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52화 (1,152/1,303)

1152화 외과 학회 (4)

그렇게 세상은 멸망했다.

아마…….

질문을 던졌던 시니어 교수는 그렇게 느꼈을 터였다.

실제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을 테니까.

“와……. 살인 나는 줄.”

“진짜로…….”

“소문보다 더 무섭더라…….”

“당연하지, 인마. 얼굴 보면 모르냐?”

세션은 이미 끝났다.

점심시간이 한창이다 이 말인데…….

아까 그 컨퍼런스룸에 있던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김승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하게 인상적이었으니.

아마 이번 학회가 아니라, 수년간 회자될 가능성도 클 터였다.

“근데……. 이수혁 교수님은 그럼 그…… 분의 수술을 그렇게 까고 고쳐 준 건가?”

“정상 배속으로 보니까 원래 하던 수술도 난 전혀……. 그냥 완벽해 보이기만 하던데.”

“당연하지. 얼굴 무서워서 교수 시켜 준 줄 아냐. 얼굴이 무서운데도 불구하고 시켜 준 거래. 이건 소문이지만…….”

레지던트 중 호사가로 꼽히는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화가 이미지를 진짜 중요시하는 기업이잖아?”

“그렇지. 최초로 기업 이미지라는 말을 썼다며.”

“근데 외과에 그…… 어?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쩌겠어.”

“안 되지. 싫을 거 같긴 하다.”

사람을 실제로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딱 봐도 사람을 살릴 것 같은 이미지를 중시하는 병원이지 않나.

그런데 김승규가 있으면 정반대의 느낌만 주기 마련이었다.

아, 저기 가면 죽겠구나.

맞겠구나.

돈 뜯기겠구나.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 회의가 열렸대.”

“와……. 그럴 정도……. 아니, 뭐……. 그럴 만한 얼굴이지. 젊을 때는 덩치가 더 컸다며.”

“교도소 봉사 가면 전국구인 줄 알고 조폭들이 다 벌벌 기었다잖아.”

“그럴 만하지…….”

“아무튼, 몇 번 회의를 하고 나서야 뽑았대. 실력이 당연히 개미쳤으니까 뽑지 않았겠냐.”

“그걸 저렇게 수정할 수 있다……. 아니, 그럼 이수혁 교수님은 뭐야?”

자연히 화제는 김승규에게서 시작은 하더라도 수혁에게로 고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과 교수가 와서 하는 강의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와서 하더라도 수술에 관한 강의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강의가 아주 인상적이기까지 했다.

딱 봤을 때, 그러니까 수술에 도가 튼 사람들이 봤을 때 문제가 없게 느껴지던 영상이었는데…….

수혁의 말을 듣다 보니 엉망진창으로 느껴지게 만들지 않았나?

다음 영상에서 그런 것들이 싹 고쳐지는 것을 봤을 땐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을 지경이었다.

“괴물…….”

“진짜 천재인가 봐.”

“으음……. 어마어마한데……. 저거 과외받을 수 있나?”

“과외라……. 해 줄까. 내과 선생님인데.”

“해 주더라도 태화 애들부터 해 주겠지?”

“아……. 존나 부럽네? 원래 외과 중에는 태화가 낮은 편 아니었어?”

“김승규 교수님 때문이지……. 근데 이렇게 되면…….”

“거기 간 애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가?”

학회 점심시간은 대개 하나 또는 두 개의 컨퍼런스룸에 앉아 있으면 그 자리에 도시락이 배정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규모가 더 작거나 예산이 적은 학회라면 주변 식당 중 제일 싼 가격에 맞춘 식권을 주고 넘어가는 돈은 알아서 더 내라는 식으로 하지만…….

여긴 나름 대한외과학회지 않나.

당연히 다들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인구 밀도가 아주 높다는 얘기였고, 당연히 오가는 대화는 사방으로 울리게끔 되어 있었다.

“흐음.”

“으으음.”

비단 이 그룹뿐만이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도 대화는 결국, 기승전 수혁 또는 태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던 태화 외과 레지던트들의 어깨가 올라가는 건 어찌 보면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당연했다.

“으앗, 태화에서 받은 볼펜이 땅에?”

“이런이런, 그럼 안 되지. 자, 태화에서 받은 휴지로 닦아 보게.”

갖은 노력과 함께 바로 이 몸이 태화의 레지던트란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목에 건 명찰도 뒤집어질세라 바로 펴 놨다.

원래 태화 출신이라고 하면 저런……. 쯔쯔……. 김승규……. 이런 말만 날아왔던 과거는 이제 간 곳 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것이 태화 내과의 기분인가.’

‘그놈들은 늘 이런단 말이지?’

‘미친……. 부러운 새끼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우리 근데 진짜 과외해 주시나?’

‘모르지. 가서 엎드려 빌자.’

학회장 분위기를 말 그대로 들었다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수혁은 물리로 들었다 놓은 장본인인 김승규와 함께 있었다.

나름 VIP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훨씬 쾌적한 곳에서 도시락을 까먹을 수 있었는데, 김승규도 VIP급이다 보니 같이 있게 되었다.

[진짜 무섭게 생겼군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 진짜로.’

식전 운동으로 사람 죽이고 온 것 같은 사람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나.

어떻게 참 복스럽게 먹는 것 같은데…….

대개는 무섭게 먹는 느낌만 주고 있었다.

“왜, 밥맛이 없나? 발표 잘해 놓고.”

“아니…….”

“내과에서는 더 좋은 밥을 주나 보지?”

“아니, 아닙니다. 외과 밥도 훌륭한데요?”

거기에 더해 배려랍시고 하는 말이 협박 같아서 더 꾸역꾸역 먹게 되었다.

[체하겠는데…….]

‘자율신경 조정 좀 해 봐. 뭐 하냐.’

[일정 수준 이상 안 떨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걸 모르나요? 내가 한번 조절 그만해 봐?]

‘아니……. 그럼 오줌 쌀 거 같아…….’

[어, 실제로 막았음.]

‘그래.’

그에 반해 수혁과 함께 왔던 하윤과 대훈 그리고 김성진은 천국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화 외과 애들도 부러움을 받고 있는데 내과는 어떻겠나.

천재인 데다가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교수다.

그 정도가 그냥 잘하네 어쩌네가 아니라 세상에 유례없는 수준이다.

“어떻게 들어가시게 되셨어요?”

“아, 하하. 저는 이수혁 교수님 인턴 때부터……. 딱 보고 저분이야말로 내가 평생 모실 분이라는 걸 알았죠.”

거기에 더해 김성진은 임상 강사요, 나머지 둘은 펠로우다 보니 아무래도 물어보기가 좋은 상황이었다.

해서 셋은 조촐하게 구석에서 먹다가 지금은 중심에 서 있었다.

“아…….”

“저는 칠성에 있었어요. 회개하고 지금은 태화에 갔습니다.”

“회개요?”

“아아……. 외과는 칠성이 나쁘지 않은데, 내과는 쓰레기예요. 교수들이 하나같이 개새끼들…….”

안대훈의 간증에 이어 김성진의 간증이 이어졌다.

답이 시원시원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몰렸다.

칠성 사람들은 인상을 썼지만…….

뭐 어쩌겠나.

아랫사람이 교수 욕하는 건…….

‘게다가 내과는 우리가 봐도 좀?’

거기에 더해 칠성 내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쉴드를 포기했다.

특히 안국태를 안다?

“거기는 진짜 개새끼긴 하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보태기까지 했다.

왜?

외과는 수술을 해야 과이지 않나.

이게 워낙 흔해져서 그렇지……. 원래 몸에 칼 대는 일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몸 상태가 별로거나 하면 마취도 위험할 수 있었다.

해서 수술 전 검사라는 걸 하는데, 결과가 누가 봐도 다 좋으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평균 수명이 80세를 웃돌고 있지 않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당장 당면한 문제 말고도 많은 문제를 안고 살기 마련이었다.

“협진 요청하면……. 당장 수술 안 하면 죽는 거라는데 밖이야. 오후 세 시에. 이마트에 장 보러 갔대. 미친놈이라니까?”

감염내과에서 해결해 줘야 하거나 혹은 이 정도는 뭐 수술에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해 줘야 하는 케이스에서…….

안국태가 싸질렀던 여러 가지 똥을 떠올려 보면, 자다가도 눈이 부릅떠질 지경이었다.

“아, 근데 선생님은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윤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솔직히 말하면 단 한 번도……. 시선이 하윤이에게서 많이 분산된 적이 없긴 했다.

외과다 보니 아무래도 사내놈들이 태반이고, 사내놈들이란 시각 자극에 약한 법이었으니.

“아, 저는.”

하윤은 정말이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단순히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분위기도 그랬다.

바탕이 밝고 선한 사람이라서 그러할 터였다.

“저는 학생 때부터 이수혁 교수님 알았죠. 진짜 천재시고……. 무엇보다 되게 친절하시고. 밥도 잘 사 주시고요.”

“밥도요?”

“그래, 치킨도 잘 사 주시지.”

“그러니까. 엄청 잘 시켜 주셔.”

“아……. 그런 것도 있는데. 오마카세도 사 주시고 그랬어요.”

“어?”

“어엉?”

“어어엉?”

이수혁 칭찬에 감히 안대훈이나 김성진이 어깃장을 놓을 수 있나?

당연하다는 듯 칭찬에 칭찬을 보탰다.

안타까운 건 마냥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오마카세?

그……

하얀 옷 입은 사람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곳에서, 비싸 보이는 생선을 밥이랑 같이 쥐어다 준다는 그곳을 말하는 건가?

‘우린……. 못 가 봤잖아요?’

‘못 가 봤지.’

김성진과 안대훈이 서로 서글픈 눈을 주고받는 동안, 다른 이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까랑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이 있지 않나.

소고기부터는 청탁이나 흑심이다.

근데 오마카세……?

이건…….

“사귀어요?”

“좋아해요?”

몇몇 어린놈들이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마 이 자리에 신현태가 있었다면 자지러졌을 터였다.

몇 달간 속만 썩이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주저 없이 하는 외과 놈들의 패기에 지렸거나.

“어……. 아니, 사귀는 건…….”

“그런 것도 아닌데 오마카세?”

“에이……. 좋아하네!”

“호감은 있는 거죠? 아니, 나라도 반하겠어!”

남자 놈들이 반했다니.

수혁이 딱히 좋아할 만한 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순간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호감이라…….’

호감이란 무엇인가.

자의에 의해 모쏠로 남은 우하윤에게는 이 질문조차 특별한 것이었다.

‘좋은 감정……. 이수혁 교수님…….’

수혁은 좋은 사람이다.

이 생각은 처음 봤을 때부터 변함이 없었다.

물론 그것과 좋은 감정은 좀 달랐다.

실제로……. 이전엔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지?’

수혁과 같이 회진을 돌 때, 환자를 볼 때, 논문을 쓸 때, 강의를 들을 때.

어째 같이 한 게 전부 일이나 공부 관련한 것밖에 없는 거 같아서 좀 슬퍼지려는 찰나…….

‘그래, 같이 밥 먹을 때. 술 마실 때.’

술이라고 해 봐야 진짜 한 잔이지만.

그때 어땠나.

좋았다.

정확히 어떤 것을 같이 했는지 일일이 열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윤은 수혁이 아니고 바루다를 탑재한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감정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좋은 감정.

“어……. 호감은 있는 거 같아요.”

“어어어어어어!”

“미친!”

“슬의생이야? 그런 세계관이 실존하는 거였어? 교수랑 펠로우가……. 연애하는 게 그런 게 가능한 거라고?”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하윤은 의외로 그에게서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입 밖에 낸 말에 충격을 받았다.

호감이 있다고 하자마자 무언가 더 자라 나오는 것이 있었다.

‘어……. 나 왜 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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