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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126화 (1,126/1,303)

1126화 진짜 발전한다 (6)

언제나 드문 형태의 질환은 있기 마련.

평활근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근육이고 따라서 종괴로 잘 발전하지 않는다.

헬스하는 사람들이야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사실 근세포는 대단히 단순한 형태의 세포이면서 동시에 성장과 분열을 잘 하지 않는 기관이기도 해서 그랬다.

만약 이 근세포들이 점막처럼 성장과 분열을 할 수 있었다면 현존하는 생물의 생김새가 아마도 많이 달랐을 것이었다.

그러니 근육의 종괴라는 걸 의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식으로 아무 데나 전이를 하고 있다면 어려운 수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곤 해도…… 이 오진 아닌 오진이 환자를 죽게 만들진 않았을 거야.’

[그렇죠. 평활근 종양이 사람을 죽인다는 보고는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불편하겠지? 심리적으로 아주 불안정해진다면, 그로 인한 사망도 가능하긴 하고.’

[그것도 그렇죠. 그러니 빨리 추론을 이어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리스트 업을…… 이미 떠올리고 있군요? 훌륭합니다, 수혁. 여전히 제법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칭찬과 함께 환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환자분. 혹시 배에 불편감이 있지는 않으세요?”

어찌 보면 하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영상만 봐도 불편할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지 않겠나?

뭐가 이렇게 득실거리는데 아무 느낌이 없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제아무리 복강 내 감각이 피부의 감각에 비해 훨씬 둔감하다고 해도 그랬다.

“아…… 네. 어떻게…….”

다만 환자는 이런 질문을 이런 식으로 받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여기 외과 의사도 그렇고, 저 영상을 찍어 보자고 했던 의사도 그렇고 대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냐는 질문부터 했다.

안타까워서 그랬겠지만, 아무튼, 그리 답하고 싶은 질문은 아니었다.

“통증이었나요?”

수혁은 환자의 반응에 흐뭇해하기보다는 궁금한 것을 빨리 캐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질문을 이어 나갔다.

환자도 대학 병원이라는 곳에서, 특히 이놈의 흰 가운 입은 놈들에게 감정적인 지지까지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마당이어서 딱히 실망하는 일 없이 답했다.

“음…… 좀 불편하다가, 요새는 아픈 거 같기도 해요.”

“가만히 있을 때도 그런가요?”

수혁은 복막에 자라난 덩이들을 보며 물었다.

저게 암이라면, 그러니까 다른 조직을 파괴하면서 자라는 놈이라면 가만히 있건 아니건 어마어마한 통증을 수반하고 있을 터였다.

다른 장기에 발생했다면 또 모를까, 복막은 상대적으로 예민한 기관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어…… 그러고 보니……?’

그제야 외과 교수는 좀 이상하단 생각이 덜컥 들었다.

외과야 물론 내과처럼 만성 통증이 있는 환자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보통 암이라 해도 수술을 하고 나서 뒤에 필요한 치료는 내과에 맡기니까.

하지만 수술 부위를 봐야 하기 때문에, 또 아무래도 암 환자는 여러 의사가 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보기 마련이었다.

암 환자 보는 것에 익숙하다, 이 말이었다.

‘통증이……?’

보통 이 정도 말기 암 환자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아파 보이는 것 외에도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 마련이었다.

어느 정도의 통증이냐고 하면, 그 통증 때문에 사람이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가 보통 죽도록 아프다는 말 따위는 장난이었다.

정말 사람이 아파서 죽었다.

암이 조직을 파괴할 때 발생하는 통증은 말 그대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종류의 통증이어서 그랬다.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괜찮아요. 근데 움직이거나…… 음. 이렇게는 아니고.”

“몸을 옆으로 틀어 보시죠.”

“아, 네. 아!”

“복막이 늘어나는 자세를 취할 때, 통증이 있군요?”

“아…… 네.”

“방금 그 통증에 점수를 매겨 보죠. 0점은 하나도 안 아픈 거, 10점은 살면서 겪었던 최악의 통증이라고 치면 방금 통증은 몇 점이죠?”

암성 통증은 대개 11점이라고 부른다.

10점이 만점이지만, 그만큼 심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함인데…….

“4점?”

환자의 입 밖으로 나온 점수는 참으로 뜻밖의 것이었다.

특히 외과 교수에게 그랬다.

그제야 그의 머릿속에 어쩌면 이수혁 교수라는 사람이 여기 들어와 앉은 것이 우연이나 장난에 의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그 김승규 교수님이 칭찬했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김승규의 칭찬.

외과 사람들에게 이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천사들이야 노상 하는 것이 칭찬이고 또 좋은 말이니만큼 듣는 사람에게 의미가 정도 이상으로 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백강혁 님을 떠올리게 해…….

헌데 김승규가 수혁에게 한 칭찬은 그냥 이제껏 없었던 수준이라 보면 됐다.

‘설마 암이 아닌가?’

이런 생각과 함께 영상을 다시 한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기척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보니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따라 들어온 이들, 그러니까 수혁의 제자들 또한 그러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녀석들의 얼굴엔 신뢰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불편하기 시작한 건 얼마나 됐어요?”

“어…… 거의 1년도 더 된 거 같아요. 어쩌면 그거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고요.”

“기간을 꼭 집어서는 말하기 어려우신가요?”

“아, 네. 애 보느라. 애 안고 그러면 사실 여기저기 아프긴 하거든요.”

“아.”

수혁은 환자의 손목에 감겨 있는 보호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근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아이 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긴 했다.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그러니까요. 데이터화하겠습니다. 아이 보는 사람은 여기저기 아플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조기 진단을 방해할 수 있다.]

‘좋아.’

수혁은 하나 또 배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환자는 좋은 스승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럼 1년이 된 거 같다는 말씀은……?”

“그때부터는 확실히 더 불편했던 거 같아요. 아프기 시작한 건 한 세 달 됐고요.”

“그렇군요.”

수혁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외과 교수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외과 교수의 귓가엔 이런 말이 울리는 듯했다.

-세상에 이렇게 느리게 자라는, 그러면서 이렇게 전이를 많이 하는 암이 어딨나?

정말로 그랬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할 만한 소견들이지만.

다 모아서 보면 각각의 소견이 서로에게 반박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음.”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린 외과 교수는 그 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렸다.

이 상황에서 뭔가 더 알아낸 것이 있을까?

의문이었다.

허나 어쩐지 이수혁이라면, 알아낼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백강혁과 비견될 정도의 천재라면 진짜 모르는 거 아닌가.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외과 교수는 그 순간 남은 평생을 그 사람의 그림자 속에 살 거라는 확신이 들었더랬다.

“일단 제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영상만 보면 아주 나쁜 형태의 암처럼 보이긴 합니다. 빨리 자라고, 이곳저곳으로 전이를 일으키는 암이요. 그러면서도 기원이 어딘지 불명확해 보이는데, 정말로 드물게 이미 절제한 자궁근종에 암이 있었고, 거기서 유래한 암세포가 전이되어서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아…….”

수혁은 그런 외과 교수의 바람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환자의 불안감이 너무 길게 가지 않도록 부리나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기간이 일단 맞지가 않습니다. 자궁 절제술을 한 지 4년인데, 거기서 암세포가 유래했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이런 형태로 자랄 만한 암세포라면 사실 1년도 안 걸렸을 겁니다. 길어도 2년이죠.”

“아아?”

수혁의 말에 따라 환자의 얼굴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법이지 않겠나?

이제부터 꺼낼 말도 좋은 말이기도 했고.

덕분에 수혁은 슬며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 증상도 너무 이상합니다. 이런 식으로 복막에 자라난 것들이 악성 종양이라면 지금 환자분이 느끼고 계시는 통증이나 불편감보다는 훨씬 더 증상이 심해야 합니다. 게다가 신장도 밀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잡아먹어야 하죠.”

실제로 신장이 잡아먹히는 양상을 보이는 사례는 많았다.

파괴된 조직이 소변으로 흘러나와 혈뇨를 보거나 아예 요관을 틀어막아 요로 결석과 비슷한 양상의 통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허나 환자의 신장은 방금 수혁이 스크롤을 굴려 보여 준 것처럼 덩어리에 밀려나 있을지언정 파괴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양성 종양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셈입니다.”

“아!”

“그리고 이론적인 근거가 있죠.”

“어어?”

첫 번째 감탄사는 환자의 입에서, 두 번째 감탄사는 외과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조직 검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은 양성인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인데…….

여기서 양성 종양일 가능성을 높이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고?

듣도 보도 못했다, 정말로.

“파종성 복만 평활근종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수혁도 그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사례를 모두 다 합쳐도 100례가량 되는 희귀 질환이니까.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암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던 사례는 20례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관련된 질환을 보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것이 결코 잘못은 아니었다.

‘제자들도 하나도 모르는 거 같지?’

[이걸 알면 하산해야죠.]

‘하긴.’

수혁은 그런 생각으로 질환명부터 말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딱히 반응에 변화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도 감도 잡지 못했다.

“이 병은 말 그대로 평활근종이 복막을 비롯한 복강 내 여러 장기에 번져서 자라는 형태의 병을 말합니다. 워낙 드문 병이다 보니 원인이나 위험 요소 등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그중 하나 정도가 아주 확실한 위험 요소 또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전에 있던 자궁근종과 그에 대한 전 절제술이죠.”

“오…….”

“그럼……?”

수혁은 니들 생각이 맞다는 얼굴로, 그러니까 양성일 거라는 생각으로 웃으며 말했다.

“절제술이 어째서 이것을 드물게나마 야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병리학적인 병인을 생각해 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하나는 환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높은 수준의 여성 호르몬에 대한 각 장기의 감수성. 또 다른 하나는 근종 절제 시에 의인성 전이가 발생했을 가능성. 후자의 경우엔 사실 별로 가능성이 없긴 합니다. 암도 아니고 양성종양의 조직이 의인성 전이가 발생한다는 보고는 거의 없으니까요.”

“하긴 그렇군요. 그, 그럼 치료는요?”

얘기를 다 듣고 나니 이거보다 그럴싸한 진단명은 없겠다 싶어진 교수가 물었다.

그 말에 수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직 명확한 치료는 확립된 적이 없지만…… 양성이니만큼 꼭 수술이나 제거가 필요하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일단 증상 일으키는 부분을 제거하고, 육안으로 보기에 제거하기 쉬운 종양들을 제거한 후 경과 관찰하면 될 거 같은데요?”

“오.”

“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을 마침과 동시에 환자가 무너지듯 인사를 건네왔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죽을 병은 아니었지만, 죽음에서 구원받은 기분이 들어서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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