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10화 (1,110/1,303)

1110화 시험 당일 (5)

“선생님.”

“네, 말씀하십쇼.”

담당 의료진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두바이에 있을 때 남긴 족적이란 게…….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았나.

당시 레지던트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의 위력이었다.

거기에 더해 왕자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해 주었더랬다.

‘그때……. 사실상 그때 우리 병원의 태화 분원이 된 거야.’

그 이후, 두바이 센터는 태화의 분원이 되었다.

실제로 분원이라기보다는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 것이긴 하지만…….

하여간, 앞으로도 적어도 10년간은 태화에서 의사들이 매년 10명가량 연수 명목으로 와서 펠로우와 전공의 교육을 해 줄 터였다.

본원 역량으로 해결이 안 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태화에 의뢰하는 시스템 또한 유지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은 역시나 수혁이었다.

‘천재…….’

현재 두바이에 있는 의료진 중 수혁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어지간히 무식하거나 적어도 최신 지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터였다.

그게 상식으로 여겨질 만큼이나 수혁은 꾸준히 도움을 주고 있었다.

-아, 이거 미안한데……. 일단 이수혁 교수에게 전폭적으로 협력하라는 지시야.

-지시요? 원장님 지시가 아닙니까?

-나? 아니, 나도 당연히 협조할 생각이지. 근데 그런 게 아냐. 훨씬 위에서.

-아……. 설마.

-그래. 나도 집에 안 갈 거야, 오늘. 어쩌면 오실 수도 있대.

-이런…….

거기에 더해 오늘은 왕자의 직접적인 명령도 있었다.

왕조가 무너진 지 오래인 대한민국에서야 왕자가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이쪽은 얘기가 완전히 달랐다.

왕자는 그야말로 왕의 아들이고, 그 권위에는 무시무시하다는 말조차 어울릴 지경이었다.

“환자……. 이제는 대화가 가능한가요?”

“네? 아……. 네. 방금도 찍기 전에 저랑 대화했습니다.”

“잘됐군요. 혹시 물놀이 좋아하냐고 물어보실래요?”

“네?”

“한번 물어봐 주시죠.”

“어……. 네.”

그래서 어떤 말을 해도 즉시 따르자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놀이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네?’라고 하고 말았다.

물놀이라니…….

이걸 왜 물어본단 말인가.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물어보라는데 물어봐야지.

원래 천재의 머릿속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 법이었다.

“수혁아, 왜?”

궁금하기는 저쪽뿐 아니라 이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지만 그냥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수혁을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음. 아직. 얘기 들어 보고요.”

“어……. 그래.”

수혁은 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왜요?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지금 데이터 띄우는 거 보이죠?]

‘보여. 확실해 보여. 근데 지금 말하는 거보다 보면서 말하는 게 더 임팩트가 있을 거 같아서.’

[아하.]

보다 효과적으로 잘난 척을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밤 늦도록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밥 사 주러 가야지.’

[우하윤?]

‘응. 밥 사 달라고 했으니까.’

[둘이 먹는 거죠?]

‘그렇지. 아, 설마 이거…….’

[뭐…….]

하윤의 요청이 있었기에 그랬다.

설레발이라고 해도 좋을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바루다로서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너무 그럴싸하잖아.

시험이다.

그것도 전문의 시험.

2차도 봐야 한다고 하지만, 1차가 제일 중요한 시험이라는 데에 감히 토를 달 만한 사람이 있을까.

[이런 시험 끝난 날 동기들이 아니라 수혁과 밥을 먹자고 할 정도면…….]

‘근데 대훈이도 그랬단 말이지.’

[저놈은 일반인이 아닙니다.]

‘하윤이는 완전히 일반인 같냐?’

[음.]

잘돼 가는 거 같은데, 주변에 하도 미친놈들이 많다 보니 확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름 사람 파악하는 데 도가 텄다고 자부하는 바루다조차 그랬다.

확실히 이놈의 센터에 들어왔거나 들어올 예정인 놈들은 정상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 하면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만 골라서 들어오는 걸까.

아직 사방이 미친놈인 것이 세 번 이상 반복되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시대의 명언을 알지 못하는 둘로서는 그저 궁금해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교수님. 물놀이 엄청 좋아한다고 합니다.”

상념을 깬 것은 방금 아이를 향해 뛰어나갔던 의사였다.

그는 헐레벌떡 돌아와서 물놀이 얘기를 꺼냈다.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물어보래서 물어봤지만, 이걸 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수혁은 그를 탓하는 대신 옆을 돌아보았다.

다들 같았다.

이현종도 안대훈도, 김성진도 그랬다.

‘김 선생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모를 수도 있죠. 신현태 정도나 돼야……. 물놀이에서 이걸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질환 아닙니까.]

‘하긴……. 우리나라의 겨울은 혹독한 편이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이게 단점도 있지만 확실히 장점도 있기 마련이었다.

단적인 예로 부레옥잠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생태계 교란종 중 탑을 달리는 녀석이지만 국내에서 이거 걱정하는 사람이 있던가?

제아무리 여름 한철 무서운 기세로 퍼졌다고 해 봐야 겨울에 싹 죽어 버리기에 그랬다.

대한민국의 겨울이 말살해 버리는 것이 단지 이거 하나겠나.

‘물속에 사는 기생충들에 대다수는 살아남지 못하지.’

[그러니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일부러 물놀이에 대한 답은 뒤로 미뤘다.

“사진을 보시죠.”

“어, 사진이요? 아, 네네. 보고 있습니다. 거기도 뜨고 있죠?”

“네. 제가 설명을 드리죠.”

“아, 네. 교수님.”

대신 MRI 영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T12 레벨에서 L2까지 확장되는 종양이 보입니다. 세로 길이가 대략 3.8cm, 두께는 1.8cm이죠. 작지 않은 종양인데…….”

“네, 그렇습니다. 이게…….”

“자, 생각을 해 봅시다. 모양을 보면 주변을 파괴하고 있습니까?”

“아,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르고 있는 양상입니다. 전형적인 양성 종양의 모습입니다.”

“아이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주 전입니다. 양성 종양이라면, 이렇게 빨리 자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어…….”

해당 의료진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일단 수혁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아서도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합진료센터의 추론 방식에 대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에 비해 이쪽, 그러니까 통합진료센터 측 사람들은 벌써 어느 정도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종양이 아닌가……. 감염에 대한 반응성 가성 종양?”

그중에서도 가장 머리 회전이 빠른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안대훈 또한 번뜩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수혁은 그런 둘을 보면서 말했다.

“네, 정확히 말하면 가성 종양이라기보다는 육아종일 거예요.”

“육아종……? 그럼 저기가 염증의 근원이라는 건데……?”

“네.”

“하지만 아이는 감염 징후가 뚜렷하지 않았잖아요?”

“그렇지 않았죠.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니까요.”

“어……?”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항원에 대한 항체 반응이 굉장히 뚜렷한 편이다.

딱 그 레벨에서 대응하기 좋은 사이즈이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큰 놈이 들어왔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기생충 같은 것들.

“기생충. 아프리카는 각종 기생충이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창궐하는 곳이에요.”

“아…….”

“그중에서도 더러운 물에서 수영할 경우, 생식기를 통해 감염을 일으키는 주혈흡충증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아. 그럼 이거……?”

“대개는 요로 감염을 일으키고, 혈뇨를 비롯한 배뇨 장애를 일으킵니다. 드물게, 하지만 영양실조가 만연한 아프리카에서는 보다 흔하게 다른 곳에서도 염증을 일으키는 편이죠. 면역이 저하되어 있으니까요.”

“척수로 갔구나.”

“네. 하지만 척수 쪽은 주혈흡충이 생존하기에 그렇게 적합한 곳이 아니에요. 도착해서 알을 까든 뭘 했든 결국엔 사망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되죠?”

“그 조각들이…… 염증 반응을 일으키겠지. 그것도 아주 빠르게.”

이현종은 허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척수에 형성된 종양 아니, 육아종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설명을 듣고 보니까 육아종이었다.

저 안에 여전히 살아 있을 기생충이 보이는 듯했다.

착각이겠지만, 마냥 착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실제로 있긴 할 터였다.

“프라지콴텔을 쓰죠. 기생충이니만큼 약만 제대로 쓰면 완치가 될 겁니다. 수술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아……. 그렇, 그렇군요.”

수혁 또한 사진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허나 듣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영상을 보자마자 신경외과 부를 생각부터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거 수술을 했다면…….’

현대의학에서 수술은 더 이상 야만적인 파괴 행위를 동반하지는 않는다.

최소 침습 수술이 대세가 된 지 오래지 않나?

하지만 뭐가 되었건 괜한 상처를 입힌다는 건 변하지 않는 상식이었다.

게다가 부위가……

척수다.

긁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피해가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쇠약해진 상태에서 이만한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것 또한 부담이었다.

‘진단은…… 되었겠지. 조직 검사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예후가 같을까. 그럴 수는 없어…….’

의료진은 경이에 가득 찬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이건…….

이건 기적이었다.

다 같은 영상을 봤는데 혼자 아예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니.

나머지 의사들이 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인 것도 아니지 않나.

태화야 말할 것도 없었다.

서구권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을 뿐,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안에서도 최고라 평함을 받는 일들이라면 실력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나도……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데.’

자신?

받는 연봉이 실력을 증명한다.

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전염성을 보이는 질환은 아닙니다만……. 아이가 혼자 물놀이를 했을 리는 없어요. 그 물에서 수영했다면 모두가 감염 위험에 노출이 되었을 겁니다. 조사를 해 봐야 합니다.”

물론 수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질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 있었다.

“아……. 네. 헌데 얼마나 살아남았을지…….”

그 말을 들은 유니세프 직원이 참담한 얼굴이 되어 답했다.

이 말에는 수혁도 좀 놀랐다.

‘아…….’

[아이도 죽입니까?]

‘그런가 본데…….’

[대체 왜 그런답니까?]

‘모르겠어.’

[끔찍하군요.]

아이가 단지 가족만 잃은 게 아니란 것이 실감이 나서 그랬다.

저 어린아이는, 그러니까 이제 갓 6살 먹은 아이는 부모뿐 아니라 친구 그리고 터전을 통째로 잃었다.

거기에 대해 지금 당장 해 줄 수 있는 건 기생충 치료밖에 없다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 해 주고 싶은데.’

수혁으로서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의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환자에게 뭔가 더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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