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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147화 (1,147/1,303)

1147화 이거 그럼 그때 그거 맞죠? (4)

수술이라는 건 급히 잡는 게 어렵지, 취소하는 건 쉬운 법이었다.

수술 잡으려고 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까다롭게 구는 마취과가 취소할 때만 되면 세상에서 제일 너그러운 족속들이 되기에 그랬다.

물론 교수쯤 되면 더 이상 직접 수술을 잡거나 하진 않기에, 마취과랑 얘기할 일은 없지만…….

레지던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외과 교수는 굳이 벌써 취소하겠단 말을 하진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검사실에 전화 드렸으니까……. 아마 오늘 안에 나올 거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 줄 거예요.”

“으음…….”

“저녁이나 먹고 올까요?”

“아, 안 가세요?”

“네. 저희 센터는 회진 다 끝나서요. 뭐, 그 전에 다른 환자 오면 가서 볼 텐데. 그래도 밥은 먹어야죠.”

“아아.”

외과 교수는 사실 오늘은 좀 일찍 갈 생각이었다.

백날 천날 늦게 가는데 하루는 일찍 갈 수 있잖아?

더욱이 이번 주는 주말에도 병원에 불려 나와서 일했다.

하지만.

‘자기 환자도 아닌데 이렇게 해 주고 있는데……. 게다가 주말에도 이 사람은 있었잖아?’

수혁과 이현종은 다른 의사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명의병을 도지게 하는 데 선수였다.

일종의 병마라고 봐도 무방했다.

외과 교수는 특히 갑자기, 너무 가까이에서 접촉했기 때문에 그 병이 도지는 데 걸린 시간도 짧았다.

“네, 그러죠.”

“네네. 오늘 병원 밥 메뉴가 꽤 좋아요. 꼬치 어묵입니다.”

“오호……. 그거 좋죠.”

“하하.”

원래는 저녁으로 한우 먹으려고 했다.

주말 특근 수당이 있거든.

그냥 나오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인정이 안 되는데…….

응급 수술에 대해서는 과마다 건당 책정해 놓는 액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걸 고이 다 모아서 요긴한 데다 쓰는 사람도 있지만, 외과 교수처럼 그때그때 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식의 즉각적인 보답이 없으면 사람은 으레 지치기 마련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또 선배들에게 배워서 잘 알고 있기에 그랬다.

‘여보……. 난 한 단계 위로 간다…….’

그런데 오늘만은 그런 식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수혁과 있다 보니 두근두근해서 그랬다.

어린 시절 꿈꾸던 이상적인 의사와 너무 많이 닮아 있지 않나.

똑똑한 것을 넘어 괴물 같고.

병원에서 사는 것에 대해 거부감도 없고.

이건…….

‘이래서 숭배하는 놈들이 있구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물론 꼬치 어묵 우동 먹다가 국물을 가운에 흘렸을 때, 그리고 너무 익숙하다는 듯 휴지로 슥슥 닦고 다시 먹기 시작했을 때는 인간은 인간이구나 싶었다.

부주의한 면이 있다는 게 오히려 매력적이랄까……?

[어떤 결과를 예상합니까?]

‘아무래도……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떠 있을 거 같은데.’

[그렇죠, 그럴 겁니다. 그럼 수치 내기?]

‘호오……. 이건 재밌겠는데.’

[재밌겠죠. 후후.]

‘그래, 좋아. 군침이 싹 돌아.

머리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매력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터였다.

미친 생각 중이거든.

세상에…….

이미 결과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수치를 가지고 내기라니…….

이현종조차 이런 수혁을 알게 된다면 ’이건 좀‘ 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800.’

[세게 나오네?]

‘그 정도는 될 거야. 혈압이 상당히 높다구?’

[하긴……. 180이라니.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혈압이죠.]

180에 120.

아마 환자가 젊은 여성이 아니고 중년 남성이었다면 죽었을 거다.

출혈로.

혈관 탄력성이 그만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진짜 젊으니까 버티고 있다는 건데…….

바루다는 그만큼 높게 유지가 되려면 수치가 상당히 높아야 한다는 추론을 했다.

[저는 천.]

‘천……? 너무 높은 거 아니냐?’

[하지만 케이스를 잘 보면 천을 훌쩍 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그건……. 그렇긴 하지. 흐음, 나 더 올려도 되나?’

[800도 높습니다만?]

‘1200.’

[호오……. 콜 받고 100. 1300.]

‘호오……?’

그 추론에 따라 수혁과 바루다는 마치 포커 게임이라도 하듯이 레이즈를 이어 갔다.

최종적으로 수혁이 1350, 바루다가 1400를 걸게 되었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느라 국물을 두 번이나 흘렸고, 외과 교수는 그만큼 더 수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매력 덩어리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시간 되면 전에 씹었던 조태진의 초대에 응해 볼까 싶기도 했다.

좀 너무 종교적이긴 한데…….

의외로 또 다녀와 본 사람들에게 들어 보면 도움도 된다고 했다.

이 사람도 여기에 있다고? 싶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인맥도 늘고…….

무엇보다 간증이랍시고 하는 게 케이스 발표라 공부도 된다고 했다.

“오, 결과 뜨고 있답니다. 가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가죠.”

하여간,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른 데다가 이현종, 이수혁이 직접 의뢰하는 결괏값에 대해서는 만사 다 제쳐 두고 하라는 병원장 그리고 회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곧 결과가 떠 버렸다.

둘은 즉시 병동으로 향한 후 결과를 띄웠다.

아니, 띄우기 전에 수혁이 운부터 띄웠다.

“아마…….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크게 떠 있을 겁니다.”

“네? 왜요?”

“하하. 레지던트들도 있으면 다 불러서 배우라고 하죠.”

“그……. 흐음. 네, 알겠습니다.”

주 88시간 법이 생기면서 레지던트들은 더 이상 레지던트는 아니게 되었다.

병원 거주민 신세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 집에 갈 수 있다면 그게 외과일까?

주말 당직 없는 주에는 집에서 자는 시간 말고는 다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꼼수로 병원에서 퇴근한 척 카드만 찍고 실제 잠은 병원에서 자는 경우도 많았다.

왔다 갔다 하느라 못 자는 것보다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자는 게 나으니까.

“이수혁 교수님……?”

“으음…….”

“기적을 보고 싶으면 오라고 하는데.”

“그럼 또 가 봐야지.”

“그래?”

“너 모르냐? 이번에 김승규 교수님이 학회 다 엎었대잖아. 이수혁 교수님 초청 안 한다고 해서. 비서는 죽었대, 진짜로.”

“죽어……?”

“어. 갈기갈기 찢어서 한강에 심었다던데.”

“허.”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레지던트들이 당직실에 남아 있었다.

뭐 의사라고 해 봐야 20대 후반 애들 아닌가.

놀고 싶은데 갇혀 있는 신세기도 하고.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혀 살고 있는 친구들이란 얘긴데…….

그렇다 보니 심심해서라도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또 툭하면 과장하기 일쑤였다.

김승규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들의 잘못이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런 김승규 교수님이 인정한 이수혁 교수…….”

“완전 천재라던데.”

“이런 말도 있더라.”

“무슨?”

“스크롤을 막 굴리고 있더래.”

“어어.”

“뭐 하나 하고 봤더니, 영상이 진짜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막 돌아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발표할 때 그 이미지 컷 번호 있지? 그거까지 다 외움. 그것도 환자 천 명.”

“진짜……? 미친. 무슨 발표인데 천 명이나…….”

“그러니까.”

보통 말이 되냐 새꺄 라는 말이 튀어 나가야 할 타이밍이지만…….

이쯤 되면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법이었다.

그냥 놀라고 웃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소문의 주인공인 수혁이 기적을 보여 주겠다는 말까지 한 마당이다 보니 외과 레지던트뿐 아니라 같이 당직실을 쓰던 이들까지 해서 구름 떼와 같은 무리가 형성되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았는지 키가 작은 전공의는 그냥 있어서는 보이지가 않아 수액 걸이에 올라타야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알려 줄 만하네요.”

“어……. 그렇군요. 으음.”

외과 교수는 어쩐지 종교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기적 운운한 건 사실 수혁이 아니라 자신이었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수혁은 그렇게 모여든 인파를 돌아보면서, 결과를 띄웠다.

결괏값은 놀랍게도 수혁이 말한 대로였다.

“1422pg/ml. 아.”

수혁은 불만이었다.

바루다가 더 가까웠으니.

하지만 나머지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수혁 가라사대 부신피질자극호르몬 수치가 뜰지니라 하였더니 과연 떴더라 라는 문구를 누가 읊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코르티솔은 오히려 떨어져 있죠. 이걸 이해하려면……. 이 환자의 병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고환여성화증후군이죠. 이것이 왜 나타났을까. 구조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호르몬적인 이유가 더 중요합니다. 물론 이게 한두 가지는 아닙니다.”

“그렇…… 군요.”

호르몬이라.

요새 대세라고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들어도 들어도 어렵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호르몬은 현대 의학에 있어서도 베일에 싸인 면이 더 많았다.

이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외과 교수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환자의 증상을 보면 굉장히 특징적이죠. 일단 무월경이 있었죠?”

“아……. 네. 전에요. 이차 성징도 안 나타났고요.”

“네, 거기에 더해 고혈압과 저칼륨혈증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알도스테론 분비 선종을 생각하셨죠. 이 두 가지 증상을 따로 떼어서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입니다.”

“오류…… 요? 그럼 이게 전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네. 이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처음으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완전히 처음?”

“네. 무월경의 원인이 아닌…… 남성 형태가 미발현한 원인. 염색체는 분명 XY잖아요.”

“아……. 아, 그렇네요.”

외과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병실 쪽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봐도 여자인 환자가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자꾸 잊는데, 염색체는 분명 남자였다.

표현형이 여자여서 그렇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안드로겐이 감소했기 때문에 표현형이 남자로 나타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랬겠죠?”

“아……. 네.”

“거기에 더해 환자는 코르티솔도 감소해 있어요. 이래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늘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부신의 모든 호르몬이 다 영향을 받았다면……. 안드로겐이나 코르티솔처럼 다른 호르몬도 다 줄어야 할 텐데……. 프로게스테론이나 코르티코스테론은 오히려 더 늘었어요. 이 때문에 혈압이 오르는 겁니다. 알도스테론도 높기는 한데…… 부차적인 이유예요.”

“아……. 이게 대체 어찌 된 거죠? 그러고 보니? 얘는 다 자극할 텐데?”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뜨면 당연히 부신피질이 분비하는 호르몬은 다 늘어야 한다.

근데 선택적으로만 늘어 있었다.

외과 교수의 얼굴에 드디어 이 사람이 뭔 소리를 하나 싶었던 의문 대신 이게 왜 이렇지? 하는 의문이 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들이야 더했다.

배경 지식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이걸 듣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역추론을 해 보면, 환자의 어떤 이상이……. 코르티솔과 안드로겐의 생성 이상과 연관이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걸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는지만 알고 있으면, 진단이 바로 되죠.”

외과 교수와 구름 떼처럼 몰려든 레지던트들은 뻔뻔스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게 뭔데요?’

한마음 한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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