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20화 (1,120/1,303)

1120화 과발모 (6)

“자자, 그럼 이제 선물은 다 증정 끝난 건가?”

선물 주는 데만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현종이나 수혁이 전성주 아나운서처럼 시간 끌고 애타게 하는 데 능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선물로 줄 게 너무 많았다.

왕자님을 비롯한 후원자들 덕분이기도 하거니와 이현종이 아까 말한 것처럼, 그가 마구잡이로 강탈하듯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럽네, 이런 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창윤은 서서히 강제로 끌려왔기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불만이 점점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단 선물이 많아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아직 신생 센터에, 학회 역사로 치면 갓난아기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돈이 저렇게까지 남아도는 것도 부럽긴 했다.

하지만 더 부러운 것은 분위기였다.

모두가 으쌰으쌰 해서 정말 올 한 해는 작년보다 더 잘해 보자는 것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니, 뭐. 감사는 무슨. 자자, 그럼 이제 다 끝났으니 진짜 발전 모임을 해 봐야지.”

지금 인사를 건넨 것은 우하윤이었다.

애초에 올해 센터에서는 다른 곳에는 공문을 보내지도 않았다.

딱 하나, 우하윤만 뽑기로 내정이 되어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1등을 하지 않았나?

본인은 만점이 아닌 것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듯했지만 수혁이나 이현종 심지어 센터의 영광을 그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안대훈까지도 우하윤의 업적에 대해 높이 사고 있었더랬다.

그렇기 때문에 하윤은 아이패드를 받을 수 있었다.

특별상이라는 명목으로.

‘그래……. 하윤아. 아선보다는 아무리 봐도 태화가 미래가 밝아 보인다.’

아선 교수 우창윤으로서는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딸이라서가 아니라, 우하윤이 실제로 우수한 사람이기에 그랬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애가 또 있겠나?

하지만 아버지로 볼 때는 역시 태화였다.

‘나도 가고 싶어질 정도야…….’

벌써 아선에서 뼈를 묻어야만 하는 커리어를 쌓은 지도 한참 지난 자신이 봐도 이렇지 않나.

그런 곳에 하윤이 가게 되었다는 건, 그리고 그곳에 있는 교수들이 이미 하윤을 총애하고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봐야 했다.

우창윤이 그렇게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센터 일행은 이제 실내로 이동했다.

본관 지하 1층에 있는 강당이었다.

“자. 일단 우리 센터의 목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아는 사람은 다 아시겠지만……. 일단 이런 걸 해야 하는 날인 만큼, 떠들어 보죠.”

아까부터 이미 술이 오른 상태였던 이현종이 여전히 불콰해진 얼굴로, 한 손에는 마이크 다른 한 손에는 맥주를 든 채 말을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딱히 술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강당 안에 들어와 있다 해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말이 리조트지 펜션보다 조금 큰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진 작은 리조트다 보니 오늘 리조트 전체를 대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우리 센터의 목표는 역시 통합진료에 있습니다. 통합진료!”

이현종은 취객이 되어 단상 위를 걸었다.

신현태와 우창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취했어야지…….’

‘이런 데서 소리를 질렀어야지…….’

둘은 저거보다 조용했던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경찰서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까지 끌려오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신현태는…….

여기 사람이지만, 우창윤은 그렇지도 않다 보니 더더욱 씁쓸했다.

위안이 되는 건, 이 자리에 자기 딸이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근데 이게 쉽냐? 절대 아닙니다. 우창윤 교수님, 일어나 보시죠.”

아닌가?

위안이 될 수는 없는 상황인가?

우창윤은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했지만, 어차피 죽었다 하는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곧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마이크 쥐여 주면서 태화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읊으라고 하면, 그건 좀 곤란할 거 같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우창윤에게 발언권은 없었다.

“저 양반이 지금이야 저렇게 보여도.”

저렇게 보인다는 게 무슨 뜻일까.

혹시 가발이라도 삐뚤어졌나?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아주 좋지 못한 기억이 있는 그였기 때문에 부리나케 머리 쪽을 매만졌다.

머리는 괜찮았다.

“사실은 내분비내과의 대가거든. 저 나이에 벌써 대가 소리 듣고 있으니까 대단한 거지. 내가 봐도 똑똑해. 논문도 잘 쓰는 편이고. 정치질도 잘해서 이번에 부원장도 되고.”

칭찬을 할 거면 칭찬만 하지…….

자꾸 왔다 갔다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했다.

덕분에 우창윤은 미미하게 번져 가던 미소를 어색하게 지워야만 했다.

“아무튼, 그런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통합 사고는 불가능하단 말이지. 이게 쉽지가 않아. 저 사람이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물론 정도를 지나쳐서 똑똑한 사람들……. 나랑 우리 아들 수혁이 정도면 되지. 안 배워도 돼. 사실 다 그럴 줄 알고 덜커덕 세운 것도 있어. 위에서도 아마……. 김다현 회장님이 잘 아는 의사가 둘인데 나랑 수혁이다 보니까 용감하게 연 것도 있는데…….”

말이 이어지자 우창윤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미소도 서서히 지워져 갔다.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을 받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같이 있다 보면 알게 된다.

태생이 다르다는 거.

이 둘은 천재라는 거.

이게 가르쳐서 될까, 그런 생각도 들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마저도 이런 생각을 얼마간 하고 있는 실정인데 나머지 인원들은 오죽하겠나.

“사실 3, 4개월 차까지는 좀 그랬어. 아, 이게 안 되는 거구나. 그랬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 가르치니까 늘더라고. 마구 굴리니까 굴러가!”

허나 이현종의 말이 더 이어지자, 슬금슬금 다시 미소가 피어 오고 있었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마 이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위안이 되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교수란 사람들은 입바른 소리의 대가들이기에 그랬다.

어떻게든 밑에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부려 먹는 데 도가 튼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이현종은 달랐다.

이 사람은 속에 없는 말을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수혁을 위해서라면 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생을 통틀어서 봐도 몇 번 안 될 터였다.

“그래서 교육 방침을 정했어요. 수혁아.”

“네, 센터장님.”

이제 수혁이 단상 위에 올랐다.

얼굴 빨간 걸로 따지면 이현종이나 수혁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이현종보다도 술이 약한 사람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병원 근처에 있으면 늘 환자가 올까 봐 자기 통제를 하는 인간이지 않나?

다른 사람과는 달리, 어려운 환자가 왔는데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 그 환자를 제때 못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제일 크긴 했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응급 상황에 놓여 있는 의사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환자가 와도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나.

“아우.”

상당히 취해 있었다.

술에도 취하고, 이 상황에도 취하고.

“자, 교육 얘기. 그렇죠. 이번 문제……. 어떠셨습니까? 제 새해 선물이었는데.”

“좋았습니다!”

“역시 이수혁 교수님입니다!”

“수멘!”

새해 선물이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했고 또 정성도 들어가지 않았나?

아마 어지간한 선물보다는 이게 훨씬 품이 많이 들었을 터였다.

“좋아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 센터가 올해부터 시작할 교육 방침이라고 봐도 좋을 거 같거든요.”

무슨 소리가 해서 다른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이현종은 묘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 수혁이 말을 이었다.

“개개인별 맞춤 학습을 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지금처럼 전체가 참여하고 공부하는 컨퍼런스는 있을 거고요. 그 외에 개개인별로 트레이닝을 할 거예요. 뭔가 나한테 너무 많은 과제가 주어지는 거 같다? 그럼 좋은 겁니다. 저희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거예요.”

기대.

다른 말로 하면 조지겠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신유희 간호사는 알 수 있었다.

왜 선배들이 그런 눈으로 자신을 봤었는지.

허나 하나의 기대는 있었다.

시험 하나로 그럴 리는 없지 않나, 싶어서였다.

“특히 아까 1등 하신 신유희 간호사! 일어나세요.”

“아.”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었다.

시험 하나로 사람한테 막 기대를 걸고 그랬다.

그러지 말지…….

“박수 한번 부탁하고요. 제가 책임지고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진짜……. 대훈이처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안 돼…….”

대훈이라면, 안대훈이지 않나.

고개를 돌렸는데 우연히 안대훈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아마…….

‘저거 그냥 총애를 나누기 싫은 거야…….’

미친…….

보기가 부담스러워서 앞을 봤더니 수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 있는 이현종도였는데, 이 눈빛은 좀 느낌이 달랐다.

‘조져진다……. 갈려 나간다……. 진짜로.’

단지 느낌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자, 병원으로 갔다가 가실 분 가시면 됩니다! 우리 센터는 2차, 3차 이런 거 없어!”

다음 날.

이현종은 리무진 버스에 올라 이런 말을 했다.

이미 1박 2일 행사를 마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아마 블랙으로 낙인찍힌 병원이나 회사도 그런 짓은 안 할 거 같은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수혁아, 병원에 있을 거지?”

그러나 이현종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나.

“당연하죠.”

이 둘은…….

“저도 있을 겁니다.”

아니, 셋은…….

“저도.”

“저도!”

“당연히 병원에 있습니다!”

아니, 이 새끼들은 진짜 미쳤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모두의 시선이 신유희에게 돌아섰다.

“어…….”

“1등.”

“우리의 1등!”

“하하하! 뭘 그리 놀라셔!”

당황하고 있으려니, 자신을 뺀 채 자신에 대한 대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1등인데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역시 케이스를 많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사실 의사보다 오히려 환자랑 더 가까이 오래 붙어 있는 직업이 간호사인데……. 인사이트를 잡을 수 있다면 센터에 어마어마한 힘이 될 게 분명해!”

“저기. 제 말을 좀.”

“그건 그렇고 그럼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요?”

“응? 나는 기자랑 먹을 건데.”

“와씨. 그럼 안 되겠다. 내가 비싼 거로 시켜 준다!”

“와아아아아!”

이런 분위기에서 나 좀 쉬고 싶은데 집에 가도 될까요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뒤를 돌아보니 수간호사 이하 모든 선배들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띠링 하고 휴대폰이 울리길래 봤더니 문자였다.

-힘내. 나가지는 말고. 아마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저 광인들에게 걸렸으니…….

수간호사님?

하고 다시 보니, 늘 위엄 넘치는 모습만 보여 주던 수간호사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 창에 비친 눈에는 살짝 물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간호사님……. 신규 때부터 이현종 교수님이랑 계속 같이 일했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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