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57화 (1,157/1,303)

1157화 우리 학회도 준비해야지 (3)

수혁은 그림 파일부터 열었다.

얼핏 보면 앱을 실행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냥 그림 파일일 뿐이었다.

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라 그림만 그린 거야.”

“아……. 되게 잘 그리셨네요?”

“내가 그린 거 아냐.”

“그럼……?”

“대강 짜깁기한 거야, 그림만.”

“아……. 그렇구나.”

“그냥 느낌만 봐. 아무튼, 이런 앱이 있다고 치자고.”

앱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거의 태화 헬스 앱이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속도는 어떠했는지, 언제 걸었는지,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났는지 정도만 떠 있었다.

걸음에 대한 것은 상당히 정확하겠지만 사실 잠에 대해서는 그렇지도 못했다.

핸드폰 내려놓은 시간을 잠이 든 시간으로, 다시 집어 든 시간을 일어난 시간으로 잡는 방식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 정도인데, 사실 미흡하지?”

“네, 미흡하긴 하죠.”

“자, 봐. 직장인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아니지만.”

“네.”

“GPS를 연동하고, 결제랑 연동하면…….”

“네.”

“점심 저녁은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 다 알 수 있어.”

“오…….”

하윤은 정말로 감탄하고 있었다.

무엇을 먹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준다는 말도 있지 않나?

되게 유명한 말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인 우창윤 교수가 맨날 하는 말이기도 했다.

속뜻까지 다 알고 있다는 얘긴데…….

그러다 보니 이걸 파악하게 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딱 알아들었다.

“아침이나…… 집에서 먹는 식단이 좀 문제긴 한데. 녹음 기능을 따면 뭘 먹는지는 몰라도…….”

“언제 먹는지는 알 수 있겠네요?”

“식사에 걸리는 시간도 평가가 가능해.”

“오.”

“사실 뭘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언제, 몇 번 먹는지도 중요하잖아. 아무튼, GPS만 따도 언제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지?”

“네.”

뭐…….

휴대폰 놓고 나가면 어찌 아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이제 당신의 휴대폰이야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란 말이었다.

그렇지 않나?

“내가 생각한 건 이 정도인데…… 아무튼 이걸 병원 기록과 연동할 수 있다면 확실히 개인별 맞춤 처방이 더 가능하겠지.”

“으음. 근데 이게 처방이랑 딱 연결이 될 수 있을까요……? 지침이라는 게…….”

“그래, 지침이 있긴 하지. 가령 당뇨 같은 것도 좀 그렇긴 해. 하지만 잘 들어 봐.”

“네.”

하윤은 지금 수혁이 던져 준 화두에 대해 생각하면서 동시에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꿈과 같은 순간이었다.

애초에 이런 류의 논의를 좋아하니까 내과에 왔고 또 거기서 더 나아가 통합진료센터까지 온 사람이 하윤인데 그런 논의를 꺼내고 이어 나가는 상대가 수혁이었다.

‘으으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감기 같은 경우에…… 우리는 지침이 어때? 그냥 코랑 목 보고, 증상 발생 시기 보고 정하게 되어 있잖아.”

“네, 그렇죠.”

“이에 따르면 첫 방문 시에 항생제 쓸 사람은 사실 거의 없어. 뭐…… 로컬에서는 환자가 강력히 원한다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건 일단 없다고 치자고.”

“네네.”

“근데, 만약 환자가 궂은 날씨에도 계속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가령 현장 건설직 노동자이거나……. 헌병이나 경찰 같은.”

“아…….”

“그럼 처음부터 항생제를 주는 게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충분히 쉬기는커녕 계속해서 몸을 혹사시킬 테니까 말이지.”

“그렇, 그렇네요?”

맞춤형 서비스라고 하면 유전자부터 떠올리는 게 현실이었다.

왜?

첫 단추를 거기서 떼서 그랬다.

정부나 기업, 언론이나 여론도 그쪽으로 관심이 쏠려 있었고.

그쪽이 훨씬 그럴싸하지 않나.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인지의 쏠림까지 해결 가능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가 있다 보니 시선을 객관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었다.

“그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냥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처방을 할 수 있다면 그럼 된 거지.”

“그렇네요, 정말.”

“그리고 처방이 약만 말하는 건 아니잖아. 설명이나 생활 습관에 대한 조언도 처방이지, 사실.”

“으음……. 이거 진짜 뭔가 오는데요.”

“어, 그렇지? 이게 앞으로는 무조건…… 대세가 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요. 근데 그럼 이런 앱은 있어요?”

“뭐……. 일단 태화 헬스 앱이 있지.”

“그거 말고는요? 우리가 만들면 안 될까요?”

하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루다가 좀 놀랐다.

[방금 되게 수혁 같네.]

‘욕처럼 쓰지 마…….’

[그냥 수혁 같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인마.’

[닯기는 했잖아요.]

‘그건 나도 놀랐어.’

사실 수혁도 이걸 논문으로 쓰기 전에 먼저 앱을 만들어 보려고 해서 그랬다.

하지만 알아보니, 세상엔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 알아낼 수 있었다.

이미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어떤 대표는 심지어 레지던트 하다가 나와서 회사 차리기까지 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세월과 사회가 증명한 임상 의사의 길이 있는데 그걸 때려치우고…….

“엄청 많아. 이거 봐.”

“와……. 미쳤다.”

수혁은 인터넷에 검색해서 앱들을 보여 주었다.

죽죽 스크롤을 긁는데, 그런데도 쭉쭉 나올 만큼이나 앱이 많이 나왔다.

수혁 앞인데도 불구하고 미쳤네 어쩌네 하는 말이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많았다.

“이건 다 우리나라 거고……. 외국 것도 많아.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개념인데, 그렇지 않아도 이쪽 전문가 중에 하나 아는 사람이 있어. 학회랑은 별개로 한번 보려는데, 너도 가 볼래?”

“저야 좋죠.”

따로 보자는 거 아닌가.

그럼 좋지, 뭐.

곁다리로 사람 하나 더 있긴 하겠지만…….

수혁은 뭔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 멋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아직까지 둘이서만 만나면 어버버하느라 끝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건 그렇고. 아무튼, 이런 개념을 발표로 만들어 보자. 지금의 맞춤형 치료는 좀 그래.”

“네네.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쭉 만들어 볼까, 그럼?”

“네.”

수혁의 인도 아래 발표 자료가 슥슥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러프긴 했다.

나중에 다듬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림 말고는 딱히 뭐 만질 게 없을 거 같은데…….’

그만큼 속도가 엄청 빨랐다.

하지만 정작 발표를 해야 할 하윤이 보기엔 이걸로 족하다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림이야 뭐…… 곁가지 아닌가.

마케팅이나 광고용 발표도 아니고 학술 대회에서 할 발표다 보니 내용만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발표 자료 또한 그 내용을 한눈에 잘 읽어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 텐데 수혁은 지금까지 워낙에 많은 발표를 전설급으로 해낸 사람이지 않나.

배우지 않고 체득했다고 하지만, 바루다가 있다 보니 체계화시키는 것에도 능통한 편이었다.

“좋은데요?”

“그렇지? 이거 주제가 좋더라고. 보자마자 너 생각이 났어.”

그렇게 쭉쭉 만들다 보니,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다 보니 기분이 서로서로 좋아지고 있었다.

해서 수혁은 저도 모르게 툭 하고 한마디 던졌는데…….

“아.”

“아.”

이게 사실 별일은 아니었다.

수혁은 안대훈이나 김성진, 김인수뿐만 아니라 이름만 알고 지내는 수준의 레지던트들도 가끔 생각나서 논문거리를 던져 주는 사람이니까.

다른 교수들…….

그러니까 조태진, 신현태, 이현종급 정도 되면 맨날맨날 생각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즉 논문거리 보면서 누군갈 생각한다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란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좀 그랬다.

“그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이게 딱 너한테 어울릴 거란 생각이.”

“어, 어울려요?”

“어? 어, 그렇지. 너한테는 뭐든…….”

“뭐든?”

“아니, 내가 무슨 말을.”

“그, 교수님.”

수혁은 그른 인간이었다.

[병신이.]

바루다가 욕할 정도면 끝난 거 아니겠나.

[앞으로 수혁은 드라마 보면서 고구마니 어쩌니 하는 거 금지예요. 뻔히 보이는 곳에서 지하철 엇갈릴 때 뭐라고 했지? 답답하다고 했어? 이럴 거면 엇갈리는 게 나아요.]

욕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지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수혁은 할 수 있는 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그랬다.

처맞는 말인데, 보통은 말한 놈이 맞아야 된다면 지금은 듣는 놈이 맞기까지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윤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어, 어.”

“저 교수님 좋아하는 거 같아요.”

이대로는 안 된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렇지 않나.

시대가 어느 땐데 리드를 남자에게만 맡기나.

그냥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게다가 하윤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약 망설이는 사람이었다면 성적이 이렇게까지 나오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무엇보다 대학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잘하기도 어렵지 않았겠나.

“어…….”

해서 말을 꺼냈더니 상대가 스턴에 걸려 버렸다.

아니…….

“교수님, 괜찮아요?”

기절 수준이 아니라 마비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개지다가 하얘지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았다.

“아니…….”

해서 맥박을 짚어 보니 두두두두두두두 소리가 나고 있었다.

‘180회? 아니, 200회?’

운동하던 것도 아닌데 심장이 이렇게 뛰다니.

혹 다리가 불편해서 이런가?

보통 이렇게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어어, 교수님!”

이대로 두면 정신을 잃는 것은 100%였다.

거기에 더해 툭 하고 쓰려져 다칠 것 같았다.

해서 하윤은 뭘 해야 하나 하다가 급한 김에 뺨부터 쳤다.

“으억.”

[와, 두 번 맞았다.]

전에도 이렇게 끝났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려는 무렵, 하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바루다는 이때 끝났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경험이 적었음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달랐다.

[이건 되겠다.]

‘그, 그래?’

[걱정하고 있잖아. 아무 말이나 해!]

‘아무 말? 무슨…….’

[시발놈아 아무거나 해.]

‘네네.’

바루다의 확신에 착 푸시에 수혁은 정말 아무 말이나 했다.

“나, 나도 좋아해. 예전부터 쭉…….”

“아.”

그리고 하윤이 스턴에 걸렸다.

아마 누군가 이 꼴을 보고 있었다면 어휴 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을 터였다.

다행히 수혁의 연구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존재를 들키면 논문 툭툭 던지는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이리저리 돌고 있기에 그랬다.

상황이 정리된 것은 스턴 핑퐁이 서너 번 반복된 후였다.

“그, 그럼 밥 먹으러 갈까? 하, 하윤아?”

“네, 네. 교수님.”

그렇게 얼굴이 벌건 남녀 한 쌍이 제네시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3