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40화 (1,140/1,303)

1140화 자선 모임 (3)

“아휴……. 살겠다.”

자리에 앉은 박익비는 다리를 두드려 댔다.

팔에도 힘이 좀 빠져 있어서 그런가, 두드리는 폼이 아주 힘차 보이진 않았다.

그냥 팔을 다리 위에 대고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만 올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혁은 바루다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상하지?’

[네, 이상합니다. 머리 쪽 문제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척추 쪽 문제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상지의 근 위약이 심대한 것에 비해…….]

‘소변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

[네.]

머리 쪽 문제라면, 이 정도로 광범위한 문제가 일어났다면 인지 기능에도 이상이 생겼어야 했다.

반드시 그러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머리에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만 보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그렇다고 척추 쪽 문제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단 이 나이에 척추 쪽 문제가 발생하려면 대개는 부상일 터였다.

허나 박익비의 어디를 봐도 부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왜……. 등에 뭐 묻었어요?”

“아, 아뇨. 다친 적이 있나 해서요.”

“네? 아, 아뇨. 그런 적 없어요. 괜찮아요.”

“그래 보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등을 돌아보긴 했다.

그러면서 살짝 등에 손도 가져다 댔는데, 멀리서 보기엔 상당히 과감한 스킨십 같았다.

‘발랑 까졌네……. 생긴 건 순진해 가지고?’

끼어들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지긴 했지만,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않겠나.

연신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말 상대를 해 주고 있는 사람도 이에 대해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좋은 사람 보이면 그게 어떤 모임이건 간에 자식과 이어 주고 싶은 법이니.

더군다나 뭔가 다른 건덕지 없나 하고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집안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자식들이야 쓸데없는 간섭이라 여길 테지만 반대로 부모들은 보호라고 여기는 편이었다.

‘어쩜……. 어? 이제 손을 잡아? 쟤도…… 마음에 들었나 보지?’

그렇게 보고 있다 보니 등을 만지다 못해 이젠 손을 잡았다.

연결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의 진도였다.

젊은 나이에 교수라 숙맥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딸 성격을 알기 때문에 조급해하지만은 않았다.

싫은 건 딱 싫다고 하는 사람이지 않나.

서로 아주 급하게 끌리고 있는 거 같았다.

“흠……. 확실히 모터가 떨어졌어.”

“모터요?”

“네, 운동 능력인데. 여기 잠깐 누워 볼래요?”

“여기서……요?”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요. 제가 가릴게요.”

“가릴 만큼 크시진 않은……. 뭐……. 알겠어요. 잠깐이죠?”

“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네.”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는 이러했다.

하여간, 박익비는 이제 이 상황을 완전히 진료로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별 망설임 없이 소파에 누웠다.

그러곤 수혁이 시키는 대로 다리를 올렸다.

원래는 쉬운 일이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었으니까.

해서 기억대로 다리를 끌어 올리려는데 쉽지가 않았다.

“어…….”

“흐음……. 제가 누를 텐데 이거 한번 이겨 내 볼래요?”

“으……. 안…… 안 되는데요?”

“으음. 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어…….”

“아이구,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말했던 대로 검진은 금방 끝났다.

오히려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이 더 길었다.

힘이 없다 보니 애를 써야만 해서 그랬다.

그렇다 보니 머리도 풀려서 이리저리 흩날리고 했다.

그걸 수혁이 부축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어떨까.

‘어……. 미쳤나. 누워서 뭐 한 거야?’

누워서 하던 건 안 보였다.

대신, 누워서 뭔가 하다가 일어나는 건 봤다.

뭘 했을까.

우리 딸이 저렇게 개방적인 애였던가.

그렇진 않았던 거 같았다.

근데 다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엄마가 알겠어?’

낳고 기른 사람이다 보니 스스로는 자식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가 아는 자식은 아이 때의 자식이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자식은 아니지 않나.

“하윤아, 갖고 왔어?”

어머니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애를 넘어 결혼으로 넘어갈락 말락 하고 있을 때쯤, 수혁은 하윤을 불렀다.

하윤은 잠시도 혼란스러워할 새도 없이 가방을 열었다.

박익비의 시선도 그 가방을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 매고 오기엔 좀 크다 싶어서 그랬다.

무엇보다 재질이 가죽도 아니고 천이었다.

사람이 워낙 있어 보여서 그랬지, 아니었으면 더 눈에 튀었을 터였다.

“어?”

물론 방금 꺼낸 것에 비하면 가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거요??”

“아니……. 돌려돌려 돌림판은 지금 쓸모가 없지.”

“그럼……?”

“혈압계. 아, 중간을 내가 너무 빼먹었나. 그래, 설명할게.”

“아……. 네. 가지고 왔죠.”

돌림판이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

뭔가……

아주 화려했다.

잠깐 켰을 땐 불빛도 테두리 따라 돌아가고…….

‘뭐야, 무서워.’

적어도 박익비는 살면서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혈압계를 꺼낸 하윤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혈압계를 천천히 집어 들면서 미소를 짓는 수혁도 있었다.

“보통……. 근 위약이 있다면 하지와 상지 둘 중에 어디가 더 심하지?”

“하지가 심한 경우가 많죠. 척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지. 근데 이 환자의 경우엔 어땠지?”

환자.

이젠 대놓고 환자라 하고 있었다.

박익비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환자가 아닌 것도 아닌 거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거기에 더해 뭐라 하기엔 지금껏 환자 역할을 잘해 왔지 않나?

해서 일단 들었다.

“하지보다 상지의 위약이 더……. 어? 이상하네요?”

“그래, 그렇지. 머리 쪽인가 하면 그것도 아냐. 환자분의 인지 능력은 온전히 보존되고 있어.”

“맞아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머리도, 척추도 아니라는 얘기가 되지.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은 뭐가 있을까?”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몸을 뒤로 늘어트렸다.

안 그래도 힘이 들던 참이다 보니 등받이에 기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멀리서 보기엔 좀 건방져 보였다.

방금 전까지 키스라도 하려나 했던 건설사 사장으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요즘 애들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정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으음……. 감염? 혹은 길랑 바레? 아닌데. 길랑 바레는 하지가 더……. 그리고 감염이라기엔 너무 균일해요.”

“그래, 전신 질환이겠지. 전신 질환 중에 이렇게 근력에 모조리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으음…….”

수혁은 입술을 오물오물거리고 있는 하윤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이 직접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당장 답을 하는 건 무리이긴 할 터였다.

[이런 건 안대훈 그 괴물만이 가능하죠.]

‘너 묘하게……. 대훈이한테 적대적인 거 아냐?’

[괴물을 괴물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요.]

수혁은 바루다에게 안대훈에 대해 변호하려다 바루다가 재생한 영상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모아 보니까 괴물은 괴물이었다.

실력도, 외모도 그랬다.

거의 데뷔 초창기의 박완규랄까?

아무튼, 수혁은 간신히 안대훈 표 스턴에서 벗어났다.

“전해질 농도가 변하면 근력에 문제가 생기지. 그중에서 어떤 질환에 의해 증가하거나 부족해질 수 있는 게 있다면…….”

“포타슘! 설사나 구토에 의해서도…….”

“어, 저 아닌데요. 아니에요!”

하윤은 설사와 구토를 언급하면서 박익비를 바라보았다.

박익비로서는 마침내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사라니?

구토라니?

그런 적 없었다.

“아, 저는 압니다. 냄새가 안 나요.”

“네에?”

수혁이 그를 변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냄새라니.

그걸 맡았다고?

아무리 기억을 돌이켜 봐도 코를 벌름거리던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관찰력이 장난이 아니지 않았나?

감각이 남들보다 예민한 것이라면…….

얼굴이 새빨개진 박익비를 향해 수혁이 말을 이었다.

“저칼륨혈증이 있으면 근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근육이 힘을 주는 데 칼륨이 필요하거든요. 아, 칼륨이 포타슘입니다. 아무튼, 그게 주로 떨어지는 경우가 언제냐면 우리 하윤이가 말해 준 대로 구토나 설사가 있을 경우입니다.”

“저……. 저 아니라니까요……?”

“네, 아니에요. 그것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면, 그때도 포탸슘이 떨어질 수 있어요.”

“네? 알……. 뭐요?”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요. 혈액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어렵고……. 혈압을 재 보면 대략 알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서 이걸.”

그제야 하윤과 박익비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혈압계를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설명도 이렇게 긴데 그거 다 건너뛰고 그리로 갔었다니.

대체 머리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런 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윤이야 같은 의사다 보니 그랬고, 박익비도 공부를 퍽 잘한 편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경외심이 들었다.

“자, 팔 줘 봐요.”

“어, 네.”

수혁?

수혁은 빨리 혈압을 재서 자신의 추론을 입증하고픈 생각뿐이었다.

해서 박익비의 팔을 잡아다 끌었다.

멀리서 보기엔 어떨까.

‘와……. 박력……. 건방지다고 혼내는 건가? 쟨 또 왜 저렇게 가만히 있어. 진짜 좋은가…….’

건설사 사장은 이제 딸내미 보낼 각오를 서서히 다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허나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더랬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지가 좋다면 보내야지.

“흐음…….”

“왜, 왜요?”

정리하자면 박익비는 어머니가 주요 회원으로 있는 자선 모임 행사에서 갑자기 동떨어진 자리에 있는 소파에 앉아 혈압을 재고 있었다.

오늘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팔을 붙잡힌 채였다.

이런 상황에 혈압이 정확하게 나오겠나?

“180? 너무 높은데? 물론 알로스테론이 높으면 이럴 수도 있기는 한데…….”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으면 다른 증상도 있었을 겁니다.]

“180이요? 왜 이렇게 높아요?”

“흥분하면 그럴 수도 있어요.”

“흐, 흥분이요?”

해서 의학적인 추론에 들어갔다.

여전히 팔을 잡은 채였다.

잡았다기보다는 살짝 손을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여기서 흥분이라는 단어를 말했으니 박익비는 어떻겠나.

“저, 저 흥분 안 했어요!”

억울했다.

정확한 감정은 그랬지만 의학적으로는 억울하거나 흥분하거나 거기서 거기였다.

혈압이 더 높아졌다.

“아까보다 더 흥분하셨네. 190이에요.”

“아니, 저는. 진짜……!”

“더 높아지네. 흐음. 매뉴얼로는 안 되겠는데.”

수혁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박익비의 팔을 잡은 채였기 때문에 박익비도 얼마간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물론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어서 완전히 따라 일어나진 않았다.

“가시죠.”

“어디, 어딜요?”

“병원이요.”

“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