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4화 이거 그럼 그때 그거 맞죠? (1)
-박익비 환자분 수술방 맞습니까?
수혁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다리가 아파서 나중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아무리 수술을 받았다 해도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나.
[아, 아팠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미쳐서 돌아다닐 때는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무료한 기다림 속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
마비된 다리보다는 그 위나 반대 다리가 그랬다.
원래 같으면 힘이 안 들어갈 만한 곳에 힘이 들어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병리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수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네, 맞습니다!”
외과 교수가 답하자, 상대편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
-네, 박익비 환자분…… 보내 주신 검체 잘 받았고요. 프로즌 해서 보니까 악성 소견은 전혀 없습니다. 마진도 깨끗하고요.
“네네. 그럼 선종인가요?”
-네, 선종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술 종료하겠습니다.”
-네, 좋은 주말 되셔요.
선종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선종이라는 걸 듣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수혁의 얘기가 아니라 외과 교수에 대한 얘기였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상대가 그 김승규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과 교수는.
안대훈이나 조태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신자였다.
마치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꽂아 넣고 나서야 믿었다는 도마의 얘기처럼, 외과 교수는 오늘에야 비로소 수혁이라는 천재에 대해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니까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지…….’
그렇다고 해서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데 뭐 어쩌겠나.
‘학술 이사님이 여기까지 와서 읍소했다는 게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겠네.’
외과 교수는 천천히 수술 정리를 하면서, 요새 외과 학회에서 들려오던 소문들을 떠올렸다.
참 이상한 소문들이 많았다.
김승규가 알고 보니 무장 공비였더라 하는 건 뭐 늘상 들어 오던 얘기다 보니 오히려 평범했다.
솔직히 눈앞에서 김승규가 갑자기 북한 군복 입고 내가 사실은 서울을 불지옥으로 만들려고 왔다고 고백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럴싸하잖아?
그보단 이수혁 교수와 연관되어 돌던 소문들이 더 어이가 없었는데, 역시 세상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바로 병실로 가죠.”
“네, 교수님!”
하여간, 수술은 말 그대로 잘 끝났다.
원래도 그렇게까지 난이도가 있는 수술이 아닌데 평소보다 훨씬 잘되었으니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네요. 깨는 건 봐야겠지?”
수혁은 외과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윤을 돌아보았다.
그냥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당연하지만 하윤은 상당히 예의 바른 사람이다 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죠.”
“그래. 그러자. 회복실에 있다가 올라갈 거라 시간 남을 텐데 밥 먹을까? 아까 애매하게 못 먹고 나왔네.”
“좋죠. 근데 주말이라 병원 식당 제대로 하는 데가 있을까요?”
“없지. 그래도 먹자골목엔 많지.”
“오…… 나가서요?”
“주말인데 뭐.”
“오.”
거기에 더해 통합진료센터에 절여진 지 오래다 보니 주말에 병원 뒷골목에서 밥 먹자는 말에도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물러서서 현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면 짠한 기분이 들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상태다 보니 둘은 그저 웃으면서 병원 밖으로 향하게 되었다.
수술장에서 보호자를 콜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수혁을 보호자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황당하게 된 것은 건설사 사장이었다.
‘뭐야……?’
수술은 끝났다.
어떻게 아냐고?
방이 비었으니까.
아까 막 정리하더니 딸도 나가고 의사들도 나갔다.
헌데 설명하러 오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뭐지?”
“어…… 그, 알아보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건설사 사장의 말에 앞에 나와 있던 간호사도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쪽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여서 그랬다.
수술이 끝났으면 응당 나와서 설명을 해 주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태화 의료원이 허투루 막 돌아가는 병원도 아니고…….
기업 병원이다 보니 정부에서 내려온 지침보다도 오히려 더 깐깐하게 움직이는 곳이지 않나.
“네? 이수혁 교수님이 보호자예요?”
“네. 같이 수술방까지 들어오셨던데요? 보통 지인이 아닌 거 같던데.”
“아…… 근데 수술은 왜 받은 거예요?”
“아, 종양이요.”
“종양?”
“네. 저도 회복실에서만 인계받은 거라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이수혁 교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단하고 치료 의뢰까지 하셨다고만 들었어요. 외과 교수님은 계속 감탄만 하다 가셔서 별말이 없었네요.”
“음.”
간호사는 살짝 저어하는 얼굴이 되어 건설사 사장을 돌아보았다.
‘이수혁 교수님 지인인데…… 보호자는 아예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 말고 다른 손은 테이블 밑에 자리하고 있는 시큐리티 호출 버튼으로 향했다.
좀 이상하지 않나?
물론 이런다고 실익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이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는 좋은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다.
“왜요?”
“아니, 종양 수술받으셨다고 하는데 지금 회복실이라서요. 아마…… 깨고 나시면 병실로 올라갈 겁니다.”
“종양……?”
이것 봐라.
뭐 때문에 수술받은 줄도 모르지 않나.
딸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뭐지?’
그렇다고 뭔 상황인지 유추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네.”
딱히 물리적인 위해를 갖출 것 같진 않아 보이니만큼 섣불리 버튼을 누르진 않았다.
대신 위로하려던 마음가짐에서 지극히 사무적인 마음가짐으로 돌아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장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종양……? 암이라고?’
일반인들에게 종양은 곧 암이지 않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 사모님.”
거의 혼절하려는 찰나, 건설사 사장은 초인적인 인내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사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방금 눈에 들어온 연놈들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이 모든 사달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혁과 하윤이 보였다.
남은 지금 노심초사하느라 다 죽게 생겼는데, 둘은 뭘 처먹고 온 것인지는 몰라도 아주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저기!”
“네? 아!”
기사도 둘을 확인했다.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
수술실 입구 쪽은 보호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주말인데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혁과 하윤은 병원에 고이다 못해 슬슬 썩어 가고 있는 이들이다 보니 지독하리만치 효율적인 동선으로만 이동하고 있었다.
해서 원래 둘이 있던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간 후였다.
다행한 것은 딱 둘만 타서 몇 층에 갔는지 알 수 있단 점이었다.
“빨리, 빨리!”
“네!”
건설사 사장과 기사가 초조한 얼굴이 되어 애꿎은 엘리베이터 쪽만 노려 보고 있는 동안, 수혁은 하윤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마취에서 다 깬 지 오래인 박익비가 있었다.
“아, 교수님.”
“좀 어때요?”
“약간 배가 땅기긴 하는데…… 그거 말고는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수술은 아주 잘됐어요.”
그런 박익비를 향해 수혁은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수술은 퍽 훌륭했다.
뭐…….
난이도가 그리 높은 수술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잘한 수술을 폄훼할 필요는 없지 않나.
특히 환자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요?”
“네. 양성이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아, 몇 번 피검사는 해야 할 텐데, 원인이 명확했으니 금방 좋아질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아뇨.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수혁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답했다.
허나 환자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원래 오늘 행사에 있다가 엄마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하고 인사나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던 박익비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질 수가 없었다.
‘보통 의사들이 이러진 않잖아?’
자선 행사 와서 소개받은 여자 데리고 병원 와서 수술시키는 게…….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무서워서 의사 만나겠나, 이거.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
죽을병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본 사람은 알 거다.
특히 뭔 병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괴로워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진단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일종의 구원을 얻게 된다는 걸 절실히 알 터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대가 좀 이상한 것과는 별개의 일이지 않나?
잘돼?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사람 같기는 하지만…….
‘저 안에 내가 들어갈 틈이 없겠지.’
저 하윤이라고 하는 선생님조차, 이수혁 교수 마음의 절반도 채 차지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저 사람은 단순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니, 뭐…… 잘된다면 저런 사람하고 잘되겠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공부도 꽤 잘했고, 집안 사정이야 단 한 번도 결핍을 느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했지만.
저렇게 무언가에, 특히 어떤 일에 미쳐 본 적은 없었으니까.
드르륵
그런 생각에 조금은 묘한 감정이 들어 수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거칠게 병실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였다.
“어, 엄마?”
“이, 이수혁 당신 대체 뭔 짓을!”
그러더니 목발 짚고 서 있던 수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건설사 사장이라는 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거기 현장에서 구르다 임원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정말 거친 사람들인데, 그걸 휘어잡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카리스마가 필요한 법이었다.
“잠깐.”
아마 평소였다면 수혁은 지금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옆에 하윤이 있지 않나.
“응?”
예상치 못했던 단호한 말에 건설사 사장은 달려들던 것을 멈추고 하윤을 바라보았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상황에 이 무슨 무도한 짓이란 말입니까.”
뭘까.
이 말투는.
어디 중세 시대 수도원에서 나온 건가?
“자초지종을 모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따로 회개하십시오. 설명해 드릴 테니.”
정신이 없어서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건설사 사장은 홀린 듯 하윤의 설명을 들었다.
당시 어떻게 진단을 했고 와서 어떤 과정을 거쳐 수술방까지 들어가게 되었는지.
“나 정말 좋아졌어.”
거기에 더해 딸의 간증도 들을 수 있었다.
“아. 이거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당연한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회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