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27화 (1,127/1,303)

1127화 학회 초청 (1)

그 후로도 수혁은 여러 환자를 봤다.

아니, 해결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는지도 몰랐다.

수혁을 지칭하는 말이야 워낙 여러 개이기는 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구태의연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원장 아들부터 해서 천재, 괴물 그리고 상당히 최근에 획득한 칭호인 재벌 집 막내아들까지가 아마도 주요 별명일 터였다.

마이너하게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었는데, 해결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안대훈은 그 해결사라는 말이 주는 어감에 약간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겨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사특한 무리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해결사 같았어…….’

하윤이 안대훈 본인의 노하우에 더해 자신만의 특색을 잘 살려 만든 돌림판으로 돌 때도 그렇긴 했다.

하지만 절정은 다른 병원에서 온 외과 케이스에 있었다.

미쳤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이 케이스의 발단은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이러했다.

“시발, 이게 대체 뭐지?”

어디 뒷골목에서나 들려올 법한 상스러운 욕설이 성스러운 수술방에서 튀어나왔다.

집도의를 맡고 있는 건 소위 말하는 김승규 사단으로 대표되는 태화 외과 출신 교수였다.

엄밀히 말하면 김승규 직계는 아니긴 했다.

완전 직계는 간담췌 외과 중에서도 간이식 파트에 종사하는 이들만을 일컫는 말이니까.

그에 비해 지금 집도를 맡고 있는 교수 김승태는 주로 상부 위장관 수술을 담당하고 있으니, 거리가 좀 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김승규 사단은 그의 얼굴을 보고 견딘 모든 태화 외과 의사를 뜻하기 때문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태화 외과 의국 출신 교수들은 다른 병원 출신들에 비해 상당히 젠틀한 편이었다.

워낙에 무서운 사람이 가까이 있어서였다.

함부로 행동하다가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바로 전국구 깡패가 적이 될 판인데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교수님 왜 저러셔?’

‘몰라…… 욕하는 거 처음 봤어.’

‘근데 이런 종양도 처음 보긴 해.’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그냥 조심만 하냐?

당연히 아니었다.

태화 외과 의국은 면학 분위기도 아주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말이 좋아 좋은 것이지 실제로 보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빡셌다.

물론 이유는 명확했다.

잘못하면 뒤질 거 같은 공포가 늘 그들의 뒷덜미를 꽉 쥐고 있었다.

‘스읍…… 이게 진짜 뭐지……?’

김승태 교수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또 젠틀한 태도도 익힌 사람이었다.

그 결과 꽤 이른 나이에 수도권 소재의 한 의과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고, 이제는 의국 내에서 꽤 신임받는 교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윗사람들만 이뻐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도 그러했다.

여기서 동료란 수술방 간호사들을 주로 말했는데, 이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면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봐도 됐다.

‘교수님 고민하신다…….’

‘척척박사 똘똘이 교수님이 웬일이래.’

‘선생님, 선생님도 모르겠어요?’

‘교수님이 모르는 걸 제가 어찌 압니까…….’

그들의 눈에 비친 김승태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수술방에서 보여 주고 있는 당황한 모습은 퍽 놀라웠다.

보조로 들어와 있던 4년 차에게 물었지만, 여기서 답이 돌아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4년 차쯤 되면 뭐 아닌가? 하는 아이디어 하나쯤은 떠오를 수도 있는 일이긴 한데,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많이 이상했다.

“흐음.”

“으으음.”

결국, 나머지가 할 수 있는 건 김승태의 신음이 외롭지 않도록 따라서 으음 소리나 내는 것뿐이었다.

“그…… 아씨.”

김승태 교수는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몇 번이나 된소리를 내다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보조 간호사를 불렀다.

“그…… 전화 좀 해 줄 수 있어요?”

“어디요?”

“일단 병리과. 방금 프로즌 보낸 거, 어찌 됐냐고.”

“어떤 종괴라고 할까요?”

“그냥…… 공장의 발생한 어떤 종괴라는 거밖에는…… 전혀 모르겠어. 그쪽에서 오히려 뭔가 정보를 얻어야 할 거 같은데.”

암?

암은 맞는 거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일단 이놈의 종괴가 소장에 생겼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공장에 생겼다는 건 사실 딱히 커다란 문제가 되진 않았다.

소장암은 워낙에 드물기도 하고 어차피 생겼다면 거기서 거기니까.

그리고 김승태는 태화에서 혹독하게 수련받던 당시에 그런 암을 꽤 여러 차례 봤고, 또 성공적으로 치료했던 경험도 있었다.

‘뭔 암이냐고, 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통 뭔지 모르겠다.

-아, 3번 방이죠? 김승태 교수님 계십니까?

전화를 걸었는데, 수술방 스피커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하긴 이쪽이 훨씬 효율적이긴 했다.

해서 김승태는 별 지체 없이 답했다.

“네. 혹시 그거 뭔지 아시겠습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여쭤보려고 했는데. 이거 소장에서 나온 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좋지 않았다.

닳고 닳은 병리과 교수가 위치부터 묻다니.

저건 달리 말하면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 뭐죠? 이거?

역시나 이런 답이 날아들었다.

‘그걸…… 그걸 병리과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 어쩌냐…….’

아무리 임상의학이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또 영상 의학이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최종 진단은 병리과에서 내리는 게 보통이었다.

즉 병리과 교수들만큼 공부 많이 하는 사람들도 드물다는 건데 이딴 답이라니.

-전혀 감이 오질 않아요. 양성 질환인가? 임상 양상은 어땠습니까?

아무튼, 묻는 말에는 성실히 답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이야 아예 영문도 모르겠긴 하지만, 얘기하다 보면 뭐라도 나올지 모를 일이니.

“일단 주소는 복통과 혈변이었습니다. 와서 검사했더니 복부 촉진 시에 종괴가 있었고…… 무엇보다 헤모글로빈이 7이었어요.”

-아…… 그럼 꽤 혈변이 심했다는 건데…… 양성 질환일 가능성은 적겠네요?

“네, 다행히 영상에서는 주변 전이가 없어 보이긴 했는데…… 병리과 의견에 따라 예방적 절제를 할지 말지 정하려고 합니다.”

-허어.

허어?

허어어어?

지금 수술 계획을 잡아야 하는데 허어?

김승태 교수는 기가 찼지만 참았다.

혼잣말로도 욕설을 삼가게 되었는데 남을 상대로는 오죽하겠나.

어쩐지 나쁜 말을 하면 김승규 교수가 저승사자처럼 나타날 거 같아서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이름 비슷하다는 핑계로 회식까지 여러 차례 끌려갔던 바 있던 그에게 김승규가 준 트라우마는 각별했다.

-일단…… 음. 주신 검체에서 마진에서는 뭐 이상한 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게까지 공격적인 암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암은 맞고요?”

-실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림프종 같기도 하고…… 또 비만 세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냥 단순 비만 세포종 같기도 하고…… 문헌 찾아봐도 뭐 나오는 게 없습니다.

“이거야, 원.”

지금 통화 중인 병리과 교수는 이 병원에서 제일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지 나이만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세월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은 그는 마주할 때마다 늘 배울 게 있다고 느껴질 만큼이나 관록도 쌓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저렇게 나오다니.

-모르겠으면 전화해.

자동적으로 학회에서 마주쳤던 스승, 김승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그런 말을 하면서 건네줬던 번호는 놀랍게도 자기 번호가 아니라 태화에서 새로 런칭했다는 통합진료센터 번호였다.

‘내과에서는 요긴하게 써먹는 거 같던데.’

염치 불고하고, 또는 환자 뺏길 각오하고 의뢰하면 일단 환자가 해결되더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외과도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걸 김승규가 박살 냈다.

-나도 도움받는데 니들이? 니들이 나보다 잘하냐?

병리과 교수가 세월을 낭비하지 않은 타입의 교수라면 김승규는 타고난 재능을 낭비하지 않은 타입의 교수였다.

슬프지만 어떤 종류의 재능은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데, 김승규의 재능이 그러했다.

그런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뭐야, 이거? 다시 봐도 모르겠네.

-교수님, 아직 스피커 켜져 있습니다.

-야, 인마. 쪽팔리게…… 꺼!

더욱이 희망이었던 병리과 교수가 저렇게 망가진 마당에야 달리 무슨 방법이 또 있겠나.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로 저장되어 있는 번호 있을 거야. 거기 한번 걸어 보지. 아, 교수님! 그거 지금 검체 사진 찍어서 저한테 보내 줄 수 있습니까? 계신 거 아니까 끊긴 척하지 말고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다 들립니다.”

-아…… 안 끊겼네. 근데 사진은 왜요?

김승태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봐도 너도 모르는 거 같으니 다른 병원에 의뢰하자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자신이야 김승규가 무섭기도 하고 그의 실력도 아는 데다가 허튼소리 할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아니까 이렇게 하지만…….

“그, 태화에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려고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겠나.

해서 대강 둘러대려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다.

-혹시 이수혁 교수님?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 사람 엄청 유명해요. 거기 박종국 교수라고 있는데, 그 사람은 아예 이수혁 교수 신도예요.

“신도……요?”

-몰타 십자가 형상을 봤다고 하면서…… 요새는 좀 나아졌는데 좀 전에는 진짜 좀 이상했어요. 아무튼, 실력 하나는 확실한가 봅니다.

“교수님도 아실 정도면 망설일 필요가 없겠네. 사진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국제 병리 학회에서 주최했던 사진전에서 당당히 우수상을 차지했던 게 바로 몰타 십자가를 등진 채 성스러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수혁 사진 아니던가.

단지 사진만 그랬으면 또 모르겠는데, 관련된 케이스마저 어마어마했다 보니 임팩트가 있었다.

그 덕에 둘은 극적인 타협을 보았다.

관련 자료는 즉시 통합진료센터 메일로 보내졌고 전화 통화도 일사천리였다.

-네,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김인수입니다.

“아, 네. 저 인의 대학교 병원 외과 김승태입니다.”

-김승규 교수님이요?

“아니, 김승규 교수님은 제 스승님이고…….”

-오야시라고요?

“이 사람이. 일부러 이러나.”

-죄, 죄송합니다. 살려 주십쇼.

아니, 잠깐 혼선이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긴 했다.

김승규 교수야 뭐 어떻게 봐도 스승보다는 오야붕처럼 보이지 않던가.

정작 본인은 독립군의 자손으로서 일본 관련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생긴 거부터가 조상에게 못 할 짓이었다.

일종의 불효였다.

-수혁 교수님 지금 돌림판 투어……. ―뭐라고요? 당신 의사 맞아?―

-아, 방금 오셨습니다.

“뭔 소리를…… 아무튼, 오셨으면 바로 좀 알려 주세요. 우리 지금 수술방이야.”

-네네. 자료가…… 아, 방금 다 받았습니다. 바로 전달 드리겠습니다.

“네.”

급하다 보니 자료를 그냥 긁어다 보냈다.

어찌 보면 개인정보법 위반이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환자 배를 열어 둔 채로 대기 중인데 뭐 어쩌겠나.

김승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혁의 답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