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11화 (1,111/1,303)

1111화 김승규의 수술 (1)

“하윤아, 여기 어때?”

“미쳤는데요? 너무 좋아요.”

그렇게 아이에 대한 진단과 치료 계획까지 다 수립해 주고 밖으로 나온 수혁은 바로 하윤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명색이 부센터장인 데다가 그의 연애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싹 다 대단한 사람들인 만큼 식당 또한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비싸기도 비싸거니와 예약도 어려운 곳이란 얘기였다.

딱 정해 놓고 회원제는 아닌데 거의 회원제처럼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면 설명이 될까?

“그러니까. 하여간, 우리 아빠가 진짜 미식가긴 해.”

“진짜요. 와…… 저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봐요.”

그렇다고 해도 하윤이 진짜로 이런 데를 처음 와 봤을까?

평범한 전공의라면 당연히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하윤은 금수저에 로열이었다.

-누가 뭐 사 주면, 절대 이런 소리 하지 말아라. 어디가 더 나은데. 어디랑 비슷하네. 그냥 맛있게 먹어. 그것만으로도 사 주는 사람은 만족한단다.

타고난 성정이 소탈해서도 그렇지만, 일단 우창윤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딱히 우창윤이 그런 사람은 아닌데, 사 주다 보니 배운 점이었다.

똑같이 비싼 것을 사 줘도 반응에 따라 또 사 주고픈 사람이 있고 아닌 놈이 있는 법이었다.

우창윤은 딸이 후자가 되길 결코 바라지 않았다.

특히 세 번이나 우연히 부딪힌 수혁이 상대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우연이 생애 다시 있을 일이 없을 거 같기도 하고, 수혁이라는 놈이 남편감으로 썩 괜찮을 거 같아서 그렇기도 했다.

“시간 괜찮으면 한잔할래? 이 근처에 바가 있던데.”

“바요? 술 주는?”

“어……. 다른 종류의 바도 있나?”

“몰라요, 사실.”

“나도 몰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본 거야.”

“좋아요. 근데 제가 술이 막 세진 않은데.”

“어……. 한 잔은 할 거잖아.”

“아.”

그 ‘한잔’이 진짜 ‘한 잔’이구나.

하윤은 방금 순간이 너무 수혁 같아서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수혁은 마음이 복잡했다.

‘왜 웃는 걸까.’

[모르겠습니다.]

‘너는 왜 의학은 잘 알면서 이런 건 잘 몰라?’

[그게 수혁이 할 소릴까요?]

‘그러니까 말야. 환자는 그렇게 잘 보겠는데 왜 연애는 모르겠지…….’

[그래도 웃었잖아요. 우는 것보다는 좋은 신호라고 판단합니다.]

모르겠어서 그랬다.

이것이 바로 안대훈을 비롯한 다른 의사들이 오늘 해결한 케이스를 볼 때의 심정인가 싶기도 했다.

‘잘해 줘야겠다……. 이 소견이 어떤 징후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미친놈 같긴 한데…….]

‘달리 어떻게 표현해?’

[그걸 모르겠어서 미친놈이라고 하진 않으려고요.]

상념에 젖은 채 들어간 바는 한적한 곳이었다.

손님이라고 해 봐야 구석에 몇 명 있는 정도?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분위기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너무 비쌌다.

‘한 잔에 6만 원?’

돈에 딱히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수혁조차 놀랄 지경이었다.

“아이……. 저 자식. 왜 저기서 토끼 눈을 떠.”

“이거 우연 아니었구나? 어쩐지 생전 처음 바에서 보자고 한다 했는데…….”

그런 수혁을 바라보는 눈길들이 있었다.

구석에 있던 이들이었는데, 나이가 지긋하면서 동시에 점잖은 느낌을 자연스레 자아내고 있는 이들이었다.

우창윤과 신현태 그리고 이현종이었다.

우창윤은 당연하게도 황당한 얼굴이었다.

“우연이겠나? 쟤 컴퓨터에 여기 띄워 놓은 게 우리 측 사람이야.”

“우리 측? 한둘이 아니에요? 이거 뭔데?”

“이수혁 연애기획단이랄까.”

“뭘 랄까야, 랄까는. 미쳤어요? 이러다 될 것도 안 되겠어!”

이런 식으로 자기 딸 꼬시는 데 도움을 줘서 황당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연스러운 부딪힘을 추구하는 이상……. 우리 딸은 혼자다…….’

초조했다.

우연히 부딪쳤는데 호감 비슷한 감정을 양측 모두 갖게 되는 게 쉬운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근데 그 사람이 부모 눈으로 볼 때도 괜찮을 확률은 대체 몇이나 될까?

아마 지금 밖에 뛰쳐나가자마자 벼락 맞고 죽을 확률도 그것보다는 낮을 터였다.

“아냐, 아냐. 잘되고 있어. 수혁이가 이상하긴 하지만 정도 이상으로 이상하진 않거든.”

“지금……. 딸 가진 아빠 앞에서 그게 할 소리예요? 자칫하면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놈이 이상하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너도 알잖아. 몰라?”

“알긴 알죠. 나쁜 쪽으로 이상한 건 아니니 다행이지…….”

“그래. 그렇다니까. 아무튼, 여기 술이 위스키만 있는 게 아니라 칵테일이 있는데 달아. 맛있어.”

“그래서요?”

“취하기 딱 좋지.”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쟤 내 딸이야!”

“야. 쟤 이수혁이야. 취한다고 뭐 별일 생길 거 같냐?”

“음.”

우창윤은 두 번 흥분했다가 그리 어렵지 않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혁이…….

쟤가 뭐 수작질을 부릴 수 있을 거 같진 않지 않나?

게다가 하윤은 자기 딸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딱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그저 실수나 안 하면 다행이지.”

“뭔 실수요?”

“뭐……. 넘어질 수도 있고. 잘 수도 있고.”

“대학생도 아니고……. 자기 주량도 몰라?”

“몰라, 쟤는. 의학 말고는 젬병이라고.”

“음.”

그에 비해 수혁은…….

의학 말고는 젬병이라는 말이 너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진짜……. 이 연애 괜찮은 건가?’

지금이야 머리 빠지고 개털 다 됐다지만 한때는 귀공자였던 우창윤 아닌가.

바람둥이보다야 젬병이 낫겠지만 또 결혼 생활 재밌게 하려면 너무 젬병인 건…….

“너 뭐 손주 볼 생각하냐?”

“네? 그건 어떻게.”

“동공이 막 흔들리는 게 꿈꾸는 줄. 인마. 수혁이야, 수혁이. 난 아직도 쟤네 사귀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니까……. 저 새끼……. 진짜 등짝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네.”

“형이 할 소리는 아니지. 나는 형 죽이고 싶었어.”

“새꺄. 내 얘기는 왜 해.”

“아빠잖아.”

“그건…….”

그렇게 과몰입하려는 순간 몰입을 깨 준 것은 이현종이었다.

그사이 수혁은 술을 시키고 받아먹더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잔만 먹을 정도의 술은 아니라서 그랬다.

딱히 술 먹으려고 온 것도 아닌 셋조차 벌써 각 석 잔씩은 하지 않았나?

“어디 가?”

“그…….”

“왜.”

“내가 실수했네.”

“뭐야.”

이현종의 말에 신현태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잔하기 딱 좋은 바.

그가 띄워 놓은 블로그 제목이 생각나서 그랬다.

“문자 그대로……. 한 잔 했네.”

“어? 뭔……. 뭔 소리야.”

“아냐. 이번 건을 기반으로 해서 내가 담에는 석 잔 하기 딱 좋은 바로 띄운다.”

“이 새끼가 아까부터 뭔 소리야?”

그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수혁은 이미 밖이었다.

언제 불렀는지 대리 기사도 와 있었다.

“여기 들렀다가 병원으로 가 주세요.”

“병원……이요?”

기사도 하윤도 수혁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 되었다.

수혁은 그런 둘을 돌아보며 답해 주었다.

“응. 취해서 환자 보는 건 그렇고. 공부나 좀 하려고.”

“와…….”

“그, 알겠습니다.”

“아니, 그냥 병원으로 가 주세요. 저도 공부하게.”

“어…….”

이제 당황한 사람은 기사 하나였다.

‘술 취하면 공부하는 주사도 있나?’

애써 납득하려고 해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세상에 그런 주사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무튼, 다른 진상 손님에 비하면야 백번 천번 나았다.

어차피 주행 거리별로 돈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시간이 짧아지는 건 좋은 일이었고.

그렇게 둘은 병원으로 향했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우창윤으로서는 착각이 일 수밖에 없었다.

“애 안 왔어?”

“응, 안 왔는데? 오늘 시험 봤잖아. 친구들이랑 놀겠지.”

“아니…… 아닌데.”

“뭐가 아냐.”

“아니, 아냐.”

분명 수혁의 차를 탔는데, 집에 오지 않았다?

여기서 둘이 공부하러 병원으로 갔다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나?

수혁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조태진이나 안대훈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뭐……. 수작질을 못 해? 어? 이렇게……? 어?’

분명 집으로 갔다.

이수혁 집으로 갔어.

사윗감일 수도 있다 보니 나름 뒷조사는 다 해 보지 않았나.

쓸데없이 좋은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 하윤이가 그런 것에 흔들릴 애는 아니겠지만…… 아.’

“당신 뭔 생각해?”

“아, 아니.”

혼자 머릿속이 복잡해서 괴로웠지만 이걸 아내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본의 아니게 딸을 미행했는데 아무래도 이수혁 교수 집에 간 거 같다는 말을 어떻게 하나.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한데.

“자, 자자.”

“그래. 자. 자꾸 뒤척이니까 신경 쓰이잖아.”

“미안.”

“머리카락도 더 날려.”

“그, 그래? 그건 안 되는데.”

머리카락 얘기에 뒤척거림은 멎었다.

하지만 그날 우창윤 교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그리고 일어날 가능성도 없는 일을 걱정하느라 그랬다.

수혁?

수혁이야 늘 그렇듯 12시까지 공부하고, 잠 잘 자고 센터에 출근했다.

“어……?”

센터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스산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다들 쫄아 있었다.

큰돈을 빌렸는데 마침내 그 채권자가 찾아온 느낌이라고 하면 옳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센터장이나 아빠이자 매일같이 회진을 도는 이현종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김승규가 있었다.

“오, 이수혁 교수.”

“웬일이에요?”

“빚 받으러 왔지.”

오랜만에 보니까, 수혁조차도 좀 쫄았다.

바루다도 그랬다.

[뭐죠.]

‘몰라.’

[어제부터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습니까?]

‘나도 몰라, 인마. 보정 안 하냐? 나 손 떨려.’

[아, 미안합니다. 나도 당황해서. 뭔 사람 얼굴이 저렇담.]

그래도 남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바루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덕에 수혁은 스턴에서 곧 벗어나 답을 할 수 있었다.

“빚이요……?”

속으로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저런 인간이 빚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있다고 보는 게 맞나 싶긴 했다.

아빠?

김다현?

왕자님?

별 소용 없을 거 같았다.

괜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무슨 빚 말씀입니까, 교수님.”

그때 후광이 일었다.

안대훈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답게 자신 있게 나섰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김승규는 스스로가 교양 있는 현대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니까.

“자네도 알 텐데. 자네가 제안한 거잖아.”

“네?”

“환자 주면 수술 도와준다고 했잖아.”

“아……. 아아. 그게 빚이구나. 아아.”

“뭐야, 뭔 줄 알았나.”

“아니, 아닙니다. 네, 말씀 나누시죠.”

“뭐야…….”

김승규는 왜 그러는 줄 사실 알았다.

자신도 빚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아 이거 사채꾼 우시지마로 보이겠다 싶어서 그랬다.

아무튼, 수혁도 이제는 완전히 납득했다.

그런 종류의 빚이라면 머, 얼마든지 갚아 줘야지 않겠나.

따지고 보면 실제로 김승규에게 받은 환자들이 어렵기도 했고.

“수술 도와드려야죠. 언제요?”

“어려운 수술이 있어서. 아마 이번 주 또는 다음 주에 할 건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야. 이수혁 교수 시간 될 때 하려고.”

“아, 얼마나 어렵길래요?”

“솔직히 말하면, 돌아가실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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