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화 김승규의 수술 (4)
“좋아…….”
아들의 배에 간이 들어가 자리하는 순간.
장기를 살짝 밖으로 꺼내 놓고 해야만 하는 술기는 다 한참이었다.
사실 장기라는 것이 공기에 직접 노출이 되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손상이 시작되는 데다가 이건 애초에 자기 장기가 아니다 보니 술기고 나발이고 노출되는 시간 자체를 줄여야 하는 게 맞았다.
때문에 밖에서 시행하는 술기는 솔직히 술기라고 해 봐야 실로 옹색한 수준에 불과하기 마련인데…….
‘미친……. 왜 이렇게 빨라 오늘?’
‘나 오늘 실수한 거 없지?’
‘네? 아……. 모르겠습니다. 근데 별말씀 없으시잖아요.’
‘하긴.’
오늘은 예외였다.
손에 모터를 달았나 싶은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금 이 속도를 표현함에 있어 수년간 외과에 갇혀 삭막한 생활만 해 온 임상 강사에게는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김승규는 좁다란 환자의 배가 아니라 밖에서 대강의 조작을 다 하고 들어왔다.
“후우……. 몇 시간 됐지?”
“네? 지금 한 한 시간…….”
“아니. 수술 시작한 지…….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말이야.”
김승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터였다.
수술 시작하고부터 지금껏 제대로 숨을 쉬어 본 적도 없었으니.
“아……. 옆방까지 하면 지금 한 3시간?”
“3시간?”
“네.”
“칼 들어가고?”
“아, 아뇨. 마취부터입니다.”
“허.”
솔직히 말하면, 처음 한 30분가량은 수혁의 호오, 음에 엄청 신경을 쓰고 있었더랬다.
그러려고 들어온 것이었으니까.
허나 그다음부터는…….
‘무아지경……? 아니, 아냐. 나 같은 프로가 그런 아마추어 같은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어려운 수술에 매달릴 수 있었던 건…….
호오, 음에 신경을 쓴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몸을 맡겨서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그 소리에 맞췄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허.”
이번에 새어 나온 숨에는 어처구니가 담겨 있었다.
스스로 맥이 탁 풀릴 만큼이나 대단한 결과물이었다.
김승규는 스스로 최고라 여기는 사람이었다.
건방져서가 아니라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잘했다.
헌데 시간도 압도적으로 짧다.
‘백강혁이 빙의했다고 해도 믿겠네.’
최고 위에 괴물, 즉 백강혁이 직접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왜……. 갑자기 날 보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정말 무섭게 생겼네요.]
‘그러니까. 호랑이 눈이야…….’
[사자 눈 아닐까요?]
‘아무튼, 사람 눈은 아냐.’
[네, 동의합니다.]
그걸 가능케 해 준 수혁을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눈빛을 담담히 담아내는 모습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사람 눈이 아니니 뭐니 하는 생각 따위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고 살았다가는 제명에 못 사는 얼굴이지 않나.
대강 넘길 줄 안다, 이 말이었다.
‘미쳤다, 이건.’
해서 김승규는 오롯이 놀라기만 할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숫제 감동이라고 해도 좋았다.
외과 의사도 아니지 않나.
물론 외과 질환도 어지간히 잘 보고 있다고는 들었다.
심지어 상당히 여러 번 큰 도움을 받았다고도 들었고.
그럼에도 단순 지식과 술기는 아예 다른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눈이 좋네 어쩌네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이건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설마 조태진……. 그 또라이의 말이 맞다는 건가?’
김승규는 신에 대한 고찰을 아주 많이 해 본 사람이었다.
사실 대학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의료진으로 있다 보면,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신의 존재를 떠올려 보기 마련이었다.
특히 외과 계열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을 단 두 손으로 틀어막아야 하는 경우도 많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중에서도 김승규는 특별했다.
그는 그냥 얼굴 때문에도 고민을 많이 했으니까.
대체 신은 왜 이런 얼굴을 내게 주었을까.
그냥 얼굴만 주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그에 실로 걸맞은 체형까지 주셔서, 학창 시절엔 거의 무슨 공포의 군주가 따로 없었다.
-어어, 조심!
-죄, 죄송합니다!
-히이익
사실 지금도 그랬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신이란, 불합리한 무언가의 형상화라 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맨날 아픈 사람들, 그야말로 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과 그 가정에 벌어지는 비극들을 보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되었는데…….
외과보다도 더 많은 비극을 접할 수밖에 없는 조태진이 그런 게 아니라 했다.
적어도 의술의 신이 있다면 그만은 선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그의 사자가……. 어쩌면 본신이 수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너무 진지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하길래 이 친구 농담 진짜 잘한다 싶었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막말로 자기랑 대면한 채 대화를 1분 이상이라도 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보니 그대로 거기 있었다.
-교수님, 보세요. 장준혁 교수도 수혁이 세례 한번 받더니 날아오르잖아요. 우리 세계에서 날아오른다는 게 뭡니까?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선한 신이죠.
그러니까 일단 신의 사자니 뭐니 하는 말부터가 전제가 틀린 거 아닌가?
-잘 지켜보세요. 아마 믿음의 단초가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김승규는 불현듯 자신이 좀 불충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의, 아직은 젊다는 말보단 앳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청년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불충한 게 아니라 불경한 건가……?’
김승규는 그렇게 혼란에 빠졌다.
그런 그를 깨워 준 것은 임상 강사였다.
김승규와 벌써 수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고, 돌아오는 해에 교수 임용이 확정된…….
그러니까 닳고 닳은 이였다.
그래서 말을 감히 꺼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교수님.”
“음.”
그럼에도 이 짤막한 반응에 바로 쫄았다.
겁이라는 것이 몰려오는 느낌?
하지만 여기서 입을 다물 인물이었다면 수련도 못 받았다.
“수술……. 진행하셔야 합니다.”
하여간,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참으로 생경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세상에 김승규에게 수술 진행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다니.
이런 적이 있었나?
없었다.
김승규는 수술방에서도 밖에서도 거의 수술만 생각하는 위인이었으니.
농담조로 자기가 수술 말고 할 게 뭐 있겠냐는 말도 하는데 말투가 농담조일 뿐 거의 사실이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아, 그렇지. 그래. 흐음. 아주 잘되고 있어, 그렇지?”
“네? 아, 그렇습니다. 교수님. 정말 잘되고 있습니다.”
“좋아…… 가지. 이수혁 교수. 아까처럼, 부탁합니다.”
그런 김승규가 존대를 했다.
이수혁에게.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장준혁처럼 김승규 교수 또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도움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호오, 음이다 보니…….
그리고 집도의가 아닌 이상 저 요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보니…….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네, 좋죠. 저도 즐겁습니다.”
헌데 이 대화까지 듣고 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어쩌면……. 우리……. 우리끼리 수술 동영상 돌려 보고 할 게 아니라 이수혁 교수님 한번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임상 강사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저도 모르게 살짝 속삭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레지던트 4년 차가 답을 해 주었다.
역시나 속삭이는 말투였다.
김승규가 수술에 집중하고 있고 또 호오, 음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 속삭일 때 그것이 자기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절대 자기 욕일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에 더 그랬다.
‘그러려면 케이스 갖다 바쳐야 합니다. 조공이나 공양이라고 부르던데요…….’
‘케이스 공양?’
‘네.’
‘그런……. 그럼 우리 교수님도 바쳤어?’
‘제가 알기로 두 개요.’
‘이런 시발……. 그런 꼼짝없이 나도 바쳐야겠구나.’
김승규.
얼굴만 봐도 그가 살아온 궤적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사생활이 베일에 감춰져 있긴 했다.
누구도 병원 밖에서도 김승규를 마주치고 싶어 하진 않았으니까.
얼굴만 봐도 그리 좋지 못한 곳에 가고, 좋지 못한 일을 할 것이 자명하지 않나.
벌써 수십 년간 쉬지 않고 봉사를 해 온 것 또한 정말 좋지 못한 짓에 대한 남몰래 하는 회개 같은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런 그가 빼앗지 않고 정당한 거래를 했다면 이수혁 또한 만만한 사람은 아니란 얘기가 되었다.
‘하긴……. 저 나이에 부센터장…….’
‘저 다리만 안 다쳤으면 전국구였을 거란 얘기가 있어요.’
‘정말?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사람 담력이. 아까 교수님이랑 눈 마주쳤는데 웃는 거 봤냐? 진짜 웃던데? 말이 되냐?’
‘말이 안 되죠……. 같은 악마거나 적어도 악마한테 영혼을 팔았을 거란 얘기도 있어요.’
‘그렇군…….’
내과의 일부가 수혁을 신격화하고 있다면 외과는 김승규를 악마화하고 있었다.
둘 다 경외심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서로 통하는 점이 꽤 있었다.
“좋아. 다 끝났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자, 수술이 끝나 버렸다.
수혁은 손목시계 대신 벽에 걸린 수술방 시계를 바라보았다.
6시간.
여기 와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저기서부터 죽 이어진 수술이 6시간 걸렸다.
칼 대고부터도 아니고 마취부터.
“미쳤군.”
“와……. 교수님, 이거.”
“학회 발표하도록 하지. 혹시 의심하는 새끼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유튜브에 원본 올려놔. 학회지에 큐알로……. 알지? 일부 공개던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승규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한 업적에 도리질을 치다가 이내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기쁜 일일 테니.
‘이런 얼굴은 기뻐해도 무섭구나?’
[데이터화할까요?]
‘아니. 괜히 떠올리면…….’
[네, 성능만 떨어지죠. 지우겠습니다. 실시간 삭제 들어갑니다.]
‘좋아.’
수혁은 영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그를 응대했다.
“이수혁 교수.”
“네. 교수님.”
“알지? 나 스리랑카 쪽 다니는 거.”
“아……. 알죠.”
“거기가 이번에 코비드 사태 이후로 더 개판이 됐어. 나라가 아주 망하기 직전이래. 거기 있는 애들이야 어려움이 말할 것도 없겠지.”
“으음.”
봉사라.
공교로운 일이었다.
수혁도 마침 관심이 생길락 말락 하고 있었으니까.
그 동기는 완전히 다르긴 했다.
이쪽은 케이스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컸다.
물론 비극의 편린이라도 마주한 탓에 어느 정도 그쪽으로도 마음이 가긴 하지만…….
“어때? 같이 가지. 이현종도 잘 아는 지역인데……. 이참에 같이 가면 어떤가 싶은데.”
“아빠요?”
“어.”
“저는 좋은데……. 아빠가 갈지.”
“하하! 잘 모르는구나. 나랑 현종이 친한데.”
누가 친해?
수혁은 김승규 이름만 나오면 속이 매스꺼워진다는 아버지를 떠올리면서도, 뭐라 할 말을 찾진 못했다.
‘미안해, 아빠.’
그저 사과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