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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137화 (1,137/1,303)

1137화 우리도 와 줘야지 (4)

세 가지 가설은 나중에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별 쓰잘머리 없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사족이었다.

물론 ‘누구라도’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일 것.

“아……. 알파-갈에 대한 항체 반응이 크게 증가해 있습니다.”

“그럼……?”

“이수혁 교수님 말씀대로 알파-갈 알레르기 신드롬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 그러…… 그렇군요. 근데 그럼 이게 치료는 어떻게…….”

대사 부인은 아까 표표히 갈 길로 가던 수혁을 떠올렸다.

들어도, 다시 생각해도 뭔 소린지 절대 모르겠는 세 가지 가설을 기어코 떠들더니만 센터에 환자 왔다는 소리만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그 때문에 치료나 예후에 대해서는 잘 듣지 못했더랬다.

어차피 진단을 받았으니, 소아과에서도 자체적인 해결이 가능하긴 할 테지만…….

그건 의사들끼리 통하는 소리였다.

희귀 질환일수록 환자와 의사 간의 정보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지 않나?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 네. 증상이 발생했을 때는 사실 지금처럼 항히스타민제를 써야 합니다. 증상이 이번처럼 아주 심하면 에피네프린 주사를 놓거나, 경구 스테로이드를 써서 그렇게까지 심해지는 걸 예방하거나요.”

“아…….”

치료 방법을 듣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는 이전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지 않은가.

적지 않은 실망감이 대사 부인의 얼굴에 드리웠다.

허나 이는 너무 이른 반응이었다.

미국인이라서 그럴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는 말을 아직 숙지하지 못해서일 터였다.

“다만 예방이 가능해졌습니다.”

“예방이요?”

젊은 소아과 교수는 낮에 이기자 교수 그리고 조금 늦게 이수혁 교수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알파-갈 신드롬이라니…….’

알파-갈 신드롬은 당연하게도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 많을 터였다.

그만큼 드문 질환이라는 얘긴데…….

심지어 아시아에서는 더더욱 드물었다.

애초에 북미 대륙에 서식하는 진드기에 물리는 것이 이 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어서였다.

물론 미국 소아과에서조차 이 질환을 아예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유병률이 극히 드물다고 하면 딱 맞을 정도로 드문 이 병은 그중에서도 성인에서 주로 발생하는 병이었다.

소아 알파-갈 신드롬?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걸……. 한두 시간도 안 되어서 진단을 내리다니……. 진짜 괴물이라니까?’

소아과 교수는 휘유 하고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감상에 빠져도 좋을 만한 상황이긴 했다.

소아과도 아닌 사람이 와서 이 어려운 질환을 진단해 주고 갔으니까.

하지만 눈앞엔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다.

심지어 꽤 높으신 분들이었다.

잘 보여서 나쁠 게 있을까?

“알파-갈이 함유된 식품을 피하면 됩니다.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의 육류에 이게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붉은 고기에는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피하셔야 해요.”

“붉은 고기라 하면…….”

“소, 돼지, 양, 사슴 등. 주로 먹는 고기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 이런.”

대사 부인은 안쓰럽다는 얼굴이 되어 자기 아들을 돌아보았다.

아들의 얼굴 또한 그리 좋지는 못했다.

어린 나이에 고기 못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미국인들이다.

하루에 세 끼를 먹으면 고기를 세 번 먹고, 두 끼를 먹으면 고기를 두 번 먹는 족속들이란 얘기.

“다행히 조류나 어류에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치킨은 괜찮아요. 해산물도 다 괜찮고요. 어찌 보면 오히려 더 건강한 방식으로 비슷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을 겁니다. 좋게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죠.”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으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미국의 저소득층은 아니란 점이었다.

만약 소득이 낮은 상황이라면 사실상 붉은 고기류를 피할 길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상류층이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식습관 정도는 바꿀 수 있는 이들이란 얘기였다.

물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입장이니 어려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교나 유치원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급식 대신 도시락으로 먹을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미국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마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잘되어 있을 거예요.”

“사실 미국은 급식이 거의 없어요.”

“아, 그런가요?”

“미국은 식품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아, 아아. 그렇겠네요.”

소아과 의사는 대사 부인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긴, 그러고 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대다수의 알레르기 질환들이 코카시언들한테 발생하지.’

인종적 차이가 있다, 이 말이었다.

그걸 일일이 다 맞춰서 어떻게 급식을 하겠나.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일 수 있고 또 학생들의 숫자가 적은 사립 학교라면 또 모를까, 공립에서는 절대 무리일 터였다.

한국에서도 공교육 무너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미국은 그 수준이 달랐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한데, 한국보다는 이미 한참 전에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음식을 조심해서 먹여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나마 좀 더 익숙하시겠네요.”

“네, 그런 셈이죠. 저야 잘 몰라도……. 한번 조심해야 할 음식을 정하고 나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할 때 그리 어렵진 않을 거 같아요.”

“다행입니다. 그럼 식품 외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것도 있어요?”

“생각보다 소나 돼지에서 유래하는 제품이 많아서요. 일단 젤리에 들어갑니다.”

“젤리! 안 돼!”

젤리 얘기를 하자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환자가 소리를 질렀다.

상당히 큰 목소리였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럴 줄 알았으니까.

‘젤리 싫어하는 애는 없지.’

소아과 의사는 커다란 즐거움을 빼앗아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시멜로.”

“안 돼…….”

아직 빼앗을 것이 더 남아 있어서 그랬다.

다행한 것은 이쯤에서 끝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이것 외에는 개인적으로 조심할 것은 없는데……. 병원에서 쓰는 약이나 백신에도 일부 들어가 있을 때가 있어서 진료 전에 알리긴 하셔야 합니다.”

“아……. 네.”

“젤리……. 마시멜로…….”

소아과 의사는 나라 잃은 얼굴로 젤리와 마시멜로를 중얼거리고 있는 아이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좀……. 지나친 경우 같은데, 권고 사항에는 있어서 알려 드립니다.”

“아, 네.”

“진드기에 물려서 생기는 질환이니만큼 또 물리면 더 심해지거나 혹은 그 물림에 의해 쇼크가 올 수 있어요.”

“아……. 그럼 야외 활동할 때…….”

“네. 충분히 주의를 해야 합니다. 옷에 진드기가 붙지 않도록 하는 약품 처리를 하는 것도 좋겠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더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소아과 의사는 아마 지금 당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설명을 잘해서만은 아닐 터였다.

완벽하진 않았을 테니.

다만 지금은 방금 들은 정보를 되새기는 것만도 힘든 일이었다.

의사와 환자가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질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익숙한 언어를 통해 습득할 수 있는 데 반해 환자는 의학 용어 자체가 어려웠으니.

“아, 아뇨.”

“네, 지금은 그렇더라도 나중에 생각날 수 있거든요. 언제든 물어보세요.”

“네, 감사……. 아.”

“네.”

소아과 의사는 떠나려다가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문간에 선 채였다.

“혹시 아까 그 젊은 선생님은…….”

“아, 이수혁 교수님이요.”

“네. 통합……?”

“통합진료센터요.”

“네, 감사 인사를 따로 좀 드리고 싶은데 어쩌면 될지.”

“음.”

소아과 의사는 수혁에 대해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기자 교수님 양아들이잖아. 말도 안 되고……. 그래도 전임 원장 아들이네. 끗발 봐라……. 아니, 아니지.’

일단은 출신 성분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는데,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보니 애써 화제를 돌렸다.

‘뭐……. 딱히 환자를 피하는 거 같진 않지? 나름 좋은 관계도 맺고 잘 지내는 거 같은데…….’

관심 쏟아지는 걸 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어떨 때는 일부러 관심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안티 수혁파들은 그게 다 고아라서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외향적인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아니면 단순히 성격이 좋거나.

“찾아가셔도 좋아할 겁니다. 제가 미리 연락을 드려도 되고요.”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면 대사 부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 유명하시지.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만. 실력이 거의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아이에 대한 걱정은 이미 진단이 되고, 예방 방법도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다 덜어 두었다.

그럼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미국에 있어 꽤 중요한 나라일 수밖에 없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면서 동시에 주요 수입국이면서, 중국이라는 경쟁국의 턱밑을 틀어쥐고 있는 위치에 있는 국가이기도 했다.

또 서유럽이 오랜 우방이라면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에 같이 피를 흘린 전우였다.

심지어 동아시아는 인구 때문에라도 점점 더 중요한 곳이 되어 가고 있지 않나?

여기에서 기반을 잘 닦아 두면 앞으로 미국 내에서 뭔가 할 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자선 행사에 한번 불러야지. 오면 교수에게도 좋은 일일 거야. 결혼도 안 한 거 같고…….’

대한민국 입장에서 봐도 주한 미국 대사는 보통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거야 뭐 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그렇다면 대사 부인은 어떨까?

부인이 주최하는 모임도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임은 재벌가와 함께하는 자선 모임이었다.

애초에 독립 이후, 또 한국전쟁 이후에 모임이 만들어졌기에 그랬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쟁고아를 위해 설립된 단체는 그 역사가 이제 거의 70년이었다.

‘저렇게 젊고 똑똑한 교수면 재벌가에서도 눈독 들일 만하지……. 꼭 그렇지 않아도, 교수가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

재벌가 사모님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야망도 있어 보이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대사 부인은 생각했다.

착각이긴 한데, 하여간, 수혁은 대사 부인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재벌들 오는 자리면 음식도 훌륭하겠지요?]

‘혹시 몰라. 드라마 보면 돈가스 클럽에서 상견례도 하던데.’

[아……. 돈가스는 좀 그런데. 맛있는 건 맛있긴 하지만…….]

‘아끼니까 잘사는 거 아닐까? 그래도 설마 미국 대사까지 오는데 그러진 않겠지. 국격이라는 게 있잖아.’

[그렇죠. 갑시다.]

‘가자, 그래.’

전혀 엉뚱한 꿍꿍이를 가지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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