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화 학회 초청 (6)
“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장준혁 교수가 학술 이사를 알아보았다.
정치적인 인물이지 않나.
마음속으로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언제 어디서라도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이었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시간이고 또 태화 의료원 사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어어. 장 교수. 이야, 다행이구만.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있었다.
이 사람이 대체 여길 왜 왔단 말인가.
대부분의 원장단이 내과 또는 그쪽 계열 사람이다 보니 외과 쪽 사람들은 그 사람들처럼 사이가 안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태화와 칠성이다.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이가 나쁘다는 건데…….
“네, 교수님. 제가 오늘 수술이라서요. 근데…….”
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거나 혹은 표정으로 드러내 보일 만큼 미숙한 사람은 아니기에, 학술 이사는 그저 반가움만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어어. 그.”
학술 이사가 아주 민망해할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랬다.
“방금 들어간 환자가 지인인데 부탁을 받아서.”
“네에? 아니, 그러면 제가 당장 가서 알리겠습니다. 이상하네?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요?”
얘기가 없었다는 건 매주 초에 있는 컨퍼런스에서 언급이 없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원래는 담당하고 있는 환자 중 특기할 만한 사항, 즉 기저 질환이나 지금 수술을 앞두고 있는 수술이 특이할 경우에 그런 얘기를 나누기 위한 컨퍼런스이지만…….
병원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이지 않던가.
지인들 얘기도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
실제로 대학 병원 교수들이 인생에 보람을 느낄 때 중 하나가 바로 지인 진료 소개해 줄 때이기도 했다.
나이 어릴 때야 다 귀찮은 일이지만 나이가 좀 들고 나면,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존감에 도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장준혁이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인간이다 보니 더더욱 그러한 성향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그와 동시에 학술 이사의 얼굴이 돌변했다.
“왜, 왜요?”
“부담 주기 싫어서 그래. 그냥 몰래 왔어. 이럴 거면 칠성에서 했지. 그게 피차 부담인 사이라.”
“어…… 보통 지인이 아니신가 본데요?”
“그런 셈이지.”
아예 모르는 사이도 보통 지인은 아니지 않겠나?
서로 도움 주고받는 것도 부담이 될 테고.
학술 이사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장준혁의 배려를 기다렸다.
학회 내에서 벌써 위치가 올라가고 있는 인간이니만큼, 기대를 저버리는 법은 없었다.
“아무튼, 그럼 몰래 들어가셔야죠. 제 아이디로 옷 받아 드릴게요.”
예전엔 세탁 마친 옷이 그냥 책장 비슷한 곳에 쌓여 있었다.
그럼 그걸 담당 직원이 얼굴 확인하고 하나씩 나눠 주었었는데, 이제는 자판기로 바뀌었다.
그편이 훨씬 깨끗하고 또 편리하게 관리가 되기에 그랬다.
하여간, 교수는 인당 3개까지 킵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학술 이사와 비서까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마워.”
“고맙긴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박신영 교수 수술이죠?”
“어어.”
“이쪽으로. 박신영 교수가 수술할 때 되게 예민한 편인데…… 오늘 수술이야 뭐 보니까 간단한 거네요.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래. 사실 박 교수도 나랑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냐.”
“당연하죠. 이사님이야 언제라도 학회장 하실 텐데요. 당연히 알아야죠.”
장준혁 교수는 그렇게 갈아입은 둘을 데리고 안으로 향했다.
옆에 있는 비서는 얼굴이 낯이 익지도 않고, 교수라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지인이겠거니 하고 있었다.
아무튼, 둘은 박신영 교수의 수술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취됐습니다.”
잠깐 머뭇거린 거 같은데 벌써 마취가 됐다.
원래 같으면 이 시각에는 아직 교수가 내려오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위에서 대기하다가 마취가 되면, 드랩 시작한다는 전화를 받고 슬슬 내려온다는 얘기였다.
허나 지금은 수혁과 박신영 교수 모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여전히 토론할 것이 좀 남아 있어서 그랬다.
보통 내용이 아니라 숫제 환자의 예후에 관한 얘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드랩 해.”
“네, 교수님.”
레지던트와 펠로우 그리고 인턴이 부리나케 환자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말은 드랩 치라고 했지만 막상 드랩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개복으로 할지 아니면 복강경으로 할지도 완전히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그랬다.
“아무튼, 환자분 수술을…… 음. 교수님 생각에는 일단 담낭만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죠?”
“네. 췌장이 너무 깨끗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가능한 얘기입니다. 만약 Ig4와 관련된 경화성 담관염이라면…… 그렇게 하고 내과적인 치료만 해도 괜찮습니다.”
“흐음. 수술 들어가서 계획이 변경될 가능성은……?”
“있죠. 일단 수술장에서의 느낌도 중요하니까요. 경화성이 아니라 암이 확인된다면 그때는 주변 간과 공장을 포함한 대규모 절제가 필요할 거예요. 췌장도 일부…… 근데 그렇게 되면 예후가 아주 좋진 않겠죠.”
“그럴 겁니다……. 치매 이전에 일단 환자가 그렇게까지 건강한 상태가 아니세요.”
박신영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간과 공장을 포함한 절제…….
말이 쉬워서 몇 단어의 나열로 완성되는 것이지 실제로 하려면 어렵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 때문에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요. 적어도 저는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한숨을 보면서 수혁이 말을 덧붙였다.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박신영 교수는 그 말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김승규 교수님이 추천한 사람이야.”
김승규까지 끌어오면서였다.
이 점 또한 박신영의 대단한 점이었다.
보통은 김승규를 떠올리는 순간 수술이고 나발이고 그냥 생활이 안 된다.
“그럼 드랩은…… 어떻게 할까요?”
펠로우 하나가 소독을 마치고 물어 왔다.
혹시 몰라 가슴과 사타구니 언저리까지 싹 닦은 상황이었다.
“일단 복강경으로. 근데 바꿀 수도 있다는 거 인지하고 있어. 마취과 선생. 그쪽도. 수술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네, 교수님.”
“네!”
수술이 길어진다는 건, 마취가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씨…… 검사 결과가 그렇게 좋진 않던데…… 뭐…… 이수혁 교수님도 계시니까 별일 안 터지긴 하겠지?’
마취가 길어진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해서 표정이 좀 썩어 가다가, 수혁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단 환자를 직접 보는 과에서만 수혁의 위명이 자자할 수는 없지 않겠나?
마취과에서의 수혁의 위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고 봐야 했다.
속된 말로 그가 들어와 있는 방에서는 마취과의 역할이 거의 없어진다는 말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을 싹 다 극복하기도 했고.
“그럼…… 저 손 씻으러 갑니다. 중간중간 조언을 좀…… 어?”
“저도 씻으려고요.”
“어…… 왜요? 보조 이거 힘듭니다. 그리고 다리가.”
“잠깐은 괜찮아요. 김선웅 교수님 덕에…… 그리고 등 뒤는 어느 정도 기대고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원칙적으론…… 하긴, 그렇긴 하죠. 근데 보조를 하시려고요?”
“아, 아뇨.”
수혁은 김승규의 수술을 떠올렸다.
여느 때처럼 오만했더랬다.
그러다 갑자기.
-이수혁 교수.
김승규가 그를 불렀다.
무서웠다.
수혁도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흐음 오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지했기에 그랬다.
집중하고 있는데 잡소리 섞이면 짜증 나는 거야 누구든지 마찬가지 아니겠나?
수혁도 그런데 원래도 성질이 진짜 더러울 것이 분명한 김승규 교수라면 어떨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수혁과 바루다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여기 와서 한번 이거 만져 보지.
그랬는데 그냥 만져 보라는 것이었다.
해서 만져 봤다.
사실 뭔 기대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사람의 내부 장기를 만지는 거야 뭐 학생 때도 많이 해 본 거 아니던가.
허나, 한번 만져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느낌이 있더군요. 느낌이.”
“느낌……? 아, 촉각이요. 아…….”
그 말을 대강 뭉뚱그려서 전했고, 박신영 교수는 수혁의 말에 좀 놀랐다.
‘외과 의사 같은 말을 하네…….’
교과서나 논문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이건 오직 사람의 몸에 칼을 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지식이었다.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지식이라는 얘기였다.
‘하긴…… 교수님이 괜히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니긴 하지.’
박신영 교수는 그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닦았다.
닦으면서도 수혁이 어찌하나 한번 들여다봤다.
내과 의사들도 손을 닦기는 하는데…….
수술용으로 하지는 않지 않던가.
해서 막상 이쪽으로 시켜 보면 영 어설프기 마련인데…….
‘뭐가 이래, 이거? 이거 대충 찍어다가 돌려도 되겠네.’
FM 그 자체였다.
살짝 소름도 돋았다.
물론 티는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이리저리 감정이 날뛰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일이기에 그랬다.
심지어 박신영 교수는 평정심에 있어서 재능이 대단한 편이기도 했다.
김승규를 견디면서 더더욱 단련도 받았고.
“후.”
얕은 숨 한 번에 머릿속이 싹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박신영 교수는 두 손을 환자의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말했다.
“복강경 하 담낭 절제술 및 복강 내 탐색술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환자 확인과 수술명 확인이 끝나자마자 곧 시작이었다.
복강경용 기구인 트로카로 환자 복부에 살짝 구멍을 내고, 가스를 주입해서 빵빵하게 만들고는 곧장 카메라가 들어갔다.
‘너랑 보니까…… 복강경도 상당히 새롭네.’
[이런 말을 하윤이랑 있을 때 좀 해 보십쇼.]
‘왜?’
[그, 저도 뭐 잘 모르지만…… 드라마를 보면 상대의 고유성을 인정할 때 진도에 진척이 있더군요.]
‘으음. 그런가. 그렇군…… 알았어. 내가 꼭 그래 볼게.’
[뭐라고 하실 건데요?]
‘너랑 보니까, 복강경도 새롭다.’
[음.]
바루다는 자신도 모르게 체념이라는 감정을 배우고 있었다.
물론 깡통이다 보니 그걸 자각할 수는 없었다.
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세계 최고를 꿈꾸고 있던 인공지능 아닌가?
무엇보다 한국인이 만든 한국 토종 에이아이였다.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이었다.
[다른 거는 보면 안 돼요?]
‘교과서.’
[다른 거.]
‘논문.’
[그래요. 일단 수술을 봅시다.]
‘어, 안 그래도 그러고 있었어.’
그러한 의지도 꺾일 때가 있다는 걸 바루다는 배웠다.
아무튼, 수술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이내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박신영 교수의 요청도 들어왔다.
“이제 담낭 박리할 텐데…… 감각 느껴 보시겠어요?”
“네, 교수님.”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구를 전달받았다.
이제부터 진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감각을 사용해 볼 참이었다.
할 수 있으면 데이터로도 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