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화 진짜 발전한다 (2)
“사실 나는 뭐…… 미숙아를 주로 보잖아?”
자신이 직접 탄 커피를 홀짝이던 이기자 교수가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아직 커피 향에 취해 있었다.
미식가인 이현종이 자기 아내에게 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마련한 블렌디드 원두라 그런가 그 수준이 남달랐다.
“네.”
“그래서 이 환자가 내 환자는 아냐. 환자는 39주에 2.8kg으로 출생했거든.”
“아하…… 그럼?”
“지금은 폐렴으로 입원 중인데 중환자실 내려올지 말지도 애매했어. 근데 적극 관찰이 필요할 거란 의견 때문에 내린 거야. 그 김에 나도 이리저리 보고 있지.”
소아 중환자실은 엄밀히 말해 신생아 중환자실하고는 좀 달랐다.
소아는 작은 성인이 아니란 유명한 말이 있는 것처럼, 신생아 또한 작은 소아가 아니라서 그랬다.
둘을 같은 선상에 두고 보는 건 지나치게 전근대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이기자 교수는 워낙에 부지런한 사람인 데다가 이현종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아내이다 보니 둘 다 시간이 나면 봐 주는 편이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환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2년 10개월 됐어.”
“2년 10개월……. 어리네요, 아직.”
“어.”
“출생 당시 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나요?”
단순 폐렴으로는 절대로 중환자실까지 보낼 리가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태화는 워낙에 아픈 아이가 많은 곳이다 보니 입원조차 어려웠다.
응급실에서 경과 관찰하다가 집에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소아에 한해서는 직원 가족이고 뭐고 얄짤없었다.
진짜 급한 환자가 왔을 때 소아는 조금이라도 지체하게 되었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어서 그랬다.
[뭔가 이상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공산이 크지.’
해서 수혁과 바루다는 선천성이상을 염두에 두었다.
합리적인 의심이었고 이기자 교수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곧장 말을 해 주었다.
“머리둘레가 33cm에 아프가 점수는 9점이었어. 이건 뭐 그렇게 이상한 게 없었지. 우리 병원에서 낳은 건 아니긴 한데……. 벌써 외래에 다닌 지 좀 돼서, 다 알아봤더라고. 임신 중에 산전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대.”
“아……. 그렇군요. 흐음. 근데 외래를 다니고 있다면?”
“생후 2개월 때. 이때는 내가 좀 열심히 봤지. 세기관지염으로 입원했더라고. 당시 59cm에 4.3kg으로 좀 작았는데……. 그 외에는 이상 소견은 없었어.”
“그렇군요. 또?”
“18개월에 폐렴으로 입원했어. 그때도 키는 작고, 또 체중도 별로 안 나갔지.”
“그리고 이번에 또 폐렴이……. 학대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동 학대를 못 본 것이 아니지 않나.
모두들 꺼리는 주제였지만 실존하는 문제였다.
심지어 이 둘은 그걸 봤다, 그것도 직접.
“아니, 신체검사 소견상 그게 의심되는 소견은 없어. 상처 없이 깨끗해. 나름 어머니랑 유대 관계도 잘 형성되어 있는 편이고.”
“흐음, 그렇군요. 그럼?”
“아, 너무 잦아서. 굉장히 잘 보살핌을 받고 있는데 폐렴이 반복되는 게 이상하잖아? 사실 아는 집이거든.”
“아……. 그렇군요. 아는 집이세요?”
“응. 뭐 이상한 짓을 할 집이 아냐. 집도 아주 깨끗하고 잘 관리되고 있고……. 아이 위생 상태도 정말 좋아. 사진 볼래?”
“네. 음……. 진짜 그렇네요. 흐음……. 근데 작네요. 부모가 작은가요?”
“아니, 그렇지가 않아. 그것도 이상한 점이야. 물론 지연성 성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런 경향도 유전이잖아.”
“그렇죠.”
성장은 유전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
가령 180cm짜리 아버지와 170cm짜리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콜라를 물처럼 마셔도 우유를 물처럼 마시는 160cm짜리 아버지와 150cm짜리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이보다 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심지어 성장 시기 또한 유전성 경향이 있다.
“얼마나 큰데요? 부모님은?”
“아버지가 배구 선수야.”
“아……. 그럼……?”
“195cm였나? 아내도 170cm인가 그렇고.”
“근데……. 키가 성장 곡선으로 치면 최하위에서도 약간 벗어나 있네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설마 외워?”
“아, 네. 그거야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어려운 일 아닌가?
이기자 교수는 본인도 대강의 범위만 알 뿐, 실제 환자를 볼 때는 그래프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 아들은 천재야. 말도 안 되는 천재지.
하지만 이현종의 말도 동시에 떠올렸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사실 이현종만 해도 상상을 불허하는 수준의 천재 아니었나.
그런 그조차 이건 이길 수 없겠다고 단언한 것이 바로 이수혁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거 외우는 거야 뭐 별것도 아니기도 했다.
“그렇긴 하네. 아무튼, 이상하지?”
“근데 딱히 이상은 없었다는 거죠? 다른 검사는?”
“어. 한번 봐 줘. 아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더라도 한 번 더 입원한다면 지정의 선생도 협진할 생각일 거야. 안 그래도 전에 한번 물어보더라고. 근데 아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럴 수 있죠.”
소아과 전문의지 않나.
그중에서도 태화의 교수라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는 얘기니, 판단을 존중하는 게 옳았다.
무엇보다 다른 이상이 없다면 지금 막 이것저것 해 보는 건 좀 섣부른 일일 수 있었다.
“한번 볼까요? 지금 어딨죠?”
“아, 그래. 일단 이것도.”
“혈액검사네요.”
“이미 했지. 안 그러고 여기 있을 수 있겠어?”
“그렇죠.”
일행은 수혁이 몸을 일으킴에 따라 다 같이 몸을 일으켜 뒤따랐다.
다들 생각이 많은 상황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대화만 들어서는 뭔가 이상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진료를 해야 하나 하는 느낌이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이기자 교수나 이수혁이 괜히 이럴 리는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해서 묵묵히 머리만 굴렸다.
“CBC나 철분 같은 것도 이상은 없어. 지질 검사도 정상이고. 출혈 검사도 정상에……. 간 수치도 정상이야.”
“흐음……. 그렇네요?”
“그러니까 말이지.”
거기에 더해 혈액검사도 정상.
모두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론 수혁도 그랬다.
‘뭐여?’
[모르죠.]
모르겠다.
이 생각만 들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아직은 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드르륵
이기자 교수는 그사이 등록된 RF 카드를 찍어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그냥 병실도 아니고 중환자실이다 보니 죽음의 징후 또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수혁이 느끼는 무력감은 궤를 달리했다.
[안 좋군요.]
‘그러니까…….’
워낙 실력이 좋다 보니 딱 보자마자 아이의 예후가 대강 보여서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아직까지 많은 질환에서 진단이 곧 치료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소아에서, 선천성질환으로 인한 죽음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했다.
언젠가 이현종이 술에 취해 했던 말처럼, 수혁도 소아과는 못 했을 것 같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소아과 의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지만 실제 조사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들의 우울도가 다른 의사들보다 높지 않나.
아이를 이뻐해서 왔는데 죽어 가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이기자 교수 또한 비슷한 심경인지 일부러 고개를 많이 돌리지 않고, 예의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직진했다.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지만 다 이해할 수 있는 몸짓이었다.
그렇게 아이에게 도달한 수혁은 말없이 삽관이 이미 되어 있는 아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복부팽만이 약간 있군요.]
‘아이 나이를 고려할 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커.’
[그건 그렇죠. 하지만……. 고려할 수 있는 이상 소견이 너무 적습니다.]
‘그것도 옳은 말이지.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작은데…….’
[네, 그에 비해 삽관된 튜브의 크기를 보십시오.]
‘크기? 아.’
사람의 기도 너비는 각기 다 다르다.
생김새만큼이나 기도의 너비 또한 다양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튜브도 각각의 크기와 길이가 다르게 생산되고 있었다.
물론 성인의 경우엔 뭉뚱그려서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 대강 넣고 풍선으로 맞추긴 하지만, 소아는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튼, 튜브 굵기는 그냥 봐도 그리 얇지 않았으며 표기된 숫자를 봐도 그랬다.
‘작은 몸집에 비해서 기관지가 넓어. 이건…….’
[성장 지연의 증거 중에 하나죠. 거기에 더해 간 비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으레 있을 만한 소견이 아니게 되죠.]
‘흐음. 만져 봐야겠는데.’
수혁은 자연스레 손을 씻은 후, 아이의 배를 만져 보았다.
마냥 말랑해야 할 배에 툭 하고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간 그리고 비장이었다.
간비 종대가 상당했다.
“흐음…….”
“왜? 어때?”
말이 상당한 것이지 소아는 원래 배가 좀 나오는 편이고, 또 아이의 신장이 작다 보니 그게 아주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영상을 찍거나 해서 객관적인 지표를 얻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의사가 이를 의심하기란 어려운 일일 터였다.
무엇보다 혈액검사에서 간 수치가 정상으로 나온 이상 더더욱 의심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간하고 비장이 좀 크네요.”
“아, 그래? 근데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원래 소아에서는 이유 없이 기관 비대가 있는 경우가 있잖아.”
“그렇죠.”
성장 중인 아이는 그럴 수 있었다.
어디가 먼저 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복강의 크기가 미처 못 따라 자라고 있다면 그냥 모든 장기가 다 커 보이기도 했다.
허나 다른 소견을, 수혁은 볼 수 있었다.
또 다 기억할 수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아.’
[하지만 모아 보십쇼. 그럼 하나의 질환군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렇지. 하지만 예외로 보이는 것들이 많아. 어쩌면 소아과 의사도 그걸 염두에 두고 보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심해지면서 소견이 생길 것을 고려하는 것이지.’
[수혁, 질환에서 조기 진단해서 나쁜 경우가 있습니까? 우리가 의심하게 된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그래.’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검사 결과에서 보면……. 특히 지질 검사에서 HDL이 좀 낮지 않았어요?”
“아, 정상보다 좀 낮았지. 하지만 그거 단독으로는 이상이 아냐.”
“그렇죠. 하지만 LDL과 중성지방은 상한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어요.”
“상한…… 이내잖니?”
“아이의 몸을 보세요.”
“음.”
이기자 교수는 수혁의 말에 따라 아이의 몸을 돌아보았다.
배는 나왔다.
하지만 간과 비장의 종대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별 의미는 없었다.
이렇게 마르고 작은 아이에서 배가 나온 것은 아니, 배가 나와 보이는 것은 오히려 영양 문제를 시사한다고 봐야 했다.
일례로 팔과 다리는 아주 말라 있었다.
심한 영양실조로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미한 영양실조는 있어 보였다.
헌데 지방은 높다?
“어……?”
“이상하죠?”
“그렇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