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화 학회 초청 (2)
수혁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있었다.
원래 외부에서 들어오는 의뢰 중 태반은 어렵지 않던가?
그래서 애초부터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 이 의뢰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느낌이었다.
세상에 수술 중에 온 의뢰라니.
그것도 뭐 수술이 시작하기 전이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배를 열어 둔 상태였다.
타임 어택이 있다, 이 말인데…….
심지어 넘어온 자료조차 온전치는 않았다.
‘병리 슬라이드를 직접 보고 싶은데…….’
[퀵으로 쐈다고 하니, 30, 40분 내로 올 겁니다.]
인의 대학교 병원은 인천에 있다.
안 막혀도 한 시간가량 걸릴 거리라 이건데…….
경험상 대한민국 퀵은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인지 뭔지 어마어마하게 빨리 다녔다.
종종 외상 센터 일을 돕는 장준혁의 말에 따르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반대로 보면 최악의 조건이라고 했다.
빨리 달리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자유를 잃게 되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라 했다.
‘그사이에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까.’
[네.]
둘은 잠시 그러한 생각을 접어 둔 채, 환자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
기록이 넘어오긴 했지만, 세상엔 기록만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많은 법이었다.
특히 외과 계열은 주치의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상당히 과중하다 보니 환자 파악은 잘해 놓고 정작 기록은 개판으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혁은 상당히 부실한 기록을 보면서, 이번에도 그러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
“네!”
김승태는 그런 수혁의 말에 답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니만큼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그래 봐야 이런 상황에서 진짜로 뭔가 될 거란 기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김승규가 백강혁과 비교했다는 설을 들은 이상, 무조건 자기보단 나을 터였다.
-환자 주 호소 증상이 뭐였죠?
“네……. 상복부 불편감입니다. 구토도 있고요.”
-그게 얼마나 됐다고 했죠?
“대략 2달입니다. 그렇지?”
“네.”
해서 레지던트에게까지 확인하면서 답했다.
수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영상을 봐도 장폐색 소견이 있었다.
아마 구토는 그로 인한 것일 터였다.
‘검사 결과를 보면 뭐……. LDH 살짝 높으면서 빈혈이 있고. 이거야 흔하지.’
[흔하죠. 하지만 환자는 생리가 끝난 나이의 여성입니다. 영양 공급에 문제가 없다면, 딱히 빈혈이 발생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아……. 그건 그렇네. 근데…….’
[물론 고령 인구에서, 특히 대한민국의 고령 인구에서는 육류 섭취가 모자라기 때문에 빈혈 인구가 상당히 많긴 합니다.]
‘증상으로 구분하기엔 너무 좀 비특이적이지?’
[질문을 바꿔 보죠. 지금 주된 증상이 있냐 없냐만 물었지 않습니까? 물론 종괴 질환에서 중요한 질문이긴 했지만, 영 상관없어 보이는 증세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게 연관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
[맞습니다.]
수혁은 그 답과 기왕에 넘어와 있는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추론을 시전해 보았지만, 진척이 있진 않았다.
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뭐…….
병리과 슬라이드가 오기 전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테니.
“그 외에 혹시 다른 증상은 없었나요?”
-체중 감소가 조금.
“아, 그거야……. 그거 말고요.”
수혁의 말에 김승태 교수는 좀 당황했다.
그거 말고?
말고는 모른다.
물어보긴 했는데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증상은 없었다.
전신 피로감이나 열감 등이야…….
체중 감소에 대한 저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같은 반응만 돌아올 거 같았다.
그때 옆에 있던 주치의, 그러니까 레지던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는 들릴락 말락 할 크기의 목소리였다.
“저기, 교수님.”
“뭐.”
“실은 환자가 안면 홍조가 좀 있는 거 같다고.”
“갱년기 아냐?”
“네? 오십 대 후반입니다.”
“아……. 근데 그게……. 의미가 있나?”
“모르겠습니다.”
“너무 이상하잖아. 쪽팔리니까 가만히 있자.”
아마 안 들릴 거라 판단한 김승태 교수는 둘이서 속닥거리고 말았다.
적어도 둘의 생각엔 그러했다.
하지만 수혁은 들을 수 있었다.
일부 좀 부정확한 단어도 있긴 했지만, 괜찮았다.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으니까.
‘안면 홍조라……?’
[왜 얘기 안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좀 생뚱맞기는 합니다.]
‘종괴 질환 중에 안면 홍조를 일으키는 것들이 있긴 하지.’
[그렇긴 하지만…….]
그 후로는 몇 분간은 별 소득 없이 흘러갔다.
영상에 대한 소견에 대한 고견은 있었다.
인의 대학교에서는 듣지 못한 정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세에 뭔가 커다란 영향을 줄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김승태 교수는 슬슬 이대로 닫아야 하나 싶어졌다.
뒤로 수술이 아직 잡히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배 열어 놓고 이게 뭔가.
마르지 않도록 생리 식염수 뿌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뭐, 달리 필요가 있어서 수술을 진행 중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아, 슬라이드 왔네요.
해서 슬슬 도와줘서 고맙고, 이제 알아서 하겠다고 하려는 찰나에 수혁의 말이 들려왔다.
이쪽 사정과는 별개로 수혁의 목소리는 밝디밝았다.
무언가 반전이라도 있을 느낌이었다.
그렇다 해도 김승태로서는 아주 기대가 되진 않았지만…….
저렇게 나오는데 됐다고 해?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김승규 교수님하고 친하잖아. 예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뒈진다.
해서 김승태 교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슬라이드 보는 데 얼마나 걸릴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였다.
한편, 수혁은 슬라이드를 바로 현미경에 꽂아 넣었다.
그러곤 아주 능숙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실시간으로 병리 소견을 읊었다.
물론,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였다.
-슬라이드를 통해 보이는 조직의 전반적인 모습은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이나 급성 백혈병, 림프종 등과 비슷해 보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찌나 유창했던지 김승태는 지금 자신이 내과 교수가 아니라, 병리과 교수랑 통화하는 줄로만 알았다.
확실히 우수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쪽 병리과 교수도 저 정도는 하진 않던가?
라고 하는 순간, 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세포의 핵은 원형, 타원형, 소엽 또는 들쭉날쭉합니다. 미성숙 세포라는 얘기고……. 대개 호산구성 세포질을 가지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질환 중에서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이나 림프종이 비슷해 보일 수 있는데……. 잘 보면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의 특징인 종축 핵 모양이나 세포질 경계가 불분명해 보이는 지점이 없습니다.
그러자 곧 병리과 교수랑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와……. 어? 야, 이거 켜 놨어? 빨리 꺼! 쪽팔리게.
그런 생각은 비단 김승태 교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지,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병리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쪽팔리거나 말거나 수혁의 말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와 같이 그저 평온해 보이는 목소리를 하고서였다.
-림프종과의 감별은……. 전체적인 세포 모양에서 될 수 있지만, 이것까지 하려면 염색이 필요합니다. 그보다……. 아까 주치의 선생님이 환자가 안면 홍조가 있다고 했죠?
“아, 그건…….”
평온할 수 없는 건 항상 이쪽이었다.
그걸 어떻게 들었단 말인가.
김승태는 자신도 모르게 벌게진 얼굴을 하고서 레지던트를 노려보았다.
허나 이어지는 수혁의 말을 듣고 나니 좀 성급했던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대단합니다. 사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증상이라 무시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어요.
“네?”
네? 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참을 걸 싶었지만, 뭐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행히 수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다.
덕분에 김승태 교수는 스스로는 좀 민망해졌을지언정 고대로 서서 들을 수는 있었다.
-안면 홍조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중년 이후의 여성에 있어서는 호르몬 변화의 영향이 가장 크겠죠. 하지만 이 환자는 50대 후반……. 갱년기 증상이 있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3개월 정도 됐다고 했으니, 증상도 상당히 최근에 나타났죠.
지금 수혁의 말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들 어딘지 모르게 공손해진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김승태 교수는 모르겠지만, 병리과 교수도 사실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그런 병리과 교수를 보면서 송출 마이크 버튼을 연신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종괴와 연관이 있는 증상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증상들도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으니까요. 그럼 구조와 연관을 지어서 생각을 해 봐야 하는데……. 호산구성 세포질을 보면 떠오르는 세포가 하나 있죠. 바로 비만 세포입니다.
-아……! 야! 아직도 안 껐어!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저러다 또 놀랄 만한 얘기 나오면 소리치고 화내겠구나 했는데 바로 다음에 그랬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여전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레지던트도 수혁의 말에 홀려 버렸다.
원래 병리과라는 과 자체가 진단에 묘미를 느끼기에 좋은 과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묘미를 지금 저 내과 교수가 그 어떤 병리과 교수보다도 더 잘 알려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비만 세포종이 가장 흔한데……. 그건 양성이죠.
“아, 그럼! 이대로 수술을…….”
-아뇨. 세포핵의 형태가 양성 양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진단이 하나 더 있을 겁니다.
“?”
김승태, 병리과 교수 아니라 다른 모두가 의문 부호만 떠올렸다.
사실 수혁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드물다는 말도 식상할 정도로 드문 질환이니까.
-비만 세포 육종입니다. 이게 소장에만 국한해서 생기는 경우는 진짜 드뭅니다. 아마 케이스 리포트 감이겠죠. 예후가 아주 좋은 암은 아니라……. 지금보다는 좀 더 안전 마진을 고려해서 절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병리과 교수님 듣고 계십니까?
-네네.
-염색하실 때 LCA 및 C-kit(CD117), CD1a, CD20, CD3, MPO, Cytokeratin(AE1/AE3, CK7, CK19 및 CK20) 및 Vimentin을 시행하셔야 합니다. LCA 및 C-kit(CD117)는 양성, 나머지는 음성이 뜰 겁니다.
-아……. 네네. 한 번만 더.
-네.
수혁은 병리과 교수에게 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중요한 거 하나 더. 이 질환의 예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자가 있습니다. KIT D816V 돌연변이 여부인데, 이게 있으면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 치료에 내성이 있어 예후가 별로입니다. 없다면…….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를 쓰면서 경과 관찰해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간만에 머리 좀 많이 썼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