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화 과발모 (3)
“하아…….”
“이게 대체.”
원래 소란죄는 단순 훈방 조치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좀 상황이 달랐는데, 신고가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마약 관련 의심 신고도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하필 강남 경찰서라 더 그랬다.
옛날 같으면 마약? 뭐래? 하고 넘겨도 좋았을 테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지 않나.
그중에서도 강남은 한 달 검거자만 몇 년 전 전국 검거자보다 많을 정도로, 그야말로 마약이 창궐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일단 머리카락 뽑아서 검사는 나갔습니다만…… 아닐 거 같긴 하네요.”
담당 형사가 측은하다는 얼굴로 철창 안에 갇힌 신현태와 우창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살면서 범죄는커녕 험한 일도 한번 안 겪어 봤을 거 같은 사람들이지 않나.
일단 와서도 달달 떨면서 묻는 말에 참으로 성실하게 답을 했더랬다.
“구, 구라 치자고 했잖아요!”
“막상 형사님 보니까 안 되더라…… 미안해요.”
묻지도 않은 것까지 시시콜콜 다 말하는 사람들은 오랜만이었다.
요새는 어디서 본 게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경찰이 우스운 건가…….
오자마자 입 다물거나 아예 지랄하는 놈들이 태반이지 않나?
변호사는 또 왜 그렇게 찾는 건지…….
“이제, 이제 어쩔 겁니까. 아니, 세상에. 내가 여기.”
“나라고 경험자겠어요?”
“전에 경찰서 가긴 했잖아요.”
“언제. 아. 그때…… 그때는 좋은 일로 갔지…….”
아동 학대범 잡아서 왔을 때.
그때는 좋았더랬다.
사건도 해결했고 또 아이도 구했으니.
이현종이 입양하려고 했던 건 나이 때문에 불발되었다지만, 다른 이에게 입양이 된 후로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더랬다.
“아, 씨…… 어쩌지. 나 안 그래도 정적이 많단 말입니다…….”
우창윤이 한숨과 함께 벽에 기대었다.
반대편에 있던 술 취한 아저씨가 움찔했지만, 그 이상 움직이는 법은 없었다.
혹시 숨 멎어 가는 거 같으면 뭐라도 해야 하니 잘 봐야겠군 하면서 우창윤은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 어린 나이에…… 어? 올라왔단 말입니다.”
“그런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적이 많을 법도 한데.”
“아니, 잘난 걸 어쩌라고.”
“흐흐.”
이현종과 참 닮았군.
신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받았다.
그나마 그때, 그러니까 아동 학대 사건 해결했을 때 봤던 형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좀만 기다려 보세요. 일단 뭐…… 절차만 해결되면 보내 드릴 테니까. 그러게 왜 알 만한 분이…….”
“그러니까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통화 잠깐만 하겠습니다.”
“네네.”
이 나이에 통화도 허락받아야 한다니.
확실히 죄를 지으면서 살아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모범 시민이 되기로 결심하면서, 신현태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제기랄…….’
신세 졌으니까 한 번은 도와준다고 했던 분께 전화를 걸고 있었다.
“네, 원장님. 어쩐 일이시죠?”
“아, 그, 회장님. 제가 그…….”
“네, 말씀하세요.”
“제가…… 경찰서에 있습니다.”
“네? 누구한테 맞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 보낼게요.”
“아뇨, 제가 그. 소란죄로.”
“네에?”
김다현 회장은 이게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전화기를 들여다봤다.
신현태가 맞았다.
차라리 이현종이었으면 바로 수긍했을 터였다.
그 사람은…….
그 사람도 교수도 전직 원장이긴 한데…….
어쩐지 그럴 거 같았단 말이지.
“제가 경찰서에 있습니다. 이거 한 번만 조용히. 좀…… 혹시 기자라도 알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
“큰일이죠. 제가…… 지금 어딨죠?”
“강남 경찰서입니다.”
“마침 근처입니다. 제가 갈게요.”
“네? 안 그러셔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뇨. 구경이라도 가야죠. 아무튼, 좀만 기다려 보세요.”
“아니, 그게.”
신현태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미 전화가 끊겨서이기도 했고 또 김다현이 오면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으로 인한 안도의 한숨이기도 했다.
“누구…… 누구 부른 겁니까?”
“김다현 회장이요.”
“네? 아니, 회장님이 오신다고?”
“그 정도는 되어야 조용히 되지.”
“이미 조용히 될 거 같지가 않은데?”
“그럼 여기서 밤새 있을 거예요? 그러다 소문이라도 나면.”
“아니…… 그건 그렇긴 하죠.”
우창윤도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일이 왜…….
그냥 딸내미 데이트 구경 갔던 건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끝까지 봤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보니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야야! 뭔 일이야!”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 위에서부터 소란이 일었다.
그래 봐야 아까 영화관에서 신현태, 우창윤이 소리치던 것보다는 조용했다.
그제야 둘은 자신들이 꽤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어쩌면 벌을 받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서장님 오신다는데. 누구 잡아들였어? 뭐야?”
“네? 아…… 저기 원장님.”
“원자앙……? 어디 원장.”
반장쯤으로 보이는 형사는 원장이라는 말에 강남 바닥에 즐비한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들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벌어들이는 쩐이 쩐이다 보니 이상한 마음 먹은 놈들은 진짜로 이상한 짓들까지 벌이곤 했다.
실제로 마약 중 일부가 그리로 흘러들어 간다는 말도 있었다.
해서 도끼눈부터 뜨고 보니, 손가락 끝에 신현태가 있었다.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 같진 않은데……?’
잘생기진 않아도 대개 스타일이 확실히 좀 말쑥하지 않던가?
트렌디하게 입거나 하여간 저런 멋대가리 없는 정장 차림은 아니었다.
위장일 수도 있겠지만…….
“태화 의료원 원장님입니다. 보신 적 있으시잖아요.”
“어? 어어. 어? 진짜네? 아니, 왜…….”
이런 양반이 여길…….
그리고 왜 갇혔어?
“그게 마약 신고까지 받아서.”
“약을 하셨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아니…… 왜 그러셨대?”
“제자가 수석 했답니다. 전문의 시험.”
“하이고…… 너무 좋아도 그렇지 그걸 거기서. 일단 나오세요. 야, 너는 시발 FM대로 처리해도 유분수지 이분이 여기 풀어놓는다고 뭘 하겠어.”
반장은 일단 직권으로 둘을 꺼내 주었다.
하지만 보내진 못했다.
그럴 만한 권한은 서장밖에 없었으니.
“가, 감사합니다.”
“아뇨, 뭐. 이게 법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원칙이라. 더 이상은 저도.”
“괜찮습니다. 잘못했는데요, 뭐.”
“이렇게 인정을 하시니 좋군요. 진짜 나쁜 놈들은 절대 안 했다고 뻗대는데.”
반장은 허허 웃더니, 정말 별일 다 보겠다는 얼굴로 신현태와 우창윤을 번갈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아무리 봐도 옆에 있는 사람도 교수라는데 너무 좀 행색이 무방비라서 그랬다.
“머리, 그거 원래 이러고 다니십니까?”
“아뇨. 가발 씁니다.”
“근데 이걸 왜……?”
“아까 머리 검사할 때…… 세 가닥…… 뽑혔습니다…….”
해서 물었더니 우창윤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법이 잘못했네.’
얼마 있지도 않은 사람 머리를 뽑아?
다른 체모를 뽑지, 차라리.
그리고 벗겼으면 다시 씌워 줘야지…….
이 사람도 체면이 있는 성인인데.
“어, 어딨어!”
“여깄습니다.”
“이거…… 이거 왜 이래.”
“아, 저 새끼가 방석인 줄 알고.”
“미친놈들이. 일단 이거…… 이거 될까요?”
반장은 구겨진 가발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우창윤은 답 없이 받아 들더니, 툭툭 털어 내고는 가발을 썼다.
동시에 상당히 있어 보이는 중년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처방 받은 약 열심히 먹어야겠다.’
반장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비포 애프터를 직관한 덕에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간 귀찮다고 안 먹었던 나날마다 빠진 머리카락이 여럿일 거란 생각이 들자 덜컥 두려움마저 일었다.
끼이익
그렇게 있으려니 서장이 도착했다.
“이게 뭔 일이냐?”
그러고는 반장이 했던 짓을 고대로 반복했다.
“아휴, 이거 참…… 귀한 분들이. 도망의 가능성이 없으니 풀어 드릴 수는 있는데.”
“네.”
“일단 회장님…… 저기 오시는 거 같은데.”
마침내 김다현도 왔다.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현종……? 현종이 형?”
“네? 진짜요? 농담하지 마세요. 나 오늘 충분히 고통받았습니다.”
신현태의 말에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우창윤이 두리번거렸다.
아직 제대로 쓴 상태가 아니다 보니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반장과 서장은 그 모습을 정면에서 본 탓에 입가를 씰룩거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상대가 느낄 고통을 생각하니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진짜네?”
“그러니까요. 거참…….”
그사이 이현종이 김다현과 도착했다.
“둘이 왜…….”
“아, 지인 진료 봐 주느라. 심장이 막혀서 뚫어 줬지.”
“아.”
그래, 이현종이 명의지.
김다현이고 누구건 간에 심장 쪽으로 부탁할 일이 생기면 이현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현종은 현재 태화에서 가장 밀고 있는 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거 참. 실제로 별문제 아니기도 했으니까 별문제 없을 겁니다. 검사 결과 나오면 연락은 갈 텐데…….”
김다현은 서장과 인사를 나눈 후, 이쪽을 돌아보았다.
“안 했죠?”
“뭐요?”
“약.”
“아, 안 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신현태의 답에 깔깔 웃던 김다현은, 우창윤을 마주했을 땐 무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반장과 서장은 과연 회장은 다르단 생각을 했다.
어찌 사람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아까보다도 더 삐뚜름해졌는데.
“너는 머리가 왜 그러냐?”
그에 비해 원장은 좀 되기 쉬운 건지 뭔지, 이현종이 낄낄 웃으며 물었다.
우창윤은 눈에 띄게 당황한 채 머리를 매만졌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자마자 주저앉았다.
“울어? 왜 그래. 아유. 괜찮아?”
이현종은 별 악의 없이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던 참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위로도 해 주었다.
그게 우창윤에게는 더 상처가 되긴 했지만.
“아무튼, 얘기 들었어요. 원장님. 이번에는 1명만 뽑기로 했다고요?”
그렇게 상황이 정리된 후에야 일행은 차에 올랐다.
우창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딱히 이 안에서 할 말이 없기도 했거니와 할 말이 있다고 해도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 김다현이 물었고, 신현태는 바로 알아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도 기분이 나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어쩌겠나.
일단 나왔으니 다행인 것을.
“아, 네. 대신 1년 차들 다 2년 차로 올립니다.”
“그거 동의는 된 거죠?”
“물론입니다. 저희 조건이 워낙 좋아서. 그리고 다들 많이 배우고 있는지 엄청 좋아합니다.”
“그래, 그렇군요. 다행인데…… 그중에 혹시 해외 파견도 괜찮을 사람이 있을까요?”
“당장 올해요?”
“아뇨. 내년이죠. 늦으면 내후년.”
“어…… 그건 근데.”
“알죠. 근데 이현종 원장님이나 이수혁 교수나 그런 것을 세밀하게 살필 사람이 아니잖아요. 카리스마가 너무 대단해서 가라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