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31화 (1,131/1,303)

1131화 학회 초청 (5)

학술 이사와 비서는 나란히 서서 수혁과 박신영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진지한 대화 중이었다.

그리고 에어컨 바람인지 뭔지 모르겠는 것에 드문드문 실려 오는 문장을 들어 봐도 그랬다.

일단 담관암이라고 했다.

“지금 가면 안 되겠지?”

“네. 제가 잘 몰라도…… 담관암은 좀 무서운 병 아닌가요?”

“무섭지. 거의 죽어. 특히 황달이 생겼으면…… 흠. 애매한 상황이겠는데…….”

비서야 자기가 말한 것처럼 의학에 있어 문외한이다 보니 곤란하다는 생각 외에는 드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학술 이사는 본인이 외과 의사다 보니 상당히 익숙한 딜레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치매…… 암은 장거리 달리기야. 협조가 없으면 절대로 치료가 안 돼. 근데…… 그게 될까?’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꼭 모든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외과 의사로 살아온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실감이 났다.

이전에는 스승님이 그런 말을 할 때 이 사람이 뭔 소리 하나 했었지만, 이젠 오히려 자기가 그런 말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근데 보호자가 아마 동의가 안 되겠지…… 미국에서 왔다라……. 만약 아버지가 홀몸에 무리해서 보낸 거라면, 더더욱 안 돼.’

어떤 환자를 치료할 때 그 환자만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의사의 자리도 차지하게 될 터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꽤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비합리적이지. 아마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치료를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수술도 크고, 항암 치료까지 하게 되면…… 아버지는 자기가 이런 거 왜 하는지도 모를 수도 있는데…….’

보호자나 환자의 결정이 모두 합리적일 수는 없어서였다.

문제가 있다면, 의사 또한 그렇게 된다는 점이었다.

어떤 질환에 대한 치료를 한다는 것과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학술 이사는 수혁에게 상당히 가까이 가 있었다.

“저기, 저. 아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비서가 말리려 했을 땐 이미 늦었다.

비서는 체념한 얼굴로 이제 거의 일행처럼 붙어 버린 학술 이사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일행은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학술 이사 쪽은 보고 있지도 않았다.

“환자의 진술과 상황이 배치되는 상황이네요?”

“네. 그렇긴 한데, 환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좀 떨어지죠. 근데 그래도 좀 믿고 싶어요. 믿는다고 해서 진단명이 바뀔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암이 맞다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후…….”

박신영 교수는 담배 연기라도 내뿜는 듯한 기세로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혁은 박 교수가 왜 그러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아마 파노라마처럼 저 환자의 앞길이 훅 하고 지나가고 있을 터였다.

말이 담관암이지 담관만 뗄 수 있겠나?

암은 주변부 조직을 다 떼야 하는 법이었다.

간 부분 절제가 들어갈 거란 얘긴데…….

그런다고 오래 살 수 있을까?

‘왜 하는지 모르겠는 치료는 그냥 고문이야.’

박신영 교수는 상당히 오래도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입을 뗐다.

“저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치료를 하게 되겠죠.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 모두 괴로워하는 꼴을 보게 될 겁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질 수도 있죠.”

“자, 그럼 저는 아닌 쪽으로 추론을 해 보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바란다고 이루어지나?

적어도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순진한 생각은 버리게 되기 마련이었다.

하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소원에 대한 응답의 비율은 대개 통계와 같다고 봐야 하기에 그랬다.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외과 의사인 박신영 교수는 말뿐이 아니라 보기에도 미안해하고 있었다.

[정리하면 거의 모든 지표는 암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만약 일주일 전에 생겼다고 한다면…… 다른 원인일 수도 있지.’

[일주일 전이라. 이런 추론이 의미가 있습니까?]

‘혹시 모르니까, 데이터나 굴려 봐라. 깡통.’

[으음. 좋습니다. 뭐……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죠.]

수혁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시니컬해지기엔 아직 나이가 어렸다.

케이스 해결하는 걸 즐기는 것과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아예 못 느끼는 건 좀 다른 얘기였다.

바루다야 말 그대로 깡통이다 보니 별 느낌 없이 데이터를 굴리고 있었다.

모든 정황에 1주라는 시간을 넣어서였다.

[역시 그렇게 해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담관암입니다만…….]

‘염증의 가능성은? 감염은 아닐 거야. 자가면역이라면 가능성이 있긴 하지.’

[자가면역이라…… 현재 정황상으로는 가능성이 5% 내외입니다.]

‘0%는 아니지. 게다가 관련 검사를 하나도 안 했어. 그리고 환자를 아직 안 봤지.’

[그건 그렇습니다. 비어 있는 항목이 아주 많죠. 그럼…….]

‘가자.’

바루다가 0% 또는 1% 미만이라고 했다면, 수혁도 괜한 헛걸음을 하진 않았을 터였다.

데이터 다루는 데 있어 바루다만큼 능한 놈은 없지 않나?

녀석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5%라면 추후 더해지는 소견에 따라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희망이 아니라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환자분요. 네, 이쪽이요.”

박신영 교수도 진료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환자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들은 곧 환자가 있는 병실로 향할 수 있었다.

6인실이었다.

“어, 교수님.”

“아, 네. 조금 이따가 회진 때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지금은 협진이라.”

“아…… 네.”

어떤 사람은 죽음의 장막 아래 누워 있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간단한 수술 때문에 왔는지 멀쩡해 보이기도 했다.

고작 6명뿐이지만 그럼에도 안에서 운명은 극적으로 갈렸다.

수혁은 약간의 비애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드리워져 있던 커튼을 쳤다.

그러자 황달 환자 특유의 내음이 훅 하고 끼쳐 왔다.

동시에 수혁은 몇 가지 사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마르지 않았군…….’

[담관암과는 배치되는 현상입니다. 담낭 기능이 떨어지면 지방 변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체중이 가파르게 빠지게 되죠.]

‘그렇지.’

거의 동시에 복수도 차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말랐는지 모르기 마련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

의료인이 보면 그냥 바로 나왔다.

‘지금은 지방 변이 있는데…….’

[그렇습니다. 냄새가 확실히.]

‘그렇다면 빠르게 진행했다는 뜻이야. 그러면서도 영상에서처럼 아주 전격적으로 변이가 일어났다는 것이지. 내 기억에 이런 질환이 하나 있는데.’

[있지요.]

이 환자의 병은 만성이 아닌 급성에 가깝다.

적어도 아급성.

그러면서도 이 정도로 진행을 했다면, 일반적인 감염으로는 무리였다.

아니, 감염은 보통 저렇게까지 안 된다.

자가면역질환.

그런 종류의 질환만이 이딴 식으로 움직인다.

물론 확신하기엔 아직 일렀다.

“아, 오늘 조직 검사도 했네요.”

“조직 검사…… 아, 그래서 이거 누르고 계시는구나.”

“네. 어차피 황달 때문에 유치 경피 간 배액관을 넣어야 해서요.”

“그렇죠.”

황달이라는 건 결국 담즙이 배출이 안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지 않겠나.

담관암은 관에 암이 생기면서 배출되는 구멍이 막히는 병이고.

황달 자체는 쌓이는 담즙을 어떻게 해서든 빼 주면 완화가 된다는 얘기였다.

수혁은 가만히 환자의 상복부에 박혀 있는 구멍과 그 부근을 누르고 있는 모래주머니를 바라보다가 이내 김성진을 돌아보았다.

김성진은 당연하다는 듯 이미 어디론가 전화를 건 상황이었다.

“김진실 교수님입니다.”

“좋아.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저 이수혁입니다.”

-네, 이수혁 교수. 어쩐 일이에요? 오늘 통합진료센터 환자는 없었는데.

복부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가 전화를 받았다.

힘든 병원 생활임에도 늘 그렇듯 목소리에선 에너지가 넘쳤다.

“아…… 외과요.”

-아…… 협진이구나. 누구지? 혹시, 박순태 님?

“네, 맞습니다. 혹시 들어갈 때 느낌이 어땠어요? 초음파 소견이랑요.”

-음…….

“왜요?”

-느낌을 묻는 게 진짜 영상의학과 의사 같아서……. 아무튼, 음. 담관에서 문맥을 침범해서 약간의 협착증이 있고…… 담관 벽이 진짜 단단해서 바늘로 뚫기도 어려웠어요. 담즙이랑 조직도 같이 보냈으니 병리과 판독 기다려야겠지만…… 담관암에 합당한 소견이에요.

숙련된 영상의학과 의사라면 드물게 바늘 찌르는 느낌만으로도 대강의 조직학적 특성을 알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이 그렇게 물었던 것이고, 같은 이유로 김진실 교수가 놀란 것이기도 했다.

“혹시 Ig4에 의한 경화성 담관염이라면 어떨까요?”

-으음……? 음. 흐으음.

수혁은 질문을 던지고 잠시 기다렸다.

질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환자의 영상도 어땠는지 떠올려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다행히 태화 의료진의 수준은 실로 대단하다고 해야 할 수준이었고, 따라서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가능하지. 가능해요. 확실히…… 근데 췌장 쪽이 완전히 멀쩡했는데?

“이론적으로는 담관만 침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긴 한데…… 너무 드문데…….

“그렇긴 하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수혁이 생각하는 질환은 보통 췌장을 같이 침범했다.

김진실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란 얘기였다.

“병리과 연결했습니다.”

하여간 전화가 끝나기도 전에 안대훈이 병리과에 전화를 걸었다.

그 덕에 수혁은 곧장 어느 정도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이형성 세포와 비정형 상피 조각…….’

[암을 가리키는 소견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Ig4와 관련된 경화성 염증에서 더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죠.]

‘하지만 결국엔 제대로 된 조직 검사…… 즉 담낭 절제술이 필요해.’

[설득이 되겠습니까?]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한 수술이 아니라, 진단을 위한 수술을 하자는 뜻.

만약 암이라면 이번 수술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치료가 시기까지 더 늦춰지게 될 터였다.

아니, 설건드린 암은 그 특성상 오히려 더 빨리 자라나기도 하기에 어찌 보면 환자의 목숨을 건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박신영 교수는 수혁의 표정을 보면서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교수님이 추천한 사람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의견을 묻진 않았을 터였다.

허나 김승규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스승은 얼굴만큼이나 까다로운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백강혁과 수혁을 거의 동일 선상에 놓고 말했다.

‘이 사람 의견을 무시할 이유는 전혀 없어.’

해서 수혁의 마음을 물었고, 그대로 하기로 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암으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다소 희망적인 얘기를 듣게 된 만큼 곧장 결정을 했다.

오늘따라 수술도 좀 비어 있어서, 곧장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수술 전 검사는 입원하면서 다 해 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가요?”

“가자.”

“어, 어떻게요?”

“나 학술 이사야. 여기 아는 얼굴이야 있지…….”

“근데 왜 이렇게까지?”

“나도 몰라. 근데 듣다 보니까 너무 궁금한데, 이거.”

이제 김승규 따위 다 잊어버린 학술 이사도 그 수술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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