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25화 (1,125/1,303)

1125화 진짜 발전한다 (5)

“살 수 있다고요?”

사람은 듣고 싶은 걸 듣는 법.

심지어 그 말이 그 말을 해 주길 바랐던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왔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터였다.

지금 환자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다 죽어 가던 눈에 총기가 서리는데, 말이 좋아 총기지 어떻게 보면 광기에 가까워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씹…….’

외과 교수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집어삼켰다.

당장의 변화는 그래, 좋긴 했다.

교수 본인도 환자가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니까 그랬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가.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히는 생각 하나가 있다.

-죽을 사람은 죽는다.

물론 현대 의학의 발전에 따라 이전만큼 죽어 나가진 않았다.

죽음이 일상에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있던 때도 있지 않던가?

당시 사람은 언제 어느 때고 죽을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

이제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을 사람은 죽는다.

특히 대학 병원에서 봐야 할 정도의 환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아니……. 이런 말을 해 버리면 나중에 수습을 어떻게 하라고.’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환자에게 절망만을 심어 주는 건 아니었다.

살아날 확률이 있다면 그 확률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방편 중 하나가 희망이기에 그랬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의사 혼자 야단법석 떤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환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근데 이 환자는……. 이 환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외과 교수는 수혁을 원망스럽다는 얼굴로 힐끔거리다 이내 자신의 진료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CT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복막뿐 아니라 여기저기 전이가 온통 번져 있었다.

후복막에도 전이가 있을 지경이니 말 다 한 셈…….

‘저게 왜 돌아가……?’

직원이 돌리고 있나?

그럴 리가 없었다.

외래 보조 직원은 간호사가 아니니까.

환자가 들락거리는 걸 보조하기 위해 들어와 있는 직원은 그 일만 하기에도 벅차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다.

‘읏.’

순간 외래 조명이 무언가에 의해 반사되었고, 교수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 것 같은 충격에 두 눈을 감았다.

“저, 살 수 있다고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저기!”

그 와중에 수혁과 환자의 대화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봐도 외래 진료실 쪽이었다.

해서 말리려 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눈이 보여도 막무가내 모드에 돌입한 수혁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텐데 허공을 허우적거리게 된 지금이야 달리 무슨 수가 있겠나.

“후.”

간신히 감은 눈을 눈물 찔끔거리며 떴을 땐, 이미 대세가 기운 후였다.

아니, 어쩌면 수혁이 기웃거리고 있었을 때부터 그랬을는지도 몰랐다.

‘하아…….’

외과 교수는 이 새끼를 대체 어떻게 조져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김승규를 떠올렸다.

-이수혁 교수한테 잘해라.

그 사람이 잘하라고 했다.

그냥 시니어 교수님의 말이라고 해도 어기긴 어려웠다.

여전히 도제식 교육이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의료 현장 아니던가.

100%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 중 팔 할은 스승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일단 들어가자.’

거기에 더해 김승규는 공포의 군주였다.

딱히 맞은 적은 없었다.

누가 맞았다더라 하는 얘기도 함부로 나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김승규가 때린 적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한번 때리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때려서일 거라고, 외과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병원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었다.

해서 외과 교수는 달달 떨리는 발걸음으로 수혁을 향해 걸었다.

잠시 떠올렸던 김승규의 얼굴을 잊기 위해 심호흡을 하면서였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은 이 사람이 또 김승규를 떠올렸구나 하다가 본인도 그 얼굴을 떠올리는 바람에 하악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되었다.

‘뭐 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진료하는데 채신머리없이…….]

‘그러니까 말이다. 김승규 교수님이 기강 딱 잡은 줄 알았는데 외과 개판이네.’

[한번 말하죠?]

‘그래야겠네.’

한편 수혁은 자리에 앉아 환자와 모니터 그리고 문가 근처에 서서 달달 떨고 있는 교수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빨리 들어와야지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아니, 근처까지는 오지 않더라도 문은 닫아 줘야 할 거 아닌가.

개인 정보라는 게 있는데 문 활짝 열어 놓으면 환자 진료는 어찌 보라고.

드르륵

그렇게 한참을 구시렁거리고 있으려니 열려 있던 문이 그야말로 간신히 툭 닫혔다.

그제야 수혁은 환자를 돌아보며 본격적으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CT 영상을 직접 돌려 가면서였다.

“자……. 여기 보시면 자궁 절제가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혹시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암이 아닐 수도 있겠다 여긴 첫 번째 이유.

환자의 나이였다.

만 나이로 28세.

빈말로도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이지 않나.

헌데 영상을 보면 이미 수술 부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 말은 적어도 1, 2년 전에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건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암인 경우엔 오히려 조기 발견이 흔치 않고, 자궁 절제술까지 필요할 정도로 커다란 암이었다면 지금도 항암 치료 중이어야 할 터였다.

“아……. 자궁근종이…… 임신 도중에 발견이 되어서요. 제왕 절개하면서 자궁 절제술을 받았어요. 그게…….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아무튼, 당시 암을 진단받은 적은 없으신 거죠?”

수혁은 본인의 첫 번째 예상이 맞아 들어갔다는 점에 안도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물음에 환자는 다소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네! 맞아요. 그때 그런 얘기……. 아니아니! 평생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저 담배도 피워 본 적 없고……. 술도 애 낳고부터는 확 줄었어요…….”

뭐, 익숙한 반응이었다.

상당히 이상한 일인데, 대개의 경우 환자는 병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특히 젊은 환자인 경우가 더더욱 그런데…….

이건 아마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각종 커뮤니티에 떠도는 20대 당뇨 환자의 식습관이니, 대장암 환자의 습관이니 하는 것들…….

아직 건강한 이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면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걸린 젊은 환자들을 자책하게 만들거나 한없이 억울하게 만들 수 있기도 했다.

“네, 설령 암이 생겼다고 해도 환자분이 뭘 잘못해서 생기는 건 아니에요. 암은 그냥 우연히 생기는 겁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위험을 올리는 습관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책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조태진의 생각이었다.

혈액 암이라는 게 워낙에 젊은 환자들, 심지어 소아들에게도 흔하게 발생하는 암이다 보니 이 비슷한 사례를 많이 보아 와서 하게 된 생각일 터였다.

“아무튼, 당시 암을 진단받은 병력이 없군요.”

“네네.”

“다시 영상으로 돌아와서 보면, 복막에 작은 덩이들이 엄청나게 많죠?”

“아……. 네…….”

수혁이 흥분한 환자의 시선을 영상 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여러 의사들이 이미 전이라 명명했던 덩이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렇다 보니 환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명백한 죽음의 징후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딱 저것만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환자의 배 안에는 다른 덩이가 너무 많았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 좌측 신장을 밀어내고 있는 대략 직경이 6cm 정도 되는 덩이가 있어요.”

보다 정확한 표현을 해 보자면 6.2cm x 7.1cm x 8cm가량의, 부피는 대략 170cc 정도 되는 종괴가 있었다.

“네…….”

“그 외에도 골반 쪽에도 덩이가 있고요. 덩이 다 합치면 9개네요.”

“네…….”

다른 종괴라 해서 작은 것도 아니었다.

다들 커다랬다.

“저, 교수님.”

그때 외과 의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실 아까부터 접근하려고 했었는데 여의치 않았던 것은 안대훈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안대훈이라고 해서 남의 진료실을 떡하니 차지한 마당에서까지 한없이 뻔뻔스레 나올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모가 있기 마련이고, 그중에서 안대훈은 김승규과는 좀 다른 방면으로 극한에 치달아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적응하고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김승규 얼굴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사람인지라 이 정도로 버틴 것이지, 아니었으면 아마 시간이 더 걸렸거나 시큐리티를 불렀을 터였다.

“아, 네.”

“방금 보셨다시피 덩이가 너무 많습니다……. 이건……. 게다가 복막에 붙은 형태를 보십쇼.”

“형태는 확실히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요. 단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요.”

하여간, 어렵게 따라붙은 외과 교수는 귓속말을 이어 나갔다.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환자의 앞에서 의사들끼리 귓속말을 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런 대화를 온전히 들려주는 건 더 못 할 짓이라 그랬다.

“하지만 밀어내는 모양새예요. 게다가 환자가 4년 전에 시행 받았던 수술……. 원인이 자궁근종이던데요?”

“네? 아, 그렇죠. 근데 4년이면 암이 발생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입니다. 게다가 환자 20대지 않습니까. 젊은 환자들……. 아시잖아요.”

“알죠.”

요즘 청년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진짜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조차 하기 어려웠다.

어떤 환자는 보자마자, 그러니까 육안으로 얼굴 보자마자 암 혹은 기타 다른 아주 큰 병이 있겠구나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영상까지 보면 증상이 없었을 리가 없겠다 싶은 사람들도 있고.

해서 대체 왜 이제야 왔냐고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아나?

-식욕은 원래 없었고……. 속은 원래 쓰렸고……. 피곤한 건 다들 그런 거 아닌가요? 제 주변은 다 그런데…….

암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을 이미 꿈 때문에 겪고 있는 게 태반이었다.

그 꿈이라는 게 얼토당토않게 느껴질 만큼이나 거대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전 세대에서 평균이라 말하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꿈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전보다 젊은 암 환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동시에 그 상태도 심각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고 계시는 게 있습니다.”

“네? 어떤……?”

수혁은 의문에 찬 교수의 시선을 외면한 채 환자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안대훈도 교수도 또 뒤늦게 따라붙었던 김성진, 하윤도 영상을 바라보았다.

환자가 보기엔 다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아니었다.

나머지 의료진은 전부 영상 속의 종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혁?

수혁은 아니었다.

수혁은 그저 공백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궁근종으로 인해 절제술을 시행했다고 했지?’

[자궁근종의 원인은 명확하지는 않지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평활근의 무분별한 성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 지금 자라난 것들, 이것도 평활근처럼 보이지?’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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