 국내 봉사는 더 이상 개인적인 수준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 만큼 낙후되어 있지 않았다.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제는 정책 노름이구나.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이미 어엿한 선진국이지 않나.
과거 다른 선진국들에게 받아 온 것들을 다른 나라에 갚아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번 휴가는 그럼 유니세프랑 연계해서 다녀올까……?’
안국태 밑에 있을 때는 그에게 지식을 배우거나 혹 그가 익힌 연구비 따오는 법을 곁눈질하는 것이 다였다.
‘절대’라는 말을 써도 좋을 정도로 닮고 싶진 않았다.
허나 통합진료센터의 괴물들은 좀 다르지 않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안국태보다 훨씬 나음은 물론이거니와 의사로 보면 비교 대상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근묵자흑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이전과는 달리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는데…….
그 결과 김성진을 비롯한 대부분의 센터 구성원들은 수혁과 이현종의 명의병을 고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해서 며칠 되지도 않는 임상 강사 휴가를 홀랑 봉사에 털어먹겠다는 생각마저 품게 되었다.
“어디야.”
“어딨어!”
바로 그때, 센터 안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다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센터장, 부센터장, 원장, 옆 동네 교수, 우리 동네 펠로우들…….
‘저 두 분도 오셨군.’
‘신현태와 조태진이 왜 왔지’와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것도 하루 이틀 왔어야 궁금하지 맨날 오는 사람에게는…….
“아, 이쪽입니다!”
김성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수들을 끌어들였다.
원래부터 원격 협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센터다 보니, 설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모두 무색하게 여겨질 만큼이나 연결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연결이 된 거예요?”
수혁은 지직거리는 화면을 보면서, 김성진에게 물었다.
김성진은 조금 전까지 봉사를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이니만큼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 지역이 뭐가 잘 없다고…….”
“그렇구나. 음……. 그래도 애를 보긴 해야 할 텐데…….”
원래 교수들이란 돼야 할 거로 생각했던 게 안될 때 화를 내는 존재라고 보면 되었다.
허나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걱정할 뿐이었다.
그게 상대측에서도 느껴졌는지 급히 말을 덧붙였다.
“사진이나 영상은 따로 찍어서 메일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실시간이 어렵지…….”
“아, 그렇군요. 네, 그럼 좋습니다. 일단…… 볼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지직거리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실제로는 그 너머에 있을 아이를 떠올리면서였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제아무리 재구성의 달인인 수혁이라 해도 정보가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겠나.
“네. 사실 지금 정신과 측에서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으로 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네, 섣불리 그렇게 하기보다는 우선 기질적인 원인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만 하겠죠.”
“네, 그렇습니다. 잠시만…….”
수화기 너머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처음엔 다 잡음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진짜로 소음이 많아서 시끄러운 것이었다.
‘하긴……. 근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지.’
[모르겠습니다, 수혁. 제 이해를 넘어가는 일입니다. 다만 전쟁의 역사를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옛날 일이잖아?’
[수혁.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전쟁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그런가…….’
수혁은 그 소음의 원인, 즉 갑자기 발생한 고아와 사상자들을 떠올리다가 바루다의 말로 인해 간신히 차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전쟁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어찌 보면 섬찟한 말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긴 했다.
수천 년 전 인간에 비해 현대인이 훨씬 지능적으로 뛰어날 거 같지만…….
유전자 자체는 딱히 변한 것도 없지 않던가?
그 말은 곧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은 최근 100년 이내에 일어났다.
“아무튼, 아이는 6살입니다. 처음 저희가 보호소로 데려올 때는 딱히 특이 사항이 없었으나, 관찰하다 보니 요실금이 있었습니다.”
“요실금?”
“네.”
“그쪽으로 부상이 있진 않고요?”
“아뇨. 의료진과 함께 면밀히 살폈지만, 부상은 없었습니다. 특이점은 관찰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소변을 흘리고 있었단 점입니다.”
“아……. 그건 좀 이상한데요?”
“네. 하지만 이쪽에 있다 보면 간혹 볼 수 있는 증상이긴 합니다. 워낙……. 워낙 심한 일을 겪지 않았습니까?”
눈앞에서 부모를 잃었다.
총과 칼로 인해서.
어른도 견디기 쉽지 않을 만한 일이었을 텐데 6살 아이라면 어떨까.
확실히 무슨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거 같았다.
때문에 바루다도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유보적으로 나왔다.
[우선은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을 1번으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그렇게 하자.’
수혁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을 하자 설명이 이어졌다.
“자폐증도 의심을 했지만 다행히 원래 아이를 알던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2주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역시 트라우마 또는 2주 이내에 발생한 어떤 병 때문이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후자일 가능성은 적은데……. 이곳 정신과 선생님이 꼭 한번 확인은 해 보자고 해서요. 증상이 너무 심하다고.”
“아, 그렇군요.”
그러다 생각이 살짝 바뀌게 되었다.
수혁은 정신과에 대해 잘 모른다.
바루다도 그랬다.
계열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그랬다.
해서 섣불리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게 맞다고 여기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설령 정작 그 사람은 이상함의 원인을 뚜렷이 모른다고 해도 확인을 해 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그렇지.’
그렇다 해도 정신과 의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알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말로 많은 것을 대체하기 때문에 제대로 아는 게 맞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정신과 전문의들의 전문성 또한 다른 과와 같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의 판단을 수혁은 존중하는 편이었다.
본인이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변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 만약 기질적인 증상이라고 한다면……. 척수 쪽 병변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쪽에 대해서는 확인을 하셨나요?”
“아…….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도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네, 이해합니다.”
그에 비해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 상대는 의사가 아닌 듯했다.
아니, 애초에 저 기관 자체가 의료기관도 아니었다.
단순 봉사 단체로 가 있는 상태에서 너무 큰 일이 터지는 바람에, 역량이 미치진 않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마음으로 달려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해서 수혁은 차분히 기다렸다.
그렇게 수 분이 지났을 무렵에, 어쩐지 다급하게 느껴지는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이가……. 아이가 잘 못 걷습니다!”
“그건 언제부터 그렇죠? 파악이 가능한가요?”
“모, 모르겠습니다. 데려올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고 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말하죠?”
“아이는…… 아이는……. 아직 대화가 원활히 될 만한 상태는 아닙니다. 지능이나 발달 문제는 아닙니다. 진술에 따르면 원래는 의사소통이나 운동 능력에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군.”
수혁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변뿐만 아니라 걷는 데 있어 증상이 생겼다.
그렇다면 역시나 척수 혹은 그 위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었다.
“팔은 움직입니까?”
“아……. 네. 팔은 허우적거립니다.”
“힘은요? 힘은 충분해 보입니까?”
“원래 영양실조가 있긴 한데…….”
“아, 그렇군요. 영양실조라…….”
“네. 그래도 힘은 어느 정도 있어 보입니다. 걷는 건……. 걷는 건 잘 안되고요. 비틀거립니다.”
“힘이 없어서 그런 거로 보이진 않고요?”
“아, 아뇨. 마르긴 했지만……. 경험상 저 정도면 그래도 걷습니다.”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답답했다.
‘척수 질환. 레벨은 T레벨 보다는 아래야.’
[네, 그렇습니다. 증상 발생은 길어도 2주. 혹은 그 이내입니다. 보통은 외상일 텐데…….]
‘그건 아니라고 했어. 의료진이 같이 확인한 부분이라고 했으니 확실하겠지.’
[네, 아무래도 그쪽 부분에 있어서는 저쪽에서 제대로 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급성 질환이라는 건데요.]
답답함과는 별개로 수혁은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최대한 편견 없이, 그러니까 정신과 질환이 아닐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두고서였다.
그러다 보니 척수 질환이 나왔는데 여전히 이상하긴 했다.
‘급성 질환인데……. 척수가……. 이렇게까지?’
[6살이라면 소아 종양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림프암이라면 2주 이내에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드물긴 해도……. 아.’
[왜 그러십니까?]
‘아이는 영양실조야.’
[영양실조라……. 면역이 제대로 돌아갈 리는 없겠군요.]
‘감염일 수도 있어.’
[동의합니다. 감염 징후에 대해 문진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도 잠시.
수혁은 드디어 감았던 눈을 뜨고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허나, 어떻게든 해결이 될 거란 희망을 간신히라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