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4화 외과 학회 (6)
-각 병원 과장님들 루비 홀로 1시 반까지 와 주시기 바랍니다. 30분간 레지던트 교육 방안 관련한 회의가 있을 예정이오니, 꼭 시간 맞춰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수혁과 김승규가 쌍으로 학회에 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박살을 내놓은 마당이지만, 춘계 학술대회는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지금껏 쌓아 온 시간이 있지 않나.
학회장이 무너지면 또 모르겠지만, 인간 둘이 다 박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 자네가?”
“아……. 네. 제가 내년부터 과장입니다.”
“내년……? 근데 벌써 들어와?”
“짬 때리신 거죠. 근데 뭐, 잘됐다고 생각 중입니다. 어차피 내년부터 들어올 애들은 제 새끼다 하고 키울 생각이거든요.”
각 병원 과장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루비홀로 향했다.
사실 30분간 이루어지는 회의가 중요하면 얼마나 중요하겠느냐만서도…….
‘저 새끼는 춘계 학회 과장 회의에도 안 간 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상당히 큰일이었다.
무슨 군부대 지휘관도 아니고 그런 비난에 벌벌 떠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역시 이 새끼는 좀 이상한 놈이로구만.’
내년부터 과장이라고 희희낙락하고 있는 장준혁이 진짜 특이한 것이었다.
대학 병원 과장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일종의 권력직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명예직이다.
명예로워서 명예직이 아니라 명예라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그랬다.
보직 수당이 나오긴 하지만 애초에 로컬 의원에서 벌 수 있는 돈을 생각하면 대학 병원에서 일하면서 버는 돈은 별 의미가 없었다.
아무튼, 그나마 보직 수당과 명예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가 단점이었다.
특히 외과는 그랬다.
-어……. 과장님, 왜 이렇게 돈을 못 버셔?
보통 회사에서 각 부서의 장이 너네 부서 돈 못 번다는 얘기를 사장에게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 우리 부서가 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이거 큰일 났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나?
하지만 외과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큰일은 난 지 오래고, 더 열심히 하는 건 불가능할 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문제는 필수 의료란 박스에 갇혀 현실화되지 못한 수가였다.
하면 할수록 손해인 수술이, 근데 안 하면 사람이 죽는 수술이 존재하는 과 중의 하나였다.
-아, 알죠, 알죠. 근데 어쩝니까? 위에서는 숫자를 원하는데. 수술을 좀 줄이시죠.
다행스러운 건 사장도 그러한 사실을 안다는 건데, 불행스러운 건 알면서도 지랄을 한다는 점이었다.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수술을 줄이라는 거고.
그렇게 수술이 줄면, 그 수술하던 교수가 퇴임할 때까지는 후임이 없다는 얘기가 되었다.
새로 전문의 따는 사람에게도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니 좋지 못한 일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 수술 안 하면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돈 때문에 못 한다는 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돈만으로 사는가?
아니다.
자긍심이 필요한데, 그 마음이 꺾여 버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아, 저희 병원은 그냥저냥 괜찮아요. 매출 압박 거의 없어요.”
장준혁은 자기 앞에서 미묘하게 표정이 변해 가고 있는 선배를 보며 답해 주었다.
그 말에 선배는 믿기 어렵단 얼굴이었다.
그 자신은 당장 이번 주에도 원내 회의에서 죽도록 까였으니까.
문제는 그런 분위기 때문에라도 레지던트 지원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건복지부, 병원, 여론, 심지어 외과 교수들 본인들까지 일정 부분 외면했던 현실은 날이 갈수록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진짜예요. 태화는 국제 진료소에서 들어오는 돈이 너무 커서, 거기 수술 몇 개만 받아먹어도 적자는 안 나요.”
“어……. 진짜?”
“네. 간이식 그거, 한 2천에서 3천 정도 하죠?”
“어……. 그렇지. 그래도 이건 좀 남는 편이지. 인원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거의 똔똔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수술은 어마어마한 편이었다.
단순한 암 수술이나 맹장은 남기가 어려웠다.
환자가 1인실이나 특실에 입원해 준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장준혁이 후후 웃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아랍 부자들한테는 저희 6억 받습니다.”
“6, 6억!”
“쉿. 소리 지르지 마시고…….”
“아니, 그게……. 열 배도 넘게 받는다고……?”
“그래도 미국보다 싸요. 미국보단 아무래도 감정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더 가깝고. 실력이야 뭐 김승규 사단 아시죠?”
“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렇네. 와……. 아니, 근데 그게 마케팅이…….?”
대한민국 의료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코비드 19 사태 때도 대한민국 인프라의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 주지 않았나.
물론 마스크 끼라면 끼고, 손 닦으라면 끼고, 모이지 말라면 흩어지는 국민들이 있어서 더더욱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여하간, 동원 가능한 전문의 비율이 세계 최고에 병원 설비나 병상 수는 아예 비교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런 수술에 대한 홍보는 또 다른 얘기였다.
‘우리 이수혁 교수가……. 후후.’
장준혁은 수혁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입단속이 있었단 사실 또한 떠올렸다.
뭐, 언젠가는 다 알려지겠고 또 이제 와서 수혁이 다른 병원에 갈 일이야 없겠지만…….
사람 일이란 건 모를 일 아니겠나.
특히 지금 눈앞에 있는 칠성 병원이나 저기 뱀처럼 서 있는 아선이라면 무슨 짓을 하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병원이 기업에 있어 사회 환원으로써의 의미와 총수 일가의 VIP 진료 정도의 의미만 있지만…….
앞으로도 그렇겠나.
언제까지 싸면서 질 좋은, 이 말도 안 되는 의료가 유지되겠나.
-부분 건강 보험 민영화. 이 단어 비슷한 거라도 나오면 그때는 좀 긴장하세요. 그땐……. 욕먹더라도 파업이 됐건 뭐라도 해야 할 거예요.
신현태 원장이 해 준 말이었다.
김다현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니만큼 신빙성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정부는 결국, 기업과 한패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을 비난하면서 스리슬쩍 넘어갈 거다.
이미 의사들의 악마화는 성공하지 않았나?
뭔 소리를 해도, 심지어 옳은 소리를 해도 나쁜 놈이 되었다 보니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공격이나 안 당하면 다행일 터였다.
‘그러니까, 시발……. 환자 대상으로 성범죄 저지르는 놈, 펜타닐 아무렇게나 처방하는 놈들 좀 다 잡아 가두게 해야지……. 그런 놈들을 왜 싸고도는 거야. 그러면서 국민들한테 호소하면 잘도 들어 주겠네. 사형이라도 시키진 못할망정.’
정무 감각이라고는 1도 없는 협회…….
그 협회 머리 꼭대기에 서서 가지고 노는 국회의원들…….
장준혁은 언젠가 자신이 더 위에 올라가게 되면 가만두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언젠가 다가올 보험 민영화에 대비하기 위해 최고의 병원을 만들기 원하는 기업들 또한 떠올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하기엔, 입 다물고 거의 1분 있었는데.”
아쉽게도 장준혁은 수혁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흘러 버렸다.
당황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회의가 시작되었다.
진행은 칠성 병원 과장, 그러니까 방금까지 앞에 있던 사람이 하게 되었다.
이번 학회장이 칠성이다 보니 그랬다.
“자자.”
안건이라고 해 봐야 나날이 줄어들어만 가는 지원자 대책과 미용 특히 모발 이식과 성형 쪽으로 빠지고 있는 젊은 전문의들에 대한 대책이었다.
고작해야 과장들 모여서 30분 숙덕대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있을까 싶을 만큼 무거운 안건이지 않나?
너무 중요해서, 역설적으로 별 의미 없는 시간이 될 거란 얘기였다.
쾅.
그렇다 해도 뭐가 터지리란 기대는 장준혁을 포함해 아무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 다 있었네.”
“그……. 김승규…… 교수님?”
안에 들어온 것은 김승규였다.
폭탄이라도 터졌나 했더니, 핵폭탄이었다.
“어어.”
“장 과장. 거기 있어.”
“넵.”
장준혁은 본능적으로 튀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승태. 너도.”
“네.”
보다 날렵한 편이라 자부하던 인의 대학교 예비 과장 김승태도 돈좌되었다.
“별 얘기 안 할 거니까 너무 긴장하진 말고.”
“네, 넵.”
그렇게 모든 사람을 긴장시키며 등장한 김승규는 긴장하지 말라는 의미 없는 말을 하고는 입을 놀렸다.
마이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작은 홀 정도는 육성으로 진동시킬 수 있는 용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일단 이수혁 교수 탐내고 있는 놈들 있으면 얌전히 포기하라고.”
그의 말에 몇몇이 움찔거렸다.
칠성과 아선만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냥 찔러나 보고자 했던 놈이 수십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수혁 교수 공짜로 온 거 알고 있나?”
“네? 거마비도 안 드려요?”
“푼돈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가 주지 말라고 했어.”
“네에?”
아니, 학회 사정이 있나 했더니 그냥 지가 안 준 거야?
근데 왜…….
지가 와서 저러고 있나.
이러한 불만들이 피어올랐지만, 감히 벙긋하는 놈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네에? 했던 칠성 과장도 지금은 얌전히 눈 깔고 서 있었다.
“내가 알아. 이수혁 교수는 돈이 중요한 사람이 아냐.”
그걸 어찌 압니까…….
왜 멀쩡히 책정되어 있는 돈을 안 주고 여기 와서 지랄입니까.
이 말이 다들 너무 하고 싶었지만, 고개라도 쳐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루비 홀은 그저 조용했다.
잘된 일이었다.
누가 뭐라고 했다가는 루비홀이 말 그대로 붉은 루비의 홀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대신 주기로 약조한 게 있는데 나 혼자서는 안 돼.”
“아.”
김승규의 말에 김승태, 장준혁을 비롯한 김승규 사단이 몸을 움찔했다.
“그래서 말인데. 너네 하나씩 어려운 케이스 제출해라. 외과 아니어도 되고, 어려우면 다 돼. 근데 꼬여서 어려운 거 말고. 흥미로운……. 아니다. 꼬여도 돼. 어려운 거로. 반려 과정도 있으니까 긴장하고.”
“어…….”
“무슨……?”
“이수혁 교수는 어려운 케이스를 좋아하거든. 보은해야 하니까 최선을 다하라고. 그러면서 각 병원에서 해결 못 하던 거 해결되면 좋은 거 아냐?”
“그……. 알겠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승규 말에 뭐 누가 감히 토를 달겠나.
뒤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귀에 들어가면 그게 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으니.
“아.”
해서 조용히 있으려니 김승규가 그대로 나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섣불리 고개를 들었던 이들이 본능적인 공포에 짓눌린 채 신음을 토해 냈다.
마왕?
사탄?
그런 것이 현세에 강림한다면 저런 형상이 아닐까.
“맞다. 선착순 10명은 좋아. 근데 그 이후다? 영상 통화 걸 거니까 알아서들 해.”
“아.”
그 악마의 마지막 말은 실로 공포스러운 말이었다.
이후로 회의가 이어지긴 했지만, 칠성 병원 과장부터 해서 회의실에 있는 전원 딴생각 중이었다.
-야, 케이스 알아봐.
-아 되묻지 말고!
-과장 말이 말 같지가 않냐?
그뿐만 아니라 다들 문자질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