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48화 (1,148/1,303)

1148화 이거 그럼 그때 그거 맞죠? (5)

‘모르는군……. 역시.’

[모르죠. 이걸 누가 알겠습니까? 엄청 드문 질환인데요. 실제로……. 케이스 리포트에서 발표되었던 사례들을 다 봐도, 오진에 오진을 거듭하다가 나중에서야 진단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그렇지. 덩치 큰 센터나 의료원들에서도 그랬지.’

[불가항력이겠죠. 하지만…… 후후.]

‘바루다가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금칠하지 마십쇼. 수혁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수혁은 바루다처럼 다른 사람의 반응을 아주 잘 살피는 능력은 없었다.

아니, 상대가 화가 났거나 언짢아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상당히 잘 캐치할 수도 있을 터였다.

보육원에 버려진 채 자라난 아이는, 제아무리 좋은 보육원장에 의해 자라났다 해도 본질적인 결핍은 해결되지 못했으니.

하지만 지금 이렇게 상대가 놀라거나 감탄하는 반응은 영 오리무중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요즘?

이젠 달라진 지 오래였다.

‘후하하하하! 경배해라.’

[안대훈 같은데요?]

‘어쩔 수 없지. 이건 기분이 좋잖아. 너는 안 그래?’

[좋긴 좋죠. 저 숭배하는 눈……. 초롱초롱한 눈이 절 미치게 합니다. 후후.]

제일 많이 보는 표정 중 하나인 만큼 못 알아보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수혁은 속으로 연산 속도를 가속화하면서까지 마음껏 웃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바루다가 있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렇게 속으로 낄낄거릴 수 있다는 점도 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수혁에게는 그러했다.

뭐, 바루다도 즐기는 편이었고.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전구체라는 것이 있죠?”

“아……. 네.”

“분비 기관은 다 같다고 해도, 전구체는 다릅니다. 자, 여기서 힌트 하나 나가죠? 아마도 환자의 질환은 이 전구체의 결핍과 연관이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겠네요.”

하여간, 수혁의 설명은 언제나 그러하듯 유려하기만 했다.

동시에 주변인들의 이목을 확 집중시키는 힘도 있었다.

무엇보다 듣다 보면 전혀 모르던 내용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예 문외한이라면야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의학 용어를 또 하나의 언어로 습득한 의료인이라면 그랬다.

만약 수혁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되는 의료인이 있다?

[그럼 나가 죽어야지.]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해.’

[그럼 그런 제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르칠 거예요?]

‘나가 죽어야지. 감히 그런 소양으로 통합진료센터에?’

이 정도로 자부하고 있는 설명이니만큼, 또 태화 의료원의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만큼, 모두는 수혁의 설명에 초집중 상태였다.

“잘 보면 종양도 종양이지만……. 부신 자체가 커요. 그렇지 않습니까?”

“으음? 아…… 아? 그렇네요? 이걸 왜 놓쳤지?”

“판독이……. 아, 아까는 없었는데 지금 붙었네요. 김진실 교수님 이름으로요. 정상 부신 크기보다 큼, 부신과다형성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함. 역시……. 우리 병원 복부 영상 실력은 상당합니다. 임상 정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오……. 부신과다형성이라? 그래, 하긴. 아까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엄청 증가해 있었지.”

“네, 그렇죠. 그러니 부신이 전반적으로 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또, 아시다시피 이런 식으로 자극이 계속 있는 경우 악성 종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성 종양은 잘 생길 수 있죠.”

“네네, 그렇……. 아하? 그래서 이게?”

영상까지 띄워 놓고 설명을 하고 있으니 이해가 더 쏙쏙이었다.

마치 척척박사라도 된 느낌이랄까?

애초에 외과 교수는 박사이기도 하다 보니 더욱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그는 영상에 뜬 종양을 가리키면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저 혼자 감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의 증가를 가리키고 있었군요? 아니, 그럼 교수님께서는 대체……?”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와……. 이건……. 새삼스럽지만 정말 머리가 좋으시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수혁은 그러한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겸양을 떨었다.

물론 전혀 겸손해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머리가 그냥 좋다는 말은 좀 모자란 감이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겸양을 떠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너무 잘나서 잘난 척을 하는 건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할 생각이 든다면 그건 정당한 반응이라기보단 열등감의 발로 아니겠나?

또 열등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바탕이 비슷하다는 인지가 있어야 발생하는 법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환자는 선천부신과다형성증이 있어요. 일차적인 이유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의 과다 분비죠. 좀 더 들여다보면 안드로겐과 코르티솔의 생성 장애가 있으니, 이를 2차 원인이라고 치자고요. 자, 여기까지 이해 못 한 사람?”

“음. 음? 애들이 왜 이렇게. 니들 집 안 가?”

“강의 듣고 싶습니다!”

“이거 법적으로는 불법인 거 알지? 누가 찌르면 안 된다?”

“이런 강의는 밤새워서라도 듣고 싶습니다!”

“으음.”

이해 못 했냐고 하는 수혁의 시선이 자신의 뒤 어딘가를 향하는 것을 보고, 외과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이 양반이 어딜 보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수많은 군중을 확인하게 되었고 덜컥 걱정이 들었다.

주 88시간 맞추려면…….

얘들 원래 다 집에 있어야 하기에 그랬다.

물론 가라로 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얘들도 알고…….

아마 보건복지부도 알고 있긴 할 터였다.

의료는 그 특성상 업무와 교육이 결합되어 있는 데다가, 환자를 보는 과정은 연속성이 끊이지 않을수록 예후가 좋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도 이거 걸리면……?’

뭐 이런 생각에 말했더니만, 외과 애들이 외과 교수들이 강의할 때보다 훨씬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렇게 답을 해 왔다.

뭔가 뭔가였다.

애들이 열심이니까 좋긴 한데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이런…… 강의?’

그럼 저런 강의는 뭐지?

내가 했던 강의를 말하는 건가?

김승규 불러서 한번 푸닥거리해야 얘들이 고마움을 알려나?

뭐 이런 상념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그 상념을 지속할 여유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수혁은 딱히 교수를 배려할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

아니, 아예 그가 무슨 심정일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애들이 좋아하니까 좋았다.

“자, 그렇다면……. 부신피질자극호르몬에 의해 다른 호르몬들은 다 증가하는데, 안드로겐과 코르티솔만 증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소해 있는 현상을 보다 면밀히 바라봐야겠죠. 지금까지의 설명을 미루어 보면 어떻습니까?”

“딱 안드로겐과 코르티솔 두 호르몬의 전구체만 형성이 안 되는 질환이어야 합니다.”

“맞아요. 사실 일반적인 진단 과정에서는 여기까지만 하면 끝입니다. 검색하면 되니까요. 펍메드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그, 그렇군요! 그럼 제가 검색을 해 보겠습니다!”

수혁의 말에 외과 교수는 조금 오해했다.

‘아! 이 괴물 같은 사람도 질환명까지는 모르는구나? 하긴 이게 합리적인 설명이지……. 말이 되나? 딱 보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말이 안 되는…….’

해서 부리나케 키보드를 두드리려는데, 수혁이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응?”

어리둥절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수혁이 가만히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다.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잖습니까. 제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어…….”

교수는 당황했다.

천재다.

그래, 천재지?

근데 그래도 이런 식의 대사를 친다고?

“이수혁 사마입니다!”

“와아아아아!”

“어?”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을 하려는데 레지던트들이 환호했다.

이것이야말로 소문 그대로의 사내 아닌가.

너무 심심한 병원 생활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주고받는 사람들이지만, 그게 헛소문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겠나?

헌데…….

이수혁은 달랐다.

그걸 인지하자마자 병동이 폭발했다.

“무슨 일이여?”

“뭐야?”

“뭐지?”

병원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곳은 아니다.

사방에서 삐삐 기계가 울고, 때에 따라서는 이리저리 뛰는 의료진들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갑자기 환자가 안 좋아지는 경우라면 통곡이 이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호성과는 거리가 먼 곳이기에, 박익비와 그 보호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글우글 나왔다.

“저는 이수혁.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이자……. 이현종의 아들입니다.”

“우읏.”

보통 이쯤 되면 멈출 만도 한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나, 계속 달렸다.

뻔뻔한 모습에 제일 정상적이었던 외과 교수마저 마음이 꺾였을 무렵, 제대로 된 말이 나왔다.

“17 알파 수산화 효소가 없으면 코르티손과 안드로겐 형성이 안 됩니다.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소견은 혈액 검사입니다. 괜히 프로게스테론과 17-하이드록시프로게스테론을 본 게 아니에요. 보면 프로게스테론은 증가했는데 17-하이드록시프로게스테론은 증가하지 못했죠?”

“어……. 그렇네요?”

“17 알파 수산화 효소의 부재를 뜻하는 겁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10번 염색체에 위치한 CYP17A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을 겁니다. 뭐……. 드물게 그게 없이도 발생하긴 하지만, 이미 임상적으로 진단된 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 한 번만 더.”

“CYP17A1.”

“네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유전자 명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는 건 정말로 보통 사람의 영역은 아니어서 그랬다.

아니, 천재라고 해도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의 일이었다.

과연 이현종의 아들이며 동시에 이 젊은 나이에 부센터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답달까.

‘불만 있는 놈들이 있다고 했지?’

외과 교수는 그런 수혁을 보면서, 외과 커뮤니티에 우리가 대체 뭐가 모자라서 외부 초청에 내과 교수를 부르냐는 말을 하던 이들을 떠올렸다.

뭐가 모자라냐고?

그냥 다 모자란다.

우리 잘못은 아니었다.

이수혁이 잘나도 너무 잘났다.

‘이번 학회…… 초청 강연 시간이 기대가 되네.’

제대로 된 강연도 아니고 그냥 환자 보는 과정만 봤는데도 뭔가 많이 배운 느낌이 들지 않았나?

생전 처음 보는 질환을 알게 된 것도 소득이지만…….

그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도 소득이었다.

안 그래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수년 만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수혁의 추론 방식이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구나.’

당연한 것이긴 한데…….

정말이지 작은 소견들이 모여서 진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너무 잘 보여 줬다.

외과 교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오늘 하루 마무리를 좀 재밌게 하고자 해서 왔던 이들이 태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선망의 눈길로 수혁을 바라보면서였다.

“교수님……. 멋있긴 하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박익비가 이렇게 중얼거렸고.

건설사 사장 또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물론 박익비는 이성의 눈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는 그날 충분히 알았으니까.

저런 사람은 우하윤?

그 정도로 같이 돌아 버린 사람만 감당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 멋있긴 해?’

팬클럽 정도라면 가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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