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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121화 (1,121/1,303)

1121화 진짜 발전한다 (1)

수련받은 레지던트를 제외하고도 의사만 8명 이상이 된 통합진료센터.

태화에서야 저게 센터라고? 할 정도로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보다 작은 병원으로 가면 어지간한 마이너 과는 쌈 싸 먹을 수 있을 만한 규모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간호 인력들까지 있지 않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현종이나 기타 센터에 우호적인 어른들 앞에서 거기 작다는 말을 했다간 치도곤을 치를 만한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봐도 제대로 된 꼴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괜찮아?”

신유희 간호사는 인사를 건네는 수간호사를 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긴…… 하지?’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 누구보다 쌩쌩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수혁과 이현종, 안대훈 그리고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한 기타 등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들이 완전히 돌아 버린 자들은 아니라는 걸 어제 알았다.

하루 종일 환자만 보는 건 아니더라고.

‘밥도 맛있는 거 먹었고……. 물론 듀티로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온 듀티.

원래 일이라는 게 근무 시간이 있고 아닌 시간이 있지 않나.

물론 의사 직군은 간호사처럼 교대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게 시간이 딱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주말에 당직이 아니라면 보통은 쉬는 시간이다.

당연하지만 과 발전 모임에 간 이들 중에 당직은 아무도 없었다.

‘다 같이 하니까 또 으쌰으쌰 하는 재미……. 재미가 있었어. 어…….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신유희 간호사의 얼굴이 묘하게 틀어지는 걸 보면서, 수간호사는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관상을 본다고 했었지?’

대학 병원에 있는 모두가 미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이현종이 말했더랬다.

그래서도 안 되고.

다 미친놈만 있으면 환자들이 그거 불안해서 어떻게 오겠나.

게다가 그런 놈들만 우글거리는 곳이 된다면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일하러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진짜 망하는 길이었다.

-근데 미친놈이 있긴 해야 해. 10% 정도의 비율이면 좋겠지.

아마 수간호사가 한국 의료의 선두에 속하는 태화에 없었다면 이게 뭔 미친 소린가 했을 터였다.

하지만 맨 앞에 서서 달리다 보면 결국엔 알게 되는 법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미친놈들이라는 걸.

그로 인해 주변이 좀 괴롭긴 하지만 그런 놈들이 아예 없으면 세상은 정체된다는 걸.

-나는 미친놈을……. 정확히 말하면 미칠 예정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지. 자네가 딱 그래.

당시 수간호사는 아직 수간호사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현종도 시니어급 교수가 아닌, 어떻게 보면 새내기에 가까운 교수였으니 별거 아닌 인사였고.

해서 때릴까 했다.

면전에서 대놓고 또라이라고 하는데 어쩌겠나.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얼마간 맞는 말이었다.

수간호사는 환자 보는 게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전날보다 오늘 더 잘 보게 되는 자신이 좋았다.

인제 보니 신유희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파이팅…….’

해서 수간호사는 얌전히 신유희 간호사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자……. 엄밀히 말하면 다음 주가 신학기 시작이고, 올해 센터 시작이긴 한데, 뭐 과발모도 했겠다 그냥 오늘부터 새해라고 치자고.”

그사이 환자 일보를 살핀, 동시에 밤사이에 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주로 2년 차들에게 향해 있었다.

레지던트가 아니라 펠로우 2년 차였다.

다른 분과 같으면, 2년 차는 이제 완연한 피교육자를 넘어 일정 부분 교육자의 신분이 되는 시점이었다.

허나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얘기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니들은 어설프게 누구 가르치려고 심력 소모하지 말고, 배워. 이번…… 이번 전문의 시험은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그냥 뒀는데, 원래는 그러면 안 돼. 니들도 아직 부족하다고.”

부족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병원에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다른 병원에 가서도 키맨으로서 일을 할 수 있어야만 했다.

지금도 뭐 어지간한 각과 시니어 교수들은 씹어 먹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 놈도 있긴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이 이현종의 생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혁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윤이는 일정대로 붙어 다니되……. 유도리 있게 해. 가령 이번 주에 내 담당이라고 해도 환자가 좀 적다고 하면 수혁이한테 가고. 반대면 나한테 오고. 알았지?”

“네, 교수님.”

“레지던트들 교육도 펠로우들이 하지 마. 둘이 할 테니까. 그냥 다 배워라.”

“네, 교수님!”

“아주 골수까지 쪽쪽 뽑아 가라고. 어차피 봐서 알겠지만……. 현태 원장 연임이거든? 앞으로 2년은 더 해 먹을 거야. 적어도 2년간 너네 일자리 어떻게 될 일은 없으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네!”

“좋아. 그럼 환자 보러 가자고.”

“네. 교수님!”

이렇게 미래에 대해 안심시켜 주는 교수가 몇이나 될까.

펠로우들 중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교수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잘못된 결심을 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현종은 정말이지 좋은 교수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칠성에서 구르다 온 김성진으로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 해요?”

“아, 아닙니다.”

김성진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 이현종과 그 일당들을 바라보다가, 수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의 이번 달 담당은 수혁이니까.

옆에는 안대훈과 우하윤이 있었다.

“네. 일단 어제 한바탕 돌아 가지고 당장 봐야 할 환자가 많은 건 아니에요.”

“네.”

“그래서 여기저기 부탁해 놨어요. 환자 있으면 다 보내라고.”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보내야지.

이래야 통합진료센터지.

김성진은 작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돌아가고 있는 센터를 보면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센터지 않나?

이런 곳이 있는데 허송세월했던 것이 억울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오늘 가시죠. 필요한 서류는 다 떼 놨습니다. 혹시 더 필요한 서류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퇴원 전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네요. 역시 내일이면 가셔도 되겠습니다.”

회진이야 늘 그렇듯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아까 수혁이 말했던 것처럼 어제 여기 병동 싹 돌고도 모자라서 응급실 가서 저녁 먹기 직전까지 있다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애가 본 것도 아니고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그 부하들이 봤으니 예상 못 했던 일이 터질 리도 만무했다.

‘그럼 커피 마시면서 공부나 좀 할까.’

김성진은 과연 어제 열심히 일했던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서 환자를 보내오긴 하겠지만, 그러자면 또 시간이 한참 걸리지 않겠나.

제아무리 통합진료센터의 위상이 높아져 환자 설득이 쉬워졌다고 해도 전원을 보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대훈아, 준비됐어?”

“네. 하윤아.”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김성진의 눈에 그제야 하윤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의 등에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는 게 들어왔다.

“웃차.”

하윤은 끙 소리를 내면서 배낭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약간 늦게 왔거나 혹은 짐 정리할 게 남아서 그냥 들고 다니나 보다 했더랬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여기 신입이 보통 신입이겠나.

일단 수석이라지 않나.

이번 시험에서 수석을 했다는 건, 잘하냐 못하냐를 떠나서 제정신인가 아닌가부터 따져 봐야 했다.

“최신 버전 돌림판입니다.”

“오…….”

아무튼, 하윤은 돌림판을 꺼냈다.

한때 안대훈이 들고 다니던 금속제 돌림판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건……?”

“3D 프린터로 뽑고 사포로 깎은 다음에 색까지 다 칠한 거예요.”

“오…….”

솔직히 말해서 금속제 돌림판은 미학적으로 볼 때는 영 아니긴 했다.

색도 너무 촌스럽기도 하고 광도 너무 나고.

물론 안대훈의 머리를 보면서 광이 나서 별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수혁도 마찬가지여서 말은 안 했지만.

“이건 되게 이쁜데?”

“하하. 제가 좀 아쉬운 점이 있었죠. 그리고 보시겠어요?”

“어어?”

하윤이 다음으로 꺼낸 것은 패드였다.

여기서 이게 왜 나오나 했는데, 켜니까 방금 보고 있던 돌림판과 똑같은 모양이 떴다.

띡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돌림판의 바늘이 돌았다!

“어어어어!”

그러면서 동시에 돌림판 옆면에서 불이 들어왔다.

촌스럽게 번쩍이진 않았다.

은은한 불이 물 흐르듯 돌았다.

바늘을 따라서.

소아 중환자실.

바늘이 멈추자 패드에서 아주 명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네 목소리가 아니잖아!”

극도로 흥분한 수혁이 외쳤다.

그러자 하윤도 덩달아 흥분해서 외쳤다.

“네! 아나운서분한테 부탁했어요!”

“와……!”

“후후후.”

“하윤아, 역시 네가 최고다!”

“후후후후후.”

그렇게 잠시 센터는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향했다.

수혁과 하윤은 돌림판을 가리키면서 방방 뛰었다.

안대훈이야 뭐 은은한 빛도 이리저리 반사시키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김성진은 어떻게 되었냐고?

정신을 차려 보니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지나던 이들 전원이 쳐다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어차피 이 안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이라고 해 봐야 뭐 센터 사람들 아니면 센터 환자들뿐 아니겠나.

전부 이 센터의 실상이 어떠한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갈까.”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나서야 일행은 소아 중환자실로 향하게 되었다.

들떠 있던 분위기는 소아 중환자실이 가까워져 옴에 따라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가운데,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화면이나 또는 어딘지 특정하기 어려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보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복도 끝으로 난 문엔 감염 주의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안팎을 오가는 의료진들의 얼굴 또한 무거웠다.

그 가운데 이기자 교수가 있었다.

“어?”

그녀는 양아들인 수혁을 대번에 알아보고 다가왔다.

“어쩐 일이야?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벌써 받았나?”

“네? 어떤…… 연락이요?”

“뭐, 여기야 늘 그렇긴 한데 어려운 환자가 있어서. 참고라도 하려고 했지.”

“아하. 그럼 마침 잘 왔네요.”

수혁은 어쩐지 돌림판 돌렸다는 말을 하기가 좀 그래서 대강 얼버무렸다.

다행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사회화를 거친 또라이들이었기 때문에 다들 수혁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오직 하나, 바루다만이 눈치 없이 좋아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행이었다.

이놈은 수혁을 제외하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니.

“자, 그럼 안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얘기해 볼까? 아들 얼굴도 오랜만에 보는데……. 커피라도 줄게.”

“좋죠.”

“일단 여기 앉아 있어.”

“네.”

이기자 교수는 그런 일행을 중환자실 바깥에 위치한 탕비실로 안내한 후, 커피를 탔다.

제일 윗사람이 저러는 게 편할 리는 없겠으나 이기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해서 다들 자리를 지킨 채 기다렸다.

각자의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였다.

정리하면 대개 같았다.

‘대체 어떤 환자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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