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18화 (1,118/1,303)

1118화 과발모 (4)

“에…….”

신현태는 그러한 연유로 인해 통합진료센터 발전 모임 버스에 타 있었다.

-어? 이번 주말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

-그게, 그렇게 됐어…….

-원장 빨리 관둬. 이러다 여행도 못 가고 늙게 생겼네.

-미안…….

속으론 아내와 얼마 전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현종, 이기자 커플도 나름 금실이 좋은 편이지만…….

신현태는 같이 쌓아 온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단단해진 부부 사이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좀 다정한 사람이지 않나?

일이 좀 이상하게 꼬여서 골프를 주로 이현종과 치게 되긴 했지만, 사실 아내가 먼저 시작하는 바람에 같이 치려고 시작한 것이기도 했다.

‘하아.’

본인이 아내랑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당연히 오늘 여기 오는 것이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래서 뭐 내가 다 불어? 수혁이한테 가, 지금? 경찰서 갔다 왔다고?

경찰서에서 자신을 빼 준 사람이 이걸 원한다.

김다현은 좀 점잖은 방식으로 의중을 전달했고, 같이 가고 있는 이현종은 늘 그러하듯 무례하게 의중을 전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효과적이었다.

속절없이 끌려왔다.

“제가 왜 왔나…… 이상하게 여길 분들도 계실 텐데. 뭐, 그렇잖습니까? 새롭게 시작하는 분과 또는 센터에서 펠로우를 한다는 건 불안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삐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원장이니까.

동시에 이현종처럼 원장으로서의 책무를 내던지고도 마음 편안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뭐…… 나만 온 것도 아니니까.’

신현태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우창윤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제 차기 부원장으로 확정 발표가 난 참이다 보니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오늘만은 똥 씹은 얼굴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아마도 이현종이 아까 당일 찍은 사진을 보여 준 탓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중환자 의학회도…… 대학 병원에서는 이미 가동하고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만, 인력 수급이 안 되고 있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로딩이 쏠리고 있죠? 그 때문에 원래 있던 사람들도 더 버티지 못하고 나가고 있기도 하고…… 물론 원장으로서는 당연히 지속이 되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하여간, 신현태는 어느새 완연한 원장의 얼굴이 되어 버스 안에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사실 원래부터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약자는 강자에게 희생당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약자는 늘 펠로우였다.

일개 소모품 취급받기 일쑤인데…….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그런 식으로 한국 의료계가 굴러오기는 했더랬다.

허나 앞으로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될 것임을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아니, 다는 아니고 좀 혜안이 있다 싶은 사람들은 알았다.

‘우리 세대랑은 다르지.’

쓸데없이 희생하려는 사람이 더 있을까?

그럴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정보가 쫙 풀려 버린 세상이니까.

또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 와중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돈 말고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

원장으로서 뭐라도 해야 했다.

“태화에서는 나름 브랜치 병원들에 중환자 의학과를 신설해서 수급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앞으로는 아마 더 늘어나겠지만 과도기다 보니 쉽지가 않죠. 무엇보다 중환자 의학에 대한 수가 책정이 애매해서 이 부분은 정부랑 지속적인 협상이 필요합니다. 자, 아무튼,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통합진료센터의 위치 또한 좀 애매해서 그렇습니다.”

신현태의 말에 정말이지 간만에 놀러 가게 되어 들떠 있던 펠로우 그리고 임상 강사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꿈을 바라고 오긴 했다.

보다 나은 의료, 보다 나은 실력을 바라고 왔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꿈만 바라고 살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아마도 안대훈뿐일 터였다.

“이번에 일단 병원에서 우하윤 선생 하나만 뽑는 대신…… 나머지 모든 인원을 2년 차 계약 갱신을 해 주었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펠로우는 계약직이다.

그것도 1년짜리.

이게 끝나면 얄짤없이 나가야만 했다.

물론 대학 병원 펠로우보다는 1, 2차 병원 봉직의의 월급이 더 세긴 하지만, 진로를 정한 입장에서는 잘리는 순간 그 커리어가 끝난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병원이나 교수나 펠로우 커리어를 그리 신경 쓰진 않기 때문에, 아직 다른 병원에는 딱히 뭐가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2년 차 계약을 일괄적으로 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지금 여러 인원들, 특히 외부 병원에서 온 이들이 감사 인사를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란 얘기였다.

“문제는 내년이죠. 펠로우 3년 차는 사실 거의 없지 않습니까? 임상 강사로 올려야 할 텐데…… 아, 당연히 그 T.O.는 확보하고 있습니다. 없지 않을 겁니다. 다만 다 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현 상황을 말해 주는 병원도 없었다.

보통은 나가기 직전까지 쪽쪽 빨아 먹다가 버린다.

1, 2월 대학 병원에서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괜히 마구잡이로 나도는 게 아니었다.

희망 고문하다가 갑자기 나가라고 하니 그런 얘기가 안 나오면 이상하지 않나?

‘역시…… 태화 오길 잘했다.’

김성진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안국태 밑에 있던 김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혁과 이현종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밑으로는 안대훈과 신진 또라이 김인수가 밀고 올라오고 있지 않던가?

우하윤?

쟤도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절대 완전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 김성진은 나날이 자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인간적인 대우도 받고 있었다.

같은 사람으로 봐 준다, 이 말이었다.

“그래서…… 위에서 묘안을 냈습니다. 지금 실제로 통합진료센터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가능했던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 여러분 덕분이라는 거죠. 아무튼, 어떤 것이냐고 하면…… 외국에 센터가 있는 거 알고 계실 겁니다. 두바이, 뉴욕. 앞으로 점점 늘려 갈 건데 일단 그 센터에서도 통합진료센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에?”

“그럼 두바이 아니면 뉴욕에서 일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죠. 근데 다 가야 하는 건 아니고요. 여기서 못하게 된…….”

신현태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멈추었다.

분위기가 어째 좀 묘해서 그랬다.

애초에 인원이 그렇게 많은 센터가 아니다 보니 간호사들까지 해서 리무진 버스 두 대로 가고 있는데……

그래서 거의 한눈에 애들 얼굴이 다 들어왔다.

‘얘네들 나가고 싶어 하는데……?’

원장 짬밥이 벌써 몇 년인가.

“아니, 말을 잘못했네. 그래요, 일종의 포상입니다. 당연히 지사에서 일하게 되면 따로 돈도 나오고 숙소도 나옵니다. 교육이 좀 문제가 될 텐데, 1년 더 배우고 나가는 것인 데다가, 본원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어느 정도는 상쇄될 겁니다. 그렇게 하면 여기 계신 전원, 내년에 당장 갈 곳이 없진 않을 겁니다.”

“와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열광적인 분위기에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힐끔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이맘때쯤 되면 거의 대부분의 과에서 과 발전 모임을 하기 마련이다 보니, 아예 통으로 버스 대절 계약을 하곤 했더랬다.

그래서 기사들은 과발모라는 것이 대강 어떤 분위기인지 아주 잘 알았다.

‘죽지 못해 끌려가던데…….’

레지던트들이 특히 그랬다.

주 88시간 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그걸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지킬 수가 있겠나?

내과처럼 맨파워가 되는 과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비인후과를 비롯한 여러 마이너 과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또 88시간이라 해도 빡세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그 와중에 주말까지 희생?

‘여기는 좀 이상하네.’

일단 교수들끼리 너무 친해 보였다.

사실 과 교수들이 다 친구일 것이란 전제는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라는 말보다 더 큰 허상이지 않나.

작은 집단에서 일 때문에 구르다 보면 어떻게든 감정의 골이 싹트기 마련인데, 여기는 다 교수들이다 보니 그게 해결되는 일이 적었다.

‘밑에 사람들도…… 뭐 약이라도 먹였나.’

이렇게 밝은 분위기라니.

‘뭐 나야 좋지.’

기사는 실로 오랜만에 좀 신이 나서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양평이었다.

어떤 과는 스키장도 가고 하던데, 여기는 바쁜 과인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이렇다니.

교수들이 정말 인격자인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아.”

그때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팡이를 짚는 사람이라 그런가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래도 괜찮았다.

버스 인원이 적으니까.

“자, 다들 놀 준비 되셨습니까?”

젊은 사람답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와, 설마 노래? 노래하나? 의사들도 이러고 노는 건가?’

기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 버스, 서라운드 시스템에 미러볼까지 다 탑재되어 있거든.

원한다면 언제든지 노래방 모드도 가능했다.

괜히 커튼이 암막인 게 아니라고?

“네에, 교수님!”

같은 마음인지 모두들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특히 간호사들이 그랬는데, 확실히 어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더 들떠 보였다.

“자, 놀 준비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정말 준비 많이 했거든요!”

“와아아아!”

“노래해! 노래해!”

“네?”

수혁은 그런 이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나는 일이 아니라서는 아니었다.

이보다 신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시끄럽게 굴 일은 또 결코 아니었다.

[뭔가 아주 다른 걸 기대하는 거 같은데요?]

‘노래라니.’

[노래 잘하잖아요?]

‘잘한다고?’

[목소리가 좋으니까…… 음이야 내가 맞춰 주면 되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곡조만 뽑고, 그 담에 본게임 들어가죠. 잘난 척이 될 겁니다.]

‘아, 잘난 척이라. 흐음.’

노래하기 귀찮았다.

하지만 잘난 척이 될 거라면 또 얘기가 달랐다.

해서 수혁은 최근 꽂힌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불렀다.

‘오?’

기사도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난 노래 솜씨였다.

문제가 있다면 댄스곡이 아니다 보니 다음 타자가 중요해졌다는 점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 타자는 없었다.

예상외로 잘 부른 탓에 웅성거리게 된 사람들 앞에서, 수혁은 자신의 폰을 들어 보였다.

“모두 자기 폰 보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은 폰으로 뭐가 왔구나, 거기 노래나 게임이 있나 보다 했다.

확실히 MZ 교수라 다르구나 싶었고.

“각기 다 다른 문제가 있을 겁니다.”

“문제…… 요?”

허나 문제라는 말에 모두들 지금 그들 눈앞에 있는 게 이수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지난 1년간 제가 지켜보면서 모두의 약점을 분석해 봤거든요? 문제는 총 열 문제. 검색해도 되고 물어봐도 됩니다. 기한은 저녁 먹기 전. 그때까지 많이 맞추는 사람에게 상금이 나갑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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