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15화 (1,115/1,303)

1115화 과발모 (1)

전문의 시험은 보통 2차 또는 3차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1차는 전체 과가 다 같이 보는 필기.

2차는 실기 시험.

3차는 면접.

물론 3차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고, 내과도 그랬다.

사실 대학 병원에서 몇 년 동안 무난하게 잘 지내고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었다는 건 어느 정도 면접을 통과했다고 봐도 좋지 않겠나.

그럼에도 이상한 사람들이야 있긴 한데…….

몇 년을 속일 수 있던 사람을 고작 몇 분 남짓한 면접에서 거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잘 봤지?”

“이제 와서요?”

하윤은 발표날에도 수혁과 있었다.

이번만큼은 여러 지인들의 조작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약속을 잡았다.

물론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러니까 이현종이 센터의 당직 일정을 바꿔 놓기는 했다지만…….

하여간, 수혁은 본인이 예약한 식당에 하윤과 단둘이 들어와 있었다.

“그게, 안대훈은 뭔가 좀……. 몰아붙일 수가 있는데 너는 좀 그래서.”

“아……. 느낌이 다르다고요?”

“어, 그래. 좀 달라.”

하윤은 식전 빵으로 준 흰 빵을 잘게 조각내 먹고 있는 수혁을 보면서 안대훈을 떠올렸다.

‘그 선배랑 내가 느낌이 조금만 다른가……?’

그래?

그렇다고?

어떻게 봐도 다른 사람 아닌가……?

아무튼, 그쪽은 몰아붙일 수 있고 이쪽은 아니라 하니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야 물어보네.”

“뭐…….”

하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강제로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만점 받고 싶었다.

정말로…….

수혁과 안대훈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었다.

‘어…….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안대훈 선배를 닮고 싶어 하나……? 아닌데? 아니지? 그치?’

안대훈.

좋은 의사다.

실제로 그가 주치의를 맡거나 지정의를 맡게 되면 환자들이 다 좋아했다.

한 수혁 두 수혁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머리 뽑아 가면서까지 노력하는 의사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직도 수혁이 있던 보육원에 봉사도 다니고…….

물론 그것도 다 수혁 때문이긴 한데, 하여간, 사람이 뭔가 하고 있으면 좋은 사람 아닌가.

‘그래도 닮는 건 좀……. 그래, 난 이수혁 교수님 닮아 가는 거지?’

하윤은 잠시 스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있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수혁처럼 이런 상황에 아주 잘 적응이 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실제로 봐도 딜레이가 있었다.

‘뭔 생각을 한 걸까?’

[모르겠습니다.]

‘아까부터 왜 자꾸 모르겠다는 말만 해?’

[우하윤이 이 만남에 응한 거부터가 미스터리니까요. 모든 데이터가 수혁과 하윤은 이어질 수 없다고 하는데…….]

‘모든 데이터?’

[아, 인터넷에서 봤잖아요. 친구 존에 들어가면 그 이후로는 절대 연애 못 한다고.]

‘아……. 너무 그럴싸한 말이었지. 근데 어쩌면 나랑 하윤이가 사실은 친구 존이 아니었던 거 아닐까?’

[그 긴 세월 동안요?]

‘모르겠다. 걍 조용히 하고 있어.’

[네.]

수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가속 대화를 시행했다.

원래 환자가 아주 위급할 때만 하는 일인데…….

이유는 간단했다.

“머, 머리 아프세요?”

“아, 아니. 괜찮아.”

“바쁘신데 저 때문에 괜히 나와서 드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괜찮아. 진짜로.”

“그래요. 아무튼, 원래는 만점 받고 싶었거든요?”

“어, 그건 무리지. 나도 원안 그대로 당일 봤으면 만점……. 어려웠을 거 같은데.”

“그렇다면서요. 이현종 교수님도 그러시고……. 아빠도 그렇고. 정말 어렵긴 했던 모양이에요.”

하윤은 잠시 머리를 짚었던 수혁을 보며 걱정의 말을 쏟아 내다가 이내 시험 성적 얘기로 돌아왔다.

둘의 그러한 모습은 다른 자리에서도 정말 잘 보였다.

아무래도 수혁이 예약한 곳이다 보니 아주 프라이빗한 곳은 아니어서 그랬다.

물론 가격대가 싸거나 한 곳도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아직 수혁에게 그 정도의 센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우리…….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거긴. 대 태화 의료원과 아선의 친목 도모지.”

“그걸 두 병원에서 애매하게 먼…… 그것도 아주 파스타 집에서 우리 둘이 해요?”

“어. 누누이 말해 두지만 저건 우연이야.”

“우연은 무슨!”

“그래서 싫어? 이대로 두고 나갈 거야?”

“아, 아뇨. 그건 아니죠. 그렇지 않아도 제가 좀.”

우창윤 교수는 신현태를 보다 말고 전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시험 보던 당일이었다.

그날…….

분명 둘이 같이 차를 나갔다.

그런데 하윤이가 집에 되게 늦게 왔다.

거의 뭐 2시가 다 되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어볼 수도 없고.’

요즘 부모님들은 개방적이라 막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우창윤이 개방적인 곳은 머리뿐이다 보니 그러기도 어려웠다.

“좀 뭐. 내가 모르는 사안이라도 있나?”

“아……. 그게.”

수혁만 직급이 오르고 경험이 쌓이겠나.

세상이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신현태도 원장이 된 지 벌써 2년.

경험이 쌓이고, 사람 만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만큼이나 눈치가 비상해졌다.

우창윤의 눈빛을 보자마자 이 새끼 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다 알고 나온 거잖아? 나오란다고 나온 거 보면…….’

보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했더랬다.

우창윤 정도 되면 엄청 바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심지어 올해 3월부터는 기조 실장 임기를 끝마치고 마침내 연구 부원장으로 등극할 거라는 말도 돌았다.

아마 정작 우창윤은 모르고 있겠지만…….

이현종이 물려주고 자신도 직접 키운, 심지어 왕자님의 인맥과 돈이 들어간 프락치 덕에 신현태가 먼저 알 수 있었다.

이사회 움직이는 거 보면 어느 정도 유추도 가능했고.

하여간, 그런 양반이 신현태랑 단둘이 어란 파스타 먹으러 나왔다?

어란 못 먹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닐 테니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제가 어란을 엄청 좋아해서 온 거긴 합니다. 공짜기도 하고.”

“아, 진짜로?”

“네.”

“근데?”

예상이 빗나가기도 하는 법이었다.

아직 신현태가 정치력으로 만렙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게다가 세상엔 미친놈이 너무 많았다.

세상엔 어란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니…….

다만 신현태도 많이 늘긴 해서 얼굴에 티가 나진 않았다.

덕분에 우창윤은 그저 담담히 자신이 의심하고 있던 바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잉……. 진짜로……?”

“네. 그렇다니까요?”

“설마 둘이 공부하러 병원 갔을 리는 없잖아?”

“그럼 미친놈이죠. 그런 새끼한테는 딸 못 줍니다.”

“그렇게 막 어? 이렇게 빨리 자기 오피스텔에 딸 꾀어내는 놈은 괜찮고?”

“미친놈보다는 약은 놈이 낫죠.”

“하긴, 그것도 그래.”

둘은 의기투합했다.

애초에 수혁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우창윤도 남들 못지않지 않나.

시험 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법인데, 심지어 우창윤은 몇 번인가 실제로 도움도 받았다.

하윤?

신현태는 좋은 교수고 또 스승이었다.

하윤에 대한 애정이 우창윤 같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이뻐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러니까 둘 사이를 이렇게 강제로 부딪치게 만들면서까지 진전시킨 거 아니겠나.

“뭔 얘기하고 있는 거 같습니까? 도청은 안 해요?”

“도청이라니.”

“근데.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아, 요새 탐정 학원이 있더라. 거기서 독순술을 배웠어.”

“네에……?”

그럴 거면 그냥 도청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창윤은 간신히 그 말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참은 보람이 있었다.

곧 신현태가 둘의 대화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어때?”

“맛있어요. 매번 어떻게 이렇게 찾아요?”

“어……. 뭐 물어봤지. 원래는 칼국수 집에 가려고 했는데, 조성국 선생 알지? 1년 차. 여기 살았다고.”

“아, 네.”

“그 친구가 혹시 여성분이랑 가는 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럼 여기로 가라고 하더라고. 나중에 뭐라도 사 줘야겠어.”

“아하.”

우창윤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꼭 성대모사까지 하셔야 하는 거예요?”

“왜? 나 잘하지 않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저씨가 딸처럼 말하니까 좀 제가.”

“그냥 참고 들어.”

“네…….”

별 소용은 없었다.

게다가 둘의 대화가 막힘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둘이 실랑이 피울 시간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네.”

“영화 개봉한 거 알아? 그, <나이브스 아웃 2>라고.”

“어, 저 그거 알아요! 1은 봤어요. 엄청 재밌던데.”

“그거…….”

“네, 그거요?”

“아니, 그게 007보다 멋있다고 하더라고. 르누아 블랑이?”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엄청 재밌다던데.”

“네.”

대화를 옮기던 신현태가 잠시 탄식했다.

“하. 수혁아. 그냥 보자고 하면 안 되냐!”

“오피스텔에 간 거 아니고 진짜 병원 간 거 아냐, 이거?”

“으음…… 그럴 수도.”

“그런 놈이면 좀 그런데.”

“자네가 교육을 좀 해 보든지.”

“저요?”

신현태는 저요? 하고 말끝을 올려 묻는 우창윤의 머리를 저도 모르게 올려다보았다.

“왜, 왜요.”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나름 괜찮았잖아.”

“이렇게 되다뇨. 제가 어떻게 됐습니까.”

“아무튼, 좀 놀았잖아. 의대 수준에서 논 거지만.”

“그…….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그럼 제 노하우를 전수하라고요?”

“어.”

“으음…….”

나 같은 놈에게 딸을 줄 수 있나?

그건 좀…….

“어차피 다 배우지도 못해. 좀 알려 줘. 영화도 못 보게 생겼어!”

“그, 알겠습니다. 일단 잠시만요. 나이브스 아웃?”

“어.”

“그거 지금 예매표 원래 아내랑 보려다가 못 보게 됐는데 혹시 볼 사람 없냐고 하윤이한테 보냈습니다.”

“오. 잘하는데? 오. 보기로 했네.”

“잘됐군요. 자, 그럼 일어나죠.”

“왜? 급한 일 있어? 만난 김에 아선 분위기나 좀 털어 보지.”

우창윤은 뭔 소리냐는 얼굴로 벌써 몸을 일으켰다.

신현태의 어깨를 툭 치면서였다.

“시간 없죠. 영화 봐야지.”

“으응……?”

“저 이수혁이 재밌다고 하는 거 보면 저거 개수작만은 아닐 겁니다. 일단 이수혁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면 엄청 재밌는 영화일 수밖에 없어요. 아니면 의학 영화거나. 근데 보니까 탐정 영화네. 그렇다면…….”

“아. 둘이?”

“네.”

“그……. 으음.”

둘이 영화를 본다고?

우창윤하고?

이게 뭐 적과의 동침 이런 건가?

“우리 사돈 될 사입니다, 사돈. 먼저 친해지면 좋지. 영화는 제가 쏠게요. 어란 진짜 맛있게 하네, 이 집.”

“아, 아아. 그래. 사돈. 그래. 가지. 근데 이러는 거 알면 형이 싫어할 거 같은데.”

“이현종 교수님?”

“어. 둘이 사돈이지 사실.”

“이현종 교수님만 계셨으면 저도 좀 힘듭니다……. 막말로 이현종 교수님이 그게…….”

“그래, 더 말하지 말지. 그 형 얘기는 이상하게 없을 때 하면 무조건 뒷담화가 되거든.”

“아, 네네.”

그렇게 넷은 둘 둘이 찢어진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들뜬 얼굴을 하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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