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화 과발모 (5)
“와우…….”
“와아…….”
텐션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리릭 빠져나갔다.
노래 기깔 나게 부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문제가 날아온 상황이지 않나.
자타공인 이수혁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안대훈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다만 이유는 남들과 좀 달랐다.
‘어제도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뭐지?’
이상한 일이지 않나?
도저히 그럴 틈이 없었다.
이수혁이 진짜 대단하긴 하다.
애초에 안대훈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육신의 탈을 쓴 탓에 한계는 있기 마련이었다.
너무 고생한 날은 심지어 잘 때 코도 곤다는 걸, 안대훈은 알았다.
‘설마…….’
안대훈은 문제를 넘겼다.
자신에게 할당된 문제는 아까 들은 것처럼 10문제였다.
“뭘 그렇게 봐……?”
안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옆에 앉은 김인수의 폰을 들여다보았다.
완전히 가 버려서 끝나 버린 안대훈과는 달리 껌뻑이는 전등처럼, 가끔 제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김인수는 지금껏 남들이 왜 당연하다는 듯 자신과 안대훈을 묶어 버리나 하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문득 그림자가 지길래 옆을 봤더니 예의 그 안대훈이 있었다.
기묘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문제 좀 봐요.”
“이거 커닝 아닐까……?”
“커닝 아닌 거 같아요.”
“왜?”
“문제가 다릅니다.”
“문제가…… 달라? 정말?”
문제 은행에서 랜덤으로 열 개씩 뽑았나, 싶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한 30개가량의 문제 중에 열 개씩 뽑아서 돌린 거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확실히…… 내가 이 케이스 틀렸었지.”
“저는 이 케이스를 틀렸어요.”
“그래…… 이때도 엄청 당황했지.”
“흐음. 이거…… 1년 된 케이스 같은데.”
“넌 그걸 기억하냐?”
“너튜브를 찍어야 되니까요. 오답 노트 만드는 느낌도 있고요.”
“아…….”
김인수는 왜 여긴 다 괴물 새끼들밖에 없지 하다가, 이내 본인도 1년 전 케이스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멘…….”
이때가 처음이었다.
수혁을 많이 뛰어난 후배 교수님에서 신적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
그렇다 보니 저도 모르게 수멘을 읊었는데, 당연하게도 날카로운 눈초리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이 센터 안에서는 다들 그랬으니.
“선생님 것 봐 봐요.”
그사이 안대훈은 장종우, 이태원 등등의 문제를 확인했다.
모두 달랐다.
그냥 다른 게 아니라, 거의 문제에 개인사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비단 의사 직군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었다.
“선생님. 저 약간 무서운데요.”
센터에 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간호사 하나가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온 지 기껏해야 1달 남짓한데 과발모에 가는 것도 그런 상황이지 않나?
아직 소속감이 생기기 전이었다.
헌데 상대는 이미 첫날부터 주시하고 있었는지, 모든 행적이 낱낱이 박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제가 떡하니 떠 있었다.
“어…… 안 무서워해도 돼. 그냥 괴물이라서 그래.”
“괴물…… 무서운 거 아닐까요?”
“아, 그럼 신이라고 할까? 수멘.”
“어…….”
센터에 오기 전에 경고를 참 많이 들었더랬다.
거기 좀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고.
고생도 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면 무조건 배우긴 할 거라고 했다.
경고했던 건 잘 모르겠고 배우는 건 많아서 만족하고 있었다.
‘내 시니어가 이상하다.’
간호사는 간신히 티 내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분주하기만 했다.
“와씨. 나 이거 그래서 공부했었는데!”
“이 환자…… 아, 나 기억나는데!”
존경하는 선배들도 포함이었다.
이럴 때 많이 막아 줘야 하는 사람인 수간호사도 문제 푸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신들이 이런 환자를 봤고 또 몰라서 틀렸는지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아, 상품 말씀을 안 드렸구나.”
그리고.
막말로 이런 자리에서 열심히 해서 뭐 한단 말인가.
레크리에이션처럼 본능에 의해 흥이 오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센터에서는 신규지만 이미 이비인후과에서 있다가 온 간호사로서는 그저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짠돌이 새끼들…… 귓구멍, 콧구멍만 들여다봐서 그런가. 속도 좁지…….’
선물?
거기도 한다.
뽑기도 하고…….
근데 그래서 뭐 주는지 아는가.
카페 3만 원 권이면 환호성이 절로 터질 정도다.
“일단 플스5가 하나 있고요. 근데 이거 할 시간이 있나?”
“응?”
“아이패드가 세 개. 이건 도움이 되겠네요. 제가 논문 볼 때 가끔 쓰는데 좋더라고.”
“으응……?”
“크랩 52 식사권 4장. 아, 여기 무역센터 52층에 있는 뷔페식 식당인데 되게 좋대요.”
“어어……?”
3만 원이면 내가 소리 질러 줄게 하고 있던 간호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머지도 다 비싼데, 크랩 52도 선 넘을 정도로 비싸다.
거기…… 인당 200달러이지 않나?
요즘 환율로 치면 거의 인당 26,7만 원이라는 소린데, 4인이면 100을 넘어갔다.
“그 외에 자잘한 것들이…… 카페 10만 원권, 스박 10만 원권 등등. 아, 왜 이렇게 많어?”
수혁이 읽다가 역정을 내자, 옆에 있던 센터장이 허허 웃었다.
“다 내가 여기저기 뜯어낸 것들이지. 잡다하긴 해! 그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하나같이 쓸 만한 것들일 거라고 장담합니다, 여러분. 저보고 깡패 짓 하네 어쩌네 하는데 다 뺏을 만한 게 있을 때나 그러는 거라구.”
그리곤 당당하게 이 모든 상품이 정당한 협찬이 아닌 갈취에 의한 것이라 밝혔다.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황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버스 운전기사가 그랬다.
‘여기 뭐야. 나 무서워.’
젊디젊은 교수가 노래 부르길래 미러볼 내리다가 분위기 묘해지길래 다시 올렸다.
그리고 숨죽인 채 운전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험 시간이 되었다.
그러더니 상품을 읊는데, 듣다 보니 어디서 훔쳐 왔나 싶을 정도로 목록이 좋았다.
다 듣고 보니 훔친 건 아니고 강탈이었다?
‘뭐냐고.’
어쩐지 아까보다 좀 빨라진 버스에서 신규 배정된 간호사는 고뇌하기 시작했다.
욕심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 선배, 뒤에 있는 선배들의 문제를 보니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래 여기 있던 만큼 어려운 케이스 또한 많이 접해 보지 않았겠나?
‘나도 여기 온 지…… 한 달 만에 평생 봤던 케이스 기록 다 갈아 치웠지.’
애초에 어려운 케이스 보라고 만든 센터다 보니 쌓이는 시간만큼 어려운 케이스도 같이 쌓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문제는 어떠한가.
‘난 개꿀인뎅……?’
쉽다.
쉬워!
절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들에 비해서는 쉽다.
게다가 검색 자유라지 않나.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풀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저 중에서 원하는 거 다 가질 수 있다.
‘오……! 뭐 갖지!’
애인이랑 가게 크랩 52?
아니면…… 호텔 숙박권도 괜찮아 보였다.
아이패드? 이것도 두고두고 쓸 것이고.
“흐음…….”
어느덧 숙소에 도착한 인원들은 미리 예고한 대로 자유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안될 거라 판단한 인원들은 나름 이현종이 리조트 측에 요청해 깔아 둔 스위치 게임기, 다트, 볼링 등을 즐기거나 생맥주를 홀짝이며 강가 산책에 나섰다.
나머지는 죽도록 공부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다들 모였다.
‘이런 미친.’
딱 시간 맞춰 가면서도 좀 불안했다.
원래 이런 모임이라는 게 윗사람들은 좋고 아랫사람들은 죽어 나가는 법이지 않나?
물론 이수혁, 이현종, 신현태 등이 좋은 윗사람들이긴 했다.
그렇다고 직접 고기 구울 수 있는 사람들인가?
이수혁은…… 그런 부분에 있어 약간 똥손이다.
이현종?
생식하기 싫으면 내가 굽는 게 낫다.
신현태는 원장인데, 그런 사람이 굽고 있는 걸 보고 있다 보면 바로 체할 거 같다.
해서 뒤늦게 빨리 왔는데 눈앞의 광경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어어, 왔어? 저기 앉아.”
“어…… 이게.”
“아, 불렀지. 고기가 다 한우라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구우면 망친다구.”
“사람을…… 아니, 대체 이번 과발모 예산이…….”
“예산? 하하하하! 온 지 한 달 된 사람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해. 우리 센터 부자야.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들 친구가 부자지!”
이현종은 이미 맥주라도 자신 건지 얼굴이 불콰해져 있었다.
다들 일하는데 혼자 노는 건 아니고, 그냥 다 놀고 있었다.
전문 요리사들이 동원되어 바비큐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서빙하는 사람들도 따로 다 준비되어 있었다.
‘친구가…… 누구?’
간호사는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누군가 가져다준 잘 구운 한우 바비큐를 한 점 물었다.
그 후로는 기억이 혼미했다.
너무 맛있으면 원래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맨날 병원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이 교외로 나왔고, 강이 보이는 탁 트인 곳에서 남이 숯불에 구워 주는 고기 먹으면서 신선한 쌈 채소와 워코힐 호텔에서 공수한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고 생각해 봐라.
모든 요소요소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으어.”
어느 정도였냐면, 먹기 전까지는 그렇게 화기애애하더니 지금은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를 비롯해서 원래 센터 사람들 아닌 사람들도 먹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대략 1시간 동안 그랬다.
안에 있던 리조트 직원들이 저거 약간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을 만큼이나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수혁과 이현종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인가 노트북을 서로 뚫어져라 보고 있는가 싶더니, 채점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땅땅
수혁이 잔을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자자, 센터장님이 1등 발표해 주시죠!”
“좋아. 대망의 1등. 압도적인데…… 이야아. 신규네? 신유희 선생!”
“어?”
신규, 신유희 간호사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가 신이 나서 나갔다.
‘와…… 크랩 52다!’
먹을 생각에 희희낙락했다.
헌데 시니어가 자길 보는 눈이 어째 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나가서야 깨달았다.
‘아, 씹.’
이거 그건가 싶었다.
위 기수에 알아서 기었어야 했나 싶었다.
‘아니, 저거 그런 눈이 아닌데.’
하지만 보다 보니 그게 아닌 거 같았다.
많이 당해 보지 않았나.
태움 문화가 그나마 태화에서는 많이 근절되기는 했더랬다.
대학 병원이라기보다는 기업 병원이고, 그렇다 보니 기업 문화가 이미 많이 들어와서 그랬는데.
그럼에도 경험은 있었다.
‘저건…… 환자 심각한 병 진단받을 때, 그런 눈인데……?’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랬다.
그리고 안대훈과 김인수는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또라이들은 좋아하고 아닌 사람들은 걱정해?
“하하하하!”
그때 최고 또라이 이현종이 신유희에게 다가왔다.
“이런 인재가 있는 줄 몰랐네. 키워야지!”
“네, 아버지!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