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화 김승규의 수술 (3)
외과와 내과.
한때는 한 몸이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두 갈래로 나뉜 지 너무 오래되어 그 기원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과는 아예 환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랐다.
하나는 약 또는 생활 습관 개선 또는 설명 등으로 환자를 안심시키는 방식을 이용한다면 다른 한쪽은 칼이나 다른 무엇이 되었건 간에 하여간, 병을 떼어 내 제거하는 방식의 과니까.
둘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어찌 보면 환상 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흐음…….”
“보통 떼는 건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아요?”
“그렇지. 보통은 그런데……. 오늘 봐, 이걸.”
김승규가 센터에 쳐들어왔던 날로부터 어언 일주일 후.
아버지와 아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웠다.
그사이 둘의 사연에 대해 아무래도 더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들한테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서울대니까. 뭐……. 그렇잖아요. 저희 집도 사실 엄청 기대가 컸고…….
기대가 크다.
수혁으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 또한 기대를 받긴 했지만, 보육원 원장이나 사모의 입장에서 그 기대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에게 있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주의에 주의를 거듭했을 터였다.
-아버지가 엄청 자책을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들도 근데……. 지금 후회를 많이 하고 일단 정신과 진료도 최선을 다해서 받겠다고 했어요. 엄청 울더라고요.
병실에서 울음이 새어 나오는 경우는 꽤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세상의 모든 비극을 한데 빚어 놓은 곳이 병원이니까.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 내과 병동은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두 부자가 마치 가족 치료라도 하듯 같이 부둥켜안고 우는 광경은, 적어도 내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꽤 낯선 것이었다.
-아……. 원래 이렇습니다. 이식외과 하다 보면 엄청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에요. 아직 카데바 이식은 거의 없고……. 사실상 가족 간 이식이 대부분이라…….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많이 안전해졌고, 저희도 기부하는 사람의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장기를 주는 건데요……. 그런 일이 아예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죠.
수혁은 주치의가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마취가 끝난 아버지는 그저 누워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거구 때문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느낌이 일었다.
“이걸 이제 잘 떼다가 옆에다 줘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어려워. 간 크기 차이가 너무 커서…….”
“그럴 거 같습니다. 저도 논문 많이 찾아봤는데……. 보니까 확실히 어려운 작업이 될 거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잘 도와 보라고.”
“네. 그래야죠. 근데 이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무슨 도움이 될는지.”
당연하겠지만, 누워 있는 아버지의 한 열 배 정도 되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김승규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수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
장준혁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외과 의사들 또한 수혁과 단 한 번이라도 수술방에서 조우를 했던 이라면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또 수혁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유난인가 싶을 터였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한숨? 아니, 탄식? 혹은 감탄 정도였으니.
‘그게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말……. 백강혁의 영역이야. 미친놈이야…….’
오히려 이 얼굴을 보고 나니 확실히 자신이 생겼다.
백강혁의 영역에 조금이라도 걸친 사람이라면, 수술에 당연히 도움이 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 그럼 시작할까. 공여자분, 생체 간이식 수술 시작합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김승규는 이미 손 닦고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에 벌써 다른 이들이 일회용 드랩을 다 쳐 놨고.
해서 김승규의 말이 있자마자 수술이 시작될 수 있었다.
수혁은 김승규 뒤가 아니라 보조의 뒤에 받침대를 두고 올라서 있었다.
옆에는 안대훈이 있었는데,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붙잡아 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야 할 때를 대비해서 천장에 달린 무영등에 딸린 카메라 또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칼.”
“네.”
메스를 쥔 김승규는 이제 완연한 집도의 모드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
[분위기가……. 이거 오랜만인데.]
백강혁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게 편견일 텐데, 수혁은 나름 이 순간으로 집도의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지 않나 여기고 있었다.
우연이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랬다.
지이익
김승규의 메스가 환자의 살갗을 슥 하고 그었다.
그러자 피가 옆으로 주르르 새어 나왔다.
“호…….”
이것만 봐서는 이게 잘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적어도 김승규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랬다.
허나 김승규는 알 수 있었다.
수혁의 감탄인지 탄식인지 하는 것이 정말로 정확하다는 것을.
‘방금 잘 들어갔지.’
절개하는 사람은 느낌이 오지 않나?
외과 의사는 일정 부분 장인과도 같은 부분이 있어서 매일매일 그 느낌이 다르다 보니 훨씬 더 예민한 편이었다.
지이이익
절개는 이제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살가죽을 뚫고 들어가 나잇살인지 뭔지 육중한 지방층을 뚫고, 복막까지.
물론 계속 메스를 사용하진 않았다.
이제는 보비였다.
타다다다닥
달리 말하면 전기칼이다 보니 수술장 안에는 연신 타는 냄새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보조의가 끊임없이 석션을 하지 않았다면 역한 냄새가 몸에 밸 수도 있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아……. 진짜 힘들다…….’
[그러니까요. 뭔 냄새가 이렇게 역하지.]
특히 익숙하지 않은 수혁은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오…….”
그러면서도 연신 감탄은 내뱉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짓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 내가 맞았다. 이렇게 하는 게 맞아.’
김승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감탄에 따라 수술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든 날이 될 예정이다 보니, 물 흐르듯 수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불안했다.
원래 떼는 건 맡기지 않았나?
사실 그가 키우고 있는 제자들의 실력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보니 그래도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예외였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설마 내가 애 낳으면 이렇게 되려나? 아마……. 그럴 거 같다.’
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차이가 심하게 나는 덩치.
김승규와 아버지 아니, 나머지 전체 가족도 그랬다.
-주워 왔대?
-아니……. 큰일 날 소리 하네. 애가 너무 커서 수술했다잖아.
-아 맞다……. 그랬지. 근데 어떻게 저렇게 달러? 씨가 다른 거……. 아녀?
-더 큰일 날 소리 하네. 얼굴 찬찬히 뜯어보면 닮긴 닮았어. 너무 크기가 차이가 나서 그렇지.
190cm가 넘는 김승규에 비해 아버지는 170cm.
나머지 가족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명절날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 주워 왔나 싶을 지경이었다.
잘 들어 보니 여기 아버지도 그런 느낌이라고 해서, 김승규는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어…….”
“음.”
그 순간 수혁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펠로우나 레지던트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감히 김승규 수술에서 저런 말을 한다는 건 미친 짓이라서 그랬다.
뒤질 수도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너무 큰가. 근데 이쪽으로 자르게 되면……. 흐음. 어려운데…….’
흔히 생체 간이식, 그러니까 살아 있는 사람에서 간을 떼다가 붙이는 것이 죽은 사람의 간을 떼다 붙이는 것보다 훨씬 쉬울 거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어렵게 말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고…….
쉽게 말하면 하나의 간을 두 개의 기능하는 간으로 나누어 만들어야 하지 않나.
원래 그러라고 생긴 장기가 아닌 것을 인간들이 제멋대로 교정해서 넣어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이 과정이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원래 하던 대로 했다가는 뱃속에 안 들어갈 만큼의 사이즈를 지닌 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오.”
하여간, 김승규는 손의 위치를 조금씩 바꿨다.
틱틱보비에 살짝살짝 전기를 흘려 가면서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수혁의 감탄? 아니,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기……. 아…… 여기만 아니었으면 했는데……. 여기네.’
반대로 김승규는 속으로 탄식했다.
피해 가고 싶은 지점을 째야 하는 순간이 와서 그랬다.
“씹…….”
저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이미 수술에 몰입한 채, 옆 방에 있는 환자와 그간 읽었던 논문 데이터를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는 수혁을 제외한 모두가 또 한 번 움찔했다.
비단 펠로우와 레지던트들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간호사들도 그랬다.
드르륵
잠시 수술방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 들어왔던 수간호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나갔다.
딱히 직접적으로 뭐 당해 본 적은 없는데도 그랬다.
사실 거의 매일 얼굴 마주치는 것만 해도…….
직원 복지 차원에서 뭔가 해 줘야 하긴 했다.
그만한 인상이니까.
“뭐 해. 여기 쨀 거야.”
“아, 네.”
“네? 질문 없어?”
“질문……. 여기로 들어가면 근데 포털 베인이나 이런 거…… 어떻게……. 너무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렵지. 욕 나올 만큼. 하지만……. 크기를 고려하면 여기가 최선이야. 최선이래.”
“이래?”
“뭐.”
“아닙니다.”
다행한 일은 김승규 밑에서 펠로우를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담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의 밑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 그랬다.
실력도 실력이고 또 재능도 재능인데…….
눈도 못 마주쳐서야 뭘 배우겠나.
지금 들어와 있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담이 발군이다 보니 방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했다.
아무튼, 그렇게 보조의들 또한 준비를 갖추게 된 후에 수혁이 지켜보던 곳으로 보비가 들어갔다.
치지직
타는 냄새와 함께 간이 갈라지고 있었다.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째고 지지고 하는 것의 실력이 어마어마해서 그랬다.
김승규지 않나, 김승규.
‘미친……. 진짜 잘하네.’
[그러니까요. 방금 절개는 절묘했습니다. 방향이나 이런 것들…….]
‘그러니까 말야. 확실히 고수는 디테일에서도 다르단 말이지?’
[좋군요.]
수혁마저 감탄할 지경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감탄을 하는 주체가 그뿐만이 아니란 점이었다.
‘분위기가 좋다…….’
‘화를 안 내……?’
‘뭔가 빠른데……?’
일단 보조로 와 있는 사람들이 다 그랬다.
물론 이게 수혁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수혁도 이제 짬밥과 지위가 장난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에 외국 갈 때 잡아 가야겠다.’
김승규가 그렇게 다짐하게 되었다면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