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화 김승규의 수술 (2)
‘돌아가실 거 같다고 한 거 맞지? 뒤진다고 한 거 아니지……?’
수혁은 방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미심쩍어져서 바루다에게 물었다.
[네, 확실히. 물론 뉘앙스는 뒤진다에 가깝긴 했습니다만……. 상당히 억울해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왜?’
[여기서 왜냐는 말이 나온다는 게 황당하긴 한데……. 김승규 교수, 나름대로 매해 봉사도 나가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근데 그게 진짤까?’
병원 사회 공헌팀을 통해서 나가게 되면 학회 출장처럼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전체 일정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닌지라 며칠 정도는 휴가를 태워야 하긴 하지만…….
아무튼, 대개의 경우엔 그런 식으로 나가는 편이었다.
해외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국내의 산간벽지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의료 접근성과는 별개로 살아온 시대 때문에 낯설어하는 검사들을 시행하는 경우도 그랬다.
허나 김승규 교수가 한다는 봉사는 그런 것들하고도 좀 달랐다.
벌써 수십 년간 매해 가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누와라……. 뭐라고 하더라.
[설마 진짜겠죠.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얼굴을 봐라. 관상을.’
수혁의 눈길에 따라 바루다도 김승규를 바라보게 되었다.
저 무섭게 찢겨 올라간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거짓 또는 악의 유혹만 있을 거 같았다.
[관상학이 어느 정도 통계에 기반한……. 유사 과학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동의합니다만. 김승규와 같은 예외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허나 바루다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지 않나.
깡통이기에 가능한 합리적인 발상이 또 있는 법이었다.
수혁은 상당히 수용적인 편이었기에 금세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바로 앞에 김승규가 빚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도 그랬다.
“그렇군요. 어려운 수술이구나…….”
“응. 근데 방금 동공이 굉장히 수상한 방향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뭔가 좋지 못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절대로.”
“절대라는 말…… 내 앞에서는 다 구라던데.”
“전 아닙니다.”
“뭐……. 그렇겠지. 이수혁 교수가 그럴 일이 없지, 아무튼.”
수혁은 두근두근했다.
혹시 속내가 들켰을까 봐.
허나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김승규 기준에서 고작해야 수초 정도 스턴 걸린 건 엄청 회복이 빠른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일이 없었던 수준이었다.
지금도 보라.
‘으…….’
‘이것이……. 피어인가?’
‘피어는 뭔…….’
‘드래곤 피어처럼 김승규 피어. 오랜만에 보면 효과가 증폭된다는 얘기가 외과에서 돌지.’
‘아.’
안대훈과 수혁을 제외한 모두는 얼어 있었다.
이현종?
그 불세출의 기인은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미안하다 아들을 되뇌면서였다.
이상하게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경찰하고 김승규는 여전히 무섭기만 했다.
아니, 김승규의 얼굴은 나이 듦에 따라 점점 더 흉악해져만 가고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사람이 마흔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저 새끼는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그렇다면 김승규는 어쩌면 세계에 다시 없을 흉악범일 가능성이 있었다.
“자, 봐 봐.”
그렇게 근거 하나 없는 매도와 비방이 속으로만 난무하는 가운데 김승규는 진중한 얼굴로 창을 띄웠다.
등록 번호를 외우고 있는지 곧장 환자 진료 기록이 떴다.
“뭐예요?”
수혁은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케이스 파악이 안 된다는 건 아니었다.
간이식 케이스였다.
환자는 고작해야 30대.
알코올의존증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간이식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뭐가 어려운 거지?’
[그러게요. 아주 흔하디흔한 간이식 케이스인데.]
비극이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기 싫어서, 나이 든 아버지가 간이식을 결심하게 되었다니.
그러나 비극적이라고 해서 흔한 케이스가 어려운 케이스로 둔갑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김승규.
천재?
아니, 얼굴까지 해서 진짜 괴물이라는 평이 알맞은 인간이었다.
이 사람이 일 년에 끼워 넣는 간이 몇 개인지 아나?
100개가 넘는다.
주에 2개씩 한다는 소린데…….
“환자가 키가 작아. 170cm? 아, 165cm네. 거기에 50kg이야. 근데 아버지가 180cm가 넘고……. 120kg의 거구야. 나랑 비슷하더라고. 키는 좀 작지만.”
“아……. 크기가.”
“그래. 뭐 생체 간이식인 만큼 어느 정도 정리를 해서 넣겠지만……. 차이가 너무 커.”
“왜 이렇게 차이가 크죠?”
유전이 되었을 텐데?
키 크는 법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어지간히 떠도는 건 알고 있었다.
우유 먹어야 하고, 잘 자야 하고, 뭐 기타 등등.
하지만 유전이 제일 크다.
아빠 키가 185cm면 콜라만 먹어도 아빠 키 160cm에 우유만 먹는 애보다 클 가능성이 90%가 훌쩍 넘어간다.
수혁의 의문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엄마가 작고……. 아버지가 이상하게 큰 것도 있지. 그 집에서 자기만 크대. 아무튼, 아들이 서울대 나와서 기대가 컸는데……. 중간에 팍 고꾸라지면서 알코올중독이 되었나 봐.”
“아……. 그런 경우가 있죠.”
대한민국은 술에 굉장히 관대한 사회이지 않나?
아마 처음엔 자신이 알코올의존증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다들 이 정도는 마시지 않나 싶었을 거란 얘기.
심지어 그리 잘 찾아보지 않아도, 주변에 자신처럼 매일 술 먹는 애들이 많았을 확률이 컸다.
보수적인 회사에 들어갔다면 더더욱.
오히려 술 잘 먹고 좋아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몇 번이나 입원했었는데……. 그래도 못 고치더라고. 일단 본인이 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볼 생각이 없기도 하고……. 알지? 우리나라는 알코올의존증 관련한 단체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거.”
“그렇죠. 마약도 그렇고. 도박도 그렇고. 중독에 대해서……. 재활이 잘 이루어지고 있질 못하죠.”
“그래, 개인의 의지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지.”
김승규의 말투에 비난하는 투는 섞여 있지 않았다.
그가 어릴 땐, 대한민국은 빈말로도 잘산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지 않나?
북한보다도 못 살았다.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아주 빠르게.
혹은 너무 빠르게.
그렇다 보니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뒤처진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중독에 관한 것이었다.
대중도 그렇고 시스템도 그렇고 중독자들을 비난하거나 처벌하는 건 아주 잘하지만, 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제 끝났어……. 환자 간은. 얼마 못 버텨. 그래서 아버지가 결심을 내렸는데, 이후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야. 수술이 너무 어려워.”
“그렇겠어요. 이건……. 이건 거의 소아에 이식하는 느낌일 거 같은데요?”
“어, 게다가……. 아버지 간이 또 덩치에 비해서도 커.”
“음.”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해 봤네…….’
[그러니까요.]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과 의사로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보니 이런 일에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한데…….
최고의 내과 의사를 넘어 최고의 의사를 고려하고 있다 보니 마음에 걸렸다.
이제 와 테크닉을 익힐 생각은 없었다.
허나 보는 눈은 키워야만 했다.
‘확실히……. 외과 쪽에서 이런 식의 자문을 구할 때는 어지간하면 응해야겠어.’
[옳은 말입니다. 지평이 넓어지는군요. 안 되겠어요. 앞으로 하루 한 케이스씩 요약된 버전으로 수술을 봅시다.]
‘그……. 굳이?’
[그렇게 보다 보면 부스러기라도 남겠지.]
‘아.’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겠나.
바루다의 말이 옳았다.
부스러기라도 남을 거라면 하는 게 옳았다.
지금껏 해 오던 것만으로는 이제 좀 부족했다.
“제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음……. 나도 뭐 어마어마한 걸 기대하는 건 아냐. 하지만,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하네.”
김승규는 자신 없어 하는 수혁을 보면서 장준혁을 떠올렸다.
간담췌 분야의 대가…….
사실 대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좀 어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대가다.
한순간 점핑을 해서 올라가나 싶더니만 실력이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재능이야 있던 친구지만, 글쎄.
‘나랑 비교하면 아무래도 좀 부족하지. 난…….’
김승규는 무려 백강혁에게 인정받았던 재능의 소유자이지 않나.
그때 정신 똑바로 안 차렸으면 꼼짝없이 관짝행 아니, 제자행이었다.
간이식에 뜻이 있다는 말을 전하고 나서야 그래, 그 분야도 중요하지 하고 놔줬잖아?
전 세계를 뒤져 봐도 나만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김승규의 생각이었다.
“장준혁도 그랬으니, 나도 그렇겠지.”
“뭐……. 그러시다면. 저는 시간은 다 만들 수 있어요.”
“위급 상황이 없나?”
“없게 만들어야죠.”
“그게 그렇게 되나……?”
“저는 됩니다. 뭐, 정 예측 못 한 일이 생기면 아빠가 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없네? 센터장이라는 놈이……. 왜 이렇게 게을러.”
“아녜요. 저기……. 저기 있는데. 어? 어디 가시지?”
“있었다고?”
수혁의 손가락 끝에 걸린 이현종이 어마 뜨셔라 하고 뒤로 튀었다.
당연히 모르는 줄 알았는데, 과연 수혁의 시야는 거의 천라지망 그 자체였다.
숨어 있던 거 걸리면 이게 무슨 쪽이란 말인가.
“형 어디 가?”
“저기 김승규!”
“어어. 같이 가.”
뭣도 모르고 수혁이 얼굴이나 봐야지 하고 오던 신현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카페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조태진도 함께였다.
아무리 수혁이 보고 싶었다고 해도 김승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서 그랬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아 오는 느낌은…….
절대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없잖아.”
“있었는데, 없네. 아무튼, 걱정 마세요. 제일 컨디션 좋을 거 같을 때…… 그때 잡고 알려 주시면 제가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좋아. 고마워.”
“고맙긴요. 수술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고려도 할 수 있게 되어서 제가 고맙죠.”
“뭐……. 그렇게 생각하면 좋고. 그럼 그때 보자고.”
“네.”
김승규는 그렇게 떠났다.
그러고 나서야 얼어붙어 있던 나머지 인원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뒤질 뻔했다, 진짜로.
뭐 이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물론 안대훈은 멀쩡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 왔다.
“제가 기억하기로……. 아직 한 케이스 남았던 거 같습니다.”
“뭐가? 아……. 세 개 보내 주시기로 했다고?”
“네.”
“그거야……. 뭐, 받으면 되지. 주실 거야. 그보다…….”
“그보다요?”
“김승규 교수님도 봉사 다닌다고 하시잖아. 놀랍게도.”
“아, 네. 제가 사실 관계를 한번 파 본 적이 있는데 확실합니다. 확실히 다니고 있어요.”
“그건 왜…….”
수혁은 그렇게 물으려다가 말았다.
사실 의심은 하고 있었으니.
“아무튼. 이번에 나도 가 볼까 하는데……. 생각해 보면 몽골도 좋았고. 유니세프랑 일하다 보니까 의미 있는 일인 거 같아서.”
“제가……. 순교자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일정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