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화 자선 모임 (6)
‘아니…… 진짜 응급인가?’
의사 집안은 아니지만, 주변에 의사가 적은 건 아니지 않나?
자고로 법조인과 의료인 지인은 만들어 둬서 나쁠 거 하나 없는 법이었다.
일단 범생이들이라 그런가 뒤통수칠 염려가 적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도움받기 제일 좋은 직종이기도 했다.
건설사 사장 정도 되면 당연히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사귈 수 있는데, 주워듣기론 어지간한 수술이라면 전화로라도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들어간다고 했다.
물론 너무 급하면 의사 둘이 서로 동의하고 들어가거나 또는 환자 본인이 성인이고 또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혼자 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오셨어요?”
하여간, 건설사 사장은 급히 병원 3층에 위치한 수술실로 향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실 앞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마는 주말이라고 해서 결코 쉬지 않는 법이었다.
다치는 사람 또한 생각보다 주말에 많이 발생했고.
“아, 그 딸이 안에.”
“아.”
그렇기에 건설사 사장이 인파를 헤치고 앞을 지키고 있던 간호사에게 도달해 이렇게 말했을 때, 간호사는 가만히 입을 벌렸다.
딱 봐도 나이가 기껏해야 50대 중반…….
그렇다면 딸도 젊디젊을 터였다.
오늘 누가 있었더라.
교통사고로 들어간 여자 얼굴이 딱 떠올랐다.
‘OUT-CAR TA…….’
보행자 사고였다.
차로 보호받지 못한 채 나는 사고는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법이었다.
불행한 것은 여전히 보행자 사고가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보행자가 차량을 피해 다녀야 하는 운전 문화가 산재해 있어서 그랬다.
‘외과에 흉부외과에 신경외과까지 들어갔지……?’
세 개 과가 한 번에 들어갔다는 건, 다친 부위가 여럿이라는 얘기였다.
적어도 복강, 흉부 그리고 머리가 다쳤다는 걸 의미한다는 뜻이었다.
살 수 있을까.
-야, 시발! 피, 피 달아!
간호사는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뒤에 놓인 CCTV 중 하나를 가리켰다.
딱 봐도 부산스러워 보이는 수술방이었다.
“저기…….”
“아니…….”
뭣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다급해 보였다.
수술에 관여하고 있는 의사들만 6명에서 7명으로 보였다.
흑백인 데다가, 화면도 작아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특히 그중에서도 수술방에서는 많은 의사를 봐서 좋을 일이 단 하나도 없는 법이었다.
“아까 분명 통화를…….”
“일단…… 저기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안쪽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아…… 아…….”
건설사 사장은 짙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같이 온 기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바닥에 쓰러졌을 터였다.
그가 붙잡아 준 덕에 간신히 의자로 와서 주저앉을 수 있었다.
손발이 달달 떨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던 딸이…….
저렇게 됐다고?
“트로카.”
그사이 박익비의 마취가 끝나고 드랩도 됐다.
특이한 점은 복강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엎드려 있다는 점이었다.
“흠…… 이게 최근에 나온 복막 후부 복강경 접근…… LPRA인가요?”
외과 교수는, 김승규와 그 일당들의 협박에 의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나와야 했던 외과 교수는 방금 수혁이 한 말에 흠칫 놀랐다.
최근이라는 게 말이 최근이지 거의 한두 달 내에 나온 논문이어서 그랬다.
심지어 집도하는 당사자조차 이번이 두 번째인가 그랬다.
막상 해 봤더니, 처음 해부학적인 구조가 살짝 헷갈렸던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아무래도 부신, 그러니까 지금 수술해야 하는 부위가 후복막에 위치에 있다 보니 거리도 훨씬 짧고 접근도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그 외에 관찰되는 합병증은 없었다.
“어…… 네. 아시네요?”
“아, 네. 제 취미가 다른 분야 보는 거라. 확실히 예후가 좋은가요?”
“아…… 네. 해 보니까 확실히…….”
그래서 그걸로 논문 쓰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과 교수가 딱 알아볼 줄이야.
괜히 김승규를 위시한 인간들이 이수혁, 이수혁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장준혁처럼 건방진 놈도 이수혁이라고 하면 한 수 아니라 두 수쯤 접어주지 않나.
지이익
아무튼, 트로카가 박히고 카메라가 들어가자, 곧 신장 위를 덮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대략 직경이 1.8cm 정도 되는 종양이 자라나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과연 악성은 아닌 듯했다.
주변과 경계가 잘 구분되고 있었다.
사실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양성이라는 것 정도는 대강 예측이 가능했다.
악성 종양 같은 경우엔 대개 별 기능이 없이 주변을 부수기만 하니까.
“좋아. 떼겠습니다.”
“네.”
하여간, 복강경을 통해 들어간 기구가 종양을 잡아 올리고, 다른 기구가 불빛과 함께 틱틱 종양을 분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범위가 좁은 데다 후복막 장기들은 앞에 있는 장기들보다 더 촘촘히 붙어 있는 편이다 보니 공간도 좁았다.
쉽지 않은 수술이라 이건데…….
“호오…….”
수혁과 바루다가 보기에도 수술은 상당히 깔끔하게 진행 중이었다.
어느 정도로 잘되고 있었냐면, 방금 칼을 댄 집도의조차 좀 놀랐을 정도였다.
지금?
지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거…… 우연 아닌 거 같지……?’
호오만 벌써 세 번째인데…….
그게 전부 자신이 잘했다고 느꼈을 때 흘러나왔다.
좀 이상하게 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흠.”
이 튀어나왔고.
‘미친…… 뭐지? 아…… 그때 장준혁 교수가…….’
그제야 장준혁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 레벨이 팍 올랐다고.
괴물에게 개인 과외를 받았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 한참 외과에서는 정신과 교수들에게 연락을 돌렸더랬다.
장준혁이면 나름 그래도 김승규 이후에 외과를 이끌어 갈 동량 중 하나인데 돌아 버렸으니 미리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냥 두었던 건 실제로 레벨이 오른 사람처럼 실력이 늘어서 그랬다.
이제 보니 그게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교수님 왜 이렇게 잘해. 전에 하나 하더니 더 늘었나?’
헛소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자마자 어느 정도 호오, 음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정도 이상의 수준에 다다른 사람이다 보니 오히려 이게 됐다.
그러자 원래도 잘되던 수술이 날개가 돋친 듯 갑자기 더 잘되기 시작했다.
보조로 들어와 있던 펠로우가 깜짝 놀랄 만큼이나 그랬다.
‘왜케…… 왜 이렇게 잘해?’
원래 교수가 수술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모든 수술을 잘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그건 오산이었다.
레지던트 때부터 펠로우까지 보통 5년, 군대 갔다 왔으면 8년이 지나는데, 그사이에도 교수들 실력이 느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더 들면 늘기는커녕 줄기도 하지만 하여간.
보는 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건데…….
‘미쳤나. 여기서 바로? 오…… 벌써?’
종양이 작기도 했지만, 그래도 복강경으로 하는 수술이지 않나.
아직까지 모니터를 3D로 잡아 두지는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깊이감은 감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현미경이나 루페만 껴도 이놈의 거리감이 헷갈려서 맨눈으로 하는 것에 비해 시간이 훨씬 더 걸리지 않던가.
복강경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고 봐야 하는데…….
“으음…… 호오.”
오늘은 이상하게 바로바로 감을 잡아서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툭툭 자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갑니다.”
“네, 네!”
간호사도 놀랄 만큼 빠른 시간에 종양이 제거되어 나왔다.
“프로즌 볼 때까지 잠깐 기다리죠. 피나 잡을까.”
“피도 거의 안 납니다, 교수님.”
주말에 끌려 나와서 기분이 참 그랬는데…….
이렇게 깔끔한 수술은 또 처음이다 보니 약간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펠로우도 어쩔 수 없는 외과 의사였다.
“으으음.”
보조의도 이럴 정도니, 집도의는 어떻겠나.
지금까지 해 온 수술 중에 거의 제일 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저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자, 자! 나갑시다! 오늘 다 잘했어요!”
“와…… 이게 사네.”
“앞으로가 문제긴 합니다만…… 그래도…… 진짜 잘됐어요!”
그렇게 조용해진 수술방에서 오직 콧노래만 흘러나오고 있을 때쯤, 옆 방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뭔 일이 난 건 아닌 듯했다.
오히려 반대 같았다.
“아, 아까 그건가?”
“아웃카 티에이(Out Car TA)…… 죽을 거 같았는데, 수술 잘됐나 봅니다.”
“좋네. 세 과가 들어갔는데 잘됐다고 생각이 들면 진짜 잘된 거지.”
“네, 진짜 그렇죠.”
여기도 외과지 않나.
여기서 한 수술이야 뭐…….
사실 응급은 아닌데, 툭하면 응급 수술에 끌려오는 이들이었다.
보통 쉬는 시간에 끌려오기 때문에 시발시발 하면서 들어오지만 수술이 잘 끝나면 또 신나는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저쪽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되어서 그런가 좋은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프로즌이 좀 걸리네…….”
“그러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건 또 아니었다.
아무튼, 소란을 일으켰던 한 무리의 교수들은 동시에 밖으로 나가 환자 보호자를 찾았다.
“김윤이 환자 보호자분!”
그 전에 이미 CCTV를 통해 사정을 전해 들은 간호사가 말을 해 두었기 때문에 엉거주춤, 눈물을 흘리며 서 있던 건설사 사장은 좀 뻘쭘해졌다.
김윤이 엄마가 아니라 박익비 엄마라서 그랬다.
“수술은 아주 잘되었습니다. 적어도 죽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하여간 김윤이 보호자는 얘기를 들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걸 보고 있자니 박익비 엄마도 눈물이 더 나왔다.
남의 딸이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 내내 응원하던 애가 살았다지 않나.
기사는 오늘따라 오락가락하는 사장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물었다.
“근데 그럼 우리 익비는 어디 있는 거죠?”
“아.”
그제야 얜 어디 있나 싶어진 건설사 사장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모임이 있었다 보니 진하게 화장을 해 놔서, 눈물과 뒤섞인 몰골이 상당히 괴상했다.
“박익비 환자는 어디 있어요?”
안 그래도 간호사도 좀 당황한 참이었다.
당당하게 저기라고 말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지 않나.
그래서 다른 젊은 환자가 있었나 했더니 있었다.
“아, 저기…… 5번 방입니다. 거기에 박익비 환자가 있네요.”
“아…….”
5번 방.
CCTV를 보니까 확실히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배를 열지도 않았다.
복강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뭔가 일단락이 났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서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화질은 아니었지만, 지팡이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까 진짜 당황했나 본데…….’
이것도 놓쳤을 줄이야.
하면서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또 당황스러웠다.
‘근데 대체 뭔 수술을 하는 거야?’
오늘 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