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화 학회 초청 (3)
‘이수혁 교수를 이번 춘계에 불러야겠다.’
장준혁 교수가 생각했다.
쉽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내과도 유서 깊은 학문이라지만, 외과도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내과에 비하면 좀 역사가 끊겼던 적이 있기는 한데…….
가령 외과 의사는 의사도 아니라는 말들 있었지 않나?
이발소에서 외과 수술을 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란 얘기였다.
의과 대학에서 아예 외과를 퇴출했었기 때문인데, 딱히 그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외과에서 내과를 그리 탐탁지 않아 하기는 했다.
‘실현 가능성이 있진 않겠지……?’
장준혁 본인이 학회에서의 위치가 이사급이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그 급은 아니지 않나.
사실 이번에 수혁이 수술을 예기치 않게 도와주면서 몇 단계 실력이 점프했고, 덕분에 수술이 늘면서 위상이 좀 올라가긴 했다지만…….
학계에서의 위치는 비단 실력뿐만 아니라 연배도 필요한 법이었다.
‘그래도 얘기나 해 보자.’
장준혁 교수는 동명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안 될 것을 괜히 들쑤시는 취미 따위는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수혁의 위력을 어디에선가라도 좀 털어놓고 싶어서 그랬다.
‘이수혁 교수를 학회에 부르고 싶은데…….’
인의 대학교 병원 김승태가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오지랖이긴 했다.
다른 병원 사람이지 않나.
아마 이런 얘기를 꺼낸다면 이수혁 교수 본인부터가 봤으면 뭐 얼마나 봤다고 이러나 싶을 터였다.
-정말로…… 지방 세포 육종이 맞습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얘기인 건가 싶은데……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국내로는 최초고 세계적으로도 소장에 생긴 경우는 손가락에 꼽아요, 덕분에 저는 이번 해외 학회 발표 꽁으로 먹었습니다.
허나 방금 병리과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이건 참을 수 없었다.
다른 과, 그러니까 내과나 소아과는 이수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고 꿀 빨고 있는데 우리 외과만 뭘 모른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자고?
활용할 수 있는 천재가 있다면 활용해야 했다.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글쎄.
김승규 사단이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모두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차세대 외과를 이끌어 나갈 것은 역시 태화 의료원 출신들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하지만 아직은 차세대일 뿐이었다.
‘그래도 해 봐야지.’
정확히 자기 위치를 자각한 채, 김승태는 전화기를 들었다.
뚜뚜뚜
통화 중이었다.
학회 사무실이라는 곳이 본디 학회 초록 내고 할 때나 전문의 시험 결과 나올 때 잠깐 말고는 그렇게까지 붐빌 수가 없는 곳인데 신기했다.
하여간, 좀 대기했다가 다시 전화를 거자 학회 총괄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네, 대한외과학회 본부입니다.
“아, 네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인의 대학교 병원 김승태입니다.”
-아, 네. 어쩐 일이신지.
“이번 학회, 춘계 학회에 건의드릴 사안이 있어서요.”
-네? 아…… 네.
어쩐지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춘계 학회 초록이야 이미 사전에 받고 있긴 했지만, 원래 학회라는 곳이 며칠 동안이나 하는 것이니만큼 모든 시간을 알차게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거든.
거기에 학회 임원진이 아닌 다른 교수들이 건의를 해서 보다 건설적인 학회를 만들어 주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지, 절대 이렇게 심드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다.
‘계약 기간이 다 되어 가나……?’
뭐, 하나하나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런 사람은 태화 외과 의국 내에서 다 죽었다.
해서 김승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말을 이었다.
“이수혁 교수라고 계십니다. 그분께 강의를 하나 의뢰드리면 어떨까 싶은데요.”
-아…… 이수혁 교수님이요.
“네. 태화 통합진료센터에 계신 분인데.”
-네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만.
“아니, 아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거 같은데. 교수님 번호 좀 돌려 봐요.”
그러려고 했는데 상대의 심드렁함이 통화를 이어 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해서 부리나케 말을 이으려니까, 상대 또한 부리나케 나섰다.
-교수님 지금 통화 못…… 받으십니다.
“그럴 리가? 오늘 연구 시간인 거 다 알고 한 건데.”
학술 이사.
원내 보직, 즉 병원 보직은 아니다 보니 병원 차원에서의 배려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학술 이사라는 자리가 원체 학회 전에 바쁜 곳이다 보니 어느 정도 다른 일은 의국 내에서 정리해 주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춘계는 사실상 연내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내가 무슨 레지던트도 아니고…… 어? 누군 인마 왕년에 학회 일 한번 안 해 본 줄 알아?’
이번 집행부가 태화와 계열이 달라서 그렇지, 태화 계열이 집행부일 때는 위원으로 끌려가서 별일 다 했다.
스승이 김승규인 제자의 삶을 남들이 알 수 있을까?
-연구 시간은 맞는데…… 어어. 여기서 이러시면! 아닙니다! 히익.
“음?”
헌데…….
뭔가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 찐득찐득한 공포의 냄새…….
왜?
왜지?
-이수혁 교수 부르라니까?
그리고 김승태는 곧 그 이유를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김승규 교수님……?’
전화를 끊을 뻔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제 상대방의 목소리 대신 김승규 교수와 학술 이사의 대화만 들려왔다.
-제, 제가 뭐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왜 소리를…… 소리를 지르십니까…….
-내가 언제 소리를 질렀어?
-지, 금. 히익. 사, 살려 줘!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누구야, 넌.
-시큐리티…… 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신고? 나를 신고해?
-쏘, 쏜다!
아니, 학술 이사와의 대화라고 하기도 이젠 어려운 상황이었다.
‘흐흐.’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 말인데…….
김승태는 저 자리에 있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아마…….
“뭘 쏴. 이거?”
“이게…….”
시큐리티는 부서진 가스총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초대형 병원인 칠성 병원 소속이다.
그 말은 곧 칠성 그룹 소속이라는 뜻이고, 당연히 아무나 뽑는 곳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팀장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특채가 필요한데, 팀장은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였다.
‘너무 무서워.’
그것도 유도.
어지간한 진상 아니라 깡패도 다 한 방에 메칠 자신이 있었는데, 눈앞의 상대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뭐든,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그 와중에 신고자임이 분명해 보이는 교수가 무릎을 꿇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수혁 교수를 부르…… 이거 안 되겠군. 간담회 오는 김에 들렀는데 대체.”
김승규는 학술 이사가 제정신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다들 그럴 텐데, 원래 감정이 격해진 사람을 보다 보면 저렇게 된다는 걸 지난 수십 년간 수천 건의 케이스를 보면서 배웠다.
“비서.”
“히익.”
해서 비서를 불렀다.
뚱한 얼굴로 서 있던 20대 젊은 청년은 이제 없었다.
사색이 된 채 부서진 가스총과 무릎 꿇은 교수를 번갈아 보더니 아까부터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펜, 종이 있나?”
“여, 여기!”
그나마 젊어서일까?
패기가 있었다.
펜과 종이를 덜덜 떨면서 줄 수 있었다.
김승규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한번 쉬고는 또박또박 이수혁 교수 부르라는 말을 썼다.
그러곤 빈말로도 멀쩡하다고 할 수 없게 된 외과 연구실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실랑이 벌이느라 망가져 버린 자동문이 삐걱거리면서 공간을 내주었다.
“무, 뭔 일이래?”
“몰라 강도래.”
“어어.”
“어어어.”
“어엇.”
최근에 지어진 병원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
칠성 병원도 연구실 밖이 바로 병동이었다.
이전에는 교수들 단독 공간 보장해 준다고 아예 다른 건물에 두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져 진료 효율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이렇게 되었다.
해서 소란 때문에 웅성거리던 환자들이 드디어 김승규를 바라보았다.
‘암 진단받은 이후로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한 노인을 시작으로 거기 있던 모든 환자가 고개를 숙였다.
강도?
아니, 저런…….
저런 게 고작해야 강도일 리가 없다.
‘무장 공비…… 간첩 신고는 113!’
반공정신이 투철한 한 노인 환자가 두려움 속에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김승규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다 알았다.
왜?
국정원에서 나온 적이 있거든, 이미.
나중에 안 사실인데 모든 113 신고에 바로 국정원이 뛰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럴 수도 없고.
하지만 첨부된 김승규의 사진을 확인한 국정원은 사진 속의 사내가 최소 북한 보위부 최강의 전사일 것이라 짐작했고, 중대급의 병력을 끌고 왔다.
‘아찔했다, 시발.’
그때는 김승규도 좀 무서웠다.
양복쟁이들이 우르르 나타나 권총을 겨누고, 손들라는 말도 없이 관등성명 대라는데 안 무서우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겠나?
“어르신, 저 무장 공비 아닙니다.”
“이, 이놈! 내가 6.25 참전 용사다 이놈아!”
“저희 아버지는 장교 출신이에요. 저 진짜 아니라니까요?”
“저, 정말인가?”
노인 환자의 말에 김승규는 노인이 6.25 참전 용사가 맞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랬냐면, 그 정도 경험을 한 사람만이 김승규 앞에서 이토록 빨리 스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랬다.
그러니 이수혁을 처음 봤을 때 김승규가 대체 얼마나 놀랐겠나.
아무튼,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정원까지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김승규는 그대로 지하 강당으로 내려가 간담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그를 본 환자나 보호자 또는 심지어 환자 중에서조차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마스크를 껴서 그랬다.
‘메일이 왔네. 외과 학회……?’
[외과요? 갑자기 무슨 일일까요?]
‘모르지. 한번 확인이나 해 보지, 뭐. 환자 의뢰면 좋겠는데…… 저번에 그 환자 재밌었지?’
[재밌었죠. 전화로만 진단하는 건…… 게다가 그 환자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김승규가 그렇게 한바탕 병원과 학회를 뒤집어엎은 바로 다음 날, 수혁은 회진을 다 돌고 개인 업무를 위해 메일함을 열었다.
그러곤 뜬금없이 도착해 있는 외과 학회 메일을 확인했다.
-이수혁 교수님, 저는 외과 학회 학술이사 서준규입니다. 이번 저희 춘계 학회가 4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있을 예정이온데, 1시간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 메일 드렸습니다. 시간은 저희가 무조건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강연비는 김영란법이 보장하는 최대로 맞추고, 부족한 성의는…… 제가 어디에서건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메일을 읽다 보니 좀 이상했다.
이런 식의 학회 초청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스팸이네.’
[빨리 지워요. 바이러스 걸리면 안 돼, 나는 세상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제일 무서워. 가서 손도 씻고.]
‘이 바이러스가 그런 식으로 전염되진 않는다는 거 알지?’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빨리 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